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_12_13/10-Chile2012. 8. 15. 08:28

우선 포스팅을 하기 전에 한가지만 부탁 드리자면.


만약 자기가 정치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고 우파, 좌파 등에 대한 개념이 너무나도 확실해서,


'난 내가 지향하는 정치이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배척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냥 다음 포스팅으로 넘어가든지, 아니면 이 블로그를 들어오지 말든지 했으면 좋겠다.


지금부터 쓰게 될 이날의 포스팅은 정치얘기가 반이 넘을테니까요.





뿐따 아레나스의 아침이 밝았다.


중국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 10대 강대국으로 발전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진출하지 않은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당연히 뿐따 아레나스에도 한국분이 살고 계신다.


남미여행이나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신라면집.


세계 최남단에 위치한 라면집 이름이다.





아침부터 열심히 라면집을 찾아 나섰다.


사실 라면이 그리 땡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먼땅에서 정착하게 되신 연유라든지, 사연등이 궁금했기 떄문이다.


라면을 먹고 싶어서기보다는, 그냥 사장님의 인생얘기가 들어보고 싶었다.



여행하다보면, 풍경이나 유적지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느끼는 반면에,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얘기는, 정말 100명이면 100개의 이야기가 있을만큼 다양하고 흥미롭다.





이미 남미여행자들 사이에서는 필수코스가 되어버린 뿐따 아레나스의 신라면집.


뿐다 아레나스 자체가 여행지가 아니라서 좀 안타깝지만, 이곳에 오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빼놓지 않고 찾아오는 곳이다.


인심 좋아보이는 인상을 가지신 사장님이 끓여주시는 라면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특히 매운걸 잘 못먹는 나로써는, 삼양라면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는데... 여기서 먹을수 있었다.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될까.


이제부터, 누군가는 정말 듣기 싫은 소리고, 누군가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바로 내가 한국에서는 물론, 특히 여행하면서는 절대 하지 않는 정치, 종교에 관한 이야기다.



뿐따 아레나스의 사장님은 바로 내 고등학교 선배님이셨다.


몰랐는데, 가게에 써있는 낙서들을 보다가 중앙고 얘기가 많이 나오길래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중앙고등학교 졸업생이라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좋았다. 이 먼 이국땅에서 열심히 살고 계시는 선배님을 뵙자니,


가슴 한켠이 뭉클했다.


사실 선배님때의 중앙고와 우리때의 중앙고는 하늘과 땅차이지만, 그래도 뭔가 동문이라는 사실이 엄청나게 뿌듯했다.


선배님께서도 나 못지않게 고등학교에 대한 애착이 상당하셨다.


(선배님께서는 해병대도 나오셨다... 해병대에 대한 애착은 뭐 말하면 입만 아프죠.ㅎ)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걸 쓰는게 과연 맞는건지 아닌건지 상당히 고민된다.



사장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파타고니아 지역을 찾는 여행객에 관한 이야기부터, 사장님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에 관한 애기부터...


그리고 안 하셨으면 좋았을 법한, 한국 정치에 관한 얘기까지....



종교, 정치에 관한 얘기는 누구랑 하든지간에 항상 트러블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는 내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건 강간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맞다고 생각해서, 굳이 남에게 강요하는건... 정말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난 굳이 내 정치성향을 여기서 밝히고 싶지도 않고, 자랑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신라면집 사장님은 정말로... 뭐가 말해야 되나... 말 그대로 보수주의자셨다.



나도 이해한다. 외국에 오래 나와계시다보면,


한국에 대한 애정과 고향에 대한 애착이 합해져서 모두들 보수주의자가 될수밖에 없다고 본다.


나도 처음 영국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본 삼성간판에 뭉클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장님은 좀 정도가 심하셨다.


아. 물론 내 정치적 성향이 맞다는건 아니다. 나 역시도 정치라고는 인터넷에서 주워 들은게 전부일 뿐이고,


그냥 뉴스를 통해서 본게 전부일뿐. 따로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내 생각이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장님(사실 난 선배님이라 부르고 싶다.)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시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충분히 이해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니까...


그리고는 이번 대선에 박근혜씨가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괜찮다. 누구를 지지하든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니까.



거기까지는 100% 이해했고 동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여러 야당인사들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무소속인 안철수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때면,


근거 없는 비난 + 욕 + 빨갱이 로 조합되는 수식어를 그 앞에 꼭 붙이곤 하셨다.


정말 듣기 싫었다. 도대체 V3 만든게 왜 빨갱이가 되는지는 알수 없었다. 정말 듣기 싫었다.



왜 사장님 앞에서는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가 뒤에서 딴말 하냐고 해도 난 할말이 없다.


대선배님이 그렇게 열변을 토하시는데 거기다가 반박하면서 그 재미없고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싫었다.


그저 일분이라도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었다.



