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2024. 12. 31. 16:49

2024년 1월 1일 아침 해가 밝아올때부터 이 글을 써야지 했는데 1년이 거의 다 지나서야 글을 쓴다.

이 글은 오늘이 아니면 더이상 쓸수 없기에, 더 이상 미루기는 힘들것 같다.

 

나는 누나와 3살차이가 난다.

어릴때 나는 생각했다.

4년 후면 내가 오빠가 되는거구나.

그렇다, 타고난건지 5살 이전에 뭔가를 잘못 먹었는지 어릴적부터 내가 세상의 중심이었을뿐 주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나이를 먹지만 누나는 평생 그 나이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2024년부로 나는 한국나이로 40살이 됐다. 이제 법이 바뀌어서 39세지만, 난 여전히 40살이라고 말하는게 편하다.

내가 어릴적 누군가 아버지의 나이를 물어보면 항상 40살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는 39살. 할머니는 60살이라고 말했다.

얼마전 아버지의 칠순 기념으로 온가족이 베트남에 다녀왔으니, 아버지의 나이는 어느덧 70살이 되었다.

하지만, 앞에 말한것처럼 난 주변사람의 나이듦에 무감각한지라 내 맘속의 아버지는 여전히 40살이다. 

난 어느새 아빠와 동갑이 된것이다.

 

내 기억속 40살의 아빠는 자동차 정비를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날 정비를 하던중 사고가 나서 귀 한쪽이 엄청나게 찢어진 상태로 집에 오셨던게 기억난다.

간호사인 엄마가 약을 발라주면서 뭐라뭐라 했지만 아빠는 그냥 괜찮다고만 했던 기억이 난다.

 

난 40살이 되면 응당 그렇게 되는줄 알았다.

그런데 40살이 된 지금의 나는 침대에서 일어날때부터 죽는소리를 시작해서 침대에 누울때까지 그치지 않는다.

얼마전 의자를 밟고 올라가 천장의 전구를 갈아끼운 적이 있다.

그리고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야하는데, 1미터도 안되는 그 높이에서 곰곰히 생각했다.

여기서 뛰어내려도 되나?

 

20년 전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단층 건물 옥상에서 전선을 설치하고나서 다시 내려가야되는데, 후임 한명이 그냥 옥상에서 뛰어내리더니 나한테 얘기했다.

전병장님~ 바쁘니까 그냥 뛰어내리십시오~

뛰어내리려고 하다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집에 갈날도 몇일 남지도 않았는데 괜히 다치기 싫어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긴 했다.

다만, 장담컨데 그때 옥상에서 뛰어내렸어도 전혀 다치지 않고 잘 착지했을거다.

 

그런데 이제 고작 의자에서 바닥으로 내려가는것조차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군대시절의 내 모습에 비해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 비루하여 그냥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렸다라는 거창한 말을 쓰기에도 좀 그렇다. 그냥 내려갔다.

그리고는 몸이 둔해져서 날렵하지 못하다는 증거의 소리로 바닥이 쿵하고 울렸다.

 

40살이 된 지금의 나는 20살의 나와 전혀 다를게 없다.

가끔 거울을 볼때 왜 이리 초췌하지.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건 그냥 전날 있던 회식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가끔 초점이 안 맞아 지하철 노선도가 안 보일때가 있지만, 그건 그냥 지하철이 흔들려서 그런거라 생각하고 넘어간다.

가끔 띠동갑인 회사사람을 만나기도 하긴 하지만, 그건 그냥 그분의 능력이 출중하여 빠르게 입사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나는 여전히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때면 25년전 중정에서 하던 헛소리를 그대로 하고 있다.

벌써 10년은 훌쩍 넘은 신입사원 시절에 비해 지금의 내가 딱히 뭘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지내온 회사생활보다 남은 회사생활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이 지루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재밌는 시간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하는 날들이 더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생각은 종종 하곤 한다.

나는 내가 80살 이상 살거라곤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렇게 따져보면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어진 시점이 되었다고 본다.

삶의 반환점을 막 돈 지금, 혹은 돈지 조금 더 된 지금이다.

 

그래도 항상 드는 생각은, 40년동안 참 재미있게 살아왔고 후회는 별로 남지 않는 다이나믹한 시간이었다.

