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동안 계속 자는둥 마는둥 하다가 일어났다.


자다가 눈을 떠보면, 자다가 오줌을 쌌는지 착각될만큼 침대가 눅눅하게 젖어있다.


헉헉...


이건 뭐 아.. 벌써 5시야... 몇시간밖에 더 못 자잖아...ㅠ 가 아니고,


아.. 아직도 5시야... 몇시간만 더 자면 일어날수 있다. 수준이다.


아루샤로 가는 버스는 대략 12시간쯤 걸렸던거 같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짐을 싸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타고 갈 킬리만자로 버스다.


잔지바르 갈때도 킬리만자로 페리를 탔었는데, 이번에도 킬리만자로다.


내 생각에는 아프리카 최고봉이 킬리만자로라서 그런지,


왠만한 고급물건들은 전부 킬리만자로라고 이름 붙인거 같다.



다행히도 우리를 제외하고 몇명의 외국인이 더 있었다.


이렇게 버스를 타거나, 사파리를 갈때 우리 말고 외국인이 더 있는것과 아닌것은 차이가 크다.


우선 백인이 함께 있으면 훨씬 안전함.


왜냐믄, 모든 시선이 백인에게 쏠리는 데다가,


버스에서 내렸을때도 왠만해선 삐끼들이 전부 백인에게 달라붙는다.


걔네는 우리보다 돈이 많다는걸 경험으로 꺠달았나보다.



게다가 매우 매너도 좋은 백인들이라서,


20키로에 육박하는 진희의 가방도 한손으로 번쩍 들어서 옮겨주었다.


(덩치가 겁나 큰 백인 4명이었음.)





이제 드디어 아프리카에서 타는 마지막 버스다. (라고 이때는 생각했음.)


흑형들은 대낮에도 길거리에 앉아있지만, 아침에도 앉아있는다.


도대체 이 길 한복판에 왜 앉아있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그래도 다들 이렇게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있다.


내 생각에는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려고 앉아있는걸로 보인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남미, 인도 등등은 아직도 캔음료보다는 병음료가 더 많다.


병이 캔보다 보관하기가 더 쉽나? 가격이 싼가?


캔음료는 보기도 힘들뿐더러, 가격도 더 비싼게 희한함.



여하튼 이 버스는 고급버스라 그런지,


중간중간에 마실음료를 주는데... 이렇게 병음료로 준다...;;;


버스 출발할때, 갑자기 차장이 병음료가 가득 든 박스를 턱하니 올리길래,


저런것도 버스택배로 보내나? 라고 의아해했는데,


알고보니 우리 주려고 박스채 사온거였음.ㅎ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병콜라를 마시다보면 언제나 부시맨이 생각난다.





아무리 무서운 흑형들이라도 밥은 먹고 살아야겠지.


어느정도 가다가, 휴게소 같은데 내려준다.


친절하게 저기서 식사하시고 언제까지 오세요~ 이런 안내따윈 없다.



버스가 서기가 무섭게, 버스기사가 먼저 튀어나가서 밥먹으러 감.


우리는 무조건 그 사람을 따라가서 밥을 먹고, 그 사람이 다 먹었다 싶으면 우리도 후딱 다 먹어치우고,


바로바로 그 사람을 따라 다녀야 됨.


괜히 재수없으면 버스 놓치고 사자밥이 되는수가 있다.





근데 여기서는 버스기사가 너무 잽싸게 사라져서, 우리는 이 백인들을 따라다녔다.


딱 봐도 아프리카 여행 10년차쯤 되보이는 관록의 여행객 포스를 풍기는 사람들이었다.


흑형들에게도 전혀 꿇리지 않고, 당당한 저들의 모습이 참으로 부러웠다.



뭘 어떻게 먹어야 되는지 고민하다가,


그냥 저 사람들이 먹기래 우리도 따라 먹었다.





이게 바로 휴게소에서 사먹었던 부페임.


그냥 접시 하나 들고, 쭉 걸어가면서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하면서 퍼담으면 된다.


얼만큼 먹든지 그냥 접시 하나당 가격을 매긴다.



맘 같아서는 더 먹고 싶지만, 버스에서 배라도 아프면 지옥을 경험하게 되므로,


그냥 최소한으로 먹었다.





밥을 먹고나서 한참동안을 더 가다보니, 이상한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백인 4명이 우루루 내린다.


보니까 킬리만자로 등반을 위한 전초기지인 '모시'라는 마을이다.



저 백인 4명은 킬리만자로 등반을 위해 아프리카에 온 산악인들이었음.


