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tnam_142016. 9. 22. 23:16

원래는 1년만에 쓰는 베트남 여행기 라고 쓸라고 했는데,


달력을 보니 벌써 2년이 훌쩍 지난 후가 되어버렸구나.


예전에 혼자 갔던 인도여행기도 반쯤 쓰다가 중단된 상태인데...


베트남까지도 그러면, 끈기 없는 놈이라고 욕먹을까봐 우선 베트남 여행기부터 마무리 지어야겠다.



사실 이제 세계일주 여행기도 다 끝난 마당에,


더이상 블로그에 쓸 얘기도 없는데.. 꾸준히 들어와주시는 분들이 계신거 같아서 죄송해서 뭐라도 써야되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1년정도 열어보지도 않던 외장디스크를 연결해서, 뭘 올려야 되지. 뭘 쓰지. 고민고민하다가,


겨우 찾아낸게 이 베트남 마지막날 사진들이다.


휴...





마지막 날이라서 체크아웃은 해야되겠고...


비행기는 밤출발이고... 대낮에 베트남을 또 다시 돌아다니는건 미친짓이라고 생각한 우리는,


인터넷을 마구마구 뒤지다가,


베트남에 CGV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버렸다.



우리로 말씀 드릴것 같으면,


처음 만난 인도에서도, 간지 나는 배낭여행자의 포스를 풍기기 위해서,


장담컨데 외국인이라곤 우리가 최초일것 같은 영화관에 간적이 있었다.


갈라고 간건 아니고, 그냥 걸어가다가 영화나 볼래요? 라면서 들어간 곳임.



정말로 충격적인 인도의 영화관람 문화에 문화컬쳐를 받고,


뭔 말인지도 모를 영화를 30분? 1시간? 쯤 보다가 도망쳐나온 추억이 있다.



인도사람들은 화면에 여배우가 나오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고,


표 검사하는 사람은 손전등을 들고 다니면서 눈뽕을 해대고,


오징어인지 뭔지 모를 음식을 파는 사람은 자꾸 내 앞을 가로막고,


인도 애들은 영화관에 온건지, 동물원에 온건지 모를 정도로 우리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고,


가장 충격적인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도망쳐 나왔는데, 영화관 전체가 쇠사슬로 잠겨있음...;;;;;;


겨우겨우 외국인이라고 영화 보기 싫다고 열어달래서 자물쇠 풀고 나온 기억이 난다.



아... 더 충격적인건 훗날 우연찮게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가 1시간 가까이 웃으면서 코믹영화인줄 알고 봤던 그 영화는,


인도에서 꽤나 흥행항 공포영화란다.





우선 영화관이 있는 곳으로 갔다.


첫날 갔던 빅C마트로 갔다.


첫날 빅C마트 전체에 풍기는, CGV콤보세트 향기에 정신을 잃을뻔 했는데,


드디어 그걸 먹으러 간다.



아. 팝콘 먹으러 가는건 아니고 영화를 보러 간다.


진짜 베트남 사람들도 이 돈을 내고 택시를 탄다고? 싶을 정도로 싸지 않은 택시로 타고 빅C마트로 ㄱㄱ.





IFC몰이 아닌, 빅C마트다.


진짜 CGV다....


하긴 롯데마트도 있는 마당에 CGV 있는게 뭐 그리 신기한 일이겠냐마는...


그래도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영화관 하면 역시 오락실이죠.


근데 철권같은 평범한 오락은 없고... 죄다 바다이야기 같은 사행성 게임만 있었다.


특히 가운데 보이는 것처럼,


동네에서 잘나가는 것 같은, 눈만 마주쳐도 매점에서 파는 500원짜리 햄버거를 갖다바쳐야 될것 같은,


그런 양아치들이 잔뜩 포진해있어서,


나는 코인을 넣어보지도 않았다.



뭔 게임인지는 모르겠는데, 연신 돈을 집어넣으면 물고기가 막 나타나고, 뭐 돈이 다시 쏟아지는 그런 게임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우는 남자.


맞냐.


뻥 안치고 10번은 넘게 본 아저씨 영화를 만든 감독이 만든 영화라고 그래서...


한번 봤다.



사실 이거 말고는 죄다 베트남 영화 or 헐리우드 영화라고 못 봤음.


그나마 이게 한국어로 말하는 영화라서 고름.





영화관은 팝콘 먹으러 오는곳 아닌가연.


커널스 팝콘보다 맛있는 CGV팝콘이다.


카라멜 팝콘의 맛은 성신여대CGV나 다낭CGV나 똑같았다.



참고로 옆에 원피스 입은 아가씨는 나한테 말 거는거 아님.





영화관 내부는 우리나라랑 똑같이 생겼다.


그냥 멀티플렉스 영화관처럼 생겼다.


우리나라처럼 뭐 저 검은 껍데기가 씌어진 좌석은 천원씩 더 받고, 그딴 양아치짓은 안한다.


그냥 왜 씌어진건진 모르겠음.



여하튼 가장 충격적인건,


관객이 단 한명도 없었다.....


뭐... 토요일 오전에 멀티플렉스에 관람객이 한명도 없다라....


