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눈뽕을 날린다.


아오. 누가 팀킬이야. 쳐다봤더니 누군가 나한테 쏼라쏼라 거린다.


^%$%!$#%! 꽈뜨로 %!%#!$#... 라고 하는걸 보니 우리 4명 일어나라는 얘긴거 같다.


불도 없이 깜깜한 상태에서 짐을 챙겨서 1층으로 내려갔다.





폭풍같이 장비를 챙긴다.


장비를 보면 알겠지만 벌써 간지폭풍이 밀려온다.


개인적으로 등산화랑 바지를 이어주는 저 덮개가 가장 멋졌던걸로 기억한다.


등산화는 눈위에서 걷기 위해 제작된 등산화로써 스노우보드 탈때 신는 신발과 비슷하게 생겼다.


대신 더럽게 무겁다.


안에 양말을 3개씩 껴신었다.





아직까지는 쌩쌩한 진희의 모습이다.


처음에 팀을 나눌때 모습인데, 원래 나랑 남동생분 한팀, 진희랑 여동생분 한팀. 이렇게 팀을 짜줬다.


하지만 장모님께서 진희 손 꼭 붙잡고 다니라고 말씀하신것이 생각나서,


가이드한테 진희는 미 에스뽀사.(내 부인입니다.) 나랑 무조건 같이 가야된다고 우겨서 팀을 바꿨다.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난 헬기가 구조하러 오는 한이 있더라도 정상을 찍을꺼고, 진희는 같이 가면 무조건 정상을 찍을만한 여자라는걸.





헤드랜턴을 키고 가면 이렇게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가 가장 앞에 서서 나와 진희를 자일(등산용 밧줄)로 묶은 다음에 끌고 간다.


가이드가 길을 찾아 걸어가면, 진희가 가이드를 따라가고, 내가 마지막에 진희를 보고 걷는 방식이다.


세명을 자일로 왜 묶냐면....


이 동네에 크레바스가 상당히 많아서, 길을 조금만 잘못 들면 몇십미터 아래로 떨어져버리기 때문이다.


밤에는 아무것도 안 보여서 몰랐는데, 해 뜨고 나서 하산할때 보니까 꽤나 위험해 보였다.





처음 5100미터정도부터 계속해서 급경사만 이어진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처럼 경사 올라가서 능선 타고 다시 경사 올라가서 능선 타고가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경사만 타고 올라간다.


처음에는 진희 호흡관리 해주느라 큰소리로 호흡도 하고, 뒤에서 힘 내라고 소리도 질러주고 했는데,


망할. 마지막쯤 가니까 진희고 뭐고 내가 죽겠더라.


정말 심장이 터질만큼 아팠다. 이러다 심장마비 걸리는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각하게 아팠다.





한손으로는 자일을 잡고 가고, 한손으로는 저 아이스피커를 찍으면서 간다.


가이드가 길에 맞춰서, 어떤 손으로 아이스피커를 찍을건지 어떤 손으로 자일을 잡을건지 얘기해준다.


참고로 가이드는 우리나라 나이로 50세이며, 24년간 와이나포토시를 올랐다고 했다.


정상까지 갔는데도 호흡 하나 안 틀어지고,


정상에서는 어디론가 전화도 하는 여유를 보여 우리를 놀라게 만들었다.





거의 정상에 오른 다음의 모습이다.


잘 보면 사진 가운데 점 두개가 있는데.. 그게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5500미터가 넘어서자 호흡이 너무 가빠서 천식환자 같이 호흡을 하기 시작했고,


심장이 너무나 아파서 제대로 걸을수가 없었다.


그나마 중간에 동생분이 합류해서 4명이서 걸으니 걸을만 했다.


여동생분은 올라오다가 고산병으로 인해 하산하셨고, 남동생이 우리 팀에 합류하게 됐다.





마지막 6000미터쯤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쯤되니 가이드가 이곳은 여자가 올라올만한 곳이 아니라면서 진희에게 쉴 것을 권유했다.


근데 정상이 코앞인데 그 누가 쉬겠는가..


