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8. 1. 00:26

20년쯤 전, 생각해보면 정말 20년쯤 전, 군대에 있을때의 이야기다. DP 2를 보다가 문득 생각났다.

원래 나는 통신병으로 군대를 갔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군수병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1종계원이라고 불리는, 부대 내의 식료품 보급을 담당하는 보직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인가.. 2주일에 한번인가 커다란 트럭을 타고, 뭔가 노량시장처럼 생긴 보급대? 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 가서 식료품을 받아왔다.

공병대, 기동대, 헌병대, 의무대, 통신대에서 한번씩 돌아가면서 식료품을 받아와서 나머지 부대에 정해진대로 배분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어느날이었다.
내가 식료품을 배급하는 날이었고, 나는 언제나처럼 기동대 아저씨가 운전하는 트럭에 타서 보급대에 가서 식료품을 받아왔다.
그리고는 부대로 돌아와서는 정해진대로 배급을 시작했다.

이 배급은 단순하면서도 어려웠다. 우유처럼 개수로 배급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제일 큰 문제는
kg으로 나뉘어진 것이었다. 각 부대에 정해진 양은 2.34kg, 4.31kg처럼 나누기 애매한 양이었고, 패킹되어진 양은 2kg, 10kg같은 단위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대충 눈대중으로 나눠서 배급하고 있었다. 4kg니까 10kg짜리 박스를 반으로 나눠서 대충 조금 떼고 주면 되겠지… 이런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마음이 푸근했던 모양이다.
앞에서부터 조금씩 양을 많이 주었는지… 4-5개의 부대를 돌고나니 명태살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헌병대와 내 부대인 통신대였다.

헌병대에 가서 얼마 남지 않은 명태살을 나눠주다보니 헌병대 병장 아저씨가 나한테 화를 냈다. 이등병이었던 나는 너무 무서웠다.
‘아니, 아저씨. 이거 누구 먹으라고 줘요. 나는 모르겠고 명태살 제대로 가져와요.’

나는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지금까지 나눠준 명태살을 다 다시 가져와서 나눠줘야되나… 그러면 또 운전해주는 기동대 아저씨가 욕할거 같은데…

나는 우선 급한대로 내 부대인 통신대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통신대 취사병한테 식료품을 나눠주는데, 우리부대 취사병도 나한테 똑같은 말을 했다.

‘야, 1종 계원. 이게 무슨 4kg야. 다 어쨌어?’

나는 어쩔줄 몰라 하다가, 솔직하게 얘기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이 나눠줘서 명태살이 모자르다. 그래서 지금 헌병대에는 하나도 못 나눠주고 돌아온 길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 얘기를 들은 취사병의 제일 고참이 나한테 말했다.

‘야 1종계원, 우린 이거 필요 없으니까 이거 다 헌병대 갖다주고, 모자른건 이 대구살 갖다줘.’

‘아… 근데 헌병대에서 꼭 명태살로 가져오라 그랬습니다…’

‘야 1종 계원, 하 헌병대 누가 그래? 그새X 데려와. 눈감고 명태살이랑 대구살 쳐먹어보고 구분할수 있으면 내가 대가리 박을게.‘

난 그대로 냉동 대구살을 들고 헌병대로 가서 명태살 대신 대구살을 나눠줬다.

역시나 헌병대 취사병은 나한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저씨. 이건 대구살이고요. 명태살 가져오라고요.’

그래서 나는 우리 취사병한테 배운대로 말을 했다.
‘아저씨, 명태살이랑 대구살이랑 똑같아요. 눈 감고 차이 맞추면 내가 갖다줄게요.’

예상치 못한 나의 반응에 헌병대 취사병은 움찔하고는 욕을 욕을 하면서 대구살을 받아갔다.

그렇게 그날의 소동이 끝나고 부대로 돌아온 나는 취사병에게로 가서 물어봤다.
‘감사합니다 서명원 병장님. 그런데 저희 이제 명태살도 없고, 그나마 있던 대구살도 헌병대 줘버려서 어떡합니까. 저희 식단 어떡합니까?‘

그러자 취사병이 말했다.
‘야 1종계원, 지랄하지 말고 꺼져. 내가 알아서 할거야’
군대라는 곳이 너도나도 욕을 달고 다니는 곳이긴 했지만, 취사병 왕고는 더 욕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랄하지 말고는 그분의 시그니쳐였다.

여하튼 그렇게 우리는 그날 저녁 대구탕 대신 계란국을 먹었고, 아무일 없는 듯이 지나갔다.

