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2024. 4. 27. 13:03

사회생활을 한지 어언 10여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예전 회사에서도 하와이를 간적이 있고, 이 회사에서도 싱가폴에 다녀온적은 있지만 둘다 포상 성격에 비슷한 해외출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일하러 간 출장이었음.
그렇게 일주일간의 일본 도쿄 출장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시작은 가볍게 기내식으로.
국적기인 관계로 도쿄에 가는데도, 기내식을 준다.
게다가 맥주 꿀맛.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 일본맥주를 마셔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 다 몰아마시고 왔다.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회사지만, 출장인 관계로 어쩔수 없이 일본 오피스와 가깝고 + 고객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그래서 비싼 동네인 메구로구?에서 잤음. 누나 말에 따르면 고급 동네라고 한다.
약 5일간의 출장이 끝나고, 나머지 2일은 내 돈으로 여행을 했는데 이 동네는 엄두도 못내겠더라.
외곽에서 비즈니스 호텔에서 잘 정도 돈이면, 이 동네에서는 캡슐호텔정도가 가능함.
 

호텔 짜응.
혼자 자기가 아쉬울 정도였지만, 실제로 저 침대에 누워있던 시간보다 저 테이블에서 일한 시간이 더 많았던거 같다.
 

일본 메구로역에 붙어있는 일본 AWS 건물이다.
일본에는 AWS도 있고, Amazon쇼핑몰도 있는데 두개가 주로 쓰는 건물이 다름.
 

그리고 메구로역에 붙어있던 회전초밥집.
내가 이제까지 먹어본 초밥중에 제일 맛있었다. 가격도 나쁘지 않음.
여기서 일하는 일본분도 이곳을 슈퍼굿 베리슈퍼굿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확한 이름은 아직도 모름.ㅋㅋㅋ
마지막 날 즈음에 여기가 또 가고 싶어서, 30분 넘게 지하철 타고 와서 여기서 밥 먹었다.
 

이건 초밥집은 아니고, 구글 맵에서 유명하다고 나와서 찾아간 식당의 메뉴판.
(위 초밥집은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등 의사소통하는데 전혀 문제 없음. 그리고 회전초밥 집이라 의사소통 자체가 별 필요 없다.)
이 식당에서 메뉴 하나 시켜먹는데 10분 넘게 걸렸던거 같다.
일본은 여전히 영어가 잘 안 통하더라. 그리고 파파고나 번역기를 써도 의사소통이 썩 원활하지는 않았다.
뭔가 직독직해가 가능한 말들을 주로 쓰는거 같았다.
예를 들자면, 빨리 가겠습니다~ 대신에, 대쉬로 가겠습니다. 뭐 이런 말을 써서 번역기 돌리면 좀 이상하게 나옴.
 

요즘 엔화가 역대 최저치를 찍고 있는데다가, 술은 면세+원래도 저렴함 이 더해져서,
일본에서 위스키를 사오면 남는 장사라고 해서 한번 들러본 리쿼샵이다.
일본은 사케밖에 없는줄 알았는데, 일본 위스키도 유명하다고 하더라. 고급 술은 잘 모르는 관계로 딱히 뭘 사오지는 않았음.
 

일본 사무실 풍경.
생각보다 외국인들이 엄청 많이 보여서 의아했는데,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외국인 중에 일본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외국인 비중이 좀 높다고 하더라.
저 틈에서 일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새에 갑자기 글로벌 인재가 된듯한 느낌이 들어서 거의 매일 출근해서 저 틈에서 일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뭔가 싶긴 한데,
회사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더니 저렇게 술이 가득했다.
회사에서 술을 마셔도 되는건지, 아니면 내가 뭔가 숨겨져있는 냉장고를 발견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좀 놀라웠음.
 

일본 사무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건 저 링체조 도구가 꽤 있었다.
일하다말고 갑자기 저기 매달리는 사람도 봤고, 저 기구 말고도 운동할수 있는 기구가 곳곳에 있었다.
 

