Mung2016.09.12 01:19

내가 옮겨간 곳은...


국내 스마트폰을 만드는 P1실이었다.


건물도 기존 C건물에서 가산R&D캠퍼스라는 뭔가 좀더 있어보이는 건물로 변경되었다.



팀이 변경되고 첫 출근을 했을때 기억이 난다.


팀장... 아니지. 거기는 파트체제라서.. 파트장이 대빵이었는데,


파트장이 아닌 뭔가 그 밑에 파트원 중 한분이 나를 데리러 왔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설명을 해줬다.


원래 우리 자리는 18층인데... 지금 프로젝트 기간이라 16층에 모여서 일을 한다.


그 모여있는 공간을 TDR룸이라고 불렀었다.


18층의 내 자리에 짐을 풀어놓고 TDR룸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파트장분은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모니터만 쳐다보면서 말씀을 하셨다.


응. 응. 그래.


그게 첫인사의 끝이었던거 같다.


뭐 파트가 모이지도 않았고, 그냥 다들 자리에 앉아있었던거 같다.


그냥 그렇게 난 또 다시 어색한 파트원 중 한명이 되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파트는 상당히 좋은 파트였다.


파트원 모두가 나에게 너무나도 잘해주었고, 특히 파트장분과 부파트장 되시는 분은 나를 너무 이뻐해주셨다.


아무것도 할줄 모르고, 아부도 할줄 모르는 성격의 나를 참으로 이뻐해주셨다.


파트원 분들도 막내가 들어왔다고 해서 참 잘해주셨다.


물론 내 개인적인 착각일수도 있지만, 여하튼 난 그렇게 믿는다.



처음 내가 맡게 된 일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개발한 것들을 한데 모아서, 완성품을 만드어내는 일이었다.


다시 얘기해서, 수백명의 사람들중 한명이라도 퇴근을 안하면 퇴근을 못하는 그런 일이었다.


항상 야근을 했던거 같다.


빠르면 밤 10시에 퇴근을 하고... 늦으면 밤을 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아주 가끔... 집에 제사라도 있는 날에만 5시에 퇴근을 했던거 같다.


5시 퇴근은 휴가보다도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주말에도 기본적으로 토요일엔 출근을 했었고, 일요일 정도만 쉬었었다.



대기업 다닌 사람들은 죄다 맨날 야근했다고 뻥만 쳐대서 객관적인 자료로 얘기를 하자면...


2011년 9월달... 한달동안.


31일이고.. 추석 때문에 빨간날이 10개였던 그 달에는...


나는 27일동안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했었고... 빨간날 10일 모두 출근을 했었다...


27일을 뺀 4일은 새벽 4시가 넘을때까지 깜빡하고 퇴근도장을 안 찍어서 그냥 출근한것처럼 되어버린 날이었다.


다시 얘기해서 한달 내내 12시 넘어서 퇴근을 했던거 같다.


물론 집에 못 들어간 날들도 많았고....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정도는 합숙도 했었다.


저기 경기도 오산 근처에 LG전자 휴대폰 공장이 있는데 그 옆에 있는 아파트에서 합숙을 했었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었다, 어차피 합숙이니까.


그냥 눈 뜨면 아파트 옆동으로 가서 일하고, 졸리면 옆동으로 가서 일하고...


자다가 휴대폰 울리면 몇시가 됐건 다시 옆동으로 가서 일하고... 또 다시 자고...


이렇게 3개월을 보냈다.


3개월동안 집에는... 10번도 못 갔던거 같다.


하루 밤새는 날은 일주일 2번정도씩은 꼭 있었고...


이틀 밤새는 날도 한달에 한번정도는 있었던거 같다.



사람이 잠을 안자면 어떻게 되는지도 그때 처음 느꼈었었다.


갑자기


'야 너 뭐해!' 라고 얘기해서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손을 움직여가면서 뭔가를 하고 있는데, 이걸 왜 하고 있는지 기억이 안난다.


엥.. 이게 뭐지. 내가 이걸 하고 있었다고? 언제 잠든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멍한 상태에 빠지곤 했었다.


그래서 항상 내가 밤새는 날에는, 실수라고 할까봐 부파트장분께서 내 옆에 앉으셔서 내 모니터를 쳐다보고 계셨다.



그러다 내가 졸거나 실수라고 하면 세수하고 오라하시거나,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자고 해주셨던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하고 견디기 힘든 날이었겠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사람만 좋으면 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던거 같다.


아무리 잠을 못자고, 집을 못가고, 몸이 힘들어도...


같이 일하는 분들이 재밌고 좋아서 그랬는지, 매일매일이 재미있었다.



그 당시에 동기들을 만나거나 예전 인턴 동기들을 만나면, 난 왠지 모를 자부심이 있었다.


다들 야근이 많다고 우는 소리를 하고, 뭐 밤을 샜네 마네 주말에 출근을 했네 마네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난 속으로 콧방귀를 꼈었다.


거 참 하루 밤샌게 샌거냐... 새벽에 퇴근했다고? 새벽에 집에 가는게 어디냐. 난 한달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자부심을 가졌던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이지.



지금 회사 와서도 처음에는 그랬었다.


가끔 정말 바쁠때, 뭐 토요일마다 출근을 했었다는둥... 선배 중에 누군가가 큰일이 터져서 2박3일동안 꼬박 밤을 새가며 일을 했었다는 둥...


그런 얘기를 들을때면 이 생각밖에 안들었다.


이 사람들 진짜 일 편하게 하면서 살아왔구만.... 이게 지금 무용담이라고 나에게 말해주는건가...



참 노예스러운 마인드였다.


누군가가 힘들었음을 나에게 얘기할때에는, 정해진 기준보다 힘들었기 때문에 얘기하는 것일텐데,


그러면 그냥 그 힘듦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내가 겪은 것보다 안 힘들었을거라는 그 생각 때문에, 상대방의 힘듦까지도 무시해버렸던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더 힘들었다. 내가 더 빡쎘다.


그래서 뭐.

 

그래서 뭐 어쩌라는건지 참....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다.



그래도 저때의 기억들은 항상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다.


참 재미있었다.