내 남은 40년은 더 재밌게 살고 싶다. 여러가지 생각은 하고 있다.

지금 당장이야 잃을게 너무 많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손에 쥔것들로 저글링만 돌리고 있지만.

이것들을 어느정도 놓아도 전혀 상관 없을때 즈음에는, 더 재미있게 살거다. 그럴거다.

 

이게 40살이 된 지금의 내 생각이다.

 

 

 

Posted by v멍군v
Mung2024. 4. 27. 13:03

사회생활을 한지 어언 10여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예전 회사에서도 하와이를 간적이 있고, 이 회사에서도 싱가폴에 다녀온적은 있지만 둘다 포상 성격에 비슷한 해외출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일하러 간 출장이었음.
그렇게 일주일간의 일본 도쿄 출장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시작은 가볍게 기내식으로.
국적기인 관계로 도쿄에 가는데도, 기내식을 준다.
게다가 맥주 꿀맛.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 일본맥주를 마셔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 다 몰아마시고 왔다.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회사지만, 출장인 관계로 어쩔수 없이 일본 오피스와 가깝고 + 고객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그래서 비싼 동네인 메구로구?에서 잤음. 누나 말에 따르면 고급 동네라고 한다.
약 5일간의 출장이 끝나고, 나머지 2일은 내 돈으로 여행을 했는데 이 동네는 엄두도 못내겠더라.
외곽에서 비즈니스 호텔에서 잘 정도 돈이면, 이 동네에서는 캡슐호텔정도가 가능함.
 

호텔 짜응.
혼자 자기가 아쉬울 정도였지만, 실제로 저 침대에 누워있던 시간보다 저 테이블에서 일한 시간이 더 많았던거 같다.
 

일본 메구로역에 붙어있는 일본 AWS 건물이다.
일본에는 AWS도 있고, Amazon쇼핑몰도 있는데 두개가 주로 쓰는 건물이 다름.
 

그리고 메구로역에 붙어있던 회전초밥집.
내가 이제까지 먹어본 초밥중에 제일 맛있었다. 가격도 나쁘지 않음.
여기서 일하는 일본분도 이곳을 슈퍼굿 베리슈퍼굿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확한 이름은 아직도 모름.ㅋㅋㅋ
마지막 날 즈음에 여기가 또 가고 싶어서, 30분 넘게 지하철 타고 와서 여기서 밥 먹었다.
 

이건 초밥집은 아니고, 구글 맵에서 유명하다고 나와서 찾아간 식당의 메뉴판.
(위 초밥집은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등 의사소통하는데 전혀 문제 없음. 그리고 회전초밥 집이라 의사소통 자체가 별 필요 없다.)
이 식당에서 메뉴 하나 시켜먹는데 10분 넘게 걸렸던거 같다.
일본은 여전히 영어가 잘 안 통하더라. 그리고 파파고나 번역기를 써도 의사소통이 썩 원활하지는 않았다.
뭔가 직독직해가 가능한 말들을 주로 쓰는거 같았다.
예를 들자면, 빨리 가겠습니다~ 대신에, 대쉬로 가겠습니다. 뭐 이런 말을 써서 번역기 돌리면 좀 이상하게 나옴.
 

요즘 엔화가 역대 최저치를 찍고 있는데다가, 술은 면세+원래도 저렴함 이 더해져서,
일본에서 위스키를 사오면 남는 장사라고 해서 한번 들러본 리쿼샵이다.
일본은 사케밖에 없는줄 알았는데, 일본 위스키도 유명하다고 하더라. 고급 술은 잘 모르는 관계로 딱히 뭘 사오지는 않았음.
 

일본 사무실 풍경.
생각보다 외국인들이 엄청 많이 보여서 의아했는데,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외국인 중에 일본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외국인 비중이 좀 높다고 하더라.
저 틈에서 일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새에 갑자기 글로벌 인재가 된듯한 느낌이 들어서 거의 매일 출근해서 저 틈에서 일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뭔가 싶긴 한데,
회사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더니 저렇게 술이 가득했다.
회사에서 술을 마셔도 되는건지, 아니면 내가 뭔가 숨겨져있는 냉장고를 발견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좀 놀라웠음.
 