누가 봐도 일본 사무실이라는게 느껴지는 만화 캐릭터들.
이거 말고도 곳곳에 만화 캐릭터를 그려놨더라.
근데 지금 보니까 저 캐릭터 밑에 From Korea라고 써놨네. 한국 사람이 그린건가;;;
 

일본 사무실에서 본 도쿄 전경.
 

출장이다보니 생각보다 스케쥴이 빡빡해서 몇번은 밥때를 놓쳐서 이렇게 도시락을 먹었다.
사진의 돈까스 도시락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한솥도시락보다 맛없었음.
 

요거는 일본 Amazon 사무실.
일본은 우리나라랑 다르게 Amazon도 공식진출해있고, 아마존 페이, 아마존 헬스, 알렉사 등등 오만가지를 다 출시했다.
 

이건 사무실 구석에 있던건데, 뭔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까 헬멧이었다.
회의실에는 이렇게 바구니에 들어가있고, 사무실에는 책상마다 이 헬멧이랑 응급구조키트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이거 보니까 일본은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는게 실감이 났다.
비록 난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일본분한테 여쭤보니 도쿄도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고 왠만한건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지나간다고 한다.
 

자판기의 나라 일본.
예전에 후쿠오카 놀러갔을때, 시골 구석에도 자판기가 있길래 얘네는 모든걸 다 자판기를 통해서 사먹나 싶었는데.
회사 내에도 자판기가 있음.
왼쪽은 무료 자판기고, 오른쪽은 유료 자판기다.
보통 사무실에는 커피머신이 있는데, 얘네는 다 뽑아먹는다.
 

숙소에서 먹은 아침 조식.
개인적으로 카레나 짜장밥같은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일본은 카레가 유명하다길래 일부러 카레 좀 먹어봤음.
우리나라 카레랑 크게 다른점은 모르겠으나, 그냥 느낌상 더 맛있는 느낌적인 느낌.
 

이건 업무상 방문한 다른 회사 사무실에서 찍은건데,
뭔가 1분동안 하이파이브 많이한 기네스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신기해서 찍어봄.
 

도쿄의 지하철은 소문대로 무시무시했다.
복잡한건 둘째치고, 운영하는 회사 자체가 달라서 표 끊는것부터가 어려웠다.
처음에 그냥 표를 끊었는데 알고보니 무슨 국철 같은거라서, 우리가 가려는 곳을 가려면 엄청 빙빙 둘러가야했다.
그래서 환불하고, 다시 표를 끊으려고 보는데 이게 맞는건지 우리가 가는곳으로 가는건지 어렵더라.
게다가 카드 안됨. 현금 넣어야됨.
참고로 제일 오른쪽분은 일본분이신데도, 이렇게 표 끊어서 타본적이 없으셔서 우리랑 같이 헤매고 계셨다.
 

일본은 아날로그 감성이라 그러더니, 회사 행사도 팜플렛으로 찍어내고 있었다.
신기해서 한번 찍어봄.
 

이건 리쿼샵에서 찍은건데, 오른쪽에 보면 450만엔짜리 로마네콩띠 와인이 보인다.
우리나라돈으로 대략 4,500만원정도 되시겠다.
 

요건 Amazon 사무실이랑 연결되어 있는 호텔이었는데, 일본 전통을 컨셉으로 한 호텔 같았음.
정원도 그렇고, 화장실이랑 벽도 모두 옛날 일본 그림이나 물건들로 채워놨더라.
 

전날 과음한 관계로, 아침 회의전 급하게 해장하느라 먹은 우동.
편의점에서 수많은 음식들을 앞에 두고, 뭘 먹으면 가장 해장에 좋을까를 열심히 고민하다가.
표지가 빨갛고, 뭔가 국물이 있을법한 음식을 골랐는데 이 우동이 당첨됐음.
맛은 뭔가 요상하고 국물은 생각보다 걸쭉했지만 그래도 맛있었음.
 

요건 회사에 있는 전용 카페테리아.
밥도 팔고 음료도 판다.
 