저때 1년동안 정말 빡세게 일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 누구에게 꿇리지 않을 무용담은 항상 가지고 있다.



쓰기 전에는 금방 쓸거 같았는데,


쓰다보니 너무너무 할얘기도 많으니 천천히 써야겠다..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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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7.09.01 21:17 [ ADDR : EDIT/ DEL : REPLY ]
    • 와... LG 다닐때 항상 부러움의 선망이었던 CTO에 들어가게 되셨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ㅎ
      제 업무중 그나마 업무라고 부를만한게 CTO에서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준걸 적용하는 일이었는데... 그때도 참 대단하다 생각했는데.ㅎㅎ
      LG에 가셔서 꼭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다!

      2017.09.02 22:48 신고 [ ADDR : EDIT/ DEL ]

Mung2016.09.12 00:59

미국에서 쿠바로 넘어가기 직전, 네이버 블로그가 해외에서 너무 느리다는 것을 깨닫고,


티스토리로 옮겨오긴 했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원래 네이버 블로그를 해왔었다.


거기에 쓴 글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던 글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대학교에서 학점 잘 받는 방법에 대한 글이었다.



입사하고나서 대학시절 내 기준에서는 열심히 살았던 그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블로그에 공대에서 학점 잘 받는 법에 대해 써놨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었고, 많은 도움이 됐었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그래서 그때 결심했던 것 중 하나가,


그럼 나중에는 입사할때의 팁이라도 좀 적어놔야겠다... 였다.


다들 취업이 힘들다고 하지만, 난 나름 왠만한 서류는 다 통과했고, 인적성검사와 인성면접은 거의 99% 통과했으니까,


그때의 기록들을 적어두면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기고만장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거 같다.



허나,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냥 운때가 좋아서 취업이 잘 됐던거 같다.


스마트폰 돌풍이 불던 2011년.


난 그저 2년 약정이 끝나서 처음 아이폰이 나온날 아이폰을 예약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스마트폰 관련 벤처회사에서 일해봤단 경험 하나만으로, 


물론 이것도 친인척중 한분이 그 회사를 차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니까 내 능력은 아니지...


여하튼 그러저러한 이유로 운 좋게 취업이 매우매우 쉬웠을뿐, 내가 뛰어났던 것은 별로 없었던거 같다.




그러해서.


여하튼 그러해서.


취업에 대한 글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한 스텝 건너뛰어서 내가 몸담았던.


첫 정규직으로 일했던 LG전자에서의 1년을 돌이켜보고자 한다.


이건 내 자랑도 아니고. 흑역사도 아니고. 그냥 내 30년 인생중의 1년의 시간에 대한 가감없는 서술이다.


물론 군대얘기와 마찬가지로, 추억보정이 들어가서 약간의 과장이 섞일수는 있으나,


최대한 담백하게 적어내고자 한다.




때는 2011년 겨울이었다.


삼성SDS를 버리고. 미래에셋증권을 버리고 LG전자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부터 쓰기 시작하면,


오늘 밤을 새도 다 못 끝낼 것 같으니, 우선 LG전자에 입사한 그 이후로부터 쓰고자 한다.



처음에는 LG그룹 연수였다. 2주였나.. 곤지암 리조트였는지 이천 신입사원 연수원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여하튼 어디선가 열심히 연수를 받았다.


개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건, LG메들리 라고 하는 LG그룹 전통을 배우는 일이었다.



LG메들리라는건, 약... 한 10개? 15개? 쯤 되는 노래들을 LG와 관련하여 개사를 한 다음에,


그 노래를 목청이 터지도록 부르면서 춤을 추는 그런 전통이었다.


약 5명정도가 한 조가 되어서, 그 춤을 외우고 노래를 외우고, 거의 하루종일 연습을 하면서,


해가 질 무렵쯤부터 시작해서, 담당 선배사원이 '오케이! 통과!' 라고 할때까지 계속해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었다.



그때도 그러했고, 지금 생각해도 참 병신같은 문화였지만,


그 당시에는 사회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필터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흡수하던 시절이라서,


아무 생각없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던거 같다.



그렇게 LG그룹 연수를 끝마치고는, 거의 곧바로 LG전자 연수를 시작했다.


거기선 뭘 했더라... 아.... 같은 조의 나이 많은 누님 한분이 계셨는데 출신학교를 적는 란에 영어로 뭐라 써놔서,


누나 뭔 학교 나온거에요? H..a..... v?.. 뭐에요 여기?


라고 했더니, 하버드 대학교 라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헐. 하버드? 태어나서 하버드 대학 나온 사람을 실제로 처음 봐서 너무 놀랬던 기억이 난다.



여하튼 거기서도 뭐드라... 그 당시 유행하던 남자의 자격 합창단 컨셉으로 UCC를 찍어대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왜 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짓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또 이어서 LG전자 MC사업본부 연수를 시작했었다.


연수만 거의 2달 넘게 했던거 같네.


거기선 별 기억이 없다. 


실제로 사원증을 처음 받았을때의 그 벅찬 감동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또 이어서 LG전자 MC사업본부 SW직군 교육을 받았던거 같다.


대학교때부터 최종 입사할때까지 UCC만 4~5번은 찍어댔던거 같다.




이 수많은 연수를 거치면서 만난 수십, 수백명의 '동기'들 중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10명도 되지 않는다.


나의 낯가리는 성격 + 사회에서 만난 인연이라는게 다 그렇지 뭐 라는 썩어빠진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다.


여하튼 그렇게 난 수많은 연수를 거치고 난 후에야,


진짜 LG전자 가산 MC-C (구 KCC건물) 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LG전자 MC사업본부 동기들이 전부 대강당 같은 곳에 모였었다.


그리고는 군대에서 보직 분류 하듯이, 인사팀 사람 중 한명이 이름을 호명하면서 몇팀으로 가는지 얘기해줬었다.


내 기억으로는.. 뭐 P1실은 국내사업... P2실은 어디.. P4실은 중남미... P7실은 테블릿... 뭐 이런식으로 나뉘어졌던거 같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이미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쁘고 어디는 지옥이고 어디는 좋다는...


진리의 케바케 따위는 무시한 루머들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그때 나는 P7실로 발령을 받았었다.