얼핏 들어보니 2명은 예전에도 킬리만자로에 올라갔다 온 경험이 있단다.



창문밖으로 구경을 했는데,


역시나 백인 4명이 내리니까, 온갖 삐끼들이 다 달라붙는다.


숙소삐끼, 택시삐끼, 킬리만자로 등반삐끼 등등...


(킬리만자로는 단독등반이 불가능하고, 법적으로 꼭 가이드랑 포터를 데리고 가야 한다고 함.)



근데 이 간지나는 백인들은 전혀 꿇리지 않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난 여기 두번째 온거라 다 알고, 숙소도 예약했고, 난 택시보다 걷는게 더 좋다.'


그랬더니, 모든 삐끼들이 바로 체념하고는 사르륵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는 그들은 자유롭게 천천히 걸어간다.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는다.



헐.... 간지난다.


물론 저 백인들은 키도 190쯤 되는데다가, 양쪽 팔을 가득채운 문신과, 딱 봐도 험악해 보이는 인상을 갖고 있긴 하지만,


분명 나도 항상 저렇게 말하는데, 왜 나는 말을 하면 할수록 삐끼들이 더 달라붙는거지?





그리고 순식간에 건너뛰어서 이 사진인데,


이 사진을 찍기까지의 얘기를 해보자.



모시에서 조금 더 가니까, 세렝게티 초원의 전초기지인 아루샤 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아루샤의 삐끼는 상상을 초월하므로 항상 조심하라고 써있었다.


어차피 여행하면서 수많은 삐끼와의 전투를 치뤘음으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딱 내렸는데...



진짜 삐끼들이 무식하게 달려든다.


각종 명함을 내밀면서 숙소, 사파리 삐끼들이 달려든다. 이런 망할!!! 


짐도 못 찾을정도로 달라붙길래, 바로 옆에 간판이 보이는 숙소를 가리키며,


'난 이 숙소 갈거라서 택시도, 숙소안내도 필요 없어.' 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다른 숙소 명함을 들고 있던 놈이, 그 숙소 명함도 꺼내면서,


자기가 거기 매니저니까 자기랑 같이 가잖다.


됐다고 아무리 말해도 계속해서 따라온다.


'아 몰라... 따라오든지 말든지, 어차피 숙소에서 커미션 받는거니까 나랑은 상관 없겠지.' 라는 생각으로 같이 갔다.



근데 숙소 상태가 별로였음.


어쩔까 고민하다가, 그냥 원래 우리가 봐둔 숙소로 가기로 했다.


꽤 거리가 있긴 했지만, 택시기사랑 쓸데없이 흥정하느니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가는 내내... 정말 '이 새킈는 미친건가? 뭐 약 같은걸 한건가?' 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삐끼들이 달려든다.


거긴 너무 멀다는둥, 다른 숙소 가자는둥, 자기 택시 타라는둥, 자기가 어디 매니저라는 둥...


너무너무 짜증나서 상대방이 흑형이라는 것도 망각한채,


길거리에 서서 한마디 했다.


'이 싸발... 됐으니까 그만 따라오라고! 그만 얘기해!!!' 


그랬더니 진희가 날도 어두워지는데 여기서 싸우면 위험하다고 무시하고 그냥 가잖다.



가면서 경찰이 보이길래 가서, '얘 삐끼인거 같은데, 제발 좀 가라 그래줘.ㅠ' 라고 했더니,


경찰이 웃으면서 말한다.


'ㅎㅎ... 그냥 쟤 따라가면 돼.'


이런 망할 아프리카. 경찰도 삐끼랑 아는 사이인가 보다... 엉엉... 답이 없다. 노답임.



여하튼 그렇게 주구장창 걸어가다가, 숙소를 발견했는데, 외국인에게 꽤 유명한 숙소다.


숙소 앞에는 흑형이 20~30명쯤 몰려있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다 삐끼였음.


우리를 보자마자 와구와구 달려든다.


이 숙소는 자리가 없다는둥, 뭐 저기 숙소가 더 좋다는둥, 사파리 안할꺼냐는 등등... 망할!! 그만해!!!


그러던중 가장 힘쎄보이는 놈이 다 정리하고는, 자기가 거기 매니저라고 들어가잖다.



들어가서 리셉션에 물어봤더니, 진짜 방이 없다...;;


그래서 저 힘쎄보이는 놈이 여기 매니저라는데 진짜냐고 물어봤더니, 뭔 소리냐고 모르는 사람이란다.