이 일은 20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히 내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 20년이 지나서도 계속 내 기억에 남을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Posted by v멍군v
귀국 후 살아남기2023. 5. 29. 22:55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코엑스에 대한 기억중 인상 깊은 기억이 하나 있는데, 그건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때쯤의 일이다.

무슨 행사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코엑스에서는 IT관련된 행사가 열렸었다.

원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행사였지만, 그 당시 나는 큰아찌가 준 Staff표찰을 당당하게 착용하고 무료로 입장을 했었다. (당연히 그러면 안되는거였지만...)

 

내 기억에 있는 장면이라고는,

뭔지 모를 부쓰들 중간중간에 게임을 팔고 있던 간이판매대들이다.

남대문에서 양말을 쌓아놓고 떨이로 판매하듯이, 그 행사에서도 부쓰 중간중간에 오래되거나 유명하지 않은 게임들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단도 5,000원에 판매하는 판매대들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장군이라는 슈퍼로봇대전 짝퉁같은 게임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게임 하나. 그렇게 2개를 사왔던 기억이 난다.

 

그 날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학교를 빼먹고 갔기 때문인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굳이 학교를 빼먹으면서까지 갈만한 행사는 아니었던거 같다. 내가 볼만한 그런 행사는 아니었던거 같다.

그 당시의 엄마가 왜 굳이 학교를 빼먹으면서까지 그 행사에 보내주셨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안가지만,

그래도 뭔가 친구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때 나 혼자 staff 표찰을 착용하고 이렇게 거대한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뭔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달쯤 전에 드디어.

국내에서 가장 큰 IT행사 중 하나인, AWS Summit에서 발표자로서 코엑스에 섰다.

마지막 시간대라 아쉽긴 했지만, 가장 큰 강연장에서 발표를 했다는 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나 혼자 마음속으로.ㅎ)

 

코엑스에서, 그것도 1,000명 앞에서 발표를 한다는게 너무나도 떨리는 일이었지만. (근데 연휴 전날 마지막 시간대라 1,000명 안옴.ㅎㅎ)

막상 올라가보니 생각보다 긴장되지는 않았고, 아주아주 다행히도 준비한 모든 것들을 실수없이 잘 해내고 내려왔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발표자로 서는 날도 오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v멍군v
Mung2022. 9. 5. 23:43

10년전 오늘, 2012년 9월 5일의 나는.

지구 반대편 브라질 살바도르라는 동네에 있었다.

호스텔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찾아봤더니, 알파 호스텔이라는 곳에서 묵고 있었다.

 

구조는 정확히 기억난다.

자그마한 중정이 있었고, 그 중정에는 해먹이 하나 있었다.

우리 방은 그 중정을 지난 뒤, 뒤편에 자리잡고 있었고, 우리 방 옆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꽤나 좋은 호스텔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 전에 급하게 잡았던 호스텔에서 손바닥만한 바퀴벌레가 나왔었기 때문인가.

알파 호스텔은 이상하게 햇볕도 잘 들었었던것 같은 기억이 난다.

 

사실 이 모든 기억이 10년 전 기억이니, 정확할리는 없다.

그렇게 10년 전의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빈대에 뜯겨가며 하루하루 니나노거리면서 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름의 계획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상당히 무모한 플랜B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플랜B까지 가지 않은채로, 10년의 시간이 흘러왔다.

열심히 살았나? 아니. 

열심히 살았나? 그렇다.

 

2022년 9월 5일.

브라질 살바도르에서 빈대에 물어뜯기던 나는, 싱가폴의 꽤나 좋은 호텔에서 마리나베이를 바라보고 있다.

10년전의 내가 생각한, 10년 후의 나의 모습은 아니다.

사실 10년전의 나는,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적이 없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만 살았었다.

 

지금의 나는 10년전의 나보다 얼굴의 주름은 늘었고, 10년전의 이마선이 꽤 많이 후퇴한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렇다. 2012년 세계일주를 하던 나와, 2022년 싱가폴로 출장을 온 나와, 2032년 어찌 살고 있을지 모를 너와.

그렇게 또 두근거린다.

 

 

 

Posted by v멍군v
Mung2022. 1. 23. 15:36

생각해보니 벌써 한 30년쯤 전, 국민학교 3학년때쯤이었던것 같다.


사촌형과 함께 집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찾아왔다.

그리고는 엄청나게 커다란 박스들을 주섬주섬 푸시면서, 이것저것 선을 연결해주기 시작하셨다.

아직도 기억나는 내 첫 컴퓨터 이름은 현대 솔로몬 486DX 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몇인치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14인치쯤 되는 배불뚝이 CRT모니터가 함께 있었고.