충분히 그럴수는 있지만, 내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정확히 1시간 후에,


내 상식은 정확히 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고편으로 나오던 명랑.


난 안 봐서 잘 모르겠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임진왜란 이런거 보면 무슨 생각이 들라나.


저 쪽바리로 나오는 아저씨 어디서 많이 보던 아저씨인데? 라는 생각이 들겠지?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미리 써두는건데,


난 원래 영화관에서 개념없이 사진 찍고 그런 사람 아니다.


그냥 관객이 한명도 없어서 기념삼아 찍어봤다.



그리고 이 사진 찍고 난 후에, 베트남 총각 3명정도가 입장했다.


그렇게 총 5명이서 우는 남자 를 보기 시작했다.


.


.


.


.


.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다.


그 3명의 베트남인들에게 나라도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 될것만 같았다.


베트남어만 된다면, 그들에게 가서


죄송합니다.


이걸 만든 사람이랑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이 끔찍한 영화를 찍게 넵둬서 죄송합니다.


화가 풀릴때까지 절 때려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뭐 이딴 영화가 다 있나 싶었다.



난 원래 무슨 영화를 보든지 중간에 꼭 졸곤 하는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도 졸지 않았다. 하품조차 안했다.


그정도로 너무나도 충격적인 영화였다.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이 감독님은 이 영화를 끝으로 더이상 영화가 안 나오고 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마음을 추스리고 밖으로 나오니,


바로 앞에 동대문운동장 같이 생겨먹은 건물이 있었다.


뭔가해서 봤더니 다낭에서 유명한 꼰 시장이란다.



시장이라는 이름답게 전부 다 파는듯.





시장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남미의 시장과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약간은 촌스럽다고 느껴질법한, 형광색의 옷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오른쪽 아래 보이는 멜빵바지는 어디에 쓰는 물건이지.


코스프레 할때 입는건가.





우리나라 남대문 악세사리 시장처럼,


장신구를 파는 섹션도 따로 있었다.


시장이 엄청나게 크다보니까, 옷파는 구역이 있고, 장신구 파는 구역이 있고, 가방 파는 구역이 있고 그랬다.





여기도 계속 꼰 시장임.


여기는 야채를 파는 곳이었나보다.


다행히도 두리안은 팔지 않았음.


길거리 음식이라도 있으면 좀 먹어볼라 했지만, 마땅한 음식을 팔진 않았다.





그리고는 호텔로 돌아가는 셔틀버스를 타는 곳으로 왔다가 발견한 식당.


배가 고파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눈에 보이는 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난 아무거나 잘 먹게 생겼고, 실제로도 아무거나 잘 먹긴 하지만,


나한테 익숙한 음식만 찾아먹는다.


다시 말해서 생소한 음식을 주면 먹기는 잘 먹는데, 굳이 내가 찾아먹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온 곳임.


저 가방들을 보고 뭐 하는 곳인가 싶었으나,


나름 음식도 팔고 짝퉁가방도 파는 그런 가게였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음식.


피자.


그리고 파스타.


우는 남자를 보면서 진짜 울어버릴뻔 해서 그런지, 난 기진맥진했고,


부족한 열량을 채우기 위해 가장 육덕진 애들로만 시켜서 먹었다.



물론 다낭의 상징.


얼음 동동 띄운 타이거 맥주도 마셨지.





이게 우리 호텔로 돌아가는 셔틀버스다.


지금 바로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꽤 좋아보이는 쇼핑몰 겸 호텔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우리는 호텔에 맡겨둔 짐을 찾아서 다낭공항으로 왔다.


이렇게 어딘가를 떠나는 시간이 되면,


쪄죽을것만 같던 날씨도, 입에 안 맞았지만 잘 맞는척하느라 날 힘들게 만든 쌀국수도,


모든게 그리워진다.



하지만 내가 다시 베트남에 가는 일은 없겠지.


그냥 그리워만 할 예정이다.





떠나는 공항에서의 가장 큰 재미는,


남은 동전들을 사용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유로나 달러처럼 언제 다시 쓰게 될지 모르는 그런 재미없는 돈이 아닌,


다시 올일 없을것 같아서 이번에 다 쓰고 가야되는 베트남 동은 우리를 쌀국수집으로 이끌었다.



사실 먹고 싶은 것들을 많았으나,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이 구석에 있는 쌀국수 한그릇밖에 먹을수가 없었음...;;;





쌀국수를 사왔는데, 왜 먹질 못하니!!!


돈이 없는 관계로 쌀국수 한개를 사서 둘이 나눠먹었다.



흠... 또 이렇게 보니까 맛있어 보이긴 하네.


가끔 회사에서 여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면 쌀국수를 먹긴 하는데...


(이상하게 남자보단 여성분들이 쌀국수를 좋아하시는거 같다...)


그럴 때마다, 전 이런 이국적인 향신료도 좋아하는 그런 글로벌한 사람입니다. 라는 걸 보여주고 싶기라도 하듯이


꼭 고수를 왕창 집어넣어서 먹었다.



처음 인도에서 고수를 접했을때는, 가는 곳마다 고수 빼달라는 말만 하고 다녔었는데..


(너무 맛없어서, 인도말로 고수는 빼주세요. 를 찾아내서 외우고 다녔음.)


