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타고온 에어 인디아는 나름 괜찮았다.


좁디 좁은 이코노미에서 자는 것도 익숙해지고 있는데, 이제 곧 한국이다.





우리가 홍콩에 도착한 건 아침이었다.


역시 홍콩.


나는 홍콩이 처음이었지만, 진희는 두번째 와보는 거였다.


그래서 그런지 잘난척 쩔음.


은 농담이고, 덕분에 마음이 매우 편안했다. 왜냐면 아무것도 알아볼 필요가 없으니까요.ㅎ



게다가 홍콩에는, 진희의 회사동료 중에 현재 스튜어디스를 하고 계신 분이 살고 계셔서,


더욱 마음이 든든했다.





인도에서는 나름 간지나는 배낭이었는데,


홍콩에 오니 초라하기 그지 없다.


에어 인디아에서 같이 내린 인도인들도 삐까번쩍한 캐리어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데...


나름 G20개최로 450조의 경제효과를 얻은 대한민국 국적인 우리는,


다 찢어가는 배낭을 질질 끌고 내리다니....



배낭커버는 다 찢어져서 버렸지만, 저 위에 있는 인도에서 산 알록달록한 짐가방은 지금도 잘 쓰고 있다.


스키장이나 어디 놀러갈때 아무거나 다 쑤셔넣는 용도로 짱임.





스튜어디스 언니와 만나기 위해, SIM카드를 하나 샀다.


홍콩에 온 목적은 별거 없었다.


스튜어디스 언니를 만나는 것과,


너무너무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은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쇼핑.


역시. 스트레스 해소에는 쇼핑이죠.



사실 이제 남은 돈이 별로 없어서, 아무것도 살 생각이 없었으나,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 여행경비의 5%정도쯤에 해당하는 물건을 덜컥 사버리게 된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공항 자동문을 통과하는 그 순간.


입에서는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정말 처음 경험해보는 습도였다.


안경에 김이 낄 정도로, 바깥공기는 덥고 습했다.


사우나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습했다.



뭐랄까... 어릴적에 목이 부어서 이비인후과에 가면,


빨간색 조명이 있는 가습기 같은거에 목을 대고 있으라고 했는데,


그때 느낀 그 느낌이었다.


뭔가 텁텁하고 불쾌지수가 마구 올라가는 그 기분.



홍콩에 있으면서 가장 놀란게 바로 이 후덥지근한 날씨.


그리고 그와 반대로, 조금이라도 밀폐된 공간이라면 너무할 정도로 빵빵하게 틀려져 있는 에어컨이었다.


버스, 지하철, 쇼핑몰, 숙소 같은데에는 추위를 느낄 정도로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다.



참고로,


버스 중간에 굴러다니는 저 회색물체는,


내 배낭이다.


괜찮아. 소똥밭에서도 굴러먹은 배낭인데 이정도 버스바닥이라면야 땡큐지.





공항에서 버스를 탄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항구가 나타났다.


홍콩이 항구도시라는게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날씨도 그렇고, 항구를 따라 거대하게 늘어서있는 기중기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독일 함부르크가 떠올랐다.


그때도 이런 우중충한 날씨에 차를 타고, 저 멀리 항구에 서있는 기중기들을 바라봤었는데...





숙소 도착.


외관 사진은 없다.


왜냐면 숙소 빌딩이 너무 높았다..;;;;


그리고 비정상적일 정도로 좁고,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사진을 찍을수가 없었다.



이건 숙소에서 바깥 풍경을 찍은 사진인데,


홍콩의 땅값이 비싸다는게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허가도 안나올만큼,


좁고 높은 빌딩들만이 가득했다.





여행을 하면서, 어딘가로 이동하고 나면 도착하자마자 하는 일들이 있다.


빨래 그리고 취침.


홍콩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열심히 빨래를 하고, 그리고 낮잠을 잤다.


숙소가 좁은것 빼면 꽤 괜찮은 편에 속하는 호텔이었다. (정확히는 뭐 부띠끄 호텔인가 뭐라고 부르는거 같던데....)



그렇게 한숨 자면서 체력을 회복한 우리는, 바깥구경을 나섰다.


처음 간곳은 숙소랑 가까이에 있던 IFC몰이다.


국제금융빌딩? 여의도에 생긴 건물이랑 똑같은 이름이었는데,


내부에는 없는게 없을 정도로 많은 매장과, 음식점들이 가득했다.





IFC몰에는 명품샵들이 많았으나, 우리는 명품에 별 관심이 없는 관계로.


애플샵만 둘러보고 나왔다.


IFC몰 한가운데에는 엄청난 크기의 애플샵이 있었는데,


한쪽이 전부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깥풍경도 제법 멋졌다.


지금 위에 있는 사진이 애플샵에서 찍은 바깥 풍경이다.



홍콩의 야경이 유명한데는 다 이유가 있는거 같다.


낮에 보면 건물들이 너무 제각각이라서 하나도 안 이쁨..;;;





IFC몰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보니, 스튜어디스 언니를 만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Jordan역으로 갔다.


Jordan역에는 템플스트릿 야시장이 있는데,


거기서 노상음주를 즐길 예정이었다.





초상권 협상이 안된 관계로,


스튜어디스 언니도 뒷모습만 찍었다.



몇번이나 말했지만, 외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색다른 일이다.


한국에서도 같이 밤거리를 걷고, 술을 마시고, 이것저것 떠들었었지만,


외국에서 그러고 있자니, 모든것이 새로워지는 느낌이다.



스튜어디스 언니는,


예전에 진희가 다니던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다가,


과감하게 사표 쓰고 나오셔서, 지금은 캐세이 퍼시픽에서 비행기를 타고 계신다.


