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2018.08.29 22:55

2017년 9월 17일이 다가왔다.


나는 뭐를 해야할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10년간 매년 있던 기념일이지만 이번만큼은 언제나처럼 넘어가기 싫었다.


언제나처럼이라 하면 어떤것일까.


마음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귀차니즘 때문에 몇일 뒤에 기념일을 챙겨준거?


대충 뭘 좋아할까 고민하고, 요 근래 무슨 얘기를 했었나 되짚어 가면서 선물을 고른거?


근데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회사에 여성여성스러운 동료가 몇 있었다.


그 동료들에게 꽤나 많이 물어봤다.


와이프가 원래 시계를 좋아하는걸 알고 있었으므로, (근데 그 좋아하는 시계라고 해봤자, 갖고 있는거라곤 DKNY뿐)


까르띠에 뭐드라.. 무슨 발롱블루였나? 무슨 블루 들어간 제품이었는데 비쌌다.


그렇지. 비쌌다.


아무리 명품이고 뭐고 의미를 부여하고 혼자 머릿속으로 까르띠에를 만들고 있는 코쟁이 장인들을 떠올려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웃긴게 비싼거 한번 보고나서, 가격 낮춰서 다른 모델을 보면 눈에도 안 들어오더라.


그래서 패스.


가방? 가방을 사줄까? 그치. 빽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고 했어.


루이비똥? 구찌?


비쌌다.


이게 도대체 왜 비싸냐. 첫 회사인 트라이디어에서 최고급 소가죽을 보고나서 그런지, 패턴이 찍힌 싸구려 가죽은 그냥 레쟈로만 보였다.


왜죠. 도대체 뭔지 감도 안오는 가죽에 마크만 찍어댄 가방이 왜 이리 비싼거죠?



게다가 이 여성여성스러운 동료들은 이미 위에 말한 메이커들을 1,2개씩은 갖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들도 이미 갖고 있는 가방이라...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진희한테 넌지시 물어봤다.


평상시라면 워낙 눈치가 빨라서 다 알아버렸겠지만, 내가 말한 가방은 꽤나 비싼 가방이라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으리라.



'징규야. 너도 샤넬백 사줄까.'


'ㅇㅇ'


'ㅇㅇ. 그래. 근데 어차피 내 월급은 니가 가져가니까, 그냥 니 돈으로 산다 생각해. 그럼 하나 사줄께.'


'ㄴㄴ. 월급에는 손도 대지 말고, 밤에 대리를 뛰든 코인을 하든 알아서 돈 벌어서 사와. 그럼 받아줄게.'



됐다.


모든 것은 이미 이뤄졌다. 원익IPS는 나에게 월급에 1도 손을 안대고 샤넬백을 사줄만큼의 수익을 안겨다줬다.


라고 생각했었지. 그때는 샤넬백이 그따위로 사악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지 몰랐거든.



사실 진희의 친구들 (대학 친구들 or 회사 친구들이라 기본이 약사 면허증 소지자 아니면 남편이 의느님이신 분들.)은 이미 하나씩 갖고 있었다.


누구는 예물로 하나 장만했고, 누구는 애 셋을 낳아서 선물로 받았다 하고, 누구는 그냥 자기가 번돈으로 샀다고 하는 그 백이다.



우린 예물을 하지 않았다.


내세울거 하나 없는 내가 예물 운운하는것도 웃기겠지만, 여하튼 우린 예물이고 예단이고 그런거 다 생략하고 그냥 결혼식만 했다. 


샹견례만 미친듯이 거창하게 했지. 무료인줄 알고 한잔에 2만원씩 하는 와인을 들이켰던 그때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바지 음식 해오는줄 알고 한복 차려입고 오신 작은고모님이 갑자기 생각나네... 아무것도 준비 안했는데...