계속 먹다보니까.... 지금은 꽤 좋아하게 됐다.





이게 지금 다낭 공항인지 인천 공항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한국분들이 계셨다.


저기 구석에 시원한 하이네켄을 팔고 있어서, 너무나도 마시고 싶었으나...


돈이 없는 관계로 패스.





이렇게 우리의 첫 동남아 여행은 끝이났다.


다시는 여름에 동남아를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말은 했지만,


망할 여름휴가는 여름에만 써야되는데 그럼 언제 가나!!!!


불쌍한 월급쟁이...


이렇게 2년만에 쓰는 베트남 여행기 끝.







이라고 하면 아쉬울까봐.


아니. 내가 아쉽다고. 오랜만에 여행기 쓰는게 더 쓰고 싶은 내가 아쉽다고.



여하튼 인천에 도착해서 출국장을 나오는데...


엄청난 카메라들이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헐... 깜놀이야.


엄청난 카메라를 보고 놀란 우리.


그리고 우리를 보고 약간은 아쉬운듯, 약간은 화가 난듯한 알수 없는 카메라우먼들.



이게 도대체 뭐지? 누구 오나?


싶어서 집에 가는것도 까먹은채 그들 사이에 파고들어서 누굴 기다리나 엿들어봤다.





근데 도대체 난생 처음 듣는 이름들만 오가길래.. 운동선수인가.. 가수인가...


싶어서 끝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공항에서 이렇게 유명인을 본적이 없어서, 한번쯤 보고 싶었으니까...ㅎㅎ



그렇게 꽤 오래 한 30분? 정도는 기다려서 만난 그들.


실제로 눈앞에서 봤으나, 망할... 모자+선글라스+마스크까지 끼고 나타나서 


저게 지금 지코인지 서태지인지 성소인지 알게 뭐야...



게다가 저들이 나타나자마자 우렁찬 함성소리 3초간 발사와 함께,


저들을 따라서 우르르르 뛰어가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좀 지나서 알게 됐는데, 저들은 VIXX라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VIXX맞나... 괜히 이름 잘못 썻다가 테러 당할라...



여하튼 이렇게 마지막에 연예인도 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것 같은 베트남 여행기는 진짜 끝이다.




나름 팁. 나름 여행정보

1. 원래 베트남 여행기는 여행팁을 마지막에 적어드렸습니다.

2. 근데 2년이나 지난 팁이 뭔 의미가 있겠습니까.

3. 우는 남자 보세요. 꼭 보세요. 두번 보세요.

Posted by v멍군v
Mung2016. 9. 12. 01:19

내가 옮겨간 곳은...


국내 스마트폰을 만드는 P1실이었다.


건물도 기존 C건물에서 가산R&D캠퍼스라는 뭔가 좀더 있어보이는 건물로 변경되었다.



팀이 변경되고 첫 출근을 했을때 기억이 난다.


팀장... 아니지. 거기는 파트체제라서.. 파트장이 대빵이었는데,


파트장이 아닌 뭔가 그 밑에 파트원 중 한분이 나를 데리러 왔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설명을 해줬다.


원래 우리 자리는 18층인데... 지금 프로젝트 기간이라 16층에 모여서 일을 한다.


그 모여있는 공간을 TDR룸이라고 불렀었다.


18층의 내 자리에 짐을 풀어놓고 TDR룸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파트장분은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모니터만 쳐다보면서 말씀을 하셨다.


응. 응. 그래.


그게 첫인사의 끝이었던거 같다.


뭐 파트가 모이지도 않았고, 그냥 다들 자리에 앉아있었던거 같다.


그냥 그렇게 난 또 다시 어색한 파트원 중 한명이 되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파트는 상당히 좋은 파트였다.


파트원 모두가 나에게 너무나도 잘해주었고, 특히 파트장분과 부파트장 되시는 분은 나를 너무 이뻐해주셨다.


아무것도 할줄 모르고, 아부도 할줄 모르는 성격의 나를 참으로 이뻐해주셨다.


파트원 분들도 막내가 들어왔다고 해서 참 잘해주셨다.


물론 내 개인적인 착각일수도 있지만, 여하튼 난 그렇게 믿는다.



처음 내가 맡게 된 일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개발한 것들을 한데 모아서, 완성품을 만드어내는 일이었다.


다시 얘기해서, 수백명의 사람들중 한명이라도 퇴근을 안하면 퇴근을 못하는 그런 일이었다.


항상 야근을 했던거 같다.


빠르면 밤 10시에 퇴근을 하고... 늦으면 밤을 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아주 가끔... 집에 제사라도 있는 날에만 5시에 퇴근을 했던거 같다.


5시 퇴근은 휴가보다도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주말에도 기본적으로 토요일엔 출근을 했었고, 일요일 정도만 쉬었었다.



대기업 다닌 사람들은 죄다 맨날 야근했다고 뻥만 쳐대서 객관적인 자료로 얘기를 하자면...


2011년 9월달... 한달동안.


31일이고.. 추석 때문에 빨간날이 10개였던 그 달에는...


나는 27일동안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했었고... 빨간날 10일 모두 출근을 했었다...