테블릿 팀.


응? 테블릿? 아이패드 같은건가? LG전자에서도 그걸 만들어?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거 같다.



나는 처음 월급이라는 걸 받아봤던 벤처회사에서 아이패드를 만져봤었고,


그 이후 삼성SDS인턴을 하면서 갤럭시탭 초기버젼을 만져봤었기 때문에,


이쯤되면 테블릿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될 만큼 테블릿 관련된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거 같다.



그렇게 7팀으로 발령을 받고나서, 인사팀을 따라 쭐레쭐레 갔던거 같다.


가산디지털단지에는 7개인가... 되는 LG전자 관련 건물이 있는데, 개중에서 나는 C건물이라고 하는 (구)KCC건물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속해있던 팀은... 이젠 이름도 기억 안나지만,


주로 석사, 박사 분들이 주를 이뤘던 팀이었다.


(원래 CTO라고... 연구만 전문적으로 하시던 분들이었는데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일반 회사원처럼 소속이 바뀌어버린 비운의 팀이었다.)



거기서 나는...


이젠 이름도 기억 안나지만 꽤 우락부락한 사수를 만나게 되었고, 괴팍한 팀장을 만나게 되었다.




첫날부터 야근을 했다.


팀원들에게 패기넘치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배정받고. 꽉 끼는 정장과 구두를 신은 채로 노트북을 셋팅하고,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그 환경에서 10시간 가까이 책만 읽었던거 같다.


원래 LG전자는 8시 출근 - 5시 퇴근이었지만 5시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았던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아서 안드로이드 개발 관련된 책만 주구장창 읽고 있었다.


그렇게 6시가 되자, 팀장님이 일어나서는 밥 먹으러 갑시다! 하고는 다 같이 우르르 밥을 먹으러 갔다.



나는 어떻게 하나 고민하면서 앉아있었는데,


팀장님이 나에게 말했다.


'자네는 집에 안가나? 그러면 저녁이나 같이 먹고 가지?'


옙! 같이 드시죠! 


그렇게 난 첫날부터 저녁을 먹고는...... 밤 10시까지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융통성 없는 신입이었던거 같다.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해서, 혼자 자리에 앉아서 계속해서 책만 읽어댔다.


화장실 갈때도 누구에게 말씀 드리고 가야할지 몰라서 쩔쩔 매다가 겨우겨우 지나가는 사수를 붙잡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사수가 말해줬지. 그런건 그냥 가도 된다고...


그렇게 첫날부터 밤 10시에 퇴근하고 나서... 거의 한달동안 야근을 시작했다.



난 참 눈치가 없는 신입사원이었다.


팀에 누군가 한명이라도 남아있으면 무조건 남아있어야 되는줄로만 알았다.


아무도 나에게 회사생활에 대해 조언을 해준 사람은 없었고,


그 당시 내 사수는 너무나도 바빠서 날 돌봐줄 겨를 따윈 없었다.


가끔 모르던 것이 생겼을때 바로 뒤에 앉은 여자선임분에게 여쭤보곤 했는데, 그게 반복되지 가끔 짜증을 내시기도 했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상처를 받았었지...


뭔가 신입사원 스스로 주제를 정해서 개발하는 일도 했었는데, 물어볼 곳이 없어서 구글링을 해대고,


남이 만든 어플을 다운 받아서 리버스 엔지니어링? 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해킹 비스무리하게 해서 소스코드 빼내서 복사하고 했던 짓을 했었던거 같다.


여하튼 그 당시 팀원분들은 본래 연구원 분들이라 그런지, 서로 일체의 대화도 없었고,


약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셨던거 같다.


여튼 난 신입사원 프로젝트 + 회사업무 + 회사적응 등으로 항상 바빴었다.



그러다보니 항상 매일 마지막... 밤늦게 혼자 퇴근하곤 했었다.


가끔 사수와 또 그의 사수가 술마시자고 불러내서 일찍 퇴근하던 것을 빼면 항상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할줄 아는것도 없고 할것도 없으면서 말이지....


그러다 언젠가 한번, 내 사수의 사수가 술을 마시자고 해서,


온수역에 있는 허름한 포장마차에 갔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분은 특이하게 소주를 쉬지 않고 드시는 스타일이었다.


많이 드시는게 아니고... 소주 한잔을 따라놓으면 입술만 축이듯이 한 20번에 걸쳐서 쉬지 않고 드시는 스타일이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그 분이 잔을 들때마다 따라서 소주 한잔씩 원샷을 했었다.


워낙 긴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정신은 꽉 잡고 있었는데....


그때 그 분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내가 이제까지 수많은 신입사원을 만나봤는데... 명수씨처럼 처음부터 너무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 불안해.


왜냐면 그러다보면 초반에 나가떨어지거든.... 끝까지 지금의 열정을 이어나갈수 있으면 몰라도...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할거면 지금부터라도 페이스 조절을 좀 하는게 좋아...



그 얘기를 들었을때 나는 뭔가 모르게 뿌듯했었다.


그 얘기의 핵심은 파악하지도 못한채. 아... 난 진짜 열심히 하고 있는건가보다. 좋아. 이대로 나가떨어지지만 않으면 난 인정 받겠구나. 근데 난 전혀 나가떨어질 생각이 없는데? 좋아. 이대로만 가면 되겠다.


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 그 선배분이 해줬던 얘기는 잘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었고, 열심히 하란 말도 아니었는데...


난 그걸 5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그 팀에서의 몇일이 지나갔었다.


난 모토로라 XOOM, 아이패드2, 갤럭시탭 10.1, 옵티머스패드 3D 였나... 뭐 그런 테블릿 PC들의 성능측정 관련된 일을 했었다.


참.. 혼자 하는 일이었다.


혼자 그 많은 테블릿을 짊어지고 다른 건물로 버스를 타고 가서, 하루종일 혼자 데이터를 취합해서 다른팀의 선배분에게 메일로 보내고..


혼자 점심을 먹고 혼자 테스트하고 혼자 퇴근을 하는 그런일을 꽤 했던거 같다...