가뜩이나 빡쳐있는데 거짓말까지 한게 더 빡쳐서,


흑형이고 나발이고 진희가 따졌다. 너 매니저 아니라는데? 뭔 개솔임? 이랬더니,


뭐라뭐라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는다.


뭐 자기가 매니저긴 한데, 여기 매니저는 아니고 뭐 정부 소속이고 어쩌고 저쩌고...


더 들어줄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냥 숙소를 나와서 다른 숙소를 찾기로 했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알아봐둔 숙소는 자리가 없고... 어디로 가야될지는 모르고... 날은 어두워졌고...


엉엉... 이제 남은건 삐끼에게 잡아 먹히는 수밖에 없다.


결국 또 다시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삐끼들중 가장 힘쎈놈이 우리를 끌고 어디론가 간다.


(버스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오며 끊임없이 귀찮게 하던놈은, 이 힘쎈놈에게 쥐어터질뻔 하고는 한발자국 멀리 떨어져서 따라옴.)



원래 삐끼라는게, 한명을 따라가고 있으면 다른 삐끼들은 안 달라붙는게


이 동네의 상도덕이다.


허나 이 동네는 상도덕따위는 코뿔소한테 팔아먹었는지, 삐끼를 따라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쉴새없이 달라붙는다.


그러면서 서로 지 손님이라고 치고 박고 싸울라고 그런다. 막 소리 지르고 때릴라고 그러고... 개판이다.


결국 안내해준 숙소로 들어갈때, 우리 주변에는 서로 자기 손님이라고 우기는 삐끼 4명이 달라붙어 있었다.



근데 이게 왠걸.


가끔씩 있는 일인데, 삐끼를 따라간 숙소가 더 싸고 괜찮은 곳이었다.


오호... 방을 보여달라 그러면서 리셉션 직원과 같이 방에 들어간 다음에 우리는 말했다.


'쟤네들 전부 삐끼인데, 다들 미친거 같다. 진짜 빡쳐서 돌아버릴뻔 했다. 어떻게좀 해주세요.' 라고 했더니,


리셉션 직원이 말하길,


'우리도 쟤네 싫어. 쟤네는 다른데서 손님을 데려오는것도 아니고. 그냥 숙소 입구에 서있다가 이 숙소 들어오려는 사람 옆에 붙어서 같이 들어온 다음에,


자기가 멀리서 데려왔다고 뻥치고는 커미션을 달라고 한단말야. 나도 짜증나.'


라고 얘기했다.



아... 그래서 그렇게 숙소 앞에 삐끼들이 많았구나.


이 망할 흑형들은 뭔가 열심히 삐끼 해온 다음에 커미션을 받는게 아니고,


그냥 숙소 앞에 죽치고 있다가, 자기들이 알아서 찾아온 손님들을 마치 자기가 데려온것처럼 입구에서 데려간 다음에 커미션을 뜯어내고 있는거였다.



결국 리셉션 직원이 말하길,


'너희가 지금 나오면 100% 삐끼들한테 팁을 뜯길거니까 그냥 얌전히 여기서 문 잠그고 있어라.


나중에 쟤네들 다 가고 나면 그때 체크인 하자.'


라고 한다.. 엉엉... 이런 착한 흑언니를 봤나.



여하튼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방에서 씻고, 흐트러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숙소에 딸린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시켜먹은 마음의 평화를 위한 맥주임.



전세계 수많은 삐끼들을 만나봤지만,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심하다는 이집트 카이로의 삐끼들도 상대해봤지만,


난 아루샤의 삐끼들이 가장 빡쳤던거 같다.





위의 맥주는 킬리만자로 맥주고, 이건 세렝게티 맥주임.


둘다 정말 아프리카스러운 이름이다.



우리는 이때 결심했다.


후딱 세렝게티만 보고, 뭔수를 써서라도 바로 이집트로 가버리자고...


원래는 케냐를 거쳐, 에디오피아 북부까지 가서 수단을 통해 이집트로 가려고 했으나,


아프리카를 여행하기에는 우리의 내공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냥 다 패스하고 이집트로 가기로 했다.



아루샤.


지금도 이 이름만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삐끼들에게 혹사당한 곳이다.


근데 지금까지 시달린건 숙소삐끼였다는 것이 함정임.


아루샤의 진정한 삐끼는 바로 세렝게티 사파리 삐끼다.


가뜩이나 체계도 없는 아프리카에... 세렝게티라는 어마어마한 관광자원이 있고,


한사람당 몇십만원이 왔다갔다 하는 엄청난 사업 아이템이다 보니,


그 사파리 삐끼들의 집요함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그 삐끼들. 내일 만나러 갑니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