27일을 뺀 4일은 새벽 4시가 넘을때까지 깜빡하고 퇴근도장을 안 찍어서 그냥 출근한것처럼 되어버린 날이었다.


다시 얘기해서 한달 내내 12시 넘어서 퇴근을 했던거 같다.


물론 집에 못 들어간 날들도 많았고....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정도는 합숙도 했었다.


저기 경기도 오산 근처에 LG전자 휴대폰 공장이 있는데 그 옆에 있는 아파트에서 합숙을 했었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었다, 어차피 합숙이니까.


그냥 눈 뜨면 아파트 옆동으로 가서 일하고, 졸리면 옆동으로 가서 일하고...


자다가 휴대폰 울리면 몇시가 됐건 다시 옆동으로 가서 일하고... 또 다시 자고...


이렇게 3개월을 보냈다.


3개월동안 집에는... 10번도 못 갔던거 같다.


하루 밤새는 날은 일주일 2번정도씩은 꼭 있었고...


이틀 밤새는 날도 한달에 한번정도는 있었던거 같다.



사람이 잠을 안자면 어떻게 되는지도 그때 처음 느꼈었었다.


갑자기


'야 너 뭐해!' 라고 얘기해서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손을 움직여가면서 뭔가를 하고 있는데, 이걸 왜 하고 있는지 기억이 안난다.


엥.. 이게 뭐지. 내가 이걸 하고 있었다고? 언제 잠든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멍한 상태에 빠지곤 했었다.


그래서 항상 내가 밤새는 날에는, 실수라고 할까봐 부파트장분께서 내 옆에 앉으셔서 내 모니터를 쳐다보고 계셨다.



그러다 내가 졸거나 실수라고 하면 세수하고 오라하시거나,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자고 해주셨던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하고 견디기 힘든 날이었겠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사람만 좋으면 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던거 같다.


아무리 잠을 못자고, 집을 못가고, 몸이 힘들어도...


같이 일하는 분들이 재밌고 좋아서 그랬는지, 매일매일이 재미있었다.



그 당시에 동기들을 만나거나 예전 인턴 동기들을 만나면, 난 왠지 모를 자부심이 있었다.


다들 야근이 많다고 우는 소리를 하고, 뭐 밤을 샜네 마네 주말에 출근을 했네 마네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난 속으로 콧방귀를 꼈었다.


거 참 하루 밤샌게 샌거냐... 새벽에 퇴근했다고? 새벽에 집에 가는게 어디냐. 난 한달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자부심을 가졌던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이지.



지금 회사 와서도 처음에는 그랬었다.


가끔 정말 바쁠때, 뭐 토요일마다 출근을 했었다는둥... 선배 중에 누군가가 큰일이 터져서 2박3일동안 꼬박 밤을 새가며 일을 했었다는 둥...


그런 얘기를 들을때면 이 생각밖에 안들었다.


이 사람들 진짜 일 편하게 하면서 살아왔구만.... 이게 지금 무용담이라고 나에게 말해주는건가...



참 노예스러운 마인드였다.


누군가가 힘들었음을 나에게 얘기할때에는, 정해진 기준보다 힘들었기 때문에 얘기하는 것일텐데,


그러면 그냥 그 힘듦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내가 겪은 것보다 안 힘들었을거라는 그 생각 때문에, 상대방의 힘듦까지도 무시해버렸던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더 힘들었다. 내가 더 빡쎘다.


그래서 뭐.

 

그래서 뭐 어쩌라는건지 참....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다.



그래도 저때의 기억들은 항상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다.


참 재미있었다.


저때 1년동안 정말 빡세게 일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 누구에게 꿇리지 않을 무용담은 항상 가지고 있다.



쓰기 전에는 금방 쓸거 같았는데,


쓰다보니 너무너무 할얘기도 많으니 천천히 써야겠다..

Posted by v멍군v
Mung2016. 9. 12. 00:59

미국에서 쿠바로 넘어가기 직전, 네이버 블로그가 해외에서 너무 느리다는 것을 깨닫고,


티스토리로 옮겨오긴 했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원래 네이버 블로그를 해왔었다.


거기에 쓴 글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던 글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대학교에서 학점 잘 받는 방법에 대한 글이었다.



입사하고나서 대학시절 내 기준에서는 열심히 살았던 그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블로그에 공대에서 학점 잘 받는 법에 대해 써놨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었고, 많은 도움이 됐었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그래서 그때 결심했던 것 중 하나가,


그럼 나중에는 입사할때의 팁이라도 좀 적어놔야겠다... 였다.


다들 취업이 힘들다고 하지만, 난 나름 왠만한 서류는 다 통과했고, 인적성검사와 인성면접은 거의 99% 통과했으니까,


그때의 기록들을 적어두면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기고만장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거 같다.



허나,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냥 운때가 좋아서 취업이 잘 됐던거 같다.


스마트폰 돌풍이 불던 2011년.


난 그저 2년 약정이 끝나서 처음 아이폰이 나온날 아이폰을 예약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스마트폰 관련 벤처회사에서 일해봤단 경험 하나만으로, 


물론 이것도 친인척중 한분이 그 회사를 차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니까 내 능력은 아니지...


