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2016. 9. 12. 01:19

내가 옮겨간 곳은...


국내 스마트폰을 만드는 P1실이었다.


건물도 기존 C건물에서 가산R&D캠퍼스라는 뭔가 좀더 있어보이는 건물로 변경되었다.



팀이 변경되고 첫 출근을 했을때 기억이 난다.


팀장... 아니지. 거기는 파트체제라서.. 파트장이 대빵이었는데,


파트장이 아닌 뭔가 그 밑에 파트원 중 한분이 나를 데리러 왔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설명을 해줬다.


원래 우리 자리는 18층인데... 지금 프로젝트 기간이라 16층에 모여서 일을 한다.


그 모여있는 공간을 TDR룸이라고 불렀었다.


18층의 내 자리에 짐을 풀어놓고 TDR룸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파트장분은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모니터만 쳐다보면서 말씀을 하셨다.


응. 응. 그래.


그게 첫인사의 끝이었던거 같다.


뭐 파트가 모이지도 않았고, 그냥 다들 자리에 앉아있었던거 같다.


그냥 그렇게 난 또 다시 어색한 파트원 중 한명이 되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파트는 상당히 좋은 파트였다.


파트원 모두가 나에게 너무나도 잘해주었고, 특히 파트장분과 부파트장 되시는 분은 나를 너무 이뻐해주셨다.


아무것도 할줄 모르고, 아부도 할줄 모르는 성격의 나를 참으로 이뻐해주셨다.


파트원 분들도 막내가 들어왔다고 해서 참 잘해주셨다.


물론 내 개인적인 착각일수도 있지만, 여하튼 난 그렇게 믿는다.



처음 내가 맡게 된 일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개발한 것들을 한데 모아서, 완성품을 만드어내는 일이었다.


다시 얘기해서, 수백명의 사람들중 한명이라도 퇴근을 안하면 퇴근을 못하는 그런 일이었다.


항상 야근을 했던거 같다.


빠르면 밤 10시에 퇴근을 하고... 늦으면 밤을 새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아주 가끔... 집에 제사라도 있는 날에만 5시에 퇴근을 했던거 같다.


5시 퇴근은 휴가보다도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주말에도 기본적으로 토요일엔 출근을 했었고, 일요일 정도만 쉬었었다.



대기업 다닌 사람들은 죄다 맨날 야근했다고 뻥만 쳐대서 객관적인 자료로 얘기를 하자면...


2011년 9월달... 한달동안.


31일이고.. 추석 때문에 빨간날이 10개였던 그 달에는...


나는 27일동안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했었고... 빨간날 10일 모두 출근을 했었다...


27일을 뺀 4일은 새벽 4시가 넘을때까지 깜빡하고 퇴근도장을 안 찍어서 그냥 출근한것처럼 되어버린 날이었다.


다시 얘기해서 한달 내내 12시 넘어서 퇴근을 했던거 같다.


물론 집에 못 들어간 날들도 많았고....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정도는 합숙도 했었다.


저기 경기도 오산 근처에 LG전자 휴대폰 공장이 있는데 그 옆에 있는 아파트에서 합숙을 했었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었다, 어차피 합숙이니까.


그냥 눈 뜨면 아파트 옆동으로 가서 일하고, 졸리면 옆동으로 가서 일하고...


자다가 휴대폰 울리면 몇시가 됐건 다시 옆동으로 가서 일하고... 또 다시 자고...


이렇게 3개월을 보냈다.


3개월동안 집에는... 10번도 못 갔던거 같다.


하루 밤새는 날은 일주일 2번정도씩은 꼭 있었고...


이틀 밤새는 날도 한달에 한번정도는 있었던거 같다.



사람이 잠을 안자면 어떻게 되는지도 그때 처음 느꼈었었다.


갑자기


'야 너 뭐해!' 라고 얘기해서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손을 움직여가면서 뭔가를 하고 있는데, 이걸 왜 하고 있는지 기억이 안난다.


엥.. 이게 뭐지. 내가 이걸 하고 있었다고? 언제 잠든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멍한 상태에 빠지곤 했었다.


그래서 항상 내가 밤새는 날에는, 실수라고 할까봐 부파트장분께서 내 옆에 앉으셔서 내 모니터를 쳐다보고 계셨다.



그러다 내가 졸거나 실수라고 하면 세수하고 오라하시거나,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자고 해주셨던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하고 견디기 힘든 날이었겠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사람만 좋으면 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던거 같다.


아무리 잠을 못자고, 집을 못가고, 몸이 힘들어도...


같이 일하는 분들이 재밌고 좋아서 그랬는지, 매일매일이 재미있었다.



그 당시에 동기들을 만나거나 예전 인턴 동기들을 만나면, 난 왠지 모를 자부심이 있었다.


다들 야근이 많다고 우는 소리를 하고, 뭐 밤을 샜네 마네 주말에 출근을 했네 마네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난 속으로 콧방귀를 꼈었다.


거 참 하루 밤샌게 샌거냐... 새벽에 퇴근했다고? 새벽에 집에 가는게 어디냐. 난 한달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자부심을 가졌던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이지.



지금 회사 와서도 처음에는 그랬었다.


가끔 정말 바쁠때, 뭐 토요일마다 출근을 했었다는둥... 선배 중에 누군가가 큰일이 터져서 2박3일동안 꼬박 밤을 새가며 일을 했었다는 둥...


그런 얘기를 들을때면 이 생각밖에 안들었다.


이 사람들 진짜 일 편하게 하면서 살아왔구만.... 이게 지금 무용담이라고 나에게 말해주는건가...



참 노예스러운 마인드였다.


누군가가 힘들었음을 나에게 얘기할때에는, 정해진 기준보다 힘들었기 때문에 얘기하는 것일텐데,


그러면 그냥 그 힘듦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내가 겪은 것보다 안 힘들었을거라는 그 생각 때문에, 상대방의 힘듦까지도 무시해버렸던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다.


그래서.


그래서 내가 더 힘들었다. 내가 더 빡쎘다.


그래서 뭐.

 

그래서 뭐 어쩌라는건지 참....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다.



그래도 저때의 기억들은 항상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다.


참 재미있었다.


저때 1년동안 정말 빡세게 일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 누구에게 꿇리지 않을 무용담은 항상 가지고 있다.



쓰기 전에는 금방 쓸거 같았는데,


쓰다보니 너무너무 할얘기도 많으니 천천히 써야겠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