여하튼 이런저런 기회를 모두 놓친 진희는 샤넬백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샤넬백만 없는게 아니었다. 갖고 있는 가방중에 최고급 가방이 FULRA인가... 뭔가 딱 봐도 튼튼해 보이는, 가성비 쩔게 생긴 그런 가방이었다.


위에 얘기한, 샤넬백을 가진 모든 친구들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그들보다 높은 수능점수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공돌이를 만나는 바람에 해당사항 없음으로 처리되서 명품백 하나 못 가진 사람이었다.



비록 애 셋을 낳지는 않았지만, 의느님 남편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부자 시댁을 만난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30년 넘게 열심히 살아왔고, 특히 그중 마지막 10년은 심해 구석탱이에서 굴러다니던 나의 멱살을 붙잡고 수면 밖으로 끄집어 올려내서 임마 정신차려. 저 태양을 봐. 임마. 눈 떠! 를 외쳐준 사람이니까,


샤넬백 하나 정도는 가질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 샤넬백 하나 사주자. 그렇게 결심하게 됐다.



샤넬백은 생각보다. 그리고 생각만큼 비쌌다.


뭐 이딴 허접한 검은색 가죽가방 하나가 그따위 가격을 구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특히 미적감각이라곤 0인 내가 봤을때는 부평 지하상가에 걸려있는 가방보다도 안 이쁜 저게 왜 그리 고고한지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계속해서 조언을 구하던 여성여성스러운 동료들은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샤넬은 왕이야. 루이비똥은 대학생이나 매는거지. 샤넬이야. 샤넬!!!'


'언니가 명품백이 하나도 없다고? 그럼 샤넬이지!!!'



그리고 웃긴게,


가방만 보면 전혀 안 이뻤으나, 가격을 보는 순간 뭔가 좀 이뻐보였다.


가방만 보고는 이딴 밍밍한걸 누가 사. 라고 얘기하다가도 가격을 보는 순간, 음... 마감이 괜찮은데? 로 바뀌는게 사람이었다.



날짜는 정해졌고, 가방만 사면 된다.


우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뒤졌다.


정보 없다.


생각해보면 이미 샤넬백을 선물받거나 샤넬백을 산 사람들은, 그걸 어케 샀는지 적어놓을리가 없었다.


요리조리 앞뒤좌우 외제차 엠블럼이 살짝 보이게끔 사진 찍어놓고 #선물 #사랑해 이따위 태그만 달기에 급급했다.


인터넷정보검색사 1급 필기시험 합격자인 내가 처음으로 인터넷 검색으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망할!!!



여성여성스러운 동료들에게 물어봐도, 이들도 주변 언니들에게 들은 얘기가 전부였다. 샤넬백을 사기에 이들은 아직 어렸다.


회사에 샤넬백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았으나, 직접 산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열심히도 알아봤다.


아... 캐비어라는게 가죽 종류구나.. 아.. 이게 금장이구나.. 아.. 이게 클래식이구나.. 아.. 이게 보이백이구나... 



그러던중 맘에 드는 백을 발견했다.


코코핸들 이라는 모델이었다.


처음에는 손잡이 부분이 도마뱀 가죽으로 되어 있던게 마음에 들었는데, 그건 부산에만 있단다... 망할. 미친. 센텀시티.


하지만 그렇게 포인트 들어간걸 좋아하는건 순전히 내 취향이다.



그래서 그냥 검정색 코코핸들을 사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언제 또 사줄지도 모르는데 검은색이 제일 좋겠지.


샤넬 고객센터에 전화걸어서 물어봤다.


'내일 코코핸들 살건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네 고객님.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아.. 고객님. 죄송하지만 현재 재고가 없습니다.'


?? 응? 왜요? 내가 내돈 주고 사겠다는데 왜 물건이 없죠? 왜죠?



미친 샤넬은 가격만 배짱이 아니었다.


상술도 배짱이었다.