난 계속해서 가이드한테, 천천히 가면 충분히 갈수 있다고 걱정말고 가자고 재촉했다.


길을 보면 한사람이 지나가기도 힘든 능선이다.


등산화 두개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는 떨어지는 수준의 좁은 길이었다.


아이젠까지 끼고 있는 상황이라, 잘못 걷다가 아이젠이 바지에 걸리면 그대로 죽을수도 있는 길이었다.


정상이 보이니 심장이 아프거나 호흡이 가쁜건 버틸수 있겠는데... 길이 너무 좁아서 무서웠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게다가 4명이 자일 한개로 연결되어 있는 상황. 누구 한명이라도 실수하면 4명이 모두 골로 가는 상황.





정상에 오르자마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우리 카메라는 배터리가 방전되서 더이상 사진을 찍을수 없었다.


손이 얼어붙어서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데 힘들었다.


정상은 가로세로가 4X4미터정도밖에 안되는 좁은 공간인데다, 경사가 매우 심했다.


엉덩이로 앉아 있으면 미끄러져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수준이었고,


앉아있을때도 아이젠으로 땅을 찍어놓고 쉬어야만 했다.





정상에서 찍은 셀카.


정상에 오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뭐 감동 받거나 힘들어서가 아니라... 오른쪽 손에 동상이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른손의 새끼와 넷째 손가락이 떨어질듯이 아팠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더니 가이드가 빨랑 오른손에 오줌을 싸란다.


정말 진지하게 오줌을 싸서 녹이려고 했으나, 우선 바지가 3겹이라서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너무 미친듯이 아파서 울었다.


이 동상은 2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다. 새끼손가락은 괜찮아 졌는데, 넷째 손가락은 아직도 감각이 없다.


몇일 있으면 괜찮아 지겠지.





이 사진부터 끝까지는 여행중 만난 좋은 벗. 치훈씨가 찍어준 사진이다.


사진 찍는걸 좋아하고 잘 찍는 동생분이고, 산 타는 것도 좋아한다.


진희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친구인데다 남미 와서 힘들었던 트래킹은 전부 이 친구랑 했다.


남의 사진이라 서명은 넣지 않았으니 양해 바람.





가이드가 찍어준 단체 사진. 정상에 올라오니 너무 무서웠다.


다른 팀들도 같이 올라온 바람에, 자일들이 서로 엉켜 있고, 조금만 실수해도 다 골로 가는 상황.


정상에 올라왔다는 안도감 보다는, 여기서 떨어지면 무조건 즉사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산 뒤쪽의 모습이다. 말 그대로 낭떠러지.


오른쪽을 보면 우리가 올라온 길들이 보인다.


지금 봐도 아찔하다.


해가 뜨기 전에는 무조건 정상으로 간다는 생각만 가득해서 몰랐는데,


해 뜨고 나서 보니까 오줌 지리도록 무서웠다.


볼리비아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이 위험한 길을 통제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우리를 위해선가.ㅎㅎㅎ





처음 올라와서 해가 뜨기 전에는 저 구름들이 모두 눈으로 보였다.


내가 올라온 길이 이렇게 넓었던가.


설산이 뭐 이리 끝도 없이 펼쳐져 있나... 싶었는데 해 뜨고 나서 보니까 모두가 구름이었다.


구름 위에서 보는 일출.





만년설이 덮힌 산들이 저렇게 까마득히 아래에 보인다.


아래쪽에 우리가 올라온 길들을 보면 아직도 아찔해진다.


보면 오른쪽 능선을 탄게 아니고, 암석 바로 오른쪽 발길들을 따라 올라왔다.


저 아래쯤에서 가이드가 한시간 남았다길래 정상을 봤는데 한참 남았길래,


이걸 뭔수로 한시간에 올라가나. 저렇게 능선 타면 3시간은 걸리겠구만... 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한시간 걸렸다. 그냥 직선으로 뚫었다.





어떤게 설산이고 어떤게 구름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내가 6천미터에 올라왔다는것보다, 진희와 함께 올라왔다는 것이 더욱 의미있었다.


