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2018.08.29 22:55

2017년 9월 17일이 다가왔다.


나는 뭐를 해야할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10년간 매년 있던 기념일이지만 이번만큼은 언제나처럼 넘어가기 싫었다.


언제나처럼이라 하면 어떤것일까.


마음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귀차니즘 때문에 몇일 뒤에 기념일을 챙겨준거?


대충 뭘 좋아할까 고민하고, 요 근래 무슨 얘기를 했었나 되짚어 가면서 선물을 고른거?


근데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회사에 여성여성스러운 동료가 몇 있었다.


그 동료들에게 꽤나 많이 물어봤다.


와이프가 원래 시계를 좋아하는걸 알고 있었으므로, (근데 그 좋아하는 시계라고 해봤자, 갖고 있는거라곤 DKNY뿐)


까르띠에 뭐드라.. 무슨 발롱블루였나? 무슨 블루 들어간 제품이었는데 비쌌다.


그렇지. 비쌌다.


아무리 명품이고 뭐고 의미를 부여하고 혼자 머릿속으로 까르띠에를 만들고 있는 코쟁이 장인들을 떠올려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웃긴게 비싼거 한번 보고나서, 가격 낮춰서 다른 모델을 보면 눈에도 안 들어오더라.


그래서 패스.


가방? 가방을 사줄까? 그치. 빽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고 했어.


루이비똥? 구찌?


비쌌다.


이게 도대체 왜 비싸냐. 첫 회사인 트라이디어에서 최고급 소가죽을 보고나서 그런지, 패턴이 찍힌 싸구려 가죽은 그냥 레쟈로만 보였다.


왜죠. 도대체 뭔지 감도 안오는 가죽에 마크만 찍어댄 가방이 왜 이리 비싼거죠?



게다가 이 여성여성스러운 동료들은 이미 위에 말한 메이커들을 1,2개씩은 갖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들도 이미 갖고 있는 가방이라...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진희한테 넌지시 물어봤다.


평상시라면 워낙 눈치가 빨라서 다 알아버렸겠지만, 내가 말한 가방은 꽤나 비싼 가방이라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으리라.



'징규야. 너도 샤넬백 사줄까.'


'ㅇㅇ'


'ㅇㅇ. 그래. 근데 어차피 내 월급은 니가 가져가니까, 그냥 니 돈으로 산다 생각해. 그럼 하나 사줄께.'


'ㄴㄴ. 월급에는 손도 대지 말고, 밤에 대리를 뛰든 코인을 하든 알아서 돈 벌어서 사와. 그럼 받아줄게.'



됐다.


모든 것은 이미 이뤄졌다. 원익IPS는 나에게 월급에 1도 손을 안대고 샤넬백을 사줄만큼의 수익을 안겨다줬다.


라고 생각했었지. 그때는 샤넬백이 그따위로 사악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지 몰랐거든.



사실 진희의 친구들 (대학 친구들 or 회사 친구들이라 기본이 약사 면허증 소지자 아니면 남편이 의느님이신 분들.)은 이미 하나씩 갖고 있었다.


누구는 예물로 하나 장만했고, 누구는 애 셋을 낳아서 선물로 받았다 하고, 누구는 그냥 자기가 번돈으로 샀다고 하는 그 백이다.



우린 예물을 하지 않았다.


내세울거 하나 없는 내가 예물 운운하는것도 웃기겠지만, 여하튼 우린 예물이고 예단이고 그런거 다 생략하고 그냥 결혼식만 했다. 


샹견례만 미친듯이 거창하게 했지. 무료인줄 알고 한잔에 2만원씩 하는 와인을 들이켰던 그때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바지 음식 해오는줄 알고 한복 차려입고 오신 작은고모님이 갑자기 생각나네... 아무것도 준비 안했는데...



여하튼 이런저런 기회를 모두 놓친 진희는 샤넬백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샤넬백만 없는게 아니었다. 갖고 있는 가방중에 최고급 가방이 FULRA인가... 뭔가 딱 봐도 튼튼해 보이는, 가성비 쩔게 생긴 그런 가방이었다.


위에 얘기한, 샤넬백을 가진 모든 친구들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그들보다 높은 수능점수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공돌이를 만나는 바람에 해당사항 없음으로 처리되서 명품백 하나 못 가진 사람이었다.



비록 애 셋을 낳지는 않았지만, 의느님 남편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부자 시댁을 만난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30년 넘게 열심히 살아왔고, 특히 그중 마지막 10년은 심해 구석탱이에서 굴러다니던 나의 멱살을 붙잡고 수면 밖으로 끄집어 올려내서 임마 정신차려. 저 태양을 봐. 임마. 눈 떠! 를 외쳐준 사람이니까,


샤넬백 하나 정도는 가질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 샤넬백 하나 사주자. 그렇게 결심하게 됐다.



샤넬백은 생각보다. 그리고 생각만큼 비쌌다.


뭐 이딴 허접한 검은색 가죽가방 하나가 그따위 가격을 구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특히 미적감각이라곤 0인 내가 봤을때는 부평 지하상가에 걸려있는 가방보다도 안 이쁜 저게 왜 그리 고고한지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계속해서 조언을 구하던 여성여성스러운 동료들은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샤넬은 왕이야. 루이비똥은 대학생이나 매는거지. 샤넬이야. 샤넬!!!'


'언니가 명품백이 하나도 없다고? 그럼 샤넬이지!!!'



그리고 웃긴게,


가방만 보면 전혀 안 이뻤으나, 가격을 보는 순간 뭔가 좀 이뻐보였다.