이건 일본에서 일하시는 한국분이랑 단둘이 식사할 일이 생겨서 간 오므라이스 식당이다.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못갈거 같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시키는 방식 또한 일본어가 안되면 어려워보이는 식당이었다.
오므라이스 엄청 맛있었다.
가게가 좀 좁고, 카드가 안되는것 말고는 매우 만족스러웠음.
 

이제 갑자기 빈곤해진다.
출장이 끝나고 개인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저렴한 숙소로 바꿨더니 갑자기 난민이 되어버렸음.
이 숙소에서도 침대에 누운 시간보다, 저 좁은 책상에서 일한 시간이 더 많은거 같다.
 

하지만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나에게 있어서는 편의점 초밥 도시락이나, 고급 스시집이나 매 한가지였으므로 전혀 문제가 안됨.
근데 맥주는 좀 아쉬웠다. 캔맥주도 맛있었지만, 스시집에서 먹은 생맥주가 진짜 맛있었음.
 

여기는 닛포리라고 하는 동네다. 하네다 공항 말고 나리타 공항으로 입출국하면 이 동네를 거친다고들 하던데.
난 하네다 입출국임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가 저렴해서 이 동네로 숙소를 잡음.
 

이제 개인일정이라고는 했지만, 결국 선물사는데 모든 시간을 다 썼다.
신주쿠인지 어딘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시내임. 엄청 큰 빅카메라가 있어서 구경하러 들어갔다.
예전에 빅카메라에서 키보드를 싸게 산 기억이 있어서 혹시나 해서 들어가봄.
 

예전에 왔을때는, '아 혼자였으면 하루종일도 구경하고 싶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정말 혼자 오니까 별 재미가 없었다.
뭔가 무뎌진건지, 피곤한건지, 혼자 돌아다니는게 어색해진건지 잘 모르겠음.
여튼 저 큰 빅카메라 건물에서 키보드만 좀 구경하다가 나왔음.
 

한솔이가 별의커비 스워드 키링을 사다 달라고 해서 찾아간 닌텐도샵이다.
지금 보이는게 다 줄임........
이 줄을 보고 그냥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열심히 찾아봤다.
 

그냥 별의커비면 쉽게 구할수 있을텐데, 별의커비 스워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별의커비 캐릭터가 수십개인데, 하필 그중에 별로 인기도 없는 스워드 캐릭터를 좋아하는 바람에 찾느라 애 좀 먹었다.
결국 조그만 피규어 하나 구하는데 그치긴 했으나, 한달 뒤 고모가 별의커비 스워드 인형을 사다주는 바람에 한솔이가 매우 흡족해했다.
 

하지만 다솜이가 원하는 선물에 비하면, 별의커비 스워드는 약과였음.
다솜이가 원하는 선물은, 1986년에 개봉한 천공의성 라퓨타 굿즈. 미야자키 하야오 굿즈는 토토로가 90프로인 관계로 눈 씻고 찾아봐도 라퓨타 굿즈는 없었다.
가뭄에 콩나듯 찾아내면 가격이 레얄 가뭄에 난 콩 가격임.
 

다시금 사무실로 들아와서 본 도쿄의 풍경.
도쿄는 생각보다 높은 건물이 별로 없더라.

요건 커비 카페다.
이때쯤 한창 애들이 커비에 빠져있을때라서 찍어왔음.
지금은 마리오에 빠져서 커비에는 또 관심이 없어짐.ㅎ

 

어떻게든 천공의성 라퓨타를 찾으러 도쿄 시내를 돌아다녔다.
나온지 40년쯤 된 작품의 굿즈를 찾는건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미야자키하야오 굿즈는 왜케 다들 비싸냐.
결국 아트북이랑 손수건을 찾아서 사옴.ㅎ

 

그리고는 다시 회전초밥집.
스시로 라고 불리는 저가형 스시 체인점이다. (라고 알고 있음.)
여기서 거의 초밥 개수만큼 맥주 시켜서 마셨다.

 

동네 길거리에 있던 너구리 인형.
난 어릴때 만화책을 엄청 많이 봤는데, 가끔 뭔가 요술을 부리는 너구리 에피소드들이 나왔었다.
그런 의미로 입구에 세워둔거 같다.