매우 이국적으로 생기셨음.





이곳에 바로 템플 스트릿 야시장이다.


왠지 우리나라 을지로쪽에 밤마다 생겨나는 야시장을 보는 것 같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테이블을 점령하고 있었다.


대다수가 중국인처럼 보이는 아시아인들이었지만,


거의 1/3정도는 외국인이었다.



홍콩의 역사를 안다면 별로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사실 난 그런걸 모르는 상태라서 꽤나 신기해했었음.





홍콩에서 거주중인 분과 함께라서,


우리는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뭐 어떻게 시켜먹는거지?


어떤 메뉴가 맛있는거지?


바가지 쓰면 어떡하지?


계산은 어떻게 하는거지?


아무런 고민이 필요 없다.


그냥 거주민이 시키는대로만 하고, 시켜주는 음식 먹으면 됨.



참고로 왼쪽 휴지 뒤쪽에 있는게 메뉴판인데... 뻥 안치고 메뉴가 100개가 넘는거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홍콩의 왠만한 음식점은 저렇게 메뉴판에 그림이 있어서 대충 감은 잡을 수 있다.



우리가 먹은건,


청경채 볶은거랑... 꼬막조림 비슷한거랑.. 새우꼬치튀김이랑... 매콤한 볶음밥?


그리고 맥주.


맥주. 그리고 또 맥주.





야시장에서 거나하게 한잔씩 한 우리는 좀 걷기로 했다.


밤이 되도 습한 날씨는 여전했다.


정말 온몸에 땀이 비오듯 흘렀다.



차라리 이렇게 땀이 무진장 나면 상관없다. 상쾌하기까지 하다.


제일 짜증나는건 땀이 살짝 흐를랑말랑 거릴때.


매우 빡침.





우리는 침사추이라는 동네까지 걸어서 갔다.


중간에 잘 걸어가고 있는데, 스튜어디스 언니가 갑자기 고급호텔로 들어가신다.


영문도 모르는 우리는 거기가 목적지인줄 알고 따라들어갔는데,


갑자기 호텔 로비에 앉으신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그냥 더워서 땀좀 식히고 갈라고 들어오셨단다.



흠.


홍콩에서 이런건 매우 흔한일인거 같았다.


밖이 워낙 더운데, 건물 안은 추울 정도니까,


막 걷다가 더우면 잠깐 건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땀이 좀 진정된다.



여하튼, 그렇게 침사추이까지 가서 우리가 간 곳은,


Ned Kelly's Last Stand라는 재즈바였다.


아.. 왠지 거주민들만 오는 비밀장소에 온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우쭐해졌다.


(사실 알고보니 꽤 유명한 곳이었음..;; 난 또 나만 아는 곳인줄 알았네.)



한국에서도 안가본 재즈바인데 홍콩에서 가게 될 줄이야.


재즈바 자체도 신기했지만, 외국에서 간 재즈바라서 더 신기했던거 같다.


가장 신기했던건,


호가든 맥주를 시켰더니, 한손으로는 못들정도로 큰 잔에 맥주가 나왔다..;;;;


그래서 어린이가 물 마시듯이 두손으로 맥주잔 잡고 마신 기억이 나네.





그렇게 신나는 토요일 밤을 즐기고나서,


스튜어디스 언니 배웅을 위해 나이트버스 타는 곳으로 갔다.


나이트버스 타는 곳을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갔어야 됐는데,


이왕 지하철 탄김에, 우리나라 홍대랑 비스무리한 란콰이퐁을 들렀다 가기로 했다.



난 클럽도 안가봤고, 밤에 홍대도 안가봐서 잘 모르겠으나,


다들 비슷하다고 하니 그냥 이런가보다 싶다.


란콰이퐁은 젊은 사람들이 길에서 술도 마시고, 곳곳에 큰 소리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곳이었다.


클럽도 많아 보였고, 그냥 술집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길거리에서 손에 맥주병을 들고 큰소리로 떠들고 있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근데 우리랑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우린 쭈글이들이라서 이렇게 흥이 많고 음악이 큰 곳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분위기정도만 느끼고,


나이트버스 타는 곳으로 가서 스튜어디스 언니를 배웅해줬다.



참고로 버스 기다리다가 들은 얘긴데,


여기 어딘가에 드래곤 호텔?? 뭐 그런곳이 바로 장국영씨가 자살하신 곳이란다.


흠... 뭐 건물구조를 말씀해주시면서, 자살할 수 없는 층이었는데 자살을 했다고 뭐 그런식으로 말씀하셨는데,


잘 모르겄음.





어느덧 새벽 1시가 넘었다.


남미에서는 위험하니까,


유럽에서는 운전하느라고,


아프리카에서는 밖에 사자가 있어서,


인도에서는 할게 없어서.


밤 1시 넘어서까지 돌아다녀본적이 없었던거 같다.



우리끼리 왔더라면 절대 느껴보지 못할 홍콩의 밤거리를 선사해준 스튜어디스 언니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다.



사진은 뭐냐면,


써클K라고... 예전에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편의점이라 반가워서 찍어봤다.


우리집앞에 처음 생긴 편의점이 써클K였는데... 얼마 못가서 망했지...;;;





뭔지 모르게 마음에 드는 사진 중 하나다.


좁은 골목. 오래되고 좁지만 높은 빌딩들.


좁은 골목 위로 비정상적으로 커보이는 간판들.



내가 영화에서나 봐왔던 홍콩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제 홍콩이다.


모든 것을 잊고 즐기고 놀고 마실 일만 남은 이곳이 바로 


홍콩이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