뭔 자신감인진 몰라도, 난 기어서라도 올라왔을거라고 생각했다.


진희가 꼭대기까지 올라와준게 너무나 감사했다.


정상에 가니까 여자라고는 진희 말고 한명밖에 없었다. 딱 봐도 산 잘타게 생긴 게르만족 같은 여자애 한명.





이 친구 사진 잘 찍는구만.


정상에서는 사진 찍을 시간 10분정도밖에 주지 않는다.


왜냐면 빨랑 내려가야지 가이드가 빨랑 퇴근하니까...


등산속도에 비해 하산속도가 현저히 느린 우리에겐 하산이 더 힘들었다.





말 그대로 급경사. 지금 봐도 아찔하네.


우린 해냈다. 진희는 중간중간 못 올라가겠다고 내려가야겠다고 했지만,


가이드가 한명인 상황에서 진희가 내려가면 우리 모두 내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진희는 끝까지 올라와줬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와이프다.


진희는 이제 애도 낳을수 있겠다고 얘기했다.


아직 안 낳아봐서 그런말 하는거겠죠.





계속 앉아만 있다가, 용기내서 일어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일어나는데 계속 다리가 후덜거려서 힘들었다.


다리 힘이 풀린건 아니었는데... 너무 무서웠다.


자꾸 무섭다고 하니까 찐따 같은데, 진짜 무서웠다.





중간에 고산병이 오는거 같아서, 진희랑 같이 약도 한알씩 먹었고,


처음부터 중간까지 계속해서 코카잎을 씹어댔다.


코카차도 쉴새 없이 마시고, 숨도 몰아쉬어보고...


마지막으로, 5500미터부터 6088미터까지.. 1미터에 한번씩 욕을 했다.


한걸음 걸을때마다 욕 한번씩 했다. 


아오. 내가 왜 내돈 내고 이 고생을 해야되냐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 질렀다간 눈사태는 둘째치고 고산병으로 쓰러질까봐 자제했다.





하산할때는 너무 힘들어서 그냥 자빠져버렸다.


진희랑 동생분은 잘 걸어내려오는데, 나 혼자 자꾸 발이 엉켜서 몸개그를 펼쳤다.


가이드가 계속해서 재촉하는 바람에, 쉬자고 말도 못하고,


게다가 하산할때는 내가 앞장서고 가이드가 가장 뒤에 서서 왔다.


그래서 쉬고 싶으면 그냥 배째라고 누워 버렸다.





뒤쪽에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면 그냥 경사다.


뭐 이리 무식하게 길을 만들어놨나 모르겠다.


크레바스를 피하기 위함인지, 빨리 올라가기 위함인지 모르겠다.


서로 묶여있는 저 자일은 베이스캠프 내려올때까지 유지됐다.


저거만 없었으면 난 그냥 자빠져서 미끄럼 타고 내려왔을꺼다.





이렇게 길 바로 옆에 크레바스들이 산재해 있다.


내려올때는 사진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그냥 빨랑 쉬고 싶어서 사진이 별로 없다.


고산병 때문에 생각보다 정상에 올라가는 사람이 별로 없단다.


근데 난 올라갔음. 내가 짱임.





베이스캠프에서 두꺼운 고산용 등산복은 다 벗어버리고 찍은 사진.


아. 지금 생각해도 대견하네. 


물론 진희가.




 


새벽 1시에 출발해서 아침 7시에 정상에 올랐고,


7시 반쯤 하산 시작해서, 12시쯤 되서 차가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12시쯤만 되도 이렇게 구름이 가득 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세계일주를 하면서 가장 높은 곳일거라고 예상되는 곳을 올라왔다.


6088m.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지 않는 높이다.


우리가 이곳에 올라갔다는 사실도 잘 와닿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참으로 의미 있는 등반이었고... 진희와 함께해서 더욱 더 의미 있었던 등반이었다.


6088m까지 등반해본 와이프 가진 남자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이제 남은건 7천미터급 고봉. 근데 여기까지 올라가면 난 마이크로소프트 잡지가 아닌 월간 산에 나오겠지.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