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꿈 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두번째 날이 밝아왔다.


너무나 떠나기 싫어서 잠들기도 싫을 정도였는데,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놔도 돌아간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였다.


아침에 내려가서 물어보니, 10시쯤 떠날 예정이니 10분전까지 짐 싸서 내려오란다.


엉엉. 님아 어떻게 하룻밤만 더 안되나요. 제발염.


하지만 라데항공사에 자비 따윈 없었다. 출발한댄다.





칼라파테 시내의 모습은 예전과 다름 없이 화창했다.


후지민박 아저씨께 제대로 인사를 못 드리고 와서, 다시 한번 찾아가서 인사 드릴까 생각했었는데...


후지민박은 너무 멀리 있었다...;;;


그냥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숙소 주변만 잠시 산책하고 오기로 하고 숙소를 떠났다.





우수아이아보다는 북쪽에 있다 그래도, 칼라파테는 여전히 추웠다.


두걸음 걸을때마다 한번씩 기침을 했다.


비수기라 그런지 여전히 문 닫은 가계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냥 슈퍼에서 가서 물만 사오고 되돌아와서, 짐을 싸려고 하는 순간!!


그 순간!!!


진심은 통한다고 누가 말했던가. 호텔직원이 비행기가 오후 4시로 늦춰졌다고 점심 먹고 가란다.


사랑해요 라데항공.





진심 행복해 보이는 노숙자의 모습이다.


무료급식이 이거보다 행복할까...


아침 먹을때 최후의 만찬이라고 생각하고 미친듯이 집어먹어 속이 좀 안 좋긴 했지만,


그래도 공짜 점심이라 마냥 기뻤다.


얼마나 기뻤으면 저런 내복 차림으로 호텔 식당에 가서 밥을 쳐먹었을까... 


남들이 보면 정말 없어보였겠지. 중국 시골에서 처음 해외 나온 사람처럼 보였을꺼야.





스페인어로 된걸 읽어봐도, 영어로 된걸 읽어봐도 뭐라고 써있는지 모르는 메뉴다.


가격이 안 적힌 메뉴판이었는데, 나중에 가격을 알고보니, 한끼당 거의 100페소(25000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게다가 에피타이져부터 후식까지 풀코스로 제공된다.


엄청나게 맛있다.





이게 우리가 먹은 요리다.


오~ 짱인데? 라고 생각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건 에피타이져다. 본요리는 아직 시작도 안했다.


사진에는 흐릿하지만, 내쪽에 있는 요리는 "부모와 자식?"이라고 부르는 요리다.


닭고기 안에 계란을 넣어 요리해주는거다.


누가 이렇게 잔인한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만 여하튼 딱 맞는 이름이긴 하다.





이게 바로 본요리다.


배가 미칠듯이 부르긴 했지만, 우리는 하나도 남김 없이 싹싹 긁어먹었다.


너무 깨끗하게 먹어서 쪽팔린데다가, 팁 달라고 할까봐 급하게 도망쳐나오는데,


갑자기 웨이트리스가 우릴 부른다.


뭐라뭐라 하는데, 후식 있는데 왜 안 먹고 가냐고 붙잡은거 같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전 뭐 잘한것도 없는데, 저한테 왜케 잘해주시나요. 라고 묻고 싶어졌다.





밥을 먹을때마다 후식으로 먹었던 아르헨티나 아이스크림이다.


나는 후식으로 계속해서 초콜렛 아이스크림을 먹었더니,


나중에는 웨이트리스가 웃어댔다. 


한국엔 아이스크림이 없다고 생각했을꺼다. 무슨 밥만 쳐먹으면 자꾸 초콜렛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보챘으니...




그렇게 오후4시가 다되어서 짐을 싸서 아래로 내려갔더니,


현지인 아저씨가 우리보고 뭐라뭐라 그런다.


뭔 소린지 몰라서 주변을 살펴보니, 기상 상태가 안 좋아서 오늘도 비행기가 못 뜬단다.


지쟈쓰 크라이스트!!!


이런 고급호텔에 하룻밤을 공짜로 더 묵게 되었다.


더불어 이런 고급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저녁을 한번 더 먹을 수 있게 된거다.


비행기가 이틀이나 늦어져서 다들 불안해 했지만, 그중에 우리 둘만 신나서 감사합니다 를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파타고니아에서 못 먹어서 빠진 살이, 2일만에 다시 원상복귀 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