샤넬은 매주 화요일인가. 언제만 물건이 들어오고, 아까 얘기한것처럼 1~2개밖에 없어서 인기모델은 99% 확률로 진열상품이고,


클래식이랑 몇개의 모델을 제외하고는 예약도 안 된단다.


홈페이지에도 없다.


매일 저녁 7시인가 6시인가, 샤넬 고객센터로 전화해서 내일 물건 들어오는지 물어보는 수밖에 없단다.


뭐 이딴 거지 같은 시스템이...


라고 욕하기에는 너무나도 갖고 싶어졌다.



사람 마음 간사하더라.


처음에는 10만원 주고도 안살거라 생각한 그 가방 하나가,


지금 와서는 중고나라에 백화점 가격 + 10만원으로 올려놔도 바로 사버릴것처럼 바뀌어버렸다.



그렇게 2~3일쯤 전화했을 무렵,


상담사가 말했다.


'아 고객님. 코코핸들 내일 명동 롯데 본점에 1개 들어오네요.'


당연히 예약이고 뭐 선점이고 그딴건 없었다. 백화점 문 열자마자 경비아저씨가 사가버리면 없어지는 시스템이었다.



바로 다음날 휴가를 썼다.


그리고 백화점에 달려갔다.


그리고 물건을 봤다.


지쟈쓰. 근데 내가 원하던 카프스킨이 아니었다. 카프스킨이라 하면 샤넬백하면 처음 떠오르는 그 마름모꼴 모양의 패턴이다.


쉐브론이라고 하는,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뭔가 중고품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제품이었다.


그래도 한개밖에 없는 명품백인데 제일 무난한게 사고 싶었던 나는 카프스킨 카프스킨 거렸더니,


진심. 차은우보다 잘생긴 매장 직원이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고객님. 카프스킨은 블라블라 이건 쉐브론 어쩌고 저쩌고 뭐 이건 빈티지 어쩌고 요즘 카프스킨은 중년여성들이나 쓰시지 젊은 분들은 블라블라.


아... 매력에 빠져든다.


남자가 이렇게 잘생길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에 나의 뇌회로는 정지했고, 그냥 예예 그렇죠. 이렇게 생기신분이 말씀하시면 그냥 그런거죠.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바로 말했다.


'잠깐 상품권 좀 사올게요. 기다려주세요'


돌아온 답변은,


'고객님. 죄송한데 저희가 예약은 안되고 만약 다녀오시는 동안 다른 분이 오셔서 사가실수도 있습니다.'


녜이녜이. 어련하시겄습니까. 이미 샤넬의 고고함은 익숙해져있었다. 그럼요. 그렇시겄죠. 아주 대단하십니다. 예. 만수무강하세요.



포장하는데도 한참 걸렸던거 같다.


마실거를 갖다준다길래 암거나 달라 그랬더니, 넵킨에 쌓인 페리에를 갖다 줘서 감격 받은 기억이 난다.


와... 믹스커피도 아닌 페리에를 넵킨에 싸서 주시다니... 넙죽넙죽.



앉아있기 뻘쭘해서, 일어서서 이것저것 구경하는데 엄청 친절하게 다 설명해주신다. 역시 이래서 돈이 좋은가보다.


여하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샤넬백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건, 에비뉴엘에서 물건을 사면 주차비도 무료인데다가 발렛파킹도 알아서 해주시더라. 


역시 돈이 체고시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마지막편은 다음으로 넘겨야겠다.



만난지 26일째 되던 날, 인도의 신혼여행지 우다이뿌르에서 찍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진짜 마지막편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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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g2018.08.15 22:46

글이 너무 길어서 나눠 써야겠다.



주식으로 어떻게 돈 벌었는지부터 좀 더 자세히 쓰자면...


처음에 산 주식은 현대중공업이었다.


뭔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쯤 뭐 해운업이 망해가고 현대상선도 망하고 뭐 그런 뉴스가 계속 뜨고 있었다.