그렇게 뭐가 회사생활인지. 뭐가 사회생활인지도 모른채 한달쯤 보내다가,


옆팀의 동기에게 이상한 소식 하나를 듣게 된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테블릿PC 관련된 모든 사업을 접을 예정이라서, 우리는 다른 팀으로 보내진다는 얘기였다..


이게 뭔소린가... 짤리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팀 회의가 소집됐고,


좁디 좁은 회의실에서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흠... 명수씨는... 다른 팀으로 가게 됐어요.'


끝.


그게 끝이었다. 전후사정 따윈 없었다. 그냥 다른 팀으로 가게 됐어요. 가 끝이었다.


그리고 뒤 이어서 나온 얘기가 아직까지도 내 가슴속에 상처로 남아있는다.



'그럼... 명수씨는 회의실을 나가주세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마지막 회읜데 듣겠습니다.'


'아니. 이제 우리팀이 아니니까 들으면 안될거 같으니까, 밖으로 나가주세요.'



그렇게 난 한순간에 소속을 잃어버린채, 혼자 책상에 앉아있게 됐었다.


그 당시 받았던 충격은 꽤 컸던거 같다.


한번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바보같이 따르던 성격 탓에,


내 사수와 그 사수의 사수분을 꽤나 잘 따르고 이쁨받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었고,


그들도 나를 참 아껴준다고 생각하고 지냈었는데...


그건 한낱 내 감성적인 생각일뿐이었다.


이곳은 대기업이었고. 난 수만명의 사람 중 한명이었다.


사수나 사수의 사수에게 있어서 나란 사람은. 그저 이제까지 스쳐지나온 수십, 수백명의 신입사원 중 한명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 첫 회사생활의 첫번째 팀을 떠나가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팀장님이 날 별로 마음에 안 들어했던거 같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이쁨 받기 위해서 노력하던 부류였으나,


그 방법이 서툴렀던거 같다.


사실 서툴렀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님이 날 탐탁치 않아하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냥 내 방법이 서툴러서 그랬다고 믿는데 내 정신건강에 좋을거 같다.



여하튼 그렇게 내 첫 팀은 이제는 기억도 안날 정도로 옛날일이 되어버렸다.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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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uel

    오랜만에 들어왔다가 글을 봤는데 잼있네요.
    개인적으로 한국 직장생활은 안해봐서 생동감있게 봤습니다 ㅋㅋ

    2017.01.20 12:59 [ ADDR : EDIT/ DEL : REPLY ]
    • ㅎㅎ 저도 까먹기 전에 써놓은 글인데,
      요즘 다시 읽어봐도 새롭긴 하네요.ㅎㅎ

      2017.05.01 02:10 신고 [ ADDR : EDIT/ DEL ]
  2. Woodwick

    제 첫 1년차가 떠오르는 글이에요. 오래된 글이지만 우연히 찾아 읽고 있습니다 :)

    2018.03.04 23:21 [ ADDR : EDIT/ DEL : REPLY ]
    • 첫 경험이라 그런지 엊그제 같은데... 생각해보니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ㅎ

      2018.08.09 21:40 신고 [ ADDR : EDIT/ DEL ]

귀국 후 살아남기2016.06.26 01:49

처음 인턴을 했을때도... 처음 정직원으로 회사를 들어갔을때도...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후 지금 회사를 들어왔을때도...


항상 들어왔던 말이 있다.



입사한 후 3년차... 6년차... 9년차... 가 가장 고비다.


우선 고비라는 말 자체에 동의가 가지는 않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3,6,9년차에 퇴사 혹은 이직을 생각하나보다.


그러니까 저런 말이 나왔겠지.



누가 만든 말인지 몰라도,


참으로 잘 만든 말인거 같다.



저 말은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마법의 말이다.


힘듭니다. 이건 좀 아닌거 같습니다.


라고 말을 해도,


원래 3년차때는 그런 생각 들어. 나도 그랬지.


라고 하면 끝이다.



원래 그렇다.


원래 그런 생각이 든다. 자기도 그랬다.


하지만 난 그걸 이겨내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끝.



더이상의 대화는 진행할수 없다.


여기서 더 불평불만을 늘어놔봤자 선배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대학생이 바라보는 사춘기 중학생의 모습일 뿐이다.


나도 너처럼 그랬어.


나도 그랬어.


내가 너때는 더 심했어.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다 지나갈거야.



뭐가 지나가고 뭐가 괜찮아진다는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수는 없지만, 이해했다고 말할수 밖에 없다.


왜냐면 난 월급쟁이니까.



요즘 들어 많은 생각이 든다.


유럽인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번듯한 회사도 때려쳤고,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털어서 세계일주도 다녀왔다.



그 결과,


난 그렇게 살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더 넓었고, 세상에는 내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난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 저 사람들도 다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고, 자기가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잖아.


나도 할수 있어.


예전처럼 그렇게 주구장창 야근, 주말출근만 하면서 살지는 않을거야...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난 어느새 토종 한국 회사원이 되어있었다.


무의미한 야근. 왜 하는지도 모르는 주말출근.


야근수당, 주말수당은 당연히 없다.


돈을 준다고 해도 하기 싫은 일을 돈도 안 받고 하고 있다.



이거에 대해 불평... 불평도 아니지, 아닌 것을 아니다 라고 말을 하면 항상 돌아오는 말은,


나때는 더 심했어.


옛날에는 말이야.


넌 왜 이렇게 삐딱하냐.


회사에서 시키면 해야지.



왜 꼭 주말에 이 일을 해야 되지?


왜 하루종일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데 면바지에 와이셔츠를 입고 다녀야 할까?


왜 야근수당은 안 주는거지?


왜 이 일은 이렇게 할수밖에 없는거지?


라고 진심으로 물어봐도, 진심으로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냥 원래 그러해왔으니까.


특별한 이유도 없다.


원래. 그랬으니까. 옛날에는 더 심했지만 지금은 나아진거야.


(그러니까 불평불만하지 말고 다녀.)



내가 대놓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회사는 바뀌지 않는다.


괜히 중간에 낀 선배사원들만 힘들어질뿐이다.


자기도 짜증나는데 밑에놈이 자꾸 태클을 걸어대면 나같아도 짜증나겠지.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 나와 해어지던 누군가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뭘 하든지간에 처음에 너가 아니다 라고 생각했던 그것들. 그걸 꼭 잊지 말고 고쳐나가.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서 못 고치게 되니까.'