여하튼 그러저러한 이유로 운 좋게 취업이 매우매우 쉬웠을뿐, 내가 뛰어났던 것은 별로 없었던거 같다.




그러해서.


여하튼 그러해서.


취업에 대한 글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한 스텝 건너뛰어서 내가 몸담았던.


첫 정규직으로 일했던 LG전자에서의 1년을 돌이켜보고자 한다.


이건 내 자랑도 아니고. 흑역사도 아니고. 그냥 내 30년 인생중의 1년의 시간에 대한 가감없는 서술이다.


물론 군대얘기와 마찬가지로, 추억보정이 들어가서 약간의 과장이 섞일수는 있으나,


최대한 담백하게 적어내고자 한다.




때는 2011년 겨울이었다.


삼성SDS를 버리고. 미래에셋증권을 버리고 LG전자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부터 쓰기 시작하면,


오늘 밤을 새도 다 못 끝낼 것 같으니, 우선 LG전자에 입사한 그 이후로부터 쓰고자 한다.



처음에는 LG그룹 연수였다. 2주였나.. 곤지암 리조트였는지 이천 신입사원 연수원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여하튼 어디선가 열심히 연수를 받았다.


개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건, LG메들리 라고 하는 LG그룹 전통을 배우는 일이었다.



LG메들리라는건, 약... 한 10개? 15개? 쯤 되는 노래들을 LG와 관련하여 개사를 한 다음에,


그 노래를 목청이 터지도록 부르면서 춤을 추는 그런 전통이었다.


약 5명정도가 한 조가 되어서, 그 춤을 외우고 노래를 외우고, 거의 하루종일 연습을 하면서,


해가 질 무렵쯤부터 시작해서, 담당 선배사원이 '오케이! 통과!' 라고 할때까지 계속해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었다.



그때도 그러했고, 지금 생각해도 참 병신같은 문화였지만,


그 당시에는 사회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필터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흡수하던 시절이라서,


아무 생각없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던거 같다.



그렇게 LG그룹 연수를 끝마치고는, 거의 곧바로 LG전자 연수를 시작했다.


거기선 뭘 했더라... 아.... 같은 조의 나이 많은 누님 한분이 계셨는데 출신학교를 적는 란에 영어로 뭐라 써놔서,


누나 뭔 학교 나온거에요? H..a..... v?.. 뭐에요 여기?


라고 했더니, 하버드 대학교 라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헐. 하버드? 태어나서 하버드 대학 나온 사람을 실제로 처음 봐서 너무 놀랬던 기억이 난다.



여하튼 거기서도 뭐드라... 그 당시 유행하던 남자의 자격 합창단 컨셉으로 UCC를 찍어대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왜 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짓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또 이어서 LG전자 MC사업본부 연수를 시작했었다.


연수만 거의 2달 넘게 했던거 같네.


거기선 별 기억이 없다. 


실제로 사원증을 처음 받았을때의 그 벅찬 감동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또 이어서 LG전자 MC사업본부 SW직군 교육을 받았던거 같다.


대학교때부터 최종 입사할때까지 UCC만 4~5번은 찍어댔던거 같다.




이 수많은 연수를 거치면서 만난 수십, 수백명의 '동기'들 중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10명도 되지 않는다.


나의 낯가리는 성격 + 사회에서 만난 인연이라는게 다 그렇지 뭐 라는 썩어빠진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다.


여하튼 그렇게 난 수많은 연수를 거치고 난 후에야,


진짜 LG전자 가산 MC-C (구 KCC건물) 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LG전자 MC사업본부 동기들이 전부 대강당 같은 곳에 모였었다.


그리고는 군대에서 보직 분류 하듯이, 인사팀 사람 중 한명이 이름을 호명하면서 몇팀으로 가는지 얘기해줬었다.


내 기억으로는.. 뭐 P1실은 국내사업... P2실은 어디.. P4실은 중남미... P7실은 테블릿... 뭐 이런식으로 나뉘어졌던거 같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이미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쁘고 어디는 지옥이고 어디는 좋다는...


진리의 케바케 따위는 무시한 루머들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그때 나는 P7실로 발령을 받았었다.


테블릿 팀.


응? 테블릿? 아이패드 같은건가? LG전자에서도 그걸 만들어?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거 같다.



나는 처음 월급이라는 걸 받아봤던 벤처회사에서 아이패드를 만져봤었고,


그 이후 삼성SDS인턴을 하면서 갤럭시탭 초기버젼을 만져봤었기 때문에,


이쯤되면 테블릿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될 만큼 테블릿 관련된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거 같다.



그렇게 7팀으로 발령을 받고나서, 인사팀을 따라 쭐레쭐레 갔던거 같다.


가산디지털단지에는 7개인가... 되는 LG전자 관련 건물이 있는데, 개중에서 나는 C건물이라고 하는 (구)KCC건물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속해있던 팀은... 이젠 이름도 기억 안나지만,


주로 석사, 박사 분들이 주를 이뤘던 팀이었다.


(원래 CTO라고... 연구만 전문적으로 하시던 분들이었는데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일반 회사원처럼 소속이 바뀌어버린 비운의 팀이었다.)



거기서 나는...