특히. 난 이 얘기를 들은 후부터는 아무 얘기도 귀에 넣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바스 리갈 마시다가 돌아가셨다는 빨갱이 새키들이 있는데, 


사실은 시바스 리갈 병에다가 막걸리 담아 마시던 거였어."



뭐지... 차라리 그냥 시바스 리갈을 마셨던거였으면 좋겠다.


그 병에다가 왜 막걸리를 담아 마셨다는거여.... 막걸리 페티쉬라도 있으신건가...



3시간에 걸친 정치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수십번 수백번, 스스로를 도닥였다.


내가 듣기 싫은 얘기일지라도 듣는 연습을 하자는 생각도 했고,


나와 정치색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이 말하는 모든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도 했고,


선배님을 비난하기 보다는, 왜 저런 생각을 가지게 되셨는지 그 과정을 생각해보자는 생각도 했다.



근데 저 시바스 리갈에 막걸리를 담아 마셨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나의 이성의 끈은 끊어져버렸고,


그냥 귀를 닫고 시선은 허공에 띄운채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랬다.





페루 쿠스코에서 처음 만난후, 볼리비아 라파즈에서 같은 숙소에 묵었던 한국인이 있었다.


이번 여행을 떠나서 처음 만난 동갑내기 친구였다.


우연히도 우리와 이스터섬을 같이 갔던 친구들과도 아는 사이인 그런 사람이었다.


어딜 여행하든지 이 사람은 저 사람 친구고 이 사람은 저 사람을 어디서 만났고 하다보니,


결국 페이스북으로 보면 전부 다 아는 사람이다.



근데 별로 할말도 없고, 그 당시 훈이씨와의 훌라삼매경에 빠져 있을때라 별 얘기 안하고 헤어졌는데,


알고보니 고등학교 동기였다.


(신라면집 천장에 이름을 써놨길래 봤더니.. 고등학교 동기였다.)



반가운 마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처를 물어봐서 그 친구와 연락을 해봤는데...


사장님께서는 그 친구에게도 기나긴 정치얘기를 해주셨다고 한다.


그 친구는 그냥 술마시면서 들어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고는 하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예전부터 믿고 있던 생각. '남은 나와 다를뿐이지 틀린게 아니다.'라는 말.


누구나 알면서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저 생각을 난 항상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분명 내가 틀린 생각을 가지고 있을수도 있으니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지 말자. 듣다보면 생각이 바뀔수도 있다.


라고 언제나 생각해왔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좀 심했다.



선배님께서 새누리당을 지지하신다고, 박근혜씨를 지지하신다고 해서 내가 귀를 닫아버린건 아니다.


내가 생각했을때는 진짜 200% 거짓말이라고 보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바스 리갈병에 막걸리를 담아 드셨다."라는 것을


실제로 굳건히 믿고 계신다는 거에서 1차로 놀란거고,


박근혜씨가 아닌 다른 인사들을 말할때마다 좌빨, 빨갱이, 욕설을 섞으시는 거에 2차로 놀란거다.





그렇게 신라면집에서의 길고긴 시간을 끝마치고는, 내일 투어를 위해 여행사를 찾았다.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곳중에 뿌에르떼 불네스 라는 곳이 있어서,


(정치적인 얘기가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추천해주시는 관광지까지 무시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곳에 가기로 했다.


대륙의 끝이라는 뿐따 아레나스는 원래 60키로쯤 밑에 있는 뿌에르떼 불네스에서 시작됐단다.


거기다 요새를 지었다가, 지금의 뿐따 아레나스가 있는 위치로 옮겨버린 거란다.


사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워낙 할거 없는 동네라 저기라도 가보자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가격은 원래 한사람당 10000페소인데, 우리는 8000페소로 깎아서 신청했다.ㅎ


거의 매일 투어가 있고 가는데 1시간정도 걸렸다.





이게 파타고니아 밑에 부분의 지도다.


잘 보면 대륙으로 이어진건 뿐따 아레나스가 가장 끝이고...


그 다음에 섬을 하나 건너가면 우수아이아가 있는 '띠에라 델 푸에고'라는 지역이 나온다.


그리고 그 아래 또 한번 섬을 건너면 뿐따 윌리암스가 나온다.


아직까지도 어디서 정확히 세계의 끝인지는 모르겠다만, 여하튼 대륙의 끝은 여기 뿐따 아레나스쪽이 확실한거 같다.




이래저래 얘기를 쓰느라 길어졌는데, 난 누군가를 인터넷상에서 거론하는 거 자체도 별로 안 좋아하고,


특히 여행에 와서 느낀것중에 안 좋았던 점을 쓰는걸 꺼리는 편이다.


칭찬이 아닌 악평은 그 사람에게 크나큰 상처를 줄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하는 편인데.


혹시라도 나와 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가 3시간동안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오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그리고 그 얘기를 못 견디고 맞받아쳐서 기분만 상하고 오는 사람이 있을까봐 최대한 상세히 적었다.


뭐 언제나 그랬지만, 판단은 각자 알아서 했으면 한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