일본 사무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건 저 링체조 도구가 꽤 있었다.
일하다말고 갑자기 저기 매달리는 사람도 봤고, 저 기구 말고도 운동할수 있는 기구가 곳곳에 있었다.
 

누가 봐도 일본 사무실이라는게 느껴지는 만화 캐릭터들.
이거 말고도 곳곳에 만화 캐릭터를 그려놨더라.
근데 지금 보니까 저 캐릭터 밑에 From Korea라고 써놨네. 한국 사람이 그린건가;;;
 

일본 사무실에서 본 도쿄 전경.
 

출장이다보니 생각보다 스케쥴이 빡빡해서 몇번은 밥때를 놓쳐서 이렇게 도시락을 먹었다.
사진의 돈까스 도시락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한솥도시락보다 맛없었음.
 

요거는 일본 Amazon 사무실.
일본은 우리나라랑 다르게 Amazon도 공식진출해있고, 아마존 페이, 아마존 헬스, 알렉사 등등 오만가지를 다 출시했다.
 

이건 사무실 구석에 있던건데, 뭔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까 헬멧이었다.
회의실에는 이렇게 바구니에 들어가있고, 사무실에는 책상마다 이 헬멧이랑 응급구조키트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이거 보니까 일본은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는게 실감이 났다.
비록 난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일본분한테 여쭤보니 도쿄도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고 왠만한건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지나간다고 한다.
 

자판기의 나라 일본.
예전에 후쿠오카 놀러갔을때, 시골 구석에도 자판기가 있길래 얘네는 모든걸 다 자판기를 통해서 사먹나 싶었는데.
회사 내에도 자판기가 있음.
왼쪽은 무료 자판기고, 오른쪽은 유료 자판기다.
보통 사무실에는 커피머신이 있는데, 얘네는 다 뽑아먹는다.
 

숙소에서 먹은 아침 조식.
개인적으로 카레나 짜장밥같은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일본은 카레가 유명하다길래 일부러 카레 좀 먹어봤음.
우리나라 카레랑 크게 다른점은 모르겠으나, 그냥 느낌상 더 맛있는 느낌적인 느낌.
 

이건 업무상 방문한 다른 회사 사무실에서 찍은건데,
뭔가 1분동안 하이파이브 많이한 기네스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신기해서 찍어봄.
 

도쿄의 지하철은 소문대로 무시무시했다.
복잡한건 둘째치고, 운영하는 회사 자체가 달라서 표 끊는것부터가 어려웠다.
처음에 그냥 표를 끊었는데 알고보니 무슨 국철 같은거라서, 우리가 가려는 곳을 가려면 엄청 빙빙 둘러가야했다.
그래서 환불하고, 다시 표를 끊으려고 보는데 이게 맞는건지 우리가 가는곳으로 가는건지 어렵더라.
게다가 카드 안됨. 현금 넣어야됨.
참고로 제일 오른쪽분은 일본분이신데도, 이렇게 표 끊어서 타본적이 없으셔서 우리랑 같이 헤매고 계셨다.
 

일본은 아날로그 감성이라 그러더니, 회사 행사도 팜플렛으로 찍어내고 있었다.
신기해서 한번 찍어봄.
 

이건 리쿼샵에서 찍은건데, 오른쪽에 보면 450만엔짜리 로마네콩띠 와인이 보인다.
우리나라돈으로 대략 4,500만원정도 되시겠다.
 

요건 Amazon 사무실이랑 연결되어 있는 호텔이었는데, 일본 전통을 컨셉으로 한 호텔 같았음.
정원도 그렇고, 화장실이랑 벽도 모두 옛날 일본 그림이나 물건들로 채워놨더라.
 

전날 과음한 관계로, 아침 회의전 급하게 해장하느라 먹은 우동.
편의점에서 수많은 음식들을 앞에 두고, 뭘 먹으면 가장 해장에 좋을까를 열심히 고민하다가.
표지가 빨갛고, 뭔가 국물이 있을법한 음식을 골랐는데 이 우동이 당첨됐음.
맛은 뭔가 요상하고 국물은 생각보다 걸쭉했지만 그래도 맛있었음.
 