가방만 보고는 이딴 밍밍한걸 누가 사. 라고 얘기하다가도 가격을 보는 순간, 음... 마감이 괜찮은데? 로 바뀌는게 사람이었다.



날짜는 정해졌고, 가방만 사면 된다.


우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뒤졌다.


정보 없다.


생각해보면 이미 샤넬백을 선물받거나 샤넬백을 산 사람들은, 그걸 어케 샀는지 적어놓을리가 없었다.


요리조리 앞뒤좌우 외제차 엠블럼이 살짝 보이게끔 사진 찍어놓고 #선물 #사랑해 이따위 태그만 달기에 급급했다.


인터넷정보검색사 1급 필기시험 합격자인 내가 처음으로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망할!!!



여성여성스러운 동료들에게 물어봐도, 이들도 주변 언니들에게 들은 얘기가 전부였다. 샤넬백을 사기에 이들은 아직 어렸다.


회사에 샤넬백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았으나, 직접 산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열심히도 알아봤다.


아... 캐비어라는게 가죽 종류구나.. 아.. 이게 금장이구나.. 아.. 이게 클래식이구나.. 아.. 이게 보이백이구나... 



그러던중 맘에 드는 백을 발견했다.


코코핸들 이라는 모델이었다.


처음에는 손잡이 부분이 도마뱀 가죽으로 되어 있던게 마음에 들었는데, 그건 부산에만 있단다... 망할. 미친. 센텀시티.


하지만 그렇게 포인트 들어간걸 좋아하는건 순전히 내 취향이다.



그래서 그냥 검정색 코코핸들을 사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언제 또 사줄지도 모르는데 검은색이 제일 좋겠지.


샤넬 고객센터에 전화걸어서 물어봤다.


'내일 코코핸들 살건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네 고객님.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아.. 고객님. 죄송하지만 현재 재고가 없습니다.'


?? 응? 왜요? 내가 내돈 주고 사겠다는데 왜 물건이 없죠? 왜죠?



미친 샤넬은 가격만 배짱이 아니었다.


상술도 배짱이었다.


샤넬은 매주 화요일인가. 언제만 물건이 들어오고, 아까 얘기한것처럼 1~2개밖에 없어서 인기모델은 99% 확률로 진열상품이고,


클래식이랑 몇개의 모델을 제외하고는 예약도 안 된단다.


홈페이지에도 없다.


매일 저녁 7시인가 6시인가, 샤넬 고객센터로 전화해서 내일 물건 들어오는지 물어보는 수밖에 없단다.


뭐 이딴 거지 같은 시스템이...


라고 욕하기에는 너무나도 갖고 싶어졌다.



사람 마음 간사하더라.


처음에는 10만원 주고도 안살거라 생각한 그 가방 하나가,


지금 와서는 중고나라에 백화점 가격 + 10만원으로 올려놔도 바로 사버릴것처럼 바뀌어버렸다.



그렇게 2~3일쯤 전화했을 무렵,


상담사가 말했다.


'아 고객님. 코코핸들 내일 명동 롯데 본점에 1개 들어오네요.'


당연히 예약이고 뭐 선점이고 그딴건 없었다. 백화점 문 열자마자 경비아저씨가 사가버리면 없어지는 시스템이었다.



바로 다음날 휴가를 썼다.


그리고 백화점에 달려갔다.


그리고 물건을 봤다.


지쟈쓰. 근데 내가 원하던 카프스킨이 아니었다. 카프스킨이라 하면 샤넬백하면 처음 떠오르는 그 마름모꼴 모양의 패턴이다.


쉐브론이라고 하는,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뭔가 중고품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제품이었다.


그래도 한개밖에 없는 명품백인데 제일 무난한게 사고 싶었던 나는 카프스킨 카프스킨 거렸더니,


진심. 차은우보다 잘생긴 매장 직원이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고객님. 카프스킨은 블라블라 이건 쉐브론 어쩌고 저쩌고 뭐 이건 빈티지 어쩌고 요즘 카프스킨은 중년여성들이나 쓰시지 젊은 분들은 블라블라.


아... 매력에 빠져든다.


남자가 이렇게 잘생길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에 나의 뇌회로는 정지했고, 그냥 예예 그렇죠. 이렇게 생기신분이 말씀하시면 그냥 그런거죠.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바로 말했다.


'잠깐 상품권 좀 사올게요. 기다려주세요'


돌아온 답변은,


'고객님. 죄송한데 저희가 예약은 안되고 만약 다녀오시는 동안 다른 분이 오셔서 사가실수도 있습니다.'


녜이녜이. 어련하시겄습니까. 이미 샤넬의 고고함은 익숙해져있었다. 그럼요. 그렇시겄죠. 아주 대단하십니다. 예. 만수무강하세요.



포장하는데도 한참 걸렸던거 같다.


마실거를 갖다준다길래 암거나 달라 그랬더니, 넵킨에 쌓인 페리에를 갖다 줘서 감격 받은 기억이 난다.


와... 믹스커피도 아닌 페리에를 넵킨에 싸서 주시다니... 넙죽넙죽.



앉아있기 뻘쭘해서, 일어서서 이것저것 구경하는데 엄청 친절하게 다 설명해주신다. 역시 이래서 돈이 좋은가보다.


여하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샤넬백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건, 에비뉴엘에서 물건을 사면 주차비도 무료인데다가 발렛파킹도 알아서 해주시더라. 


역시 돈이 체고시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마지막편은 다음으로 넘겨야겠다.



만난지 26일째 되던 날, 인도의 신혼여행지 우다이뿌르에서 찍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진짜 마지막편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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