이젠 이름도 기억 안나지만 꽤 우락부락한 사수를 만나게 되었고, 괴팍한 팀장을 만나게 되었다.




첫날부터 야근을 했다.


팀원들에게 패기넘치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배정받고. 꽉 끼는 정장과 구두를 신은 채로 노트북을 셋팅하고,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그 환경에서 10시간 가까이 책만 읽었던거 같다.


원래 LG전자는 8시 출근 - 5시 퇴근이었지만 5시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았던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아서 안드로이드 개발 관련된 책만 주구장창 읽고 있었다.


그렇게 6시가 되자, 팀장님이 일어나서는 밥 먹으러 갑시다! 하고는 다 같이 우르르 밥을 먹으러 갔다.



나는 어떻게 하나 고민하면서 앉아있었는데,


팀장님이 나에게 말했다.


'자네는 집에 안가나? 그러면 저녁이나 같이 먹고 가지?'


옙! 같이 드시죠! 


그렇게 난 첫날부터 저녁을 먹고는...... 밤 10시까지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융통성 없는 신입이었던거 같다.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해서, 혼자 자리에 앉아서 계속해서 책만 읽어댔다.


화장실 갈때도 누구에게 말씀 드리고 가야할지 몰라서 쩔쩔 매다가 겨우겨우 지나가는 사수를 붙잡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사수가 말해줬지. 그런건 그냥 가도 된다고...


그렇게 첫날부터 밤 10시에 퇴근하고 나서... 거의 한달동안 야근을 시작했다.



난 참 눈치가 없는 신입사원이었다.


팀에 누군가 한명이라도 남아있으면 무조건 남아있어야 되는줄로만 알았다.


아무도 나에게 회사생활에 대해 조언을 해준 사람은 없었고,


그 당시 내 사수는 너무나도 바빠서 날 돌봐줄 겨를 따윈 없었다.


가끔 모르던 것이 생겼을때 바로 뒤에 앉은 여자선임분에게 여쭤보곤 했는데, 그게 반복되지 가끔 짜증을 내시기도 했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상처를 받았었지...


뭔가 신입사원 스스로 주제를 정해서 개발하는 일도 했었는데, 물어볼 곳이 없어서 구글링을 해대고,


남이 만든 어플을 다운 받아서 리버스 엔지니어링? 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해킹 비스무리하게 해서 소스코드 빼내서 복사하고 했던 짓을 했었던거 같다.


여하튼 그 당시 팀원분들은 본래 연구원 분들이라 그런지, 서로 일체의 대화도 없었고,


약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셨던거 같다.


여튼 난 신입사원 프로젝트 + 회사업무 + 회사적응 등으로 항상 바빴었다.



그러다보니 항상 매일 마지막... 밤늦게 혼자 퇴근하곤 했었다.


가끔 사수와 또 그의 사수가 술마시자고 불러내서 일찍 퇴근하던 것을 빼면 항상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할줄 아는것도 없고 할것도 없으면서 말이지....


그러다 언젠가 한번, 내 사수의 사수가 술을 마시자고 해서,


온수역에 있는 허름한 포장마차에 갔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분은 특이하게 소주를 쉬지 않고 드시는 스타일이었다.


많이 드시는게 아니고... 소주 한잔을 따라놓으면 입술만 축이듯이 한 20번에 걸쳐서 쉬지 않고 드시는 스타일이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그 분이 잔을 들때마다 따라서 소주 한잔씩 원샷을 했었다.


워낙 긴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정신은 꽉 잡고 있었는데....


그때 그 분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내가 이제까지 수많은 신입사원을 만나봤는데... 명수씨처럼 처음부터 너무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 불안해.


왜냐면 그러다보면 초반에 나가떨어지거든.... 끝까지 지금의 열정을 이어나갈수 있으면 몰라도...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할거면 지금부터라도 페이스 조절을 좀 하는게 좋아...



그 얘기를 들었을때 나는 뭔가 모르게 뿌듯했었다.


그 얘기의 핵심은 파악하지도 못한채. 아... 난 진짜 열심히 하고 있는건가보다. 좋아. 이대로 나가떨어지지만 않으면 난 인정 받겠구나. 근데 난 전혀 나가떨어질 생각이 없는데? 좋아. 이대로만 가면 되겠다.


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 그 선배분이 해줬던 얘기는 잘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었고, 열심히 하란 말도 아니었는데...


난 그걸 5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그 팀에서의 몇일이 지나갔었다.


난 모토로라 XOOM, 아이패드2, 갤럭시탭 10.1, 옵티머스패드 3D 였나... 뭐 그런 테블릿 PC들의 성능측정 관련된 일을 했었다.


참.. 혼자 하는 일이었다.


혼자 그 많은 테블릿을 짊어지고 다른 건물로 버스를 타고 가서, 하루종일 혼자 데이터를 취합해서 다른팀의 선배분에게 메일로 보내고..


혼자 점심을 먹고 혼자 테스트하고 혼자 퇴근을 하는 그런일을 꽤 했던거 같다...



그렇게 뭐가 회사생활인지. 뭐가 사회생활인지도 모른채 한달쯤 보내다가,


옆팀의 동기에게 이상한 소식 하나를 듣게 된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테블릿PC 관련된 모든 사업을 접을 예정이라서, 우리는 다른 팀으로 보내진다는 얘기였다..