그 당시에는,


'아.. 내가 맡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걸 알면서도 안 고친거 가지고 뭐라 하시는건가...'


라는 단순한 생각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심오한 말이었다.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당하다고 느꼈던 수많은 것들.


난 어느새 그것들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불평불만을 늘어놓는것도 어찌보면 마지막 발버둥일수도 있다.


나도 몇년이 흐르고 나면, 건의사항을 얘기하는 신입사원에게 똑같이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야. 나때는 말이야.


지금은 양반이야. 옛날에는 더 심했어.




그게 제일 무섭다.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말하는게 무서운게 아니다.


아닌 것을 맞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 순간이 오는게 너무 무섭다.


난 이렇게 살기 위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다녀온게 아니었는데...


난 왜 이렇게 용기가 없을까.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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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힘내 맹구야 그래도 너의 길은 있다~~
    무었이 너를 힘들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네가 해야 되고 하고 그리고 마지막까지 버티는 놈이 이기지 그렇지 않은 놈은 중도 탈락이다 힘내 힘을 내라고 그리고 너를 위해 하루에 한시간씩만 투자해 거긴 밥벌이 하는곳이잖아 무었이든 좋아 하루에 한시간씩 꼭 투자해서 긴시간 지나고 나면 너는 남들이 쫒아 오지 못하는 사람이 될꺼야 내말 믿어봐

    2016.06.27 17:39 [ ADDR : EDIT/ DEL : REPLY ]
  2. 그림사랑

    안녕하세요.
    글을 남겼던 것 같기도 하고 첨인것 같기도 하고...(우리 부부는 멍군 글을 LG부부라고 해요)
    오래전 처음 글쓰기 시작하셨을때부터 글을 잘보고 있답니다.
    저는 SDS, 와이프는 안행부소속 공기업 인사담당관을 과감히 떄려치고, (아. 저는 개발자였습니다.)
    님께서 올린 여행기를 잘 참고하여 세계일주를 했고,
    지금은 호주 퍼스라는 곳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벌써 1년 4개월 되었군요. 언젠가 한번 인사를 해야지.. 했는데..
    그게 오늘이군요.
    멍군님 글보고기 직전에 맘에드는 글하나 봐서 보시라고 URL남깁니다.
    즐거운 한주 되시길!!
    http://1boon.kakao.com/passionoil/pokemon


    2016.08.22 11:56 [ ADDR : EDIT/ DEL : REPLY ]
    • 오... 안녕하세요. 세계일주 후 이민이라니..
      정말 부럽네요.
      이민에 대해서 궁금한게 많은데....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메일 하나만 부탁 드려도 될까요?
      firebloo@naver.com 입니다.

      2016.08.23 11:54 신고 [ ADDR : EDIT/ DEL ]
  3. 직장아재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십니다

    글 보다 여러가지 생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2017.05.16 11:18 [ ADDR : EDIT/ DEL : REPLY ]

이날이 오긴 오는구나.


드디어 여행기의 마지막. 귀국하는 날의 모습입니다.





한동안은 이렇게 이국적인 풍경을 보는 날은 없겠지라며 찍은 길쭉길쭉한 홍콩의 빌딩들.


우리는 2013년 3월 24일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홍콩의 공항은 여전히 깨끗했고 여전히 들떠있었다.


출국하는 사람도 들뜨고, 귀국하는 사람도 들뜨고...


모두가 들떠있어서 나도 함께 들뜬 기분이 드는 곳.





최종 우리의 짐이다.


바닥에 깔린 박스가 아이맥이고, 그 위의 배낭 두개는 콜롬비아산 배낭덮개를 하고 있고,


그 왼쪽의 화려한 가방은 인도에서 산 가방이고..


비닐은 뭐지.


뭔가 쉽게 망가지는 물건들을 담아놓은 비닐 봉다리인거 같다.





아이맥은 부피가 커서 화물로 따로 보냈다.


한국에 가지고 올때 관세를 내야 된다 그래서,


물품 신청하느라 무슨 작은 종이도 하나 작성하고, 관세 신고 하는 쪽으로 입국도 하고,


엑스레이도 통과시키고 다 했는데,



그냥 보내줬음..;;;


나중에 찾아보니 뭐 컴퓨터는 관세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고,


홍콩에서 오는 사람들 중에, 명품 핸드백이나 잡지 이딴 컴퓨터는 쳐다도 안 본다는 얘기도 있고,


자진납세해서 기특해서 봐준거라는 얘기도 있고...



여하튼 관세 안 물고 그냥 가지고 나왔음. 데헷.





마지막으로 먹은 기내식.


3시간 반정도밖에 안 걸리는데 점심시간에 껴있어서 그런지 기내식을 줬다.



난 기내식 먹을때, 저 왼쪽위에 있는 과일이 제일 맛있더라.





도착과 환승이 있다.


왠지 여기서 환승을 해서 다시 인도로 가야할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난 한국에 도착.





넴.


길고 긴 여행을 끝마치고 한국에 왔습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2013년 3월 24일에 귀국해놓고... 여행기만 거의 3년을 썼네요.


실질적으로 한국와서 쓴건 몇개 없는데... 


또.. 뭐랄까... 귀차니즘 + 바쁨 + 감 떨어짐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금까지 질질 끌었네요.



여행기는 항상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쓰기 전에는 아 써야되는데 써야되는데 하면서 마음의 부담이 되었고,


쓰고 나서는 아 너무 대충 썼나 아 이거 뭔 말인지 알아는 먹을라나 하면서 마음의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항상 재밌게 봐주신 분들이 계셔서 큰 힘이 되었고,


어떻게 보면 그분들 때문에 이렇게 여행기를 마무리 지을수 있었던거 같네요.



한국에 와서는 정말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들처럼 전세값 오르지 않을까 걱정도 하고,


이번 여름휴가 때는 어디 갈데 없을까? 하면서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비행기값이 비싸네마네 뭐 숙소가 없네마네 하면서 때려치기도 하고,


티비에서 해외여행 가서 찍은 프로그램들 보면서, 와 좋네... 라면서 입 벌리고 티비 보기도 하고...



