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와서 대부분의 여행일정을 트래킹으로 채운 바람에,


더 이상의 트래킹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날씨가 너무 추워서 세계 3대 트래킹 코스 중 하나라는 토레스 델 파이네도 못 가는데,


다른 트래킹이 뭔 필요냐 싶기도 했다.


그래서 등반을 했다.


등산 말고 등반.





진희와 나, 그리고 와라즈에서 69호수를 같이 갔던 동생분 한분과, 다른 여성분 한분.


이렇게 4명이서 와이나 포토시에 도전했다.


보통 2박3일 코스를 하는데, 우리는 시간도 아깝고 그냥 정상만 찍으면 장땡이라는 생각으로 1박2일로 신청했다.


해발 6088m. 6천미터급 고산의 정상.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높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 가이드의 집에서 장비들을 실었다.


6천미터급 고산에 갈때 필요한 장비들을 나열해 보자면,


우선 가이드가 제공해주는 것들,


아이스 피커, 고산용 등산화(보드화처럼 생김), 등산복 위아래 셋트, 등산바지랑 신발 연결 부분에 덮는 덮개,


아이젠, 겨울용 침낭, 등산용 장갑, 헤드랜턴, 자일 묶을수 있는 허리끈.... 이 정도 되겠다.


내가 챙긴 것들,


초코바 6개, 코카차 2리터(고산병엔 코카차가 좋다고 해서...), 소로체 1알(고산병 약), 남자 타이즈 1개,


장갑, 양말 3켤레, 히트텍 2개, 긴팔티 1개, 바지 1개, 트래킹화, 모자, 목토시, 선글라스


근데 중요한건 이거 전부 본인이 짊어지고 가야된다. 자기껀 자기가 챙겨야 된다.


등산장비가 그렇게 무거운지 난생 처음 알았다.





해발 6088이라고 너무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시작은 4800정도부터 시작이다. 다시 말해서 1200미터정도밖에 안 올라가는 셈이다.


1일차에는 4800부터 5200까지. 


2일차에는 5200부터 6088까지.


이렇게 올라간다. 1일차에는 3시간, 2일차에는 6시간정도 등산하는데... 이게 가능한건가?


이 짧은 시간동안 이 높이를 어케 올라갈까?


답은, 무조건 오르막. 그것도 급경사. 거의 산을 일자로 올라간다고 보면 된다.





빨간 옷 입은 가이드 아저씨가 내리는게 우리의 장비들이다.


히말라야와는 다르게 포터 같은 개념이 없어서, 자기 짐은 전부 자기가 지고 올라간다.


1일차에 3시간동안 모든 짐을 짊어지고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가고,


2일차에는 베이스캠프에 짐을 두고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정상까지 올라간다.


1일차 가볍게 생각하면 안된다. 꽤나 힘들다.





짐을 다 넣으면 가방이 저렇게 된다.


특히 아이스피커 라고 부르는 그 얼음 찍는 지팡이랑... 아이젠 그리고 신발이 무거웠다.


지금 이 사진상으로는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는 웃고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저것도 정상이 아닌걸로 기억한다.


저 너머에 더 솟아오른 봉우리가 하나 더 있었다.


모두 짐을 가지고 사진으로 보면 설산 바로 아래 있는 검은산.. 그 꼭대기까지 간다.


안나푸르나 ABC가 4130m정도 되는데... 그때 느꼈던 건 고산병이 아니었나 보다.


와이나 포토시는 시작부터 숨이 찬다.





보이는건 구름이다.


구름이 발밑에 있다. 고산지대답게 오전만 날씨가 좋고 오후는 급격히 나빠지므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정도까지... 3시간만에 베이스캠프로 간다.


꽤 많은 외국인들이 와이나 포토시에 도전하고 있었다.





구름이 걷혔을때 찍은 사진인데, 상당히 예쁘다.


올라갈때 너무 힘들어서 헥헥 댔는데.... 전통복장을 입은 아주머님 한분이 날라서 내려가고 계셨다.


그거 보고 창피해서 헥헥 거리던 숨을 거두고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늘 새벽에 정상에 올라갔다온 외국인들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한마디만 남기고 갔다.


"여기는 시작지점입니다."





저기 산 꼭대기에 보이는 집이 베이스캠프에 딸린 화장실이다.


오른쪽 진희의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급급급급경사다.


길도 제대로 안 나있고, 그냥 대충 보이는 돌 밟고 마구마구 올라갔다.


1일차에 가이드가 대충 보고 팀을 나눠준다.


2인당 가이드가 1명씩 붙기 때문에, 정상까지 갈것 같은 사람들 or 못 갈거 같은 사람들. 이렇게 팀을 나눈다.


중간에 못 가겠다 그러면 가이드 한명이 데리고 내려오고 나머지 가이드가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정상을 간다.





여기가 베이스캠프다. 정말 아담한 베이스캠프가 아닐수 없다.


안에 있는 시설 또한 매우 아담하다.


그리고 물이 안 나온다. 양치질도 못한다. 그냥 수도꼭지 자체가 없음.


뭐 이쯤까지 가면 양치질 하고 싶은 생각도 안 들고 빨리 자고 싶기만 하다.





베이스캠프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방명록을 남겨놨는데,


우리도 하나 적어놨다... 이거 쓸때만 해도 별거 아닌줄 알았다.


그냥 여기 써있는 모든 글들이 매우 힘들었다. 좋았다. 이런거길래 다 가는줄 알았다.





점심을 먹고나니 날씨가 급격히 나빠졌다.


구름인지 뭔가가 끼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오후 6시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왜냐면 2일차는 밤 12시부터 시작해서 정상에서 아침해를 보는 일정이기 때문에.ㅎㅎㅎ


다시 말해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밤길을 랜턴 하나 끼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일정이다.





말이 베이스캠프지... 그냥 난민 소굴이었다.


난방 따위는 커녕 외풍도 심해서 너무너무 추웠다.


겨울용 애벌레 침낭을 덮고 잤는데도 추워서, 바지 3개 + 윗옷 5개 + 양말 3개 + 장갑 + 모자 + 목토시까지 하고 잤다.




내가 와이나 포토시에 가고자 했던 이유는 단 하나.


예전에 누군가 안나푸르나 ABC 그거 아무나 걸어올라가는거 뭐 대단하냐고 그래서,


이번에는 아무나 못 올라가는 6천미터급에 올라가기로 했다.


진정 이유는 그거 하나뿐이었음.


만약 이것도 별거 아니라고 하면 에베레스트 정상을 찍고 오는 수밖에.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