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_12_13/40-Egypt2013. 10. 27. 10:57

이날도 사진이 없다.


진희의 일기장을 토대로 대충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아침에 일어났는데 할일이 없어서, 사랑방이라고 할수 있는 다이빙샵 도미토리로 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이제 교육도 다 끝나서 학생신분도 아닌데, 뭐 문 열어달라 말라 할 처지도 아니라서,


그냥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코샤리라는 이집트음식 하나 사들고, 숙소에 와서 라면 끓여서 같이 먹었다.


허나,


먹고나니 급속도로 속이 안 좋아지고, 체한것처럼 머리도 아프고 그래서,


나는 바로 취침.



그동안 진희는 그간 밀린 가계부를 정리하고, 다음 여행지를 열심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처음 진희랑 만났을때 일이 기억난다.


그 당시에 진희는 그의 친구 장옥빈여사와 둘이 여행중이었고, 난 어쩌다보니 그 사이에 껴서 3명이서 같이 여행을 하게 됐다.


그때 난 콜라한병에 2천원씩 하는 런던에서, 콜라한병에 200원밖에 안하는 인도로 넘어와서 그런지,


돈에 대한 관념이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런던에서 너무 아둥바둥 살아서 그런지, 인도에서는 그냥 펑펑 쓰고 싶었다.



그래서 가계부의 ㄱ자도 꺼내지 않고 있었는데,


진희랑 장옥빈 여사는 매일 밤이 되면 모든 돈을 다 꺼내서 하나씩 다 세보고, 가계부를 맞춰가며,


서로에게 빌린 돈 계산과 앞으로 쓸돈 계산 등등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걸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 이 아줌마들 돈도 많으면서 뭐 이리 10원 20원에 목숨 걸고 저러나.


싶었는데,


요즘엔 좀 좋다. 가계부 잘 써서 좋음.


나보고 쓰라고 하면 귀찮아서 안 쓸텐데, 내가 막 쓴것까지도 알아서 기억했다가 가계부로 정리해주니 참 좋다.


좋음. 결혼하면 이런게 좋음.


어제도 술마시고 들어왔다고, 오늘 콩나물김치국? 뭐 그런거 끓여줬음.ㅋㅋㅋ


부러우면 지는거임.


다른 좋은 점도 쓰고 싶은데 공간이 부족해서 쓰지 않겠음.



여하튼 그렇게 하루종일 잠만 쳐자다가, 저녁에 진희가 깨워서 일어났다.


난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잠은 참 잘 잔다.



저번에 처갓집 갔는데, 전날 자서 저녁 6시에 일어났다.


허허..... 뻘줌하더만.


마루로 나가서 장인어른께 뭐라고 인사해야 되는지 한참 고민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저녁 6신데?...


좋은 저녁입니다?.... 괜찮을까?...


어이쿠... 아침은 드셨어요?.... 당연히 드셨겠지?....


여하튼 그랬다고.



밤에 대충 장을 봐서 도미토리로 모였다.


우리는 남미에서 스킬 만렙을 찍은 리조또를 만들어주기로 했고,


프랑스에서 유학중인 잘생긴 청년은 까르보나라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신나게 지지고 볶고 삶고 하고 있는데 강사님이 우리를 부르신다.



흠...


참 오래 고민하고 신중하게 고민했다.


이집트 다합에 남아서 DMT를 따는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어찌보면 인생을 바꿀수도 있는 큰 갈림길이었다.



내가 무슨 프로 스쿠버다이버가 되겠다는건 아니었다.


그저...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고, 그것을 찾아내기까지... 그리고 그것을 하기까지 필요한 돈과 시간을 벌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DMT를 따고, 강사를 따서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배낭여행자에서 생활여행자로 바뀌는 큰 결정이었다.



지금 내 상황에서 저런 제안이 들어왔다면, 뭔 소리임? 이라면서 그냥 넘어갔겠지만,


저때의 나는 꽤나 심각했다.


진희와 함께 오랜시간동안 다합에 머물면서 다른 일을 해볼까 하는 고민도 했었고...


이 상태로 영국으로 가서 어학공부를 더 해볼까...


아니면 남아공으로 가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볼까...


아니면 뭔가... 더 오랫동안 여행을 할까.... 


많은 얘기를 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


도망치지 말자.



강사님께 정중히 말씀 드렸다. 


제안은 참 고맙고, 이렇게 인정해주는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은 건 알지만...


우린 한국에 가야될거 같다.


처음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했던 약속. 절대로 도망치지 말자.


우린 지옥같은 아침 8시 2호선 대신 도피처로 여행을 택한게 아니다.


그러니까 도망치지 말자.



그 얘기를 들은 후 강사님은 우리에게 책 한권을 선물해주셨다.


책의 앞장에는 우리의 결정을 예상하셨다는듯이,


앞으로 남은 여행을 잘 하라고 격려의 말씀까지 써주셨다.


(꽤 비싼 책임. 지금은 우리의 인테리어를 위해 책장에 꽂혀있음.ㅋ)



만약 저때 우리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쯤 뭘하고 있었을까...


이상하게 저곳의 테이블과 지금 집에 있는 테이블이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저곳 생각이 많이 든다.




강사님이 우리에게 DMT를 권유하고 같이 있자고 하신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거다.


강사님의 의중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우리가 자유로워 보였고... 물질적 욕심이 별로 없어 보였으며,


나이도 적절해서 어린친구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랑도 잘 어울릴수 있는 나이였고...


뭔가 이것저것 마음에 드셨으니 같이 있어보자고 하신거 같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우리 두명이 DMT를 하고 강사를 하게 되면, 물질적인 이익도 크겠지.



하지만 난 강사님의 실제 생각이 어떻든 간에,


우리를 좋게 봐주셔서 같이 있자고 하신거라 믿고 있다.


실제로는 우리를 돈으로 생각해서 감언이설로 DMT를 추천한거라고 하신다 할지라도,


난 그냥 우리를 좋게 봐주셨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상관 없다.


내가 판단했을때 저 사람이 날 좋게 본거라면, 좋게 본게 되는거고,


저 사람이 날 나쁘게 본다고 판단되면 나쁘게 본게 되는거다.



이건 회사에서도 꽤 쓸만한 사고방식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뭐라고 말할때,


'아오 슈발.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그렇게 싫은가?' 라고 생각해버리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거다.


근데,


'나를 진짜 제대로 한번 키우실라나 보다. 뭔가 내가 메인인가보다. 이렇게까지 관리해주시는걸 보면...'


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거다.



재밌게 살고, 즐겁게 살고, 스트레스 안 받고 살고 싶다.


예전에는 막연이 그냥 저렇게 살고 싶다.... 정도의 생각에서 그쳤는데,


요즘에는 그 방법을 조금씩 알거 같고, 점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