가끔은 언제 여행을 다녀왔나 싶기도 하고, 가끔은 마치 어제 귀국한거 같기도 하고...


그냥 똑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한국에 와서 어떻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써야겠네요.


몇번씩이나 말했지만, 저는 사실 여행가기 전에 그게 제일 궁금했거든요.



여행 다녀온 사람들 블로그를 보면,


오케이. 여행은 좋다 이거야. 남미를 가든 아프리카를 가든 다 좋은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다니는거지? 다녀오고 나서 뭐해먹고 살라고 저러지?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집이 잘 사나? 원래 뭐하던 사람이었지?


등등등....


사실 이렇게 포스팅을 한것도 그런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아서 여행을 망설이시는 분들이 많으실까봐 쓴것도 있고요.


뭐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밤이 늦은 관계로, 내일 또 다시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관계로 인사 드리고 마무리 지을게요.




이 글을 보고 계신 당신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뵐게요.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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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와우 일단 마구마구 축하를 드려요.....라고 말해야하나? 암튼 마무리는 마무리니까 축하를 드려야겠으나^^;;왜 물음표냐하면 한참을 잊은듯이 지내다가도 이렇게 오랫만에 들어와서 쓰여진 새로운 내용에 와우 하고 흥미진진하게 읽고 그다음은 또 언제일려나하고 기다리는맘이 컸어서"세계일주 끝 " 이라니까 요 단어가 주는 아쉬움이 커서요 ㅠㅠ 그래도 말씀하시는 여행기를 써야한다는 부담감이 점점 날이 갈수록 커지셨을수도 있고 ...뭐 그랬을텐데 이렇게 잘마무리하셔서 함께 홀가분한 마음으로도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싶어요. ... 이렇게 지나는 시간동안 아가도 잘 크고있겠고 회사생활도 잘 하고 계시고....하지만 인생은 반드시 체험한것만큼 산다는게 제 생각인데 체험하신 이 모든것들이 일구어내는 그 다음을 또 나눠주실꺼라고 믿고 기다리면서 변함없이 응원할께요.그동안 귀한 나눔 정말 고마웠습니다. 힘!!!

    2016.05.30 13:46 [ ADDR : EDIT/ DEL : REPLY ]
    • 마리님.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보면 이 여행기를 다 끝낼 수 있었던건
      마리님처럼 힘을 주신 분들 덕분인거 같네요.ㅎㅎ

      2016.06.26 01:27 신고 [ ADDR : EDIT/ DEL ]
  2. kuel

    마지막 편을 너무 기대해서 그런가 너무 담담하시네요 ㅋㅋ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거겠지요

    앞으로도 다양한 포스팅 기대합니다

    2016.06.01 17:15 [ ADDR : EDIT/ DEL : REPLY ]
    • 실제 귀국하는 날도 생각보다 담담해서..
      아마도 글이 이렇게 나오지 않았나 싶네요.
      지금까지 지켜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ㅎ

      2016.06.26 01:28 신고 [ ADDR : EDIT/ DEL ]
  3. 흰둥이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3년여전인가 매일같이 와서 여행기를 보았고 한동안 뜸하다가 최근에 와서 밀린걸 다 봤습니다... 많은거 배우고 제가 마치 세계일주를 다여온것 같아요.. 비록 전 신혼여행을 세계일주로 못가지만 ㅋㅋ 한국에서도 좋은 삶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6.08.16 08:36 [ ADDR : EDIT/ DEL : REPLY ]
    • 즐겁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도 한동안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서 (핑계가 반이지만..;;)
      여행기를 너무 느리게 업데이트해서 죄송한 마음뿐이었는데,
      그래도 이런 댓글들이 달릴때마다 죄책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이네요.ㅎㅎㅎ

      2016.08.23 11:53 신고 [ ADDR : EDIT/ DEL ]
  4. 안녕하세요^^ 모아이에 대하여 검색하다가 8일에 걸쳐 1년치 모든 여행기를 다 읽었습니다.
    1년간 세계일주 하신 경험, 추억이 있다는게 부럽고, 과연 나는 할수 있을까 싶고 그러네요 ㅎㅎ
    이후 생활이나 에피소드 등의 글이 없어서 살짝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타인의 일기? 여행기?를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읽고
    인사글도 남기지 않는것은 제가 너무 아쉬워서 인사 드리고 갑니다~
    진희씨와 다솜이와 매일매일 행복한 삶, 추억 만드시고, 여유 되시면 또 재미난 글 부탁드려요~ ^^

    2017.06.02 22:38 [ ADDR : EDIT/ DEL : REPLY ]
    •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저도 여행 다녀온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면 항상 그 뒤의 일들이 궁금해서, 나는 꼭 써야지 했는데 그게 쉽게 잘 안되네요... 흥미로웠던 여행에 비하면 지루한 일상들이라 더 글쓰기를 주저하게 되나봐요.ㅎ

      2017.09.02 22:45 신고 [ ADDR : EDIT/ DEL ]

기쁜 소식이 하나 있다.


우리의 여행은 이날이 끝이 아니었다.


왜냐믄, 우리는 5월24일 새벽 비행기를 탔으므로 여행은 하루 더 남음...


구질구질하구만...ㅎㅎ


실질적으로는 마지막 여행기가 될 이 글을 쓰면서도 만감이 교차한다.


3년이나 지난 일인데, 아직도 설레이네.





어제 너도 달려서 그런지 아침부터 속이 영 별로였다.


1년동안 특별한 일이 없는한, 거의 매일 술을 마셔서 그런가보다.


(근데 한국 와서도 그런다는게 문제임.)



마지막날.


흠. 뭘하면 좋을까. 뭘해야지 마지막 날을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하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우리는 침사추이를 구경하기로 했다.



몇번씩이나 말하지만, 난 아직도 홍콩이 어케 생겨먹은곳인지 모른다.


침사추이가 어딘지, 몽콕이 어딘지.


내가 갔던 곳이 어딘지 잘 모른다.


그냥 와이프 따라서 쭐레쭐레 따라다니기만 했음.





이건 왜 찍었을까...


