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2019. 7. 16. 14:59

여행을 다녀와서, 너무나도 운이 좋게 푸르덴셜생명보험 이라는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여행을 하면서 했던 수많은 고민이 무색해질 정도로,

수많은 서류탈락과 면접탈락의 고배를 마시지도 않은 채, 거의 바로 취업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6년동안 일을 했다.

개발자로써 2년동안 일을 했고, 이후에는 직군을 바꿔 시스템 운영자로써 4년간 일을 해왔다.

IT를 하는 누군가에게는 꿈의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정적이면서도 큰 일이 없으면 정년이 보장되는 금융권 IT였다.

입사할때는 그런것까지 따질 여력이 없어 몰랐지만, 입사하고 나서 알게 된 것들이다.

 

그렇게 2013년부터 시작된 나의 푸르덴셜생명보험 회사 생활은 6년이라는 시간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물론 6년동안 꽤나 많은 이벤트들이 있었다.

다솜이와 한솔이도 태어났고, in서울 입시는 실패했으나 in서울 아파트 장만은 성공했다.

그리고 진희는 전 회사 짝퉁같은 이름의 일본계 제약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내가 구멍가게라고 부르며 정신승리를 하게 만드는 무슨.. 뭐라드라.. CRO? 뭐 이상한 일을 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됐다.

제일 친한 친구를 보험설계사의 길로 안내했다가, 크게 상처받고 떠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멀고 더디게만 느껴지지만, 지나간 시간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빠르다.

그렇게 내 인생의 황금같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수없이 이직을 꿈꿔왔다.

이직을 위한 꿈이 아닌, 현재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난 현실에 안주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싶어 몸부림 치는 것처럼 이직시도를 했다.

거의 매년 새로운 회사에 입사 지원을 했고, 개중에는 대학시절에도 별로 안 겪어본 서류광탈의 아픔을 준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입사날짜까지 받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생각으로 입사포기를 했었다.

'이 정도 의지라면, 이 회사에서 더 열심히 자기계발을 할 수 있을거고, 그러다보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모두가 알고 나도 알다시피 나의 의지는 그리 강력하지 않았다.

입사포기를 하고 한동안은 열심히 하다가, 또 다시 현실에 안주하여 주어진 일을 반복하고 살았으며,

간혹 괜찮은 성과를 내기라도 하면, 주변의 칭찬에 현혹되어 '그래, 이정도면 뭐 이 회사에서 나름 입지를 굳힌거 아니겠어?'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왔다.

 

매년 그랬지만, 올해에도 수많은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보면서 LG전자를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다녀온 그때를 떠올렸다.

어떤 회사에서는 매우 높게 평가해주는 반면, 어떤 회사에서는 매우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내 인생에 있어 꽤나 잘한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를 평가하는 누군가에 의해 평가절하 되었을때,

그것을 끝까지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이게 얼마나 가치 있는 여행이었는지 알어?" 라고 하기에는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다.

그냥 막연히 많은 사람들이 꿈꾸던 것을 직접 해봤고, 다양한 곳을 가봤고,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웠으니 대단한 일을 한거야. 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내가 과연 자기 자리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도 버텨낸 사람들보다도 많은 것을 배워왔고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찌보면 난 그저 운 좋게도, 꽤나 여유있는 와이프와 결혼한 덕분에 아무생각 없이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그게 하루하루 힘든 일상을 지내온 사람들보다도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반대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세계일주를 다녀온 것이 순전히 나의 능력으로만 다녀온 것인가?

나보다 더 열심히 살았지만, 운이 나빠 행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고작 세계일주를 다녀왔다는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된다면, 그것 자체로도 불공평한거 아닐까?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을까?

그때의 진희는 무슨 생각으로 나의 뜻에 함께 해줬을까?

 

이제는 어떤 순서로 어떤 나라를 갔는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마도, 내가 죽을때까지 올해 했던 여행에 관한 저 생각들은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세계일주라는건, 내 인생에 있어 한번의 이벤트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평생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입사한지 6년차다.

모두가 말하는것처럼 뻔하디 뻔한 3,6,9의 법칙을 일부러 어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6년차가 된 지금, 난 그것을 순응하기로 결심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것은 물리쳐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라는 어디선가 들은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2019년 7월 29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로써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안녕 푸르덴셜.

안녕 카카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