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볼거 없는 엘 찰텐에서는 하룻밤만 자고 이날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엘 찰텐에서 칼라파테로 돌아가는 버스는 오후 6시 출발.


할 거 없는 우리는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짐 싸고, 로비에서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떼우고는,


주변에 어디 갈곳 없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엘 찰텐 주변에는 폭포도 있고, 전망대도 있고, 여러 트래킹 코스도 있는데... 전부 무료다.


엘 찰텐 쨔응.


그래서 우리는 그냥 만만해 보이는 또레 호수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쿨한 엘찰텐의 모습이다.


뭐 이런 한적하다 못해 무서운 동네가 다 있나 싶다.


사람이라곤 별로 눈에 띄지도 않고, 대부분의 집은 공사중이라 황량하고...


비수기만의 매력인가...





파타고니아는 비수기때만이 아니라 성수기때도 추우므로, 중무장은 필수다.


한국에서 사온 저 클라이밍 팬츠는 정말 가성비가 최고다.


내가 지금 다시 세계일주 배낭을 싼다면, 클라이밍 팬츠만 3개를 가져왔을꺼다.


가져온 옷중에 상의엔 바람막이가 있다면, 하의엔 클라이밍 팬츠가 있다고 할 정도로 유용하게 잘 쓰이고 있다.





하룻밤만에 날씨가 싹 바뀌어서 피츠로이가 안 보인다.


피츠로이는 아침해가 뜰때 보면 붉은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아침에 볼까 했는데...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야되는줄 알고 포기했었다... 근데 숙소에서 5분만 걸어나오니 바로 보이더라...;;;


동네 날씨는 뭐 그리 나쁜편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저쪽 피츠로이 있는 쪽만 구름이 많았다.


어제는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나보다. 럭키. 행복자.





잠시동안 길을 못 찾아서 해매다가, 겨우 또레 호수 가는길을 찾아냈다.


지도가 이상해서 그냥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막 걸어다녔는데...


길거리에 사람이 없다. 망할. 뭐 이런 동네가 다 있냐.


사람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표지판을 발견하고는 또레 호수 가는길을 찾아냈다.ㅎ





나의 진희보다 잘하는 유일한 한가지. 길 찾는거.


이 몸은 냄새만 맡아도 또레 호수가 어느쪽에 있는지 알 정도로 뛰어난 방향감각을 자랑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거의 장애판정을 받을 정도로 무능하다.


특히 협의, 협상, 쇼부, 에누리, 할인 이런거에 무능하다. 


하지만 팁, 잔돈, 택시, 술, 카드, 막말 이런거엔 관대하지.





어제 국립공원 관리인 아줌마가 말해준대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살짝 얼음이 얼긴 얼었지만, 괜히 위로 지나갔다간 골로 갈꺼 같아서 멀리멀리 가시덤불을 헤치고 돌아갔다.


이상하게 이 동네에 가시가 달린 나무가 많은데, 아마도 그게 칼라파테라고 불리우는 나무 같다.





어제 피츠로이 전망대에 갈때랑 비슷한 풍경과 비슷한 길이 펼쳐진다.


중간중간 이렇게 빙하가 녹아내려 흐르는 강도 보이고...


희한할 정도로 우뚝 솟은 절벽들도 보인다.





잘 보면 오른쪽 아래에 폭포가 있는데, 저건 저 위에서부터 계속해서 이어지는 폭포다.


아래 강물 색깔이 허여멀건한걸 보니, 이 강물은 필히 빙하가 녹아서 내려온거겠지.


또레 호수 가기 전까진 몰랐는데, 가보니까 진짜 빙하가 있긴 있었다.





요렇게 강물이 흘러오는 곳을 쭉 따라가보니, 저 멀리 설산이 보인다.


사진이 노출과다라서 잘 안 보이지만, 저 산의 2/3정도는 전부 얼음으로 덮혀 있었다.


눈으로 덮힌게 아닌, 캔디바 색깔의 얼음으로 덮혀 있었다.