 

아침부터 또 다시 초밥에 생맥주.
이거는, 닛포리 역에 있는 역내 식당이었다.
원래는 정말 아침만 먹고 도쿄 시내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생맥주가 있어서 어쩔수 없이 시켜먹음.

 

같이 팔고 있던 주먹밥 도시락.

 

일본의 지하철 역사는 죄다 생김새가 다르긴 했지만, 이곳은 뭔가 인천쪽의 1호선 느낌이었다.
부천이나 주안 이런쪽의 야외 승강장 느낌이 났음.

 

다시 또 사무실로 와서 열일.
딱히 가고 싶은데도 없었던뿐더러, 난 나의 허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괜히 돌아다녔다간 허리가 나갈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얌전히 사무실에 와서 일하고 구경하고 산책했다.

 

이거는 어디지... 여튼 시내에 갔다가 먹은 라면이다.
앞에 보면 흰색, 노란색, 검은색 뭐 이런게 있는데. 면 종류를 의미한다.
면을 다 먹고 저중에 원하는 면에 해당하는 색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주방장 아저씨가 그 면을 갖다줌.
두번까지 리필된다고 했는데, 한번 리필해 먹으니 배 불러서 더이상 못먹겠더라.
그리고 일본 식당은 기본적으로 다 작고 좁은거 같다.

 

이건 내 생각에 전국의 8살중에 종이접기를 제일 잘할거라 생각되는 한솔이 선물을 사러 간 서점이다.
외국어로 된 책을 주로 파는 서점이다. 신주쿠에 있었던거 같다.
일본이 종이접기 (오리가미)가 유명하다 그래서 사러 갔음.
이게 종이접기인지 종이구기기인지도 모를정도로 복잡한 책도 있었지만, 고심 끝에 중간레벨로 사왔다.
그리고는 바로 한솔이한테 너무 쉽다고 혼남.
다음에 가면 제일 어려운거 사다줘야겠다.

 

신주쿠.... 맞죠?...

 

그리고는 다시 회사쪽으로 돌아와서 찾아간 첫날의 회전초밥집.
보고 있으니까 또 가고 싶네.
일본 회전초밥집들은 저렇게 자리에서 주문하면 주방장분들이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돌아가고 있는 초밥 주워먹어도 됨.
그리고 가끔 특가세일하는듯한 느낌의 초밥들이 나타난다.
주방장분들이 쟁반으로 들고다니면서 뭐라뭐라 외치는데, 그건 가격이 좀 싼거 같다.
일본어를 못하는 관계로 전부 다 추측성임.ㅎㅎ 아닐수도 있음.

 

회사에서 보는 마지막 풍경.

 

일본은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녀서 그런지, 자전거 주차장도 엄청 크게 있었다.
그리고 왠지 돈내고 주차하는 느낌적인 느낌이었음.

 

출장의 제일 꿀맛은 좋은 숙소에서 잘수 있다는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택시를 맘 놓고 탈수 있다는거 아닐까.
일본의 택시비는 무시무시하다고 들었는데, 요즘 우리나라 물가가 올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미친듯이 비싸지는 않았다.
아닌가? 비쌌나?... 법카로 긁어서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지하철을 이용해서 하네다 공항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 티켓도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그냥 택시 탐.
아저씨는 슈퍼 드라이버였다. 운전 엄청 잘하심.

 

이번 출장 자체가 일본 보험회사랑 미팅하러 간거라서 그런지, 공항에 있는 해외여행보험 가입 기계가 눈에 띄더라.

 

돌아올때 먹은 기내식. 그리고 맥주.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 업무목적으로 간 약 일주일간의 도쿄출장이 끝났다.

그리고 다다음달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 출장을 가게 됐다.
그것도 외국인들 앞에서 영어로 발표하러 간다. 재밌는 회사다.

Posted by v멍군v
카테고리 없음2023. 8. 1. 00:26

20년쯤 전, 생각해보면 정말 20년쯤 전, 군대에 있을때의 이야기다. DP 2를 보다가 문득 생각났다.

