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릴로체에 와서 하루 쉬었으니, 이제 슬슬 돌아다닐 시간이다.


이 동네는 스키장 빼곤, 대부분 늘어져서 경치 구경하는 동네라 그런지 갈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부지런한 진희가 찾아낸 곳. 작은 순환 코스.


트래킹 코스라길래 더럽게 게으른 본인은 어떻게든 안 가려다가 '작은' 순환 코스라길래 따라 나섰다.


결과는 패망. 망할. 작은 순환 코스가 이 정도면 큰 순환 코스는 칠레를 한바퀴 다 도는건가보다.





요즘의 바릴로체 날씨는 내가 딱 좋아하는 날씨다.


약간 추우면서 바람도 많이 불고, 상쾌한 그런 날씨.


아무리 돌아다녀도 땀은 안 나는 그런 날씨. 참 좋다.





작은 순환 코스는 투어사를 통해서 가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우리는 대중교통을 타고 가기로 했다.


그냥 시내에서 버스타고 가서 시작지점에 내린 다음에, 쭉~~ 도로 따라서 걷다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버스타고 시내로 오는 방식이다.


근데 버스가 자주 있는 편이 아니라 투어를 이용하는게 여러모로 편리할거 같다.


하지만 이걸 본 한국분들은 분명 모두들 대중교통을 이용하겠지.ㅋㅋㅋ





시작부터 꼬였다. 버스 정류장을 잘 몰라서 한정거장 앞에서 내려버렸다.


괜찮아. 어차피 트래킹 코스니까 조금 일찍 내렸다고 해서 나쁠꺼 없잖아.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 난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멀리 설산도 보이고 도로도 그냥 무난하게 평지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서 쭉 걸으면 된다.





저 멀리 라오라오 호텔이 보인다. 검색해보지 않아도 엄청 비싼 호텔이겠지.


이 바로 앞 잔디에서는 골프 치는 사람도 간혹 눈에 띄었다.


아르헨티나도 우리나라랑 수준이 비슷한거 같다. 물가도 비슷한거 같고...


대신 소고기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싸다.ㅋ





중간중간 이렇게 호수도 보이고 참 좋았다.


이때까지는 참 좋았다. 날씨도 좋고, 진희랑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걷고...


근데 사진이 왜케 다들 어둡게 나왔지...;;;


사진과는 다르게 날씨 참 좋았다.





난 이 표지판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작은 순환 코스라는 이름은 그냥 누가 멋대로 지어놓은거고,


다른 이름이 있을 줄 알았다.;;;


근데 그냥 이 코스 자체 이름이 작은 순환 코스다.


그럼 큰 순환 코스도 있느냐?


당연히 있다. 그건 호수 7개정도를 돌아다니는 코스인데... 전혀 할 생각이 없어서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냥 아스팔트만 따라서 쭉 걸었으면 3시간정도에 완주할 수 있는 코스였다.


하지만 중간에 멋진 해변을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곳을 보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미스였다.


참고로 어제는 밤새 엄청 많은 비가 왔고, 지도상에 이 길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임시길이라는 얘기지...





중간중간 이렇게 물이 고여있긴 했지만, 양쪽으로 걸어다닐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다니고 있었다.


멋진 해변을 볼수 있다는데 이정도쯤이야... 근데 생각해보니 호수니까 해변은 아니고... 그냥 멋진 모래밭??


여하튼 그곳을 향해서 열심히 걸었다.





분명 지도에는 별로 안 먼것처럼 나와 있었는데, 걷고 걷고 또 걷고 걷고 걷고 걷고 ㄷ걷ㄱ도ㅓㅓㄷ 걸었는데도


호수는 커녕 산길만 계속해서 나있다.


어제 쓰러진건지 언제 쓰러진건지 모를 나무들 때문에, 길도 헷갈리고...


쓰러진 나무를 타고 넘고 아래로 기어가고 해서 겨우겨우 나아갔다.


그렇게 산속을 해매다보면 곳곳에 사진과 같은 멋진 집들이 나온다.


별장처럼 보이던데... 나도 이런 곳에 별장 하나 지어놓고 살고 싶다.


인터넷만 되면 와우나 하면서 그냥저냥 호수나 바라보면서 그냥저냥 글이나 좀 쓰면서 그냥저냥 살다간 굶어죽겠지.





여러번 갈림길이 나왔는데, 그때마다 제대로 선택했나보다.


우리는 결국 호숫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을 보면 앞쪽에 나무 밑둥 바로 뒤에 돌로 만든 뭔가가 보이는데...


캠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렇게 곳곳에 불 피울 수 있는 곳이랑, 식탁, 의자도 만들어놨다.


추워서 아무도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캠핑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여기가 그 호숫가...


도대체 뭐가 멋진 뷰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생 끝에 온거라서 사진 좀 찍었다.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이 잘 안가서, 저 물을 마셔봤는데 호숫물이었다.


여름이라면 수영이라도 할텐데...


우린 왜 겨울에 남미를 왔을까... 우리가 유럽 갈때쯤이면 유럽도 겨울인데....


그래도 더운데 땀 흘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여행중이다.





보시다시피 별거 없는 호숫가다.


그냥 멀리 설산이 보이고, U자형으로 모래사장이 있는 호숫가.


연인끼리, 가족끼리 차 몰고 와서 캠핑하면서 수영하고 낚시하고 고기 구워먹으면 좋을거 같은데,


우린 한낱 배낭여행자...ㅠ





그렇게 호숫가를 지나쳐서 이제는 다시 작은 순환 코스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 가자니, 너무 멀어서 버스 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과감하게. 그냥 길이 조금이라도 나 있는거 같다 싶으면 그냥 뚫고 지나갔다.