근데 정부에서 한개 회사만 밀어준다? 뭐 그런 류의 뉴스를 보게 되었고,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인가? 뭐 그 세개중에 그나마 제일 나아보인게 현대중공업이었다.


순전히 추측이었다.


그래서 난 현대중공업을 샀고, 결과는 맞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짓인듯. 뭔지도 모르고 한달 월급을 갖다 박다니...


그 회사는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살아나기 시작했고 주식도 계속해서 올라갔다.



어느정도 올라갔을때쯤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담당하는 업무 중 하나가 컴퓨터 서버 구매요청을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외부 업체에서 서버를 팔기 위해서 자주 설명회를 갖곤 하는데...


그때쯤 설명회를 갖던 업체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근데 요즘 전세계적으로 메모리가 너무 부족해서, 한달 이상은 기다리셔야 할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업체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삼성전자는 휴대폰이 터져도 상관 없어요. 지금 메모리가 너무 잘 나가서...'



뭐 여하튼 저 얘기를 듣고 삼성전자를 찾아봤으나, 더럽게 비쌌다. 내 기억으로 100만원 초중반대? 뭐 그랬던거 같은데, (그때 샀으면 지금 2배는 됐을텐데...)


그 가격은 너무 비싸보여서, 꿩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SK하이닉스를 샀었다.


어차피 둘다 메모리 만드는 회사지만,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매출비중이 더 높아서 주가에 반영이 더 잘될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 예상은 적중했다.


SK하이닉스는 그 당시에도 꽤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지만, 내가 산 이후로도 쭉쭉 잘만 올랐다.


그러다 너무 무섭게 오르길래 쫄아버린 나는 그만 팔아버리고 만다... (이것도 걍 넵뒀으면 2배는 올랐을듯)



그리고 한달정도? 아무것도 안사고 CMA로 굴리고 있었는데,


팔아버린게 너무나도 배가 아플정도로 SK하이닉스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사자니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들어서 싫었다. (전형적인 주식으로 돈 못 버는 사람의 특징, 이때 샀어도 훨씬 더 많이 벌었을듯.ㅎ)


삼성전자도 이미 많이 올랐고, SK하이닉스는 더 오를것 같았으나 한번 판거 다시 사기는 싫고...


그래서 찾아낸게 두개의 회사에 메모리 제조관련된 기계를 납품하는 원익IPS 라는 회사였다.



기존에 산것처럼 큰 회사가 아니라 좀 무섭긴 했으나, 서버를 살때마다 메모리가 없다는 말을 들어 업무상으로도 빡친 나는 그냥 원익IPS를 샀고, 


결국은 꽤 많이 올랐다.



이게 내가 1~2년간 주식을 한 전부다.


물론 중간중간에 다른 자잘한 것들도 사고팔고, 아침에 샀다가 저녁에 팔기도 하고, CMA통장으로 옮겼다가 뺐다가 아주 그냥 1원이라도 더 모으려고 열심히도 했다.


난 내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도 모르고, 보험료로 뭐가 빠져나가는지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매달 빠져나가는 멜론도 몇개월이 지나서야 깨닫는 그런 수준의 경제관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


저렇게 CMA개설하고 뭐 옮기고 주식사고 팔고 이리저리 컨트롤하는게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였다.


이 짓을 하면서 역시 돈 버는건 내 영역이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응????


여하튼 그렇게 원익IPS로 꽤 재미를 보고 있을때쯤....


2017년 9월 17일이 다가왔다.


우리가 만난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결혼기념일보다, 우리의 생일보다 더 중요한 날이었다.


생일이야 뭐 부모님들이 알아서 잘 낳아주신 날이고,


결혼이야 뭐 만나다보니 적당한 날에 한것뿐이라는 생각이라,


우리가 우연찮게 만남을 시작한 9월 17일이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날이었다.