요건 회사에 있는 전용 카페테리아.
밥도 팔고 음료도 판다.
 

이건 일본에서 일하시는 한국분이랑 단둘이 식사할 일이 생겨서 간 오므라이스 식당이다.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못갈거 같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시키는 방식 또한 일본어가 안되면 어려워보이는 식당이었다.
오므라이스 엄청 맛있었다.
가게가 좀 좁고, 카드가 안되는것 말고는 매우 만족스러웠음.
 

이제 갑자기 빈곤해진다.
출장이 끝나고 개인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저렴한 숙소로 바꿨더니 갑자기 난민이 되어버렸음.
이 숙소에서도 침대에 누운 시간보다, 저 좁은 책상에서 일한 시간이 더 많은거 같다.
 

하지만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나에게 있어서는 편의점 초밥 도시락이나, 고급 스시집이나 매 한가지였으므로 전혀 문제가 안됨.
근데 맥주는 좀 아쉬웠다. 캔맥주도 맛있었지만, 스시집에서 먹은 생맥주가 진짜 맛있었음.
 

여기는 닛포리라고 하는 동네다. 하네다 공항 말고 나리타 공항으로 입출국하면 이 동네를 거친다고들 하던데.
난 하네다 입출국임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가 저렴해서 이 동네로 숙소를 잡음.
 

이제 개인일정이라고는 했지만, 결국 선물사는데 모든 시간을 다 썼다.
신주쿠인지 어딘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시내임. 엄청 큰 빅카메라가 있어서 구경하러 들어갔다.
예전에 빅카메라에서 키보드를 싸게 산 기억이 있어서 혹시나 해서 들어가봄.
 

예전에 왔을때는, '아 혼자였으면 하루종일도 구경하고 싶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정말 혼자 오니까 별 재미가 없었다.
뭔가 무뎌진건지, 피곤한건지, 혼자 돌아다니는게 어색해진건지 잘 모르겠음.
여튼 저 큰 빅카메라 건물에서 키보드만 좀 구경하다가 나왔음.
 

한솔이가 별의커비 스워드 키링을 사다 달라고 해서 찾아간 닌텐도샵이다.
지금 보이는게 다 줄임........
이 줄을 보고 그냥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열심히 찾아봤다.
 

그냥 별의커비면 쉽게 구할수 있을텐데, 별의커비 스워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별의커비 캐릭터가 수십개인데, 하필 그중에 별로 인기도 없는 스워드 캐릭터를 좋아하는 바람에 찾느라 애 좀 먹었다.
결국 조그만 피규어 하나 구하는데 그치긴 했으나, 한달 뒤 고모가 별의커비 스워드 인형을 사다주는 바람에 한솔이가 매우 흡족해했다.
 

하지만 다솜이가 원하는 선물에 비하면, 별의커비 스워드는 약과였음.
다솜이가 원하는 선물은, 1986년에 개봉한 천공의성 라퓨타 굿즈. 미야자키 하야오 굿즈는 토토로가 90프로인 관계로 눈 씻고 찾아봐도 라퓨타 굿즈는 없었다.
가뭄에 콩나듯 찾아내면 가격이 레얄 가뭄에 난 콩 가격임.
 

다시금 사무실로 들아와서 본 도쿄의 풍경.
도쿄는 생각보다 높은 건물이 별로 없더라.

요건 커비 카페다.
이때쯤 한창 애들이 커비에 빠져있을때라서 찍어왔음.
지금은 마리오에 빠져서 커비에는 또 관심이 없어짐.ㅎ

 

어떻게든 천공의성 라퓨타를 찾으러 도쿄 시내를 돌아다녔다.
나온지 40년쯤 된 작품의 굿즈를 찾는건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미야자키하야오 굿즈는 왜케 다들 비싸냐.
결국 아트북이랑 손수건을 찾아서 사옴.ㅎ

 

그리고는 다시 회전초밥집.
스시로 라고 불리는 저가형 스시 체인점이다. (라고 알고 있음.)
여기서 거의 초밥 개수만큼 맥주 시켜서 마셨다.

 

동네 길거리에 있던 너구리 인형.
난 어릴때 만화책을 엄청 많이 봤는데, 가끔 뭔가 요술을 부리는 너구리 에피소드들이 나왔었다.
그런 의미로 입구에 세워둔거 같다.