대충 작은 순환 코스가 끝나는 지점쪽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뚫고 지나갔다.





중간에 사진이 없는건, 그만큼 심한 멘붕에 빠졌다는 뜻이다.


열심히 열심히 가시나무숲을 헤치며 걸어갔는데, (레얄 가시나무숲을 헤쳤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500미터도 남지 않은 지점에서 복병을 만났다.


길 한가운데에 엄청 큰 호수가 생겨 있었다. ㅡ_ㅡ


분명 호수 밑으로는 사람들이 지나간 길이 보이는데... 그 위로 10cm정도 호수가 생겨 있었다.


양옆으로 지나갈 틈조차 없는 그런 호수가...


양말을 벗고 지나갈까 했는데... 여기는 스키장이 있는 동네다. 물이 아니라 얼음장이었다.


우리는 하는 수없이 왔던길을 되돌아 나오기로 했다.


그렇게 멘붕에 빠진채 걷고 걷고 또 걷고, 이제는 우리가 왜 이 고생을 하는지도 모르는채 그냥 땅만 보고 걸어나와서,


결국 아스팔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문명의 세계를 만난다는 말. 이럴 때 쓰는거였다.


베어 그릴스 아저씨가 왜 프로그램 막바지에 자동차나 배를 만나면 신나서 날뛰었는지 이제 좀 알거 같았다.





그렇게 다시 열심히 아스팔트길을 따라서 걸었다.


종착지까지 가려면 한참 남았는데, 버스 시간은 점점 다가와서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주변 풍경도 그냥 지나쳐버리면 그냥 트래킹이 아니라, 그냥 이동일 뿐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주변도 보고 사진도 찍고.......는 뻥이고,


사실 땅만 보고 걷다가, 저기서 다들 사진 찍길래 우리도 저 사진 한장 찍고 바로 다시 출발했다.





이게 대충 반쯤 왔을때 보이는 풍경이다.


설산들 사이로 호수가 있고, 호수와 호수 사이로 이렇게 강이 흐르고...


참 아름다운 동네지만, 다음에 다시 온다면 기필코 차를 빌려서 돌아다닐 예정이다.


산길도 아니고 아스팔트길인데 왜 걸어다녀야 되는지 모르겠다.





계속 걷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종점까지는 5키로미터정도 남았는데, 남은 시간은 1시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가능했겠지만,


우리는 이미 의지를 상실해 버렸고, 둘의 버스비 14페소(대충 4천원)도 아까웠다.


그래서 우리는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비록 스페인어가 서툴고, 숫기가 없으면 어떠냐. 내 다리가 아파 죽겠는데 쪽팔린것쯤은 상관 없다.


우린 지나가는 차를 열심히 잡아 세웠고,


결국 마음씨 좋은 아르헨티나 커플이 우리를 태워줬다.





이 아자씨가 우리를 태워준 은인. 이름은 까먹었다.


여하튼 38살인데, 여친이 23살이다. 둘이 사귄지 3년 됐단다.


저분들은 영어를 못하고, 우린 스페인어를 못한다.


하지만 요즘 열심히 스페인어 공부를 한 진희 덕분에 간신히 간신히 대충 대충 말은 이어 나갔고,


결국 우리 4명은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버렸다.


망할. 가뜩이나 내 페북에는 스페인말밖에 안 적혀 있어서 들어가기가 싫은데, 스페인어 쓰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


쟤네도 내가 글 쓰면 그렇게 생각하겠지?


'이건 뭐여. 그림이여 글자여.'





그렇게 맘씨 좋은 커플의 차를 얻어타고 온 바람에, 우리는 시간도 절약하고 버스비도 아낄 수 있었다.


그래서!! 14페소 아낀 기념으로, 초콜렛을 사먹기로 결정했다.


물론 큰 선물셋트를 살수는 없겠지만, 가나초콜렛만한건 사먹을 수 있을꺼 같아서 열심히 시내로 갔다.





우리가 항상 들렀던 초콜렛 가게다.


시내에 있는 초콜렛 가게중에 가장 편하게 시식을 할 수 있는 가게라서 매일같이 들렀다.ㅋ


게다가 이날은 명장이 직접 초콜렛을 만드는 시범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만든 초콜렛은 시식용으로 준다.ㅋ 난 옷에 초콜렛이 묻는지도 모른채 열심히 손을 뻗어 낼름낼름 집어먹었다.





하지만 시식과는 별도로, 우리가 산 초콜렛은 이거.ㅋ


론리 플래닛에서 무조건 꼭 먹어보라고 한 가게의 초콜렛이다. 


수제 초콜렛은 번호표를 뽑고 대기한 다음에야 먹을 수 있어서, 그냥 기성품을 샀다.


수제 초콜렛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겠고, 점원이랑 많은 대화를 나눠야만 가능한거 같길래... 그냥 이거 사먹었다.


이거 가격은 15페소(대충 4천원)... 


생각보다 맛은 별로였다. 그냥 흙맛 나는 초콜렛이었다.




우린 이렇게 아르헨티나 바릴로체라는 도시에서 열심히 궁상을 떨고 있다.


한국에서는 누구 못지 않게 쿨한 나였는데, 택시기사가 가장 선호하는 호구인 나였는데, 놀부보쌈 VIP회원인 나였는데,


여기선 저런 초콜렛 하나 사먹는데도 손이 떨려서, 하루만 더 생각하고 내일 먹자. 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아. 한국 갈날만 손 꼽아 기다리고 있다.


가면 원없이 돈 쓰고 놀아야겠다.


아. 난 백수근영. 이제 통장잔고가 고등학교때 수준으로 떨어져버렸네연.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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