가장 소중한 날은 2007년의 9월 17일이겠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후였으므로,


그 다음으로 소중한 날은 10년이 되는 2017년의 9월 17일이었다.




만난지 1일째 되던 날, 아직 서로의 이름도 모르던 그때. 처음으로 찍은 진희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다음 편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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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맛깔나게 끊어주시네요 ㅎㅎ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2018.08.16 22: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Mung2018.08.10 22:02

2007년 9월 17일.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됐던 날들의 중반을 지나가는 날짜.



아주 어릴적부터 큰아찌를 인생의 롤모델로 삼긴 했으나, 내 의지와 노력은 롤모델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내 10대와 20대 초반.


별 의지도, 목적도 없이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만을 허비하며 보내온 나의 학창시절의 마지막은,


1점대의 학점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런 미래도 꿈꾸지 않고 있는 나약한 내 모습이었다.



어찌보면 도피처로 삼은,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운이 좋았던 나의 영국행.


영국에서의 3개월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영국을 발판 삼아 다음단계로 나아갔던 곳.


2007년 9월 14일. 인도 뉴델리 공항.



2년의 군생활보다 더 많은 시행착오와 감정의 기복과 내가 이런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나도 모르던 나를 발견한 2일의 시간.


2일간의 멘붕을 벗어나고자 즉흥적으로 결정한 북인도행.


그리고 우연과 우연의 거듭 끝에 탑승한 2007년 9월 17일. 다람살라를 지나가고 있던 버스.


거기서 나는 진희의 발가락과 첫 조우를 하게 된다.



한국분이세요? 라는 첫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는 거의 2달동안 같이 여행을 했다.


그리고 진희는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나는 만난지 100일 기념선물인 한국행 비행기표를 들고, 2007년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진희와 한국에서의 연을 이어가게 된다.



나보다 100점은 높은 수능점수를 갖고 있는 진희는 말 그대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즐기고 있었다.


안정된 직장. 높은 연봉. 확실한 미래. 끊임없는 자기계발. 


그에 반해 나의 위치는,


자퇴가 나을것 같은 학점. 불안한 수준을 넘어선 절망이 확실해 보이는 미래. 점점 무력해지고 있는 하루하루.



학교에 다시 복학하고 나서 했던 생각은 항상 똑같았다.


저 사람에 걸맞는 사람이 되자.


내가 대학교수가 될게 아니라면, 최소한 S대기업정도는 다니자. 그래야지 어디가서 레벨 좀 맞다고 하겠지.



나 스스로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수 있는 3년간의 대학생활이었지만,


사실 그걸 가능하게 해 준건 진희였다.


X축, Y축도 분간 못하는 멍청한 놀자공대생을 옆에 두고 수학, 물리, 영어를 열심히 가르쳐준게 진희였다.


데이트를 하기 위해 이태원에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PC방에 가서 나는 게임을 하고, 옆자리에서 나 대신 영어로 된 대학물리학 과제를 열심히 풀고 설명해준게 진희였다.


허구헌날 숙취에 시달리고 열악한 자취밥 먹다가 골병이 든 나를 위해,


이브프로펜과 지금은 판매중지 당한 코싹을 추천해준 것도 진희였다.


지금은 아프리카에서도 쓰지 않을것 같은 가방을 들고, 머리 깎는게 귀찮다고 삭발을 하고 다니고,


옷 고르는 것도 귀찮아서 콜롬비아에서 선물받은 관광객용 티셔츠와 인도에서 입던 옷을 입고 다니는 나를 위해,


가방이며 신발이며 옷이며 시계며 온갖 것들을 선물해준게 진희였다.


늦잠 자는 나를 깨우기 위해 50번씩 전화를 하고, 학교는 가고 있냐 공부는 하고 있냐 니가 지금 제정신이냐 등등


엄마도 하지 않는 잔소리를 해주던게 진희였다.


자소서는 물론 영어로 된 Resume까지 하나씩 첨삭해주던것도 진희였다.



