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2012. 7. 12. 14:00

집 떠나온지 정확히 3개월이 지난 이 시점.


한가지 의문이 든다.


이게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건지, 하루살이 생활을 하고 있는건지.



누구든 첫경험을 잊지 못하고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장 미화시켜버리듯이...


나에겐 인도가 그런 곳 같다.



지금은 전자기기 충전기만 5개다.


내 휴대폰, 진희 휴대폰, 아이패드, 노트북, 카메라...


물론 인도에 있을때도 자주 PC방을 가긴 했지만...


거긴 인터넷이 느려서 그런지 뉴스도 못보고 여행정보도 거의 얻지 못한채 돌아다녔다.



지금은 어딜 가든 인터넷이 빵빵 터진다.


친구들과 카톡하는 건 물론이고, Facebook도 하고, 여행정보도 전부 인터넷을 통해서 그때그때 찾는다.



응? 이게 뭐지 싶다. 


누구나 여행에 대한 정의가 다르고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다르지만,


내가 생각한 배낭여행은 내가 인도에서 했던 그 배낭여행이다.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물도 제대로 안나오고... 침대 시트를 갈아주기는 커녕, 쿨하게 이불 모자르니 알아서 하라고 하는 그런 게스트하우스.


가끔 만나는 한국인이 너무 반가워서 밤새도록 이런저런 살아온 얘기를 나누던 그런 여행.



난 그걸 원했던거 같다.


근데 지금 보니까, 지금 여행이 잘못된게 아니고,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거 같다.


난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자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어찌 보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 서있던,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던 그 때의 나.


부모님께 손 벌려 나온게 너무나 부끄러워 어떻게든 적게 쓰고 안 쓰려고 발악하던 그 때의 나.


여행이라는게 원래 이런건가보다 하면서 아무리 거지같은 상황이 닥쳐도 헤쳐나가려고 노력하던 그 때의 나.


그런 모습은 이젠 없다.



여행 나온 내 모습은. 


남들에게는. 대기업 다니다가 쿨하게 회사 그만두고 나온 대단한 사람.


남 부럽지 않은 와이프랑 같이 세계일주를 하는 태평한 사람.


꼴에 인도일주 한번 했다고 여행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



이렇게 포스팅을 하면서도, 이게 뭐지 싶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삐끼한테 낚여서 화가 나지만 화낼 기운도 없이...


그렇게 막막하게 길거리에서 가이드북 뒤져가면서, 지도 돌려가면서 그렇게 여행할라고 했었나....



지금은 그냥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추천해 준 곳으로...


휴대폰 켜서 GPS로 지도 봐가면서...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와이나 포토시가 아무리 6천미터 이상이라고 해도,


안나푸르나 4100미터 지점쯤에서 느꼈던 진짜 죽음의 공포.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그 생각. 그때보다 감흥이 덜하다.


멕시코 칸쿤의 바다가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야밤에 도착해서 이름 모를 아저씨 뒤에 실려가서 봤던 고아의 바다보다 예쁘지 않았다.


마추픽추가 제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고 쭐레쭐레 따라가서 첫 관문을 지나자마자 마주쳤던 타지마할보다 더 웅장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의 내 여행태도는 매우 잘못되있고, 시간낭비 중이다.


여행 온다고. 고생 한다고. 무조건 뭔가 얻을 수 있는건 아니다.



난 어찌보면 2007년. 1점대의 학점을 가진 막장휴학생이었던 그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걸지도 모른다.


난 결혼을 했고. 와이프가 있고.


한국 가면 당장 머물 방 한칸조차 없고.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써가며 여행을 하면 책임을 져야 된다.


나 아니었으면 남들처럼 회사 잘 다니고 차근차근 미래를 구축해 나갈 진희를 꼬셔서,


세계일주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큰 모험을 하게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된다.



생각해보니 난 가장이다.


준비가 됐든 안 됐든. 여하튼 난 결혼을 했고. 자격이 있든 없든 난 가장이다.



지금까지 너무 안일했다.


아무 사고 없이 남미 여행을 끝마치고, 유럽을 돌고, 아프리카 종단을 하고,


인도에 가서 로맨틱하게 우리가 처음 만난 맥그로드간지에 가서 1주년을 기념하고 나서.


그리고 한국에 가면? 그 다음은?


나와 진희 둘다 직장도 없고. 통장에 돈도 바닥났고. 귀국한 날 돌아갈 집도 없다.


정신 차려야 된다.


칠레 산티아고까지 와서 고작 호스텔 로비에 앉아서 인터넷이나 깨작거릴라고 인생을 담보로 여행 온게 아니다.



이렇게 조급해해봤자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건 안다.


이왕 떠나온거 지금을 즐기고 귀국하라고 조언하고 싶은 마음 안다.


이 모든게 인도에서 느꼈던 그 기분이다.



다행이다.


우선 이런 모든 생각을 한국 떠나기 전에 안해서 다행이고.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이 최소한. 돈버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다.



인도를 가기 전의 나와. 다녀온 후의 나를 봐온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번에도 기대해도 좋다고.


그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장소가 나에게 있으니, 그만큼 더 생각하고 더 준비해서 돌아갈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위에 쓴 저 생각들이 하고 싶어서 지구 반대편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난 마추픽추가 보고 싶지도 않고, 에펠탑에서 사진 찍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아프리카 코끼리를 보고 싶지도 않다.


그냥 생각하고 싶어서 나왔다.


이런 저런. 어떻게 재취업을 할건지라는 실질적인 생각부터,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예전 생각까지...


말 그대로 생각하고 싶어서 내 인생은 물론 와이프의 인생까지 담보로 잡고 여행을 왔다.



이게 뭔 개소린가 싶을테지만, 진짜다. 난 생각하고 싶어서 여행을 왔다.


그게 전부다.


하나 확실한건. 많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결과는 좋아졌다.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는거니까. 행동하기 전에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확실한건. 난 오늘 술 안 마셨다. 맨 정신이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