함께 왔었는지 나중에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HP 500K인가 하는 잉크프린터도 함께였다.


컴퓨터를 설치할 책상도 없었던지라,

안에 모형꽃이 가득 들어있던, 내 무릎정도 되는 테이블 위에 설치를 했던 기억이 난다.


모르긴 몰라도, 그 당시 컴퓨터 가격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최고급 사양의 맥북보다도 비쌌을것이다.

내가 첫 컴퓨터를 갖게 되고도, 몇년 후에 나왔던 세종대왕이나 진돗개니 하는 컴퓨터들도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으니,

내 솔로몬 486DX는 더 비쌌을것이다.

단순히 짜장면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와 비교만 해봐도, 그 당시 컴퓨터의 가격은 지금돈으로 천만원은 넘지 않았을까 싶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부모님이 왜 그렇게 거금을 들여서 컴퓨터를 사주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모님은 컴퓨터를 사주신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당시 천리안이라는 통신도 연결해주셨다.

그 당시 통신이란 것은 전화선을 이용하는 것이라, 통신하는 동안에는 집전화가 계속 통화중이었다.

그래서 다른 집들은 통신을 못하게 했다던데, 우리집은 내 방에 전화선을 새로 하나 따줄만큼 적극적이셨다.

사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왜 그렇게까지 해주셨는지 잘 모르겠다.


또래들 중 그 누구보다 빠르게 컴퓨터를 접하고, 통신을 접한 나는 컴퓨터를 좋아할수밖에 없게 됐다.

누구보다 특별하게 살고 싶었지만 노력은 하기 싫었던 나에게 있어서 컴퓨터란,

그 누구보다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물건이었다.


한때 학교에서 통신 바람이 불때, 반에서 친하지 않던 어떤 여자애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우리집에서 통신하게 해줄수 있어?

사실 통신을 하려면 천리안에 돈도 내야되고, 모뎀도 있어야되고, 뭐 이래저래 해줘야 되지만 난 그런걸 알리가 없었다.

그저 집에 있는 컴퓨터를 보니, 전화기 뒤에서 선 하나를 빼서 컴퓨터 모뎀에 꽂고, 컴퓨터에서는 천리안을 실행시키기만 하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그날 여자애의 집에 초대받아, 통신을 설치해주기 시작했다.

전화기가 필요하다는 나의 말에, 그 여자애의 어머님께서 손으로 돌리는 옛날전화기를 갖다 주셨고,

전화기 뒤에 선이 한개밖에 연결이 안되는 것을 보고 패닉에 빠진 나는,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한테 통신을 하게 해달라고 말한 그 여자애나, 내가 해주겠다면서 그집에 찾아간 나나, 그런 나를 믿고 지켜봐주시던 그 어머님 모두 황당하기 그지 없지만.

하여튼 나는 그렇게 주변에서는 컴퓨터를 제일 잘하는 친구였다.


사실 어릴때 컴퓨터를 접한 모두가 그러하듯이, 나에게 있어서도 컴퓨터란 여러가지 게임을 골라서 할수 있는 게임기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컴퓨터를 사면, 수백개의 게임을 깔아주는게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매일 어떤 게임을 해볼까 고르면서 시간이 흘러갈 때쯤, 컴퓨터를 좀더 과학적으로 접근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날이었다. 엄마와 함께 광화문의 교보문고에 갔었다.

옛날에는 교보문고 정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자그마한 컴퓨터 코너가 있었다.

그곳에는 정품게임들과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난 당연히 안사주실거라 생각하면서, 게임 하나를 집어서 사달라고 말을 꺼냈고.

놀랍게도 엄마는 아무말 없이 사주셨다. 그 당시 가격이 4만9천원쯤? 엄청나게 고가의 게임이었다.


그 당시 왜 엄마가 아무말 없이 사주셨는지 몰랐다. 당연히 안사주실거라 생각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서점에 따라와줬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으셨던건 아닐까 싶다.


여하튼 그렇게 비싼 게임. 팔콤사에서 만든 영웅전설4 라는 게임을 들고 집에 와서 실행을 시키려는데.

게임이 실행되지 않았다.

어느덧 내 컴퓨터는 나이가 들어, 그런 최신의 게임을 받아들이기에는 버거웠던 것이다.

그 당시 통신에서 이런저런 글들을 찾고, CPU가 뭔지 RAM이 뭔지 Disk가 뭔지 공부하고 가상메모리가 뭔지 왜 실행이 안되는건지 몇일동안 계속해서 찾아봤던거 같다.