 

아침부터 또 다시 초밥에 생맥주.
이거는, 닛포리 역에 있는 역내 식당이었다.
원래는 정말 아침만 먹고 도쿄 시내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생맥주가 있어서 어쩔수 없이 시켜먹음.

 

같이 팔고 있던 주먹밥 도시락.

 

일본의 지하철 역사는 죄다 생김새가 다르긴 했지만, 이곳은 뭔가 인천쪽의 1호선 느낌이었다.
부천이나 주안 이런쪽의 야외 승강장 느낌이 났음.

 

다시 또 사무실로 와서 열일.
딱히 가고 싶은데도 없었던뿐더러, 난 나의 허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괜히 돌아다녔다간 허리가 나갈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얌전히 사무실에 와서 일하고 구경하고 산책했다.

 

이거는 어디지... 여튼 시내에 갔다가 먹은 라면이다.
앞에 보면 흰색, 노란색, 검은색 뭐 이런게 있는데. 면 종류를 의미한다.
면을 다 먹고 저중에 원하는 면에 해당하는 색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주방장 아저씨가 그 면을 갖다줌.
두번까지 리필된다고 했는데, 한번 리필해 먹으니 배 불러서 더이상 못먹겠더라.
그리고 일본 식당은 기본적으로 다 작고 좁은거 같다.

 

이건 내 생각에 전국의 8살중에 종이접기를 제일 잘할거라 생각되는 한솔이 선물을 사러 간 서점이다.
외국어로 된 책을 주로 파는 서점이다. 신주쿠에 있었던거 같다.
일본이 종이접기 (오리가미)가 유명하다 그래서 사러 갔음.
이게 종이접기인지 종이구기기인지도 모를정도로 복잡한 책도 있었지만, 고심 끝에 중간레벨로 사왔다.
그리고는 바로 한솔이한테 너무 쉽다고 혼남.
다음에 가면 제일 어려운거 사다줘야겠다.

 

신주쿠.... 맞죠?...

 

그리고는 다시 회사쪽으로 돌아와서 찾아간 첫날의 회전초밥집.
보고 있으니까 또 가고 싶네.
일본 회전초밥집들은 저렇게 자리에서 주문하면 주방장분들이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돌아가고 있는 초밥 주워먹어도 됨.
그리고 가끔 특가세일하는듯한 느낌의 초밥들이 나타난다.
주방장분들이 쟁반으로 들고다니면서 뭐라뭐라 외치는데, 그건 가격이 좀 싼거 같다.
일본어를 못하는 관계로 전부 다 추측성임.ㅎㅎ 아닐수도 있음.

 

회사에서 보는 마지막 풍경.

 

일본은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녀서 그런지, 자전거 주차장도 엄청 크게 있었다.
그리고 왠지 돈내고 주차하는 느낌적인 느낌이었음.

 

출장의 제일 꿀맛은 좋은 숙소에서 잘수 있다는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택시를 맘 놓고 탈수 있다는거 아닐까.
일본의 택시비는 무시무시하다고 들었는데, 요즘 우리나라 물가가 올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미친듯이 비싸지는 않았다.
아닌가? 비쌌나?... 법카로 긁어서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지하철을 이용해서 하네다 공항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 티켓도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그냥 택시 탐.
아저씨는 슈퍼 드라이버였다. 운전 엄청 잘하심.

 

이번 출장 자체가 일본 보험회사랑 미팅하러 간거라서 그런지, 공항에 있는 해외여행보험 가입 기계가 눈에 띄더라.

 

돌아올때 먹은 기내식. 그리고 맥주.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 업무목적으로 간 약 일주일간의 도쿄출장이 끝났다.

그리고 다다음달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 출장을 가게 됐다.
그것도 외국인들 앞에서 영어로 발표하러 간다. 재밌는 회사다.

Posted by v멍군v
카테고리 없음2023. 8. 1. 00:26

20년쯤 전, 생각해보면 정말 20년쯤 전, 군대에 있을때의 이야기다. DP 2를 보다가 문득 생각났다.

