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3. 8. 1. 00:26

20년쯤 전, 생각해보면 정말 20년쯤 전, 군대에 있을때의 이야기다. DP 2를 보다가 문득 생각났다.

원래 나는 통신병으로 군대를 갔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군수병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1종계원이라고 불리는, 부대 내의 식료품 보급을 담당하는 보직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인가.. 2주일에 한번인가 커다란 트럭을 타고, 뭔가 노량시장처럼 생긴 보급대? 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 가서 식료품을 받아왔다.

공병대, 기동대, 헌병대, 의무대, 통신대에서 한번씩 돌아가면서 식료품을 받아와서 나머지 부대에 정해진대로 배분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어느날이었다.
내가 식료품을 배급하는 날이었고, 나는 언제나처럼 기동대 아저씨가 운전하는 트럭에 타서 보급대에 가서 식료품을 받아왔다.
그리고는 부대로 돌아와서는 정해진대로 배급을 시작했다.

이 배급은 단순하면서도 어려웠다. 우유처럼 개수로 배급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제일 큰 문제는
kg으로 나뉘어진 것이었다. 각 부대에 정해진 양은 2.34kg, 4.31kg처럼 나누기 애매한 양이었고, 패킹되어진 양은 2kg, 10kg같은 단위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대충 눈대중으로 나눠서 배급하고 있었다. 4kg니까 10kg짜리 박스를 반으로 나눠서 대충 조금 떼고 주면 되겠지… 이런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마음이 푸근했던 모양이다.
앞에서부터 조금씩 양을 많이 주었는지… 4-5개의 부대를 돌고나니 명태살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헌병대와 내 부대인 통신대였다.

헌병대에 가서 얼마 남지 않은 명태살을 나눠주다보니 헌병대 병장 아저씨가 나한테 화를 냈다. 이등병이었던 나는 너무 무서웠다.
‘아니, 아저씨. 이거 누구 먹으라고 줘요. 나는 모르겠고 명태살 제대로 가져와요.’

나는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지금까지 나눠준 명태살을 다 다시 가져와서 나눠줘야되나… 그러면 또 운전해주는 기동대 아저씨가 욕할거 같은데…

나는 우선 급한대로 내 부대인 통신대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통신대 취사병한테 식료품을 나눠주는데, 우리부대 취사병도 나한테 똑같은 말을 했다.

‘야, 1종 계원. 이게 무슨 4kg야. 다 어쨌어?’

나는 어쩔줄 몰라 하다가, 솔직하게 얘기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이 나눠줘서 명태살이 모자르다. 그래서 지금 헌병대에는 하나도 못 나눠주고 돌아온 길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 얘기를 들은 취사병의 제일 고참이 나한테 말했다.

‘야 1종계원, 우린 이거 필요 없으니까 이거 다 헌병대 갖다주고, 모자른건 이 대구살 갖다줘.’

‘아… 근데 헌병대에서 꼭 명태살로 가져오라 그랬습니다…’

‘야 1종 계원, 하 헌병대 누가 그래? 그새X 데려와. 눈감고 명태살이랑 대구살 쳐먹어보고 구분할수 있으면 내가 대가리 박을게.‘

난 그대로 냉동 대구살을 들고 헌병대로 가서 명태살 대신 대구살을 나눠줬다.

역시나 헌병대 취사병은 나한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아저씨. 이건 대구살이고요. 명태살 가져오라고요.’

그래서 나는 우리 취사병한테 배운대로 말을 했다.
‘아저씨, 명태살이랑 대구살이랑 똑같아요. 눈 감고 차이 맞추면 내가 갖다줄게요.’

예상치 못한 나의 반응에 헌병대 취사병은 움찔하고는 욕을 욕을 하면서 대구살을 받아갔다.

그렇게 그날의 소동이 끝나고 부대로 돌아온 나는 취사병에게로 가서 물어봤다.
‘감사합니다 서명원 병장님. 그런데 저희 이제 명태살도 없고, 그나마 있던 대구살도 헌병대 줘버려서 어떡합니까. 저희 식단 어떡합니까?‘

그러자 취사병이 말했다.
‘야 1종계원, 지랄하지 말고 꺼져. 내가 알아서 할거야’
군대라는 곳이 너도나도 욕을 달고 다니는 곳이긴 했지만, 취사병 왕고는 더 욕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랄하지 말고는 그분의 시그니쳐였다.

여하튼 그렇게 우리는 그날 저녁 대구탕 대신 계란국을 먹었고, 아무일 없는 듯이 지나갔다.

이 일은 20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히 내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 20년이 지나서도 계속 내 기억에 남을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