그렇게 3년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마른자리 진자리 어르고 달래고 우쭈쭈 우쭈쭈 오냐오냐 화내고 때리고 하면서 사람답게 만들어준게 진희였다.



그렇게 3년간 각고의 고생 끝에.


난 S대기업은 물론 수많은 기업들을 골라서 취업할 수 있는 초특급 인재가 되었으나, 여전히 빈곤했다.


이미 모든 축의금을 다 뿌려서 받을 일만 남은 진희에 반해, 난 내가 제일 먼저 결혼해서 받은 축의금을 뿌릴 일만 남았었고,


만기가 된 적금은 물론 보험까지 갖고 있던 진희에 반해, 난 이제 갓 겨우 초회보험료를 내는 새내기 회사원이었고,


자차를 끌고 팔공산을 누비며 면허 갱신까지 한 진희에 반해, 난 여전히 아빠차를 몰래 타는 수준이었다.



금액이 중요하진 않지만, 프로포즈 한다고 고른 선물이 10만원짜리 목걸이 귀걸이 셋트였고,

결혼반지도 우리가 끼고 있던 커플링을 녹이고, 난 예약금 3만원만 냈을뿐, 나머진 전부 진희가 냈었다.

제주도로 간 신혼여행도 진희가 다 알아보고 계산하고 나는 그냥 몸만 갔고, (그것마저도 독감이 걸려서 빌빌 거리다 돌아왔지.)

세계일주마저도.... 명목상으로는 반반 부담한 거지만, 그렇게 따지면 난 세계일주 절반의 비용 말고는 그냥 몸만 들고 결혼한 수준이다.


근 10년간의 사회생활동안 쓸데없는 곳에 돈 안 쓰고, 아끼고 아껴가며 적금 들고 예금 들고 보험 들고 하면서 모은 돈을,

나는 그냥 결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제공동체라는 명목 하에 맘대로 누리고 살았다.

반대의 상황이었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은데 진희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2년? 쯤 전일것 같다.

말도 안되게 올라가는 전세값을 보며 집 없는 서러움을 토해내는 진희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돈을 벌자.

나는 언제나 물질적으로 자유로웠다. 살아오면서도 그랬지만 특히 결혼하고 나서는 단 한번도 내가 물질적으로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둘중 한명이 니나노거리면서 풍악이나 즐기면서 난 물질에서부터 프리한 사람이라고 누워있으면,

나머지 한명이 죽을둥 살둥 올라가는 전세값 매꾸고, 기름값 들이붓고, 기저귀값 걱정해야 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근데 난 그냥 내가 자유로우니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우리 모두 자유로울거라 생각했다.

나는 물 위에 고고하게 떠있는 백조머리였고, 진희는 그 백조머리를 띄우기 위해 발버둥 치는 물갈퀴였다.


그런 진희를 보며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근데 내가 뭐 특별한 재주가 있는것도 아니고, 밤에 대리운전을 뛸만큼 체력이 뛰어나지도 않았으므로,

그냥 손 쉽게 주식에 손을 댔다.


그냥 들으면 아무 생각 없이 주식한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나름 수많은 고민과 전략과 기준을 정해놓고 시작했다.

지금 주식한지 거의 15년이 되어가긴 하지만, 취미처럼 적은 돈만 하다보니 크게 번 적도 없고 크게 잃은 적도 없다.

위에 말한것처럼 물질적인것에 관심을 별로 안 가지다보니 사실 아직도 주식에 대해 잘 모른다. 사고 팔줄만 알뿐.


여하튼 그렇게 주식을 시작했다.

내 전략은 이거였다.

우선 월급이 들어오면, 주식 하나에 몰빵을 한다. 그리고 30만원 (내가 커피를 줄여서라도 몰래 매꿀수 있는 한계선이라고 생각했다.) 이상 손해가 나면 즉시 팔고 다시는 주식을 안한다.