뭔가 이유가 있어서 찍었을텐데...


아. 저기 가운데 GD가 메인인 잡지가 있어서 찍었나보다.



여행을 하다보면, 이동시간에 할게 없어서 어쩔수 없이 음악을 많이 듣게 되는데..


난 이 여행을 하면서 GD노래를 진짜 많이 들었던거 같다.



음악이 좋은게,


요즘 가끔 여행할때 즐겨들었던 노래들을 들으면,


그 당시의 풍경들이 떠오르곤 한다.



근데 그렇다고 또 그 노래만 주구장창 듣다보면,


한국에서 들었던 기억들이 오버랩 되면서 덮어씌워지긴 하지만....


추억은 추억으로 덮는다는 말이 맞는거 같다.





아침을 먹으러 간 집.


록유티하우스라는 집이다.



매우 홍콩스러운 골목길을 따라따라 가다보니, 더 홍콩스러운 집이 나타났는데, 나름 유명한 집임.





근데 이 집이 특이한점은, 일반 체인 음식점이랑 주문방식이 좀 달랐다.


수시로 이런 딤섬을 싣은 수레가 돌아다니는데,


그때 아줌마를 붙잡고, 저기 쌓여있는 딤섬중에 뭐를 달라고 중국말로 말해야 된다..;;;;



영어가 안 통하는건 물론, 영어메뉴판도 없음.


메뉴판 자체가 없었던거 같다. 그냥 김밥천국처럼 빌지만 하나 놓여져있다.


그래서 내가 뭘 딱 시키면 그걸 주면서, 빌지에 체크하는 형식이었음.



그림은 커녕, 중국말만 써있는 빌지를 보고 내가 아줌마한테 중국말로 딤섬을 달라고 하는건 당연히 말이 안된다.


게다가 저기 쌓여있는 딤섬들은 다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씩 열어보면서 고를수도 없는 형식이었다.


흠.. 어쩌지 어쩌지...





허나 우린 배가 고팠고,


여행 원데이투데이 하는것도 아닌데 이런건 노 프러블럼.



그냥 수레를 졸졸 따라다니면 된다.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든 말든 상관 없음. 어차피 아는 사람 아니니까.



그러면 각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딤섬을 시킬때마다, 아줌마다 저 쌓여있는 딤섬들을 한번씩 들었다 놓는다.


(손님이 주문한 딤섬이 어디있는지 자기들도 찾아야 되니까....)



그때 잽싸게 내가 먹고싶은 딤섬을 고른다.


아, 물론 맛은 모름. 그냥 생김새만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음.


난 딤섬이라곤 거 뭐냐... 명동에 있는 뭐 있는데... 딘타이펑인가 어디에서 한두번 먹어본게 끝이라서 잘 모름.



그 다음에 갑자기 훅 들어가면 아줌마가 놀랄수 있으니까...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가,


(가장 적당한 때는, 사람들이 딤섬 고르는게 끝나고 아줌마가 수레를 끌라고 손잡이를 잡는 순간쯤임...


이때쯤 되면 아줌마가 나를 쳐다보고는, 이 놈은 뭔데 주문은 안하고 서있는거지? 라는 눈빛을 보냄.)



왼손으로는 빌지를 아줌마한테 내밀면서 체크해달라고 하고,


오른손으로는 나 가슴팍을 찌르면서, 이 빌지 내꺼에요! 라고 어필을 한번 하고,


내가 봐둔 딤섬을 통으로 꺼내오면 된다.


그럼 끝.





그렇게 획득한 딤섬.


꽤 맛있음. 특히 저 왼쪽에 있는 우롱차? 그거랑 마시니까 건강해지는 기분까지 드는 맛이다.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써놓긴 했는데,


2011년에 혼자 콜롬비아에 갔을때, 길거리 식당에서 말이 안 통해서 한참 애먹다가,


결국 생선구이? 튀김? 뭐를 시켰는데...


생선 찍어먹으라고 준 소스 (우리나라로 치면 생선까스 위에 나오는 마요네즈 소스 같은거)


그게 에피타이저로 주는 스프인지 알고 열심히 숟가락으로 퍼먹다가,


종업원이 놀라 뛰쳐나와서 퍼먹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



그때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이래서 사람은 굶어봐야 된다.


뭐든지 헝그리해야돼.





이제 배는 채웠으니, 원래 가려던 침사추이로 출발.


여기는 1881헤리티지라는 곳이다.



1880년대부터 1996년까지 홍콩 해양 경찰청? 뭐 그런 건물로 쓰인 곳이란다.


역시 정부기관 건물이 짱이여...


우리나라도 요즘 동네에서 제일 으리으리한게 구청이고, 시에서 제일 으리으리한게 구청임.


구청 쩔어. 



여하튼 경찰청으로 쓰여서 예전에는 감옥으로 쓰이던 곳도 있고 뭐 그렇다는데,


지금은 다 쇼핑몰 및 호텔로 바뀌어 있다.



건물 자체가 엄청 고급져서 그런지,


입점해있는 샵들도 모두 엄청 고급짐.



결론은,


우리는 한군데도 못 들어가봄.





진짜 멋지긴 하더라.


홍콩은 건물들이 죄다 요상하게 멋지다.


유럽풍도 아닌것이, 동양풍도 아닌것이,


뭔가 섞여있는듯 싶으면서도 유럽같기도 하고....





하지만 명품과는 거리가 먼 우리라서,


그냥 옆 쇼핑몰 건물로 가서 차나 한잔 마셨다.



역시 커피는 에스프레소 프라푸치노지!!!


오른쪽꺼는... 공차처럼 생기긴 했으나 공차는 아니고, 녹차프라푸치노에 팥이 올라간 음료다.


뭔지는 모르겠음.



그리고 맛은 한국이랑 똑같았다.


조금 더 달았던거 같기도 하다.





침사추이는 생각보다 별로라서,


우리는 몽콕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도 완전 명품 천국이다.


롯데백화점 명품관마냥 각 샵들 앞에는 길게 줄이 있었다.


우리는 뭐.. 입장도 안 시켜줄거 같으니까 패스!



근데 추후 들은 얘긴데, 홍콩에서 명품 사는게 별로 싸지는 않다고 한다.