원래 나는 통신병으로 군대를 갔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군수병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1종계원이라고 불리는, 부대 내의 식료품 보급을 담당하는 보직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인가.. 2주일에 한번인가 커다란 트럭을 타고, 뭔가 노량시장처럼 생긴 보급대? 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 가서 식료품을 받아왔다.

공병대, 기동대, 헌병대, 의무대, 통신대에서 한번씩 돌아가면서 식료품을 받아와서 나머지 부대에 정해진대로 배분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어느날이었다.
내가 식료품을 배급하는 날이었고, 나는 언제나처럼 기동대 아저씨가 운전하는 트럭에 타서 보급대에 가서 식료품을 받아왔다.
그리고는 부대로 돌아와서는 정해진대로 배급을 시작했다.

이 배급은 단순하면서도 어려웠다. 우유처럼 개수로 배급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제일 큰 문제는
kg으로 나뉘어진 것이었다. 각 부대에 정해진 양은 2.34kg, 4.31kg처럼 나누기 애매한 양이었고, 패킹되어진 양은 2kg, 10kg같은 단위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대충 눈대중으로 나눠서 배급하고 있었다. 4kg니까 10kg짜리 박스를 반으로 나눠서 대충 조금 떼고 주면 되겠지… 이런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마음이 푸근했던 모양이다.
앞에서부터 조금씩 양을 많이 주었는지… 4-5개의 부대를 돌고나니 명태살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헌병대와 내 부대인 통신대였다.

헌병대에 가서 얼마 남지 않은 명태살을 나눠주다보니 헌병대 병장 아저씨가 나한테 화를 냈다. 이등병이었던 나는 너무 무서웠다.
‘아니, 아저씨. 이거 누구 먹으라고 줘요. 나는 모르겠고 명태살 제대로 가져와요.’

나는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지금까지 나눠준 명태살을 다 다시 가져와서 나눠줘야되나… 그러면 또 운전해주는 기동대 아저씨가 욕할거 같은데…

나는 우선 급한대로 내 부대인 통신대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통신대 취사병한테 식료품을 나눠주는데, 우리부대 취사병도 나한테 똑같은 말을 했다.

‘야, 1종 계원. 이게 무슨 4kg야. 다 어쨌어?’

나는 어쩔줄 몰라 하다가, 솔직하게 얘기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이 나눠줘서 명태살이 모자르다. 그래서 지금 헌병대에는 하나도 못 나눠주고 돌아온 길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 얘기를 들은 취사병의 제일 고참이 나한테 말했다.

‘야 1종계원, 우린 이거 필요 없으니까 이거 다 헌병대 갖다주고, 모자른건 이 대구살 갖다줘.’

‘아… 근데 헌병대에서 꼭 명태살로 가져오라 그랬습니다…’

‘야 1종 계원, 하 헌병대 누가 그래? 그새X 데려와. 눈감고 명태살이랑 대구살 쳐먹어보고 구분할수 있으면 내가 대가리 박을게.‘

난 그대로 냉동 대구살을 들고 헌병대로 가서 명태살 대신 대구살을 나눠줬다.

역시나 헌병대 취사병은 나한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저씨. 이건 대구살이고요. 명태살 가져오라고요.’

그래서 나는 우리 취사병한테 배운대로 말을 했다.
‘아저씨, 명태살이랑 대구살이랑 똑같아요. 눈 감고 차이 맞추면 내가 갖다줄게요.’

예상치 못한 나의 반응에 헌병대 취사병은 움찔하고는 욕을 욕을 하면서 대구살을 받아갔다.

그렇게 그날의 소동이 끝나고 부대로 돌아온 나는 취사병에게로 가서 물어봤다.
‘감사합니다 서명원 병장님. 그런데 저희 이제 명태살도 없고, 그나마 있던 대구살도 헌병대 줘버려서 어떡합니까. 저희 식단 어떡합니까?‘

그러자 취사병이 말했다.
‘야 1종계원, 지랄하지 말고 꺼져. 내가 알아서 할거야’
군대라는 곳이 너도나도 욕을 달고 다니는 곳이긴 했지만, 취사병 왕고는 더 욕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랄하지 말고는 그분의 시그니쳐였다.