당최 사진은 어케 해야지 잘 찍을수 있는거지.ㅋㅋㅋ


진희나 나나, 예전부터 여행 다녀온 다음에 항상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우리의 문제는 똑딱이 카메라다. 좋은 카메라 쓰는 사람들 보니까 사진이 예쁘더라. 우리도 사자.'


라는 초딩마인드로 미러리스 카메라를 구입해 왔는데,


이건 뭐 예전에 쓰던 똑딱이나 내가 들고 다니는 휴대폰이나 다 똑같이 나온다.





가장 오른쪽에 구름에 살짝 가린 봉우리가 어제 봤던 피츠로이 봉우리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바로 이 바로 앞 언덕.


또레 호수까지는 왕복 7시간정도 걸리므로 무리고, 그냥 또레 전망대까지만 가기로 했다.


거기까지만 해도 왕복 3~4시간은 잡고 가야된다.





이 동네는 아무데서나 물을 마셔도 된다.


여기뿐만 아니라 칼라파테에서도 그냥 흐르는 물은 다 마셔도 된단다.


그래서 요즘은 물 안사먹고 수돗물 받아 마시고 있다.


가끔 랜덤하게 배가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사먹는 물보다 맛있고 시원해서 애용중이다.





이제 슬슬 눈도 좀 보이고 얼음들도 좀 보인다.


성수기때의 이 동네는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동네일꺼 같은데...


지금의 이 동네는 황량하기 그지 없다.


근데 개인적으로 이렇게 황량한 풍경도 마음에 든다.


성수기때 여기 온 사람은 넘치고 넘치겠지만, 비수기에 온 사람은 별로 없겠지.ㅎㅎㅎ





신나게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키가 멀대같이 큰 양키 3명이 걸어내려온다.


으잌. 저건 뭐지.


봤더니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전부 중무장을 하고는 스키를 매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어디 나라 사람인지, 뭐 하고 온건진 아직도 잘 모르겠다만...


아마도 또레 호수까지 가면 스키타고 놀수 있는 곳이 나오는 모양이다.





여기가 우리가 목표로 한 전망대다.


저 멀리 얼음으로 뒤덮힌 산 비탈이 바로 또레 호수가 있는 곳이다.


딱 보자마자, 너무나 멋져서 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만 무지하게 들었는데...


버스 시간이 가까워진 관계로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피츠로이보다 저기가 더 가보고 싶었다. 저 멀리 덮힌 얼음이 전부 캔디바 색깔이다.


아까 개네는 저기서 스키 탄건가?





좀 멀리서 보면 이런 풍경이다.


오른쪽에 있는 피츠로이는 아직까지도 구름에 가려있다. 희한하게 다른 곳엔 구름이 없는데 저기만 계속 구름이 있더라...


그리고 가운데에 내가 멋지다고 했던 또레 호수가 보인다. (비록 얼어버리긴 했지만.ㅎ)





이제 다시 슬슬 엘 찰텐으로 걸어 내려왔다.


파타고니아의 마을들은 대략 이런 모습들이다.


낮은 단층집. 파스텔톤으로 칠한 외벽. 주변을 둘러싼 설산으로 인해 황량해 보이는 풍경.


이런 파타고니아의 매력이 좋아서 여기서 눌러앉은 한국분들도 꽤 된다고 한다.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그린란드 같은데가 이런 분위기지 싶다.




지금은 아직도 칼라파테에 체류중이다.


나비막을 타고 오는 바람에, 루트가 꼬여서 어떻게 하면 세상의 끝에 잘 갈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인터넷도 뒤져보고 터미널도 가보고 주인 아주머님께도 여쭤보고 하는중인데...


역시 모든 정보는 그냥 현지에 와서 조달하는게 가장 좋은거 같다.


일주일 전의 정보도 이미 최신정보가 아닌 이 시대에, 여행 오기 전에 모든 루트를 짜서 온다는건 거의 불가능한거 같다.


뭐 내가 게으르거나 귀찮아서 그러는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