한국이랑 비스무리하단다.


대신에 물건 종류가 엄청 많다고 하더라.


흔히 말하는 그 신상. 신상 제품들이 많다고 한다.





여기는 몽콕에 있는 가전제품 파는 동네다.


우리나라로 치면 용산 비슷한 곳?



요즘 취미로 아두이노 개발하느라 용산에 몇번 왔다갔다 했는데,


용산보다 여기에 사람이 더 많은거 같더라.


용산은 망했어. 이제 끝이야.





몽콩은 야시장이 유명했던거 같다.


뭐 레이디스 마켓인가 뭔가도 있었고...


신발 거리도 있었고, 전자제품 파는 거리도 있었다.



지금 보이는건 신발 파는 거리임.


길거리 양쪽으로 이런 샵들이 가득했다.



난 여기서 프리런을 하나 샀다. 프리런3.0이었나...


여하튼 지금까지도 신고 있음.


뭐 좋아서 신는건 아님. 원래 쇼핑을 잘안해서 한번 사면 헤질때까지 신는다.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왠지 이 길거리에서 파는것들은 90%가 짝퉁일거 같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왠지 모르게,.





왜냐면 이 USB 때문인듯.


원래는 IT하는 사람들한테 선물로 줄라고 5개쯤 사왔는데,


하나도 못 줬다.;;;



아직 써보지는 않았으나, 수많은 후기들을 읽어본 결과,


그냥 말 그대로 USB란다.


USB.


USB저장매체가 아니라 그냥 USB란다.


USB구멍에는 잘 들어간다고 함.


하지만 그게 끝이라고 함. 그냥 레고처럼 컴퓨터에 넣었다 뺐다 하는 기능만 있는듯...



바로 옆 길거리에서 이런걸 파는데,


과연 신발거리에 있는 신발들이 정품일까....;;





홍콩의 유명하다 싶은 동네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몽콕, 침사추이, 코즈웨이베이 등등...


관광객인지 현지인인지 알수는 없지만, 다들 참 바빠 보였다.



여행할때는 가끔 멈춰서 이 수많은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려가는걸 보면서,


와, 진짜 다들 바쁘게 사는구나. 다들 어디를 가는걸까 라는 생각도 했었었는데...



출근길 사람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요즘에는,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주변사람들이 어딜 향하는지, 뭘하는지 관심을 가질 시간조차 없다.


왜냐면 캔디크러쉬 깨야 되거든.


개꿀재밌음.





하도 돌아다녀서 좀 쉴라고 들어온 식당.


취와 레스토랑이라는데, 여기도 좀 유명한거 같다.



여기서 떡수제비 비스무리한 음식을 먹었는데,


맛은 기억도 안난다.


그냥 그랬던거 같다.





밥 먹고 후식 먹으러 간 허유산.


물론 여기도 유명하다.


우리는 안 유명하면 안가니까. ㅎㅎㅎ





이제 마지막 짐을 싸러 숙소로 왔다.


지금 보이는 박스는 아이맥을 포장하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주워온 박스다. 


저때만 해도 아이맥 박스도 애지중지하게 이중삼중으로 포장해서 들고오고 이랬었었었었지....



프랑스에서 마지막 리스차 반납할때, 그간 모아둔 캠핑용품이 너무 아까워서 한국으로 부치기 위해서,


저 박스들을 주우러 비오는날 프랑스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기억 나는게...


그날 비도 좀 왔었는데, 비 오는 좁디좁은 프랑스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와 이 동네는 분리수거도 안하나 박스 왜케 없어!!' 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는데, (훗날 알았는데 유럽은 분리수거 잘 안한다 함.;;)


전봇대 밑에 뭔가 반쯤 젖어있는 박스를 발견했다.


그걸 주울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왠지 모를 자괴감이 밀려왔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진짜 여기까지 와서 왜 박스나 줍고 앉아있는거지... 저깟 만원짜리 캠피용 후라이팬이 아까워서 이렇게까지 아둥바둥 한국으로 부쳐야 되나?


이런 생각들을 했던거 같다.



결국 박스도 못 구하고, 한국으로 부치는 돈이 너무 비싸서 모든 캠핑 용품은,


프랑스에 유학온 와이프 친구분한테 드리고 왔었다.


그리고 얼마후, 그 모든 물품들은 버려졌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가 준게 전부 쓰다남은 후추, 고추장, 후라이팬, 코팅 벗겨진 전기밥솥 같은 것들이었음...;;;



여하튼 이렇게 우리의 세계일주 마지막 날은 끝이 났다.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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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우선 다시한번 이렇게 세계일주의 대단원의 마무리를 하심을 축하드리고 나눠주신 모든것에 감사도 드립니다 그리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사실 나눠주신 홍콩도 전혀 모르는곳이면서 왠지 국제갱단들의 거점일것같고 뭔가 살벌하고 무섭기만할듯한 선입견이 있었다고 말씀을 드렸던가요? 하지만 평범한사람들의 소박한 일상들이나 그곳의 지극히 평범한 모습들을 식사하는모습이라든지 시장모습등을 통해 나눠주셔서 홍콩에대한 인상이 조금은 바뀌었답니다.그리고 딤섬전문점이 이곳에도 있는데 시스템이 비슷해서 역쉬...하고 대륙분들의 세계적인 문화확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제는 동아시아의 문화확장을 하시는데요...이곳에 불고기전문점이나 한국화장품전문점들도 있는데...중국분들이 거의다 주인들이시라는@@
    암튼 다시한번 부담을 주자는건 아닌거고 또 다른 지금의 삶의모습을 나눠주시는거 기다릴께요. 아자!!!

    2016.05.30 14:14 [ ADDR : EDIT/ DEL : REPLY ]
    • 이제 앞으로는 한국에서의 생활기를 쭉 쓰고 싶은데,
      쓰기 전에 항상 이런 생가이 들곤 합니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그런 분들이,
      이렇게 우울한 한국생활기를 보고 싶어할라나?...
      근데 뭐 어쩌겠어요. 한국에서 회사원으로 산다는게 다 그런거니까요.ㅎㅎ

      2016.06.26 01:27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