그냥 게임을 못하는 것이 속상했다기보다는, 엄마가 거금을 들여 흔쾌히 사주셨는데 그게 실행이 안된다는 사실이 더 슬펐던거 같다.


그렇게 꽤 오랜시간동안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컴퓨터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가상메모리 확인하는법, 늘리는법, OS단에서 셋팅하는 법 등등 원리는 모르지만, 이것저것 시도를 해봤었고.

결국 난 영웅전설4의 첫 화면을 보게 되었다.

그 첫 화면이 떴을 때의 그 희열감을, 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겪은 저 성공경험은, 어린 나에게 컴퓨터 말고 다른 것을 업으로 생각할수 있게끔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당연히 컴퓨터를 업으로 삼게 될 사람이었고, 그 외의 것은 거의 생각해본적이 없다.


10여년쯤 전, 인턴생활을 할때 멘토에게 했던 푸념이 생각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IT를 업으로 택한건 억울한거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야근도 해야되고, 계속해서 신기술은 나오고 있으니 공부도 해야되고,

그렇다고 대우가 좋은것도 아닌데 왜 IT를 업으로 택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멘토분의 말도 기억이 난다.

스스로 고칠수 없는 것들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지금 주어진 상황 안에서 무엇을 해야할지를 생각하시는게 더 생산적일것 같네요.

그렇게 한때는 이렇게 평생 살아갈수 있을까? 나에게 주5일제는 꿈같은 일인가? 라는 생각을 가졌던 적도 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흘러,

어느새 개발자 몸값은 하늘을 모르고 치솟으면서, 주변에는 IT를 배워 중고신입으로 입사하고 싶다는 사람들과,

판교에 대한 환상같은 소리도 들려오고, 국비학원 6개월만 다니면 어디든 취업할 수 있다는 말 등등.

강산이 한번 바꼈을 뿐인데, IT에 대한 인식은 3D업종에서 가장 핫한 직업군이 되어버렸다.


별 생각 없이, 그냥 30년전 부모님이 사주신 486 컴퓨터 한대로 인해 컴퓨터만 해오던 나 역시도,

무슨 미래에 대한 대단한 혜안이 있고, 4차혁명을 미리 예견하고, 한가지 분야만 꾸준히 뚝심 있게 판 사나이가 되어버려,

이 상승장에 휩쓸리게 되었다.


내가 별다르게 노력을 한 것은 없다.

대단한 꿈을 품었던 적도 없고, 미래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했던 적도 없다.

그저 30년전 나와 함께 영웅전설4 첫 화면을 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현대 솔로몬 486DX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Posted by v멍군v
Mung2021. 1. 19. 23:34

오랜만에 글 쓰려고 봤더니, 1년이 넘게 새 글을 안 썼구나...

하루하루 회사 다니는 회사원의 생활이 다 그게 그거지 라는 생각을 위안삼아 우선 다른 주제로 글을 써본다.

 

이 글은 메니에르라는 몹쓸병에 걸린 환우들을 위한 투병일지다.

뭐 이런걸 쓰나 싶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의 투병일지를 보며 마음의 위안을 받았던 바.

이 요상하고 짜증나는 병에 걸려 불안에 떨고 있을 누군가에게 돌려드리고자 한다.

 

2020.12.30 (수)

전날 늦게까지 휴대폰 보다가, 왼쪽 귀 바로 옆에 놓고 잔 휴대폰에서 폭풍같은 알람이 터져나왔다. (아마 전날 동영상 본듯)

깜짝 놀라 일어났는데 귀가 살짝 멍멍했다.

큰 소리 들으면 귀가 멍멍해지는 게 당연하고, 샤워하고 나니 말끔히 사라짐.

기억은 안나지만 거의 99% 확률로 이날도 야식에 맥주를 먹고 잤을거임.

 

2020.12.31 (목)

내 기억력은 마리모 수준인지, 전날과 동일한 패턴으로 큰 소리에 잠을 깸.

이번에는 전날보다 좀더 귀가 멍멍했으나, 출근하고 회사에서 소음속에 있다보니 그냥저냥 괜찮았음.

새해 타종행사라는 핑계로 가마치통닭에 맥주를 먹었고.

이상하게 잠이 안와서 새벽 4시까지 놀다가 잠듦.

 

2020.01.01 (금)

아. 망했다.

일어나자마자 귀에 이상을 느꼈다. 귀에 물이 들어간것보다 좀더 과하게. 비행기를 탄것처럼 귀가 멍해졌다.

나는 다이빙을 배울때도 이퀄라이징 (귀 압력 조절하는거)을 엄청 쉽게 하는 편이었는데도, 좀처럼 귀가 편해지질 않았다.