원래 나는 통신병으로 군대를 갔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군수병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1종계원이라고 불리는, 부대 내의 식료품 보급을 담당하는 보직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인가.. 2주일에 한번인가 커다란 트럭을 타고, 뭔가 노량시장처럼 생긴 보급대? 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 가서 식료품을 받아왔다.

공병대, 기동대, 헌병대, 의무대, 통신대에서 한번씩 돌아가면서 식료품을 받아와서 나머지 부대에 정해진대로 배분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어느날이었다.
내가 식료품을 배급하는 날이었고, 나는 언제나처럼 기동대 아저씨가 운전하는 트럭에 타서 보급대에 가서 식료품을 받아왔다.
그리고는 부대로 돌아와서는 정해진대로 배급을 시작했다.

이 배급은 단순하면서도 어려웠다. 우유처럼 개수로 배급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제일 큰 문제는
kg으로 나뉘어진 것이었다. 각 부대에 정해진 양은 2.34kg, 4.31kg처럼 나누기 애매한 양이었고, 패킹되어진 양은 2kg, 10kg같은 단위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대충 눈대중으로 나눠서 배급하고 있었다. 4kg니까 10kg짜리 박스를 반으로 나눠서 대충 조금 떼고 주면 되겠지… 이런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마음이 푸근했던 모양이다.
앞에서부터 조금씩 양을 많이 주었는지… 4-5개의 부대를 돌고나니 명태살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헌병대와 내 부대인 통신대였다.

헌병대에 가서 얼마 남지 않은 명태살을 나눠주다보니 헌병대 병장 아저씨가 나한테 화를 냈다. 이등병이었던 나는 너무 무서웠다.
‘아니, 아저씨. 이거 누구 먹으라고 줘요. 나는 모르겠고 명태살 제대로 가져와요.’

나는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지금까지 나눠준 명태살을 다 다시 가져와서 나눠줘야되나… 그러면 또 운전해주는 기동대 아저씨가 욕할거 같은데…

나는 우선 급한대로 내 부대인 통신대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통신대 취사병한테 식료품을 나눠주는데, 우리부대 취사병도 나한테 똑같은 말을 했다.

‘야, 1종 계원. 이게 무슨 4kg야. 다 어쨌어?’

나는 어쩔줄 몰라 하다가, 솔직하게 얘기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이 나눠줘서 명태살이 모자르다. 그래서 지금 헌병대에는 하나도 못 나눠주고 돌아온 길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 얘기를 들은 취사병의 제일 고참이 나한테 말했다.

‘야 1종계원, 우린 이거 필요 없으니까 이거 다 헌병대 갖다주고, 모자른건 이 대구살 갖다줘.’

‘아… 근데 헌병대에서 꼭 명태살로 가져오라 그랬습니다…’

‘야 1종 계원, 하 헌병대 누가 그래? 그새X 데려와. 눈감고 명태살이랑 대구살 쳐먹어보고 구분할수 있으면 내가 대가리 박을게.‘

난 그대로 냉동 대구살을 들고 헌병대로 가서 명태살 대신 대구살을 나눠줬다.

역시나 헌병대 취사병은 나한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저씨. 이건 대구살이고요. 명태살 가져오라고요.’

그래서 나는 우리 취사병한테 배운대로 말을 했다.
‘아저씨, 명태살이랑 대구살이랑 똑같아요. 눈 감고 차이 맞추면 내가 갖다줄게요.’

예상치 못한 나의 반응에 헌병대 취사병은 움찔하고는 욕을 욕을 하면서 대구살을 받아갔다.

그렇게 그날의 소동이 끝나고 부대로 돌아온 나는 취사병에게로 가서 물어봤다.
‘감사합니다 서명원 병장님. 그런데 저희 이제 명태살도 없고, 그나마 있던 대구살도 헌병대 줘버려서 어떡합니까. 저희 식단 어떡합니까?‘

그러자 취사병이 말했다.
‘야 1종계원, 지랄하지 말고 꺼져. 내가 알아서 할거야’
군대라는 곳이 너도나도 욕을 달고 다니는 곳이긴 했지만, 취사병 왕고는 더 욕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랄하지 말고는 그분의 시그니쳐였다.