이게 뭔소린가... 짤리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팀 회의가 소집됐고,


좁디 좁은 회의실에서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흠... 명수씨는... 다른 팀으로 가게 됐어요.'


끝.


그게 끝이었다. 전후사정 따윈 없었다. 그냥 다른 팀으로 가게 됐어요. 가 끝이었다.


그리고 뒤 이어서 나온 얘기가 아직까지도 내 가슴속에 상처로 남아있는다.



'그럼... 명수씨는 회의실을 나가주세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마지막 회읜데 듣겠습니다.'


'아니. 이제 우리팀이 아니니까 들으면 안될거 같으니까, 밖으로 나가주세요.'



그렇게 난 한순간에 소속을 잃어버린채, 혼자 책상에 앉아있게 됐었다.


그 당시 받았던 충격은 꽤 컸던거 같다.


한번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바보같이 따르던 성격 탓에,


내 사수와 그 사수의 사수분을 꽤나 잘 따르고 이쁨받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었고,


그들도 나를 참 아껴준다고 생각하고 지냈었는데...


그건 한낱 내 감성적인 생각일뿐이었다.


이곳은 대기업이었고. 난 수만명의 사람 중 한명이었다.


사수나 사수의 사수에게 있어서 나란 사람은. 그저 이제까지 스쳐지나온 수십, 수백명의 신입사원 중 한명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 첫 회사생활의 첫번째 팀을 떠나가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팀장님이 날 별로 마음에 안 들어했던거 같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이쁨 받기 위해서 노력하던 부류였으나,


그 방법이 서툴렀던거 같다.


사실 서툴렀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님이 날 탐탁치 않아하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냥 내 방법이 서툴러서 그랬다고 믿는데 내 정신건강에 좋을거 같다.



여하튼 그렇게 내 첫 팀은 이제는 기억도 안날 정도로 옛날일이 되어버렸다.







Posted by v멍군v
귀국 후 살아남기2016. 6. 26. 01:49

처음 인턴을 했을때도... 처음 정직원으로 회사를 들어갔을때도...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후 지금 회사를 들어왔을때도...


항상 들어왔던 말이 있다.



입사한 후 3년차... 6년차... 9년차... 가 가장 고비다.


우선 고비라는 말 자체에 동의가 가지는 않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3,6,9년차에 퇴사 혹은 이직을 생각하나보다.


그러니까 저런 말이 나왔겠지.



누가 만든 말인지 몰라도,


참으로 잘 만든 말인거 같다.



저 말은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마법의 말이다.


힘듭니다. 이건 좀 아닌거 같습니다.


라고 말을 해도,


원래 3년차때는 그런 생각 들어. 나도 그랬지.


라고 하면 끝이다.



원래 그렇다.


원래 그런 생각이 든다. 자기도 그랬다.


하지만 난 그걸 이겨내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끝.



더이상의 대화는 진행할수 없다.


여기서 더 불평불만을 늘어놔봤자 선배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대학생이 바라보는 사춘기 중학생의 모습일 뿐이다.


나도 너처럼 그랬어.


나도 그랬어.


내가 너때는 더 심했어.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다 지나갈거야.



뭐가 지나가고 뭐가 괜찮아진다는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수는 없지만, 이해했다고 말할수 밖에 없다.


왜냐면 난 월급쟁이니까.



요즘 들어 많은 생각이 든다.


유럽인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번듯한 회사도 때려쳤고,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털어서 세계일주도 다녀왔다.



그 결과,


난 그렇게 살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더 넓었고, 세상에는 내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난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 저 사람들도 다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고, 자기가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잖아.


나도 할수 있어.


예전처럼 그렇게 주구장창 야근, 주말출근만 하면서 살지는 않을거야...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난 어느새 토종 한국 회사원이 되어있었다.


무의미한 야근. 왜 하는지도 모르는 주말출근.


야근수당, 주말수당은 당연히 없다.


돈을 준다고 해도 하기 싫은 일을 돈도 안 받고 하고 있다.



이거에 대해 불평... 불평도 아니지, 아닌 것을 아니다 라고 말을 하면 항상 돌아오는 말은,


나때는 더 심했어.


옛날에는 말이야.


넌 왜 이렇게 삐딱하냐.


회사에서 시키면 해야지.



왜 꼭 주말에 이 일을 해야 되지?


왜 하루종일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데 면바지에 와이셔츠를 입고 다녀야 할까?


왜 야근수당은 안 주는거지?


왜 이 일은 이렇게 할수밖에 없는거지?


라고 진심으로 물어봐도, 진심으로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냥 원래 그러해왔으니까.


특별한 이유도 없다.


원래. 그랬으니까. 옛날에는 더 심했지만 지금은 나아진거야.


(그러니까 불평불만하지 말고 다녀.)



내가 대놓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회사는 바뀌지 않는다.


괜히 중간에 낀 선배사원들만 힘들어질뿐이다.


자기도 짜증나는데 밑에놈이 자꾸 태클을 걸어대면 나같아도 짜증나겠지.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 나와 해어지던 누군가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뭘 하든지간에 처음에 너가 아니다 라고 생각했던 그것들. 그걸 꼭 잊지 말고 고쳐나가.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서 못 고치게 되니까.'