하품을 해봐도, 코를 막고 바람을 불어봐도 왼쪽귀가 멍해졌다.

그렇다고 또 완전 안 들리는건 아니었고, 뭔가 왕왕~ 하는 듯한 백그라운드 위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니다 싶어 급하게 문 연 병원을 찾아봤으나, 공휴일에는 열어도 신정에는 대부분 문을 닫더라.

이때까지만 해도 별거 아니겠지 싶었으나, 이어진 검색결과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돌발성 난청. 이명. 메니에르병. 한지민. 난청. 달팽이관. 림프액. 고막. 어쩌고 저쩌고.

이중에서 특히 돌발성 난청에 대한 결과들이 너무 무서웠는데,

특별한 원인 없이 발병하며, 발병하고 일주일 이내 치료하지 않으면 영원히 귀가 안 들릴수도 있다는 끔찍한 결과들이었다.

그래서 돌발성 난청으로 의심되면 무조건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써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큰만큼, 반대의 생각도 컸다.

응급실? 그거 뭐 죽을만큼 아플때나 가는거 아닌가? 진짜 설마 내가 귀가 먼다고? 뭐 이런거 가지고...

단순 중이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주 조금은 마음이 편해짐. (현실도피였던듯)

 

2020.01.02 (토)

자고 일어났더니 귀가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았다.

급하게 차를 몰고 가장 가까운 이비인후과로 갔다. (이때 평창에 머물고 있어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원주에 있었음. 차로 한시간 거리)

하필 어린이전문 느낌의 병원으로 가는 바람에 잠시 당황하긴 했으나, 내 고막은 순결하니까 어린이 고막이라고 생각하고 진료 받음.

중이염이 아닐까? 라는 기대와는 달리, 고막은 깨끗함.

코로나 검사도 아닌 것이, 콧속에 젓가락을 넣어서 코안도 봄.

이번에 안 사실인데 내 오른쪽 코 안쪽은 휘어져 있다더라.

아주 옛날에 식당에서 밥 먹다가, 오른쪽 코에서 미친듯한 코피를 쏟았던 적이 있는데 그래서 그랬던건가...

여하튼 코도 정상이고... 청력검사를 해봤다.

건강검진 하면서 10번도 넘게 해본 청력검사여서 별 생각 없었는데, 결과지가 이제와는 달랐다.

왼쪽 귀 4K주파수 대역 난청. 엥?

내가 벨소리를 크게 들었다. 몇일 전부터 그랬다 등등의 문진 결과가 합쳐져서 나온 병명은.

급성 음향 외상.

그냥 큰 소리를 팡~ 하고 들어서 고막을 잡아당기는 근육이 놀랐나 뭐 어쨌나 해서 이럴수 있단다.

그리고 아주아주 아기자기한 스테로이드를 처방받고 끝.

 

2020.01.03 (일)

스테로이드만 먹으면 내 허벅지도 마동석씨의 팔뚝만해지고, 온몸에 힘이 넘치는줄 알았는데.

내가 먹는 스테로이드는 그게 아니라더라.

여하튼 스테로이드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전혀전혀 1도 호전되지 않음.

이때부터 뭔가 다시 불안해져서 폭풍검색 시전.

온갖 귀에 관련된 검색을 넘어서서, 의학 논문까지 읽기 시작함. 이제까지 읽은 컴퓨터과학 논문보다 더 많은 양의 의학논문을 빠르게 읽음.

어릴때 본 영화중에, 본인 아들의 불치병을 해결하기 위해 공부하다가 신약을 개발한 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때만 해도 뻥이라 생각했으나, 막상 닥쳐보니 가능할 것처럼 느껴짐.

어느새 나는 안아키까지는 아니더라도, 귀에 좋다는 음식을 달달 외우게 됨.

 

2020.01.04 (월)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귀가 전혀 나아지지 않음.

다행히 재택하는 날이라 점심시간에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음.

코로나 시국에 이비인후과에 가는게 내심 쫄렸지만, 다행히 병원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의느님은 나의 얘기 + 원주 병원에서 들은 얘기 + 콧속을 다시 한번 휘젓고 + 청력검사를 한 결과.

응?

이번에는 4k는 멀쩡하고, 저음역대의 난청 소견이 보였다.

뭔가 좀 이상하긴 했다. 왜냐면 청력검사 해보면 알겠지만, 이게 거의 동일한 간격과 패턴으로 삐삐 음이 울리기 때문에 좀 하다보면 기계적으로 버튼을 클릭하게 된다.

