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후 살아남기2015. 12. 28. 22:51

처음 입사해서, 대리 직함 (내가 다니던 회사는 주임 이라고 불렀지만...) 을 달고 계신 선배들을 보면,

하나같이 경외감이 들만큼 많은 일을 하시던 분들이었다.


와.. 내가 이 회사에서 대리를 달수는 있을까?


라는 생각뿐이었는데,

32살을 코앞에 둔 지금, 나는 대리를 달았다.


동년배들에 비해서는 약간 늦었지만, 인생 전체적인 측면에서 봤을때는,

그리 늦지 않은 나이에 대리를 달았다.


지금의 나는, 과연 신입사원일때의 나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신입사원의 눈에 선망의 대상으로만 비춰졌던 대리의 모습일까?...


사실 나는 지금도 신입사원 같은 기분이다.

모든 업무를 알아서 해내는, 누군가 말했듯이 자기 밥벌이는 알아서 하는 그런 대리의 모습은 아닌거 같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건지,

이대로 업무를 하다보면 정말 '전문가'가 되는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이렇게 지내다보면, 언젠간 과장을 달고, 언젠간 차장을 달고 부장을 다는 날이 올까.


그때도 지금과 같은 생각이 들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즘 들어 곰곰히 생각해봤다.

1년동안의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1년동안 쓴 돈은 5천만원이 조금 넘지만...

1년을 넘게 쉬면서, 우리가 소비해버린 기회비용은 약 2억 가량의 돈이었다.


여행하면서 쓴 5천. 그리고 1년간 두명이서 벌수 있었던 1억.

그리고 1년이 넘는 경력단절로 인한 비용 5천.

총 2억.


쉽게 생각하면, 고급 벤츠를 살수 있는 돈이다.



내가 만약 그때 여행을 가지 않아서,

지금 2억짜리 벤츠를 타고 다니면, 내 인생은 달라져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 참 여행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2억짜리 벤츠를 샀더라면, 페북에 자랑글 하나정도는 올렸을수도 있겠지.

아니면 내부순환로 월곡램프에서 끼어들기를 할때 클락션 소리를 절반정도만 들었을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였을거 같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 그리고 여행을 갔다옴으로써 내가 가지게 된 나에 대한 자부심.

이런 건 2억을 주고도 못 사는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지금 연봉인상율 1~2%에 울고 웃는다.

참 아이러니하다.

뭐 아이러니하다고 말은 하지만, 여행 다녀왔다고 물질적인 모든 것에 초월해서 살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나는 그렇게 살수도 없다.



나는 지금도 회사에 있다.

그리고 아마도 1년 뒤에 나도 회사에 있을 것이다.

10년쯤 후에, TV에서 세계를 가다를 보면서, 

와... 저기 많이 바꼈네. 내가 갔을때는 완전 암것도 없었는데.. 라는 멘트를 하고,

누군가 어디를 간다 그러면, 

오.. 나도 거기 가봤는데... 또 가고 싶네. 라는 생각만 속으로 하고 있겠지.



지금 돌이켜보면 여행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특히 요즘 사진정리를 하다보면,

좀 이쁜 옷 좀 입고 다닐껄...

사진 좀 이쁘게 찍을껄...

출판을 목적으로 글이라도 좀 써볼껄...

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지만 앞으로의 내 인생의 방향에 아무런 걱정도 들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하듯이,

난 2억이 있어도, 시간이 많아도 아무나 갈수 없는 세계일주를 다녀온 몸이니까.

앞으로 쥐죽은듯이 회사업무에 파묻혀 살아도 여한이 없다.

그게 내 지금의 진실된 속마음이다.


새장 밖의 세상이 어떤지 알고 있으니까,

지금의 나는,

너무 피곤해서 하루종일 잠만 잤던 이스탄불에서의 내 모습과 같이,

조금은 안락하고 깨끗한 호스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새장 밖으로 날아갈 수 있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