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2019. 12. 25. 22:14


1992년인가...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3학년때쯤 초등학교로 바뀌기 전,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지금 쓰는 이 모든 이야기들의 실체는 없다. 너무 오래되서라기보다는 너무 어릴적 이야기라서 어떤것이 진실이고 어떤것이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1학년1반.

그 반에는 김인숙이라는 여자애가 있었다.


나는 인숙이를 좋아했다.

잘 웃지는 않았지만 하얀 피부와 큰 눈을 가진 인숙이는 참으로 이쁜 아이였다.

모든 철부지 남자애들이 그렇듯, 좋아하는 여자애에게는 더 못살게 굴었던 기억이 난다.


동네에 있는 아파트 107동 707호에 살았던 걸로 기억한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한번 그 친구의 집에 갔던거 같다.

제일 기억에 남는건 일본옷.. 유카타? 기모노? 같은걸 입고 찍었던 사진인데, 그 사진을 보고 나는 인숙이가 일본사람인줄 알았다.

(유치원을 독일 여자애랑 다녀서 더 그렇게 생각한듯)

그리고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그 친구와 비슷하게 생긴 여동생이 있었다.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다른 친구들이 생겼던 우리는 멀어졌다는 표현보다는 희미해졌다는 표현이 맞을것이다.

간혹 연락은 했지만 정확히 무엇이 목적인지, 인간관계에 있어 목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알맞는 것인지 모를 상황이었지만.

 

여하튼 그렇게 꽤 오랜시간 과거의 추억들은 뒤로 한채 살아가다가,

고등학교때쯤 다시 몇번 연락하다가 다시 또 연락이 끊겼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또 연락이 됐다가 끊겼다가를 반복했었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 받은것은, 어떻게 연락이 닿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군대에 있을 때였다.

 

인터넷도 자유롭게 사용할수 있던 나에게 손편지를 보내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는데,

인숙이는 나에게 꽤나 많은 편지를 써줬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냥 어느 감수성 여린 소녀처럼 손편지를 좋아하는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그 편지를 쓰기 위해 들인 많은 노력은 생각하지 않은채, 인간관계의 소중함은 망각한채 그냥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와서는 참으로 한심하다.

 

그렇게 다시 연락이 닿아, 페이스북 친구가 되고 간간히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페북을 통해서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린란드라는 곳에 유학을 가게 된 것을 알았다.

그린란드.

세계지도를 봤을때 (우리가 흔히 보는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한 그 지도), 아프리카와 맞먹는 크기지만 어느 교과서에도 자세히 나오지 않던 그 나라. 그린란드.

실제 크기는 아프리카보다 14배 이상 작다고 한다. (맞나?)

여하튼 세계일주 코스를 짤 때도 전혀 고려도 안했고, 쳐다도 안 봤던 유럽 서쪽 위에 있던 미지의 나라.

그곳에 내가 아는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다.

 

그린란드에 간 이후로는 연락을 주고 받은 적이 없었다.

내가 진심으로 가고 싶었던 극지연구소에서 일을 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고, 뭔가 그린란드 전통옷을 입고 있던 사진을 봤던 기억만 난다.

(지금은 극지연구소 가라 그래도 못 갈거 같다. 나이 들어서 추우면 기력이 딸린다.)

그리고 그린란드 사람과 결혼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헐?)

 

얼마 전. 

얼마 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했네. 꽤 오래전.

그린란드에 관한 책 한권을 썼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이것도 걍 페북 통해서 주워들음.)

아는 사람이 책을 낸 경우는 드문 일이라, 언젠가 사서 봐야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찮게 그 책을 발견했다.

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

본인의 이름을 걸고 쓴 책이다. 

도서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 읽었다.

여행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린란드에 살고 있는 친구이므로 여행기라기보다는, 그린란드에 대한 소개와 실제 그곳의 생활을 담은 책이었다.

내가 알던 그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난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용기도 없고, 이제까지 그런 삶을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을 하기보다는, 연락을 받는게 익숙해져 있었고,

매년 1월1일만 되면 쏟아지는 새해안부 인사에 답장만 할뿐,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안부인사를 해본적이 없다.

 

2020년 1월 1일 0시 0분.

카카오톡 폭주로 인해 장애가 터진 그 시점에, 카톡의 폭발적인 트래픽을 모니터링하면서 나는 그저 놀라웠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안부인사를 묻는건가? 

근데 왜 나는 이제까지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를 건네본 적이 없는거지?

부끄러웠다. 그저 나 혼자 고고한척 살아왔던거 같다.

누군가 먼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은 그저 낯부끄럽고 비굴한 일이었다.

그런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도, 예전부터 그래왔으니 뭐 사람이 쉽게 변하나. 라는 썩어빠진 생각으로 변함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와도 괜찮았다.

수십명은 아니지만, 매년 꽤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았고, 언제 한번 봐야지. 언제 밥이나 먹자고. 라는 말을 끝으로 사람들과의 대화방은 1년동안 긴 수면에 들어갔다.

 

이 친구의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이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길 바란다는건.

외모를 치장하거나, 대화거리를 준비하거나, 하다못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동호회 활동 같은 것도 하지 않은채, 방 구석에 홀로 앉아

진정한 나를 (나도 알지 못하는 진정한 나를 누가 알아봐주냐.)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도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거라는 망상에 빠져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2020년 올해에는, 처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해 안부 인사를 보냈다.

뒤이어 글을 쓰겠지만, 그 연락을 계기로 몇년만에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눈 친구도 있고,

카톡으로나마 매우 반가워하며 근황을 나눈 사람들도 있다.

물론 아직도 용기가 나지 않아 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우르스와 리카르도에게는 아직 안부를 묻지 못했다.

이제 해야지.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