안 들리던 것도 이때다 싶어 집중하면 들리니 더 잘 들리기도 하고.

뭔가 나 스스로 청력검사를 망쳐버린것 같지만, 여하튼 결과는 저음역대 난청.

의느님께서는 아무래도 대학병원 가봐야 될거 같은데, 요즘 코로나 시국이라 예약이 어려우니 대학병원 예약부터 진행하자고 하셨다.

우선 또 다시 스테로이드를 처방받고 집에 와서 두려움에 휩싸인채 일을 했다.

집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대학병원 예약시스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생각외로 간편하게 되어있는 시스템에 놀랐고, 뭐 말로만 듣던 1차병원 2차병원 어쩌고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게 됐다.

그렇게 다음주 월요일에 우선 예약을 걸어놨다.

(급하게 잡느라 이비인후과 명의고 뭐고 알아볼 새도 없이, 그냥 이비인후과 전문의중에 아무나 잡음)

 

2020.01.05 (화)

이쯤되면 거의 망했다는 느낌이 온다.

하라는 일은 안하고 하루종일 인터넷 검색으로 내 병이 도대체 뭔지, 왜 걸린건지, 어떻게 치료하는지 찾고 있다.

이 세상에 귀질환 환자가 이렇게나 많은줄 몰랐고, 생각 외로 '이명을 극복하는 사람들'같은 류의 네이버카페에 정보가 많았다.

수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뭔가 나와 비슷한 증상이 보이면.

오 맞아! 이거야! 맞네. 갑자기 안 들리고. 귀가 멍멍하고. 어지럽지는 않으니까 내 병은 '돌발성 난청'이구만. 하면서 열심히 찾아보고.

또 다시 다른 글중에 비슷한 증상이 보이면.

오. 생각해보니 나도 약간 이런 증상인데? 좀 어지러운거 같기도 하고?... 청력검사에서 저음역대가 안 좋았으니까 '급성 저주파감각신경성난청' 인가?... 하면서 좀 찾아보고.

 

2020.01.06 (수)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이건 망했다. 난 이제 앞으로 한쪽귀가 먼 반 고흐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귀가 안 들리고, 미쳐가다가 귀를 잘라버릴지도 몰라. 엉엉.

병원에 가자마자 의느님께,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어떡하면 좋습니까!

의느님은 바로 언제 예약했느뇨? 라고 여쭤보셨고.

그게 뭐 해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요. 그냥 클릭 몇번하고 어쩌고 저쩌고 자랑하고 싶었지만 각설하고 월요일에 예약했다 했더니.

'너무 늦어 이 친구야. 자네는 이미 장애진단을 받기 일보직전이라네!!' 라는 말과 함께,

꼭 서울대병원 아니어도 되니까, 고대병원이나 뭐 다른 대학병원을 예약하라고 하셨다.

그말 끝남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고대병원에 전화했더니, 당연히 예약은 풀.

'상담원님. 미리 말씀을 못 드렸는데 사실 저 돌발성 난청 진단 받았습니다.'

라고 했더니, 기적과 같이 지금 당장. 롸잇 나우. 택시타고 병원으로 텨오세요 라는 응답을 받았다.

그 대답을 들으니 다행이다라는 생각 바로 직후에, 이게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병이길래 예약시스템을 무시하고 앞으로 땡겨서 진료해주는거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여담으로, 서울대병원에 예약취소하려고 전화 걸었더니 내 예약은 4월로 되어 있더라.

IT하면서 월급 받으니 10년이 넘었는데도 예약시스템의 달력도 제대로 못 봐서 4월로 예약해 둔거였음. 잉긱.

 

그렇게 바로 고려대병원으로 갔다.

5인 이상 집합금지 걸려서 갈곳 없는 사람들이 전부 병원에 모여있는지, 엄청나게 많은 인파 속에서 수납지옥을 끝마치고 이비인후과 병동으로 갔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다가갈수록 점점 왼쪽귀에 쿵쿵대는 소리가 커졌고.

드르르륵 드르르륵 우장창 우장창 쾅쾅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망했네. 귀 질환은 심리적인 요인과 스트레스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더니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난청과 이명을 넘어서 환청의 단계에까지 도달했구나. 라는 생각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이비인후과에 도착해서 창밖을 봤더니.

이런 망할. 하필 요즘 고대병원 새로 짓는다고 뻥 안치고 이비인후과 바로옆 창문 30센치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온갖 종류의 굴삭기들이 땅을 파고 뽀시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이건 진짜 좀 너무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다.