여하튼 그렇게 우리는 그날 저녁 대구탕 대신 계란국을 먹었고, 아무일 없는 듯이 지나갔다.

이 일은 20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히 내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 20년이 지나서도 계속 내 기억에 남을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Posted by v멍군v
귀국 후 살아남기2023. 5. 29. 22:55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코엑스에 대한 기억중 인상 깊은 기억이 하나 있는데, 그건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때쯤의 일이다.

무슨 행사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코엑스에서는 IT관련된 행사가 열렸었다.

원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행사였지만, 그 당시 나는 큰아찌가 준 Staff표찰을 당당하게 착용하고 무료로 입장을 했었다. (당연히 그러면 안되는거였지만...)

 

내 기억에 있는 장면이라고는,

뭔지 모를 부쓰들 중간중간에 게임을 팔고 있던 간이판매대들이다.

남대문에서 양말을 쌓아놓고 떨이로 판매하듯이, 그 행사에서도 부쓰 중간중간에 오래되거나 유명하지 않은 게임들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단도 5,000원에 판매하는 판매대들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장군이라는 슈퍼로봇대전 짝퉁같은 게임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게임 하나. 그렇게 2개를 사왔던 기억이 난다.

 

그 날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학교를 빼먹고 갔기 때문인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굳이 학교를 빼먹으면서까지 갈만한 행사는 아니었던거 같다. 내가 볼만한 그런 행사는 아니었던거 같다.

그 당시의 엄마가 왜 굳이 학교를 빼먹으면서까지 그 행사에 보내주셨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안가지만,

그래도 뭔가 친구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때 나 혼자 staff 표찰을 착용하고 이렇게 거대한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뭔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달쯤 전에 드디어.

국내에서 가장 큰 IT행사 중 하나인, AWS Summit에서 발표자로서 코엑스에 섰다.

마지막 시간대라 아쉽긴 했지만, 가장 큰 강연장에서 발표를 했다는 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나 혼자 마음속으로.ㅎ)

 

코엑스에서, 그것도 1,000명 앞에서 발표를 한다는게 너무나도 떨리는 일이었지만. (근데 연휴 전날 마지막 시간대라 1,000명 안옴.ㅎㅎ)

막상 올라가보니 생각보다 긴장되지는 않았고, 아주아주 다행히도 준비한 모든 것들을 실수없이 잘 해내고 내려왔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발표자로 서는 날도 오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v멍군v
Mung2022. 9. 5. 23:43

10년전 오늘, 2012년 9월 5일의 나는.

지구 반대편 브라질 살바도르라는 동네에 있었다.

호스텔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찾아봤더니, 알파 호스텔이라는 곳에서 묵고 있었다.

 

구조는 정확히 기억난다.

자그마한 중정이 있었고, 그 중정에는 해먹이 하나 있었다.

우리 방은 그 중정을 지난 뒤, 뒤편에 자리잡고 있었고, 우리 방 옆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꽤나 좋은 호스텔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 전에 급하게 잡았던 호스텔에서 손바닥만한 바퀴벌레가 나왔었기 때문인가.

알파 호스텔은 이상하게 햇볕도 잘 들었었던것 같은 기억이 난다.

 

사실 이 모든 기억이 10년 전 기억이니, 정확할리는 없다.

그렇게 10년 전의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빈대에 뜯겨가며 하루하루 니나노거리면서 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름의 계획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상당히 무모한 플랜B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플랜B까지 가지 않은채로, 10년의 시간이 흘러왔다.

열심히 살았나? 아니. 

열심히 살았나? 그렇다.

 

2022년 9월 5일.

브라질 살바도르에서 빈대에 물어뜯기던 나는, 싱가폴의 꽤나 좋은 호텔에서 마리나베이를 바라보고 있다.

10년전의 내가 생각한, 10년 후의 나의 모습은 아니다.