여하튼 그렇게 우리는 그날 저녁 대구탕 대신 계란국을 먹었고, 아무일 없는 듯이 지나갔다.

이 일은 20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히 내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 20년이 지나서도 계속 내 기억에 남을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Posted by v멍군v
귀국 후 살아남기2023. 5. 29. 22:55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코엑스에 대한 기억중 인상 깊은 기억이 하나 있는데, 그건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때쯤의 일이다.

무슨 행사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코엑스에서는 IT관련된 행사가 열렸었다.

원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행사였지만, 그 당시 나는 큰아찌가 준 Staff표찰을 당당하게 착용하고 무료로 입장을 했었다. (당연히 그러면 안되는거였지만...)

 

내 기억에 있는 장면이라고는,

뭔지 모를 부쓰들 중간중간에 게임을 팔고 있던 간이판매대들이다.

남대문에서 양말을 쌓아놓고 떨이로 판매하듯이, 그 행사에서도 부쓰 중간중간에 오래되거나 유명하지 않은 게임들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단도 5,000원에 판매하는 판매대들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장군이라는 슈퍼로봇대전 짝퉁같은 게임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게임 하나. 그렇게 2개를 사왔던 기억이 난다.

 

그 날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학교를 빼먹고 갔기 때문인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굳이 학교를 빼먹으면서까지 갈만한 행사는 아니었던거 같다. 내가 볼만한 그런 행사는 아니었던거 같다.

그 당시의 엄마가 왜 굳이 학교를 빼먹으면서까지 그 행사에 보내주셨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안가지만,

그래도 뭔가 친구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때 나 혼자 staff 표찰을 착용하고 이렇게 거대한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뭔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달쯤 전에 드디어.

국내에서 가장 큰 IT행사 중 하나인, AWS Summit에서 발표자로서 코엑스에 섰다.

마지막 시간대라 아쉽긴 했지만, 가장 큰 강연장에서 발표를 했다는 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나 혼자 마음속으로.ㅎ)

 

코엑스에서, 그것도 1,000명 앞에서 발표를 한다는게 너무나도 떨리는 일이었지만. (근데 연휴 전날 마지막 시간대라 1,000명 안옴.ㅎㅎ)

막상 올라가보니 생각보다 긴장되지는 않았고, 아주아주 다행히도 준비한 모든 것들을 실수없이 잘 해내고 내려왔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발표자로 서는 날도 오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v멍군v
Mung2022. 9. 5. 23:43

10년전 오늘, 2012년 9월 5일의 나는.

지구 반대편 브라질 살바도르라는 동네에 있었다.

호스텔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찾아봤더니, 알파 호스텔이라는 곳에서 묵고 있었다.

 

구조는 정확히 기억난다.

자그마한 중정이 있었고, 그 중정에는 해먹이 하나 있었다.

우리 방은 그 중정을 지난 뒤, 뒤편에 자리잡고 있었고, 우리 방 옆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꽤나 좋은 호스텔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 전에 급하게 잡았던 호스텔에서 손바닥만한 바퀴벌레가 나왔었기 때문인가.

알파 호스텔은 이상하게 햇볕도 잘 들었었던것 같은 기억이 난다.

 

사실 이 모든 기억이 10년 전 기억이니, 정확할리는 없다.

그렇게 10년 전의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빈대에 뜯겨가며 하루하루 니나노거리면서 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름의 계획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상당히 무모한 플랜B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플랜B까지 가지 않은채로, 10년의 시간이 흘러왔다.

열심히 살았나? 아니. 

열심히 살았나? 그렇다.

 

2022년 9월 5일.

브라질 살바도르에서 빈대에 물어뜯기던 나는, 싱가폴의 꽤나 좋은 호텔에서 마리나베이를 바라보고 있다.

10년전의 내가 생각한, 10년 후의 나의 모습은 아니다.

사실 10년전의 나는,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적이 없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만 살았었다.

 

지금의 나는 10년전의 나보다 얼굴의 주름은 늘었고, 10년전의 이마선이 꽤 많이 후퇴한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렇다. 2012년 세계일주를 하던 나와, 2022년 싱가폴로 출장을 온 나와, 2032년 어찌 살고 있을지 모를 너와.

그렇게 또 두근거린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