 

대학병원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스펙타클한 곳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어디가 불편하시다고요?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예. 저번주 목요일쯤부터 왼쪽 귀가 멍멍하고요... 라는 내 투병일지의 장대한 인트로 부분을 시작할때쯤.

갓 대학병원 의느님께서는 뭔가 전단지 한장을 바로 주셨다.

뭐야.

'평소에 짜게 드시죠? 술 많이 드시죠? 늦게 주무시죠? 단거 많이 드시죠? 탄산 좋아하시죠? 조미료 많이 드시죠?"

"그...그건.... 그렇죠."

"그렇게 살면 걸리는 병입니다. 메니에르. 우선 청력검사 좀 하고 다시 봅시다."

뭔가 1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문진 - 진단 - 병명 이 나온 상황이라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야매스러운 느낌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청력검사 하러 밖으로 나가는데, 등 뒤에서 의느님이 물어보셨다.

"근데 어느쪽 귀가 불편하시다고요?"

뭐여. 무슨 귀인지도 모르고 뭔 병명이 바로 나오는거야. 야매다. 이것은 야매다.

 

의느님에 대한 신뢰도가 급하락한 상태에서, 굴착기 소음 속에서 진행된 청력검사가 정상일리가 없다.

이게 지금 청력검사 소리인지 굴착기 소리인지 알수도 없는데 대충 눌러만 댔다.

(내 바로 전 사람은 도저히 안되겠다 그래서 환불처리 받고 집에 갔다고 한다.)

너무 짧은 문진시간 + 민감한 청력검사를 해야되는데 개판5분전인 병원환경으로 인해 나의 분노는 급상승했고,

아니 누구는 평생 귀가 멀지도 모르는 이 위급한 상황에 이게 지금 말이나 됩니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훗날 생각해보니, 이건 어리석은 생각이었을뿐. 대학병원쯤 오는 사람이면 누구든 다 급한 환자였을거다.)

 

검진결과를 토대로 내린 병명은.

메니에르병.

세상에 돌아버릴듯한 어지러움 + 귀 멍멍함 + 이명 을 동반하는 요상한 질병인데 나는 초반이라 그런지 어지러움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심약하여, 저 얘기 듣고나니 그때부터 좀 어지러운거 같았음.)

처형의 말씀으로는, 온몸의 모든 병을 낫게 해줄것 같다는 슈퍼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5알을 처방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근데 이것도 나중에 찾아보니, 찐 돌발성난청 오신 분들은 하루에 13알도 드시더라.)

 

2020.01.07 (목)

스테로이드를 때려넣어서 그런건지,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서 그런건지 귀가 많이 나아진게 확 느껴짐.

다 나은건 아니지만, 나을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순간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닌데. 뭔가 의사 이상한거 같은데. 메니에르 아닌거 같어. 다른데 가봐야겠어. 라면서 서울대병원을 예약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분은 명의셨다. 1분도 안되는 시간에 정확히 내 병명을 맞추신 명의.

괜찮아지겠다 싶어서 우선 서울대병원 예약은 다시 취소했다.

이후로 3일간 스테로이드 5알씩 때려박고, 4일째 3알, 5일째 1알을 먹고 스테로이드는 끝.

 

하지만 나에게 남은 시련은 그게 끝이 아니었으니, 90일분의 이뇨제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최악의 시련.

앞으로 식단에 소금No, 설탕No, 매운거No, 커피No, 카페인No, 조미료No, 인공색소No.

그럼 뭘 먹어야 하나요. (지금 먹고 있는것들)

고구마. 생당근. 생오이. 삶은달걀. 사과. 배. 귤. 한라봉. 감말랭이. 맛밤. 쑥떡 등.

쑥떡 같은 경우는 걍 찹쌀 + 쑥밖에 안든거고, 감말랭이 이런것도 감 100% 이런것만 사먹어야 된다.

인터넷에서 당뇨식, 무염식 이런거 찾아보면 생각외로 이렇게 먹는 사람들이 많다.

 

2020.01.09 (금)

스테로이드 5알씩 때려박은지 3일째. 귀는 거의 다 나음.

근데 이상하게 어지러운거 같은 느낌? (평상시에 어지러워 본적이 없어서 어지러운게 뭔지 잘 모름)

그리고 뒷목두통이 도래했다. 두통이긴 두통인데 이게 뒷목 부근에서 느껴진다. (근육통 아님)

그리고 이명 발생.

이명이라는게 평상시에도 원래 들렸던건지, 아닌건지도 분간이 안될 정도로 짜증나고 사람 진 빠지게 만들더라.