사실 10년전의 나는,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적이 없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만 살았었다.

 

지금의 나는 10년전의 나보다 얼굴의 주름은 늘었고, 10년전의 이마선이 꽤 많이 후퇴한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렇다. 2012년 세계일주를 하던 나와, 2022년 싱가폴로 출장을 온 나와, 2032년 어찌 살고 있을지 모를 너와.

그렇게 또 두근거린다.

 

 

 

Posted by v멍군v
Mung2022. 1. 23. 15:36

생각해보니 벌써 한 30년쯤 전, 국민학교 3학년때쯤이었던것 같다.


사촌형과 함께 집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찾아왔다.

그리고는 엄청나게 커다란 박스들을 주섬주섬 푸시면서, 이것저것 선을 연결해주기 시작하셨다.

아직도 기억나는 내 첫 컴퓨터 이름은 현대 솔로몬 486DX 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몇인치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14인치쯤 되는 배불뚝이 CRT모니터가 함께 있었고.

함께 왔었는지 나중에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HP 500K인가 하는 잉크프린터도 함께였다.


컴퓨터를 설치할 책상도 없었던지라,

안에 모형꽃이 가득 들어있던, 내 무릎정도 되는 테이블 위에 설치를 했던 기억이 난다.


모르긴 몰라도, 그 당시 컴퓨터 가격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최고급 사양의 맥북보다도 비쌌을것이다.

내가 첫 컴퓨터를 갖게 되고도, 몇년 후에 나왔던 세종대왕이나 진돗개니 하는 컴퓨터들도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으니,

내 솔로몬 486DX는 더 비쌌을것이다.

단순히 짜장면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와 비교만 해봐도, 그 당시 컴퓨터의 가격은 지금돈으로 천만원은 넘지 않았을까 싶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부모님이 왜 그렇게 거금을 들여서 컴퓨터를 사주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모님은 컴퓨터를 사주신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당시 천리안이라는 통신도 연결해주셨다.

그 당시 통신이란 것은 전화선을 이용하는 것이라, 통신하는 동안에는 집전화가 계속 통화중이었다.

그래서 다른 집들은 통신을 못하게 했다던데, 우리집은 내 방에 전화선을 새로 하나 따줄만큼 적극적이셨다.

사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왜 그렇게까지 해주셨는지 잘 모르겠다.


또래들 중 그 누구보다 빠르게 컴퓨터를 접하고, 통신을 접한 나는 컴퓨터를 좋아할수밖에 없게 됐다.

누구보다 특별하게 살고 싶었지만 노력은 하기 싫었던 나에게 있어서 컴퓨터란,

그 누구보다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물건이었다.


한때 학교에서 통신 바람이 불때, 반에서 친하지 않던 어떤 여자애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우리집에서 통신하게 해줄수 있어?

사실 통신을 하려면 천리안에 돈도 내야되고, 모뎀도 있어야되고, 뭐 이래저래 해줘야 되지만 난 그런걸 알리가 없었다.

그저 집에 있는 컴퓨터를 보니, 전화기 뒤에서 선 하나를 빼서 컴퓨터 모뎀에 꽂고, 컴퓨터에서는 천리안을 실행시키기만 하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그날 여자애의 집에 초대받아, 통신을 설치해주기 시작했다.

전화기가 필요하다는 나의 말에, 그 여자애의 어머님께서 손으로 돌리는 옛날전화기를 갖다 주셨고,

전화기 뒤에 선이 한개밖에 연결이 안되는 것을 보고 패닉에 빠진 나는,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한테 통신을 하게 해달라고 말한 그 여자애나, 내가 해주겠다면서 그집에 찾아간 나나, 그런 나를 믿고 지켜봐주시던 그 어머님 모두 황당하기 그지 없지만.

하여튼 나는 그렇게 주변에서는 컴퓨터를 제일 잘하는 친구였다.