만약 이익이 난다면, 진희가 돈 달라고 할때 바로 다 팔고 진희에게 생활비를 보내준다.

그리고 그 이익 이상 손실이 나면 즉시 팔고 다시는 주식을 안한다.

이런 식이라면, 첫달에 이익이 난다면, 그 이후로는 절대 손해가 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아.. 참고로 나는 생활비가 따로 정해진건 아니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대로 다 쓰고 남는 돈을 진희에게 다 주고 있었다.

태생이 거렁뱅이라 쓰고 싶은대로 다 쓴다고 한들 평균 회사원보다는 조금 쓰는거 같다.


여하튼... 그렇게 계속 반복한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집을 살수 있겠지.

내 처음 목표는 집을 사서 깜짝선물로 주는거였다.

한 10억쯤 벌면 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식은 내 맘대로 되는게 아니었으나, 절반정도는 내 마음대로 됐다.

처음에 산 주식이 우연찮게 급등해버렸고... 몇번 반복하다가 다른 종목으로 갈아탔는데, 그것도 급등을 해버렸다...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급등을 반복했다.

첫번째 주식은 순전히 운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거의 내 생각과 들이맞았다. 

(간이 작은데다 경제적인 지식이 전무해서 너무 일찍 팔아버린게 후회되긴 하지만, 뭐 어쩔수 없지)


여하튼 그렇게 나는 혹시 주식의 신이 아닐까. 난 컴퓨터 말고 주식을 해야되는거 아닐까 라는 허황된 생각을 할때쯤.

2017년 9월 17일이 다가왔다.

우리가 만난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만난지 14일째 되던 날, 인도 빠하르간지에서 찍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다음 편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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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iland_182018.08.04 14:38

1. 호텔에서 체크아웃 할때 가장 부러운 사람은 체크인하는 사람.

2. 태국에서 출국할때 가장 부러운 사람은 입국하는 사람.

3. 한국에 입국할때 가장 부러운 사람은 출국하는 사람.

4. 앞으로 다시는 중국 경유하는 항공편은 안 타야지.

5. 첫 택시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쓴 모든 것들이 엄청난 바가지였다는 것을 마지막날 터미널21 5층에서 깨달음.

안녕. 즐거웠던 일주일. 다음에 또 보자.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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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lee

    돌아오셨군뇨!

    2018.08.06 18: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Thailand_182018.08.03 02:16

바로 시작.

1. 역시 외쿡 숙소에서는 수영이 제맛. 1시간동안 시도한 끝에 20미터인지 25미터인지 되는 거리를 잠수로 갔다. 아직 안 죽은듯.

2. 어영부영 하다가 마지막밤을 맞이하는 날이 됐다. 코끼리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결국 코끼리코 대신 비행기코를 볼것 같다.

3. 출국전엔 로컬음식만 외치던 친구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태국온지 5일만에 먹은 삼겹살과 소주는 맛나더라.

4. 죽기 전에 또 다시 이렇게 친구와 단둘이 해외여행 올 기회가 있을까싶다. 없겠지. 많은걸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고 돌아간다. 인도여행할때 항상 되뇌이던 그말. 셋이서 여행하면 똑같은걸 먹어도 3개의 음식을 먹는것과 같고, 똑같은걸 봐도 3개의 시야로 볼수 있다.

5. 명수야. 너도 이제 곧 외국에서 일할수 있어. 라는 선배의 말에, ?? 전 외국 나갈 생각이 없는데요. 저에겐 별 매리트 없는 말씀인거 같은데. 라고 말한 지난날의 나를 죽이고 싶다. 외국 나가고 싶습니다. 잊고 살았습니다. 전 외국의 공기가 좋아요.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은. 카오산거리를 직접 밟아봤다는건거 같다. 내 안에 잔존한 수많은 열등감중 큰걸 하나 없앤 기분이다.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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