그리고 저녁쯤에는 갑자기 코피가 쏟아졌다. 태어나서 자연적인 코피는 3번정도밖에 안 흘려본거 같은데 그중 한번이 이날이었다.

이쯤되면 거의 몸이 맛이 갔다고 할수 있겠다.

 

2020.01.19 (화)

대망의 오늘.

두통과 어지러운 느낌은 없어졌고, 귀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명은 아직도 남아있음. 스테로이드 먹기 전에는 웅웅~ 하는 저음역대의 이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삐이익~ 하는 고음역대의 이명이 들린다. 날이 갈수록 들리는 하루 중 이명 들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긴 함.

 

메니에르병

짜게 먹으면 생기는 병이란다. 근데 난 평상시에 음식을 짜게 안 먹는다. 미각이 별로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지 간을 추가해서 먹거나 그러지 않는다. 그럼 왜 이 병에 걸린건가.

1. 잦은 음주.

요즘 재택 + 나의아저씨 라는 드라마 보면서 + 할거 없어서 + 심심해서 일주일에 4~5일씩은 맥주를 마셔댔다.

맥주를 마시려면 야식이 있어야겠쥬? 그렇게 거의 매일매일 야식+맥주 파티를 벌였다.

2. 커피

하루에 기본 아메리카노 3잔 이상씩은 마셨고, 많이 마시는 날에는 5~6잔도 마셔댔다.

콜라나 레드불 같은 탄산도 즐겨마시는 편이었다.

3. 스트레스

난 스트레스라는걸 안 받는 사람인줄 알았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저게 뭔지도 잘 몰랐다. 그냥 한의학의 기 같은 느낌인줄.

근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스트레스라는게 진짜 있는거였고, 그걸 받으니 귀가 또 다시 멍해지더라.

스테로이드 먹고 좀 괜찮아진 상황에서, 회사에서 짜증나는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귀가 멍~ 해지더라. 순간 쫄았음.

 

현재 진행상황 (진단 받은지 2주째)

저염식을 넘어서서 무염식으로만 밥 먹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맛을 잘 몰라서 그냥저냥 먹을만 하다. 특히 군고구마 핵존맛.

하루종일 사과, 고구마, 달걀, 토마토 같은거로만 연명중임.

설탕이나 소금은 절대 안 먹고 (자연적으로 재료에 들어있는건 어쩔수 없지), 커피도 안 먹고 술도 안 먹고 있다.

메니에르 초기라서 이렇게 극단적으로 할 필요는 없을거 같지만, 그간 망가진 몸을 리셋하자는 생각에 강하게 하고 있다.

집에 있는 영양제라는 영양제는 모두 다 먹고 있다. 특히 혈액순환제 같은거.

 

메니에르병인가 싶어 이글을 찾은 분들께.

1. 그냥 빨리 대학병원 응급실로 고고. 돌발성 난청은 예약하지 말고 지금 당장 응급실로 오라고 병원 예약사이트에 써있음.

2. 식단조절은 생각외로 할만함. 미칠정도는 아님.

3. 귀 질환은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나 혼자 불편한거라 2배로 짜증나고 힘든데 그렇다고 스트레스 받거나 화내면 더 악화될듯.

4. 인터넷에 떠도는 무슨 한의원이나 노루궁뎅이, 산수유 이런거에 현혹되지 말고 그냥 병원 고. 스테로이드 과다복용 짱짱맨.

 

현재 심정

전혀 억울하지 않다.

왜 나에게 이런 병이!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라는 생각따윈 안한다.

언젠가 이럴줄 알았다.

이렇게 맨날 야식먹고 술마시고, 커피 탄산 마시고 단거 좋아하고 초콜렛 입에 달고 살면.

언젠가 이렇게 될줄 난 알고 있었다. 그게 언제 닥치느냐의 문제였을뿐, 언젠가 당할 일이었다.

메니에르 환자가 쓴 글중에 그런 글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암 같은 병이 아니라서. 이 병을 계기로 식단조절도 하고 건강하게 살수 있을거 같다.'

맞는 말인거 같다. 90알의 이뇨제를 다 먹는 3개월 후부터는 다시 평상시처럼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콜라도 먹고 하겠지만.

3개월동안 몸을 좀 정화시키고, 그 이후로는 예전처럼 몸을 막 굴리지는 않을 예정이다. (정확히는 못 굴리겠지.)

진짜 난 언젠가 이꼴날줄 알았다.

하지만 고등학교때 펑펑 놀고 공부 안하면, 수능 망칠거 뻔히 알면서도 공부를 안한 내가,

몸 망가질거 뻔히 알면서 몸관리를 하지는 않았겠지.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