사실 어릴때 컴퓨터를 접한 모두가 그러하듯이, 나에게 있어서도 컴퓨터란 여러가지 게임을 골라서 할수 있는 게임기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를 사면, 수백개의 게임을 깔아주는게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매일 어떤 게임을 해볼까 고르면서 시간이 흘러갈 때쯤, 컴퓨터를 좀더 과학적으로 접근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날이었다. 엄마와 함께 광화문의 교보문고에 갔었다.

옛날에는 교보문고 정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자그마한 컴퓨터 코너가 있었다.

그곳에는 정품게임들과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난 당연히 안사주실거라 생각하면서, 게임 하나를 집어서 사달라고 말을 꺼냈고.

놀랍게도 엄마는 아무말 없이 사주셨다. 그 당시 가격이 4만9천원쯤? 엄청나게 고가의 게임이었다.


그 당시 왜 엄마가 아무말 없이 사주셨는지 몰랐다. 당연히 안사주실거라 생각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서점에 따라와줬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으셨던건 아닐까 싶다.


여하튼 그렇게 비싼 게임. 팔콤사에서 만든 영웅전설4 라는 게임을 들고 집에 와서 실행을 시키려는데.

게임이 실행되지 않았다.

어느덧 내 컴퓨터는 나이가 들어, 그런 최신의 게임을 받아들이기에는 버거웠던 것이다.

그 당시 통신에서 이런저런 글들을 찾고, CPU가 뭔지 RAM이 뭔지 Disk가 뭔지 공부하고 가상메모리가 뭔지 왜 실행이 안되는건지 몇일동안 계속해서 찾아봤던거 같다.

그냥 게임을 못하는 것이 속상했다기보다는, 엄마가 거금을 들여 흔쾌히 사주셨는데 그게 실행이 안된다는 사실이 더 슬펐던거 같다.


그렇게 꽤 오랜시간동안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컴퓨터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가상메모리 확인하는법, 늘리는법, OS단에서 셋팅하는 법 등등 원리는 모르지만, 이것저것 시도를 해봤었고.

결국 난 영웅전설4의 첫 화면을 보게 되었다.

그 첫 화면이 떴을 때의 그 희열감을, 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겪은 저 성공경험은, 어린 나에게 컴퓨터 말고 다른 것을 업으로 생각할수 있게끔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당연히 컴퓨터를 업으로 삼게 될 사람이었고, 그 외의 것은 거의 생각해본적이 없다.


10여년쯤 전, 인턴생활을 할때 멘토에게 했던 푸념이 생각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IT를 업으로 택한건 억울한거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야근도 해야되고, 계속해서 신기술은 나오고 있으니 공부도 해야되고,

그렇다고 대우가 좋은것도 아닌데 왜 IT를 업으로 택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멘토분의 말도 기억이 난다.

스스로 고칠수 없는 것들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지금 주어진 상황 안에서 무엇을 해야할지를 생각하시는게 더 생산적일것 같네요.

그렇게 한때는 이렇게 평생 살아갈수 있을까? 나에게 주5일제는 꿈같은 일인가? 라는 생각을 가졌던 적도 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흘러,

어느새 개발자 몸값은 하늘을 모르고 치솟으면서, 주변에는 IT를 배워 중고신입으로 입사하고 싶다는 사람들과,

판교에 대한 환상같은 소리도 들려오고, 국비학원 6개월만 다니면 어디든 취업할 수 있다는 말 등등.

강산이 한번 바꼈을 뿐인데, IT에 대한 인식은 3D업종에서 가장 핫한 직업군이 되어버렸다.


별 생각 없이, 그냥 30년전 부모님이 사주신 486 컴퓨터 한대로 인해 컴퓨터만 해오던 나 역시도,

무슨 미래에 대한 대단한 혜안이 있고, 4차혁명을 미리 예견하고, 한가지 분야만 꾸준히 뚝심 있게 판 사나이가 되어버려,

이 상승장에 휩쓸리게 되었다.


내가 별다르게 노력을 한 것은 없다.

대단한 꿈을 품었던 적도 없고, 미래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했던 적도 없다.

그저 30년전 나와 함께 영웅전설4 첫 화면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현대 솔로몬 486DX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