그 당시에는,


'아.. 내가 맡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걸 알면서도 안 고친거 가지고 뭐라 하시는건가...'


라는 단순한 생각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심오한 말이었다.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당하다고 느꼈던 수많은 것들.


난 어느새 그것들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불평불만을 늘어놓는것도 어찌보면 마지막 발버둥일수도 있다.


나도 몇년이 흐르고 나면, 건의사항을 얘기하는 신입사원에게 똑같이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야. 나때는 말이야.


지금은 양반이야. 옛날에는 더 심했어.




그게 제일 무섭다.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말하는게 무서운게 아니다.


아닌 것을 맞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 순간이 오는게 너무 무섭다.


난 이렇게 살기 위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다녀온게 아니었는데...


난 왜 이렇게 용기가 없을까.



Posted by v멍군v
세계일주_12_13/46-Korea2016. 5. 26. 00:14

이날이 오긴 오는구나.


드디어 여행기의 마지막. 귀국하는 날의 모습입니다.





한동안은 이렇게 이국적인 풍경을 보는 날은 없겠지라며 찍은 길쭉길쭉한 홍콩의 빌딩들.


우리는 2013년 3월 24일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홍콩의 공항은 여전히 깨끗했고 여전히 들떠있었다.


출국하는 사람도 들뜨고, 귀국하는 사람도 들뜨고...


모두가 들떠있어서 나도 함께 들뜬 기분이 드는 곳.





최종 우리의 짐이다.


바닥에 깔린 박스가 아이맥이고, 그 위의 배낭 두개는 콜롬비아산 배낭덮개를 하고 있고,


그 왼쪽의 화려한 가방은 인도에서 산 가방이고..


비닐은 뭐지.


뭔가 쉽게 망가지는 물건들을 담아놓은 비닐 봉다리인거 같다.





아이맥은 부피가 커서 화물로 따로 보냈다.


한국에 가지고 올때 관세를 내야 된다 그래서,


물품 신청하느라 무슨 작은 종이도 하나 작성하고, 관세 신고 하는 쪽으로 입국도 하고,


엑스레이도 통과시키고 다 했는데,



그냥 보내줬음..;;;


나중에 찾아보니 뭐 컴퓨터는 관세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고,


홍콩에서 오는 사람들 중에, 명품 핸드백이나 잡지 이딴 컴퓨터는 쳐다도 안 본다는 얘기도 있고,


자진납세해서 기특해서 봐준거라는 얘기도 있고...



여하튼 관세 안 물고 그냥 가지고 나왔음. 데헷.





마지막으로 먹은 기내식.


3시간 반정도밖에 안 걸리는데 점심시간에 껴있어서 그런지 기내식을 줬다.



난 기내식 먹을때, 저 왼쪽위에 있는 과일이 제일 맛있더라.





도착과 환승이 있다.


왠지 여기서 환승을 해서 다시 인도로 가야할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난 한국에 도착.





넴.


길고 긴 여행을 끝마치고 한국에 왔습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2013년 3월 24일에 귀국해놓고... 여행기만 거의 3년을 썼네요.


실질적으로 한국와서 쓴건 몇개 없는데... 


또.. 뭐랄까... 귀차니즘 + 바쁨 + 감 떨어짐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금까지 질질 끌었네요.



여행기는 항상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쓰기 전에는 아 써야되는데 써야되는데 하면서 마음의 부담이 되었고,


쓰고 나서는 아 너무 대충 썼나 아 이거 뭔 말인지 알아는 먹을라나 하면서 마음의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항상 재밌게 봐주신 분들이 계셔서 큰 힘이 되었고,


어떻게 보면 그분들 때문에 이렇게 여행기를 마무리 지을수 있었던거 같네요.



한국에 와서는 정말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들처럼 전세값 오르지 않을까 걱정도 하고,


이번 여름휴가 때는 어디 갈데 없을까? 하면서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비행기값이 비싸네마네 뭐 숙소가 없네마네 하면서 때려치기도 하고,


티비에서 해외여행 가서 찍은 프로그램들 보면서, 와 좋네... 라면서 입 벌리고 티비 보기도 하고...



가끔은 언제 여행을 다녀왔나 싶기도 하고, 가끔은 마치 어제 귀국한거 같기도 하고...


그냥 똑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한국에 와서 어떻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써야겠네요.


몇번씩이나 말했지만, 저는 사실 여행가기 전에 그게 제일 궁금했거든요.



여행 다녀온 사람들 블로그를 보면,


오케이. 여행은 좋다 이거야. 남미를 가든 아프리카를 가든 다 좋은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다니는거지? 다녀오고 나서 뭐해먹고 살라고 저러지?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집이 잘 사나? 원래 뭐하던 사람이었지?


등등등....


사실 이렇게 포스팅을 한것도 그런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아서 여행을 망설이시는 분들이 많으실까봐 쓴것도 있고요.


뭐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밤이 늦은 관계로, 내일 또 다시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관계로 인사 드리고 마무리 지을게요.




이 글을 보고 계신 당신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뵐게요.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