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와인이랑 이탈리아 술이랑 야무지게 마신 다음에,


오랜만에 오리털 이불 덮고 푹잠을 잔 덕에 몸이 매우 가벼워졌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환타님이 차려주신 북어국까지 먹고나니 떠나기가 싫어졌다.


이집 문밖을 나서면 또 다시 지옥이 우리를 기다리겠지...





그렇게 비첸차를 떠나 열심히 북쪽으로 향했다.


원래는 베로나 라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동네에 가려고 했으나,


그곳에 있는 줄리엣의 집은 그냥 관광용이라는 말에 급실망하고 차를 돌려 돌로미티로 향했다.



돌로미티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알프스 산맥을 휘감고 있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면서 주변의 설산을 구경하는게 우리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신나게 돌로미티 로 쏘고 있는데....


비가 온다.


왠지 이때부터 뭔가 아니다 싶었어.





환타님의 초대에 부응하기 위해 입고 간 꼬까옷.


이 옷으로 말할거 같으면, 본인이 1년간 한 회사생활에서 퇴직금으로 받은 옷이다.


퇴직하던 날, 팀장님께서 진희랑 나랑 입으라고 커플티로 사주신 옷인데,


거의 9개월이 지날동안 한번도 안 입고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입었다.



맨날 아저씨처럼 아웃도어만 입고 다니다가, 오랜만에 이런 풋풋한 대학교 휴학생같은 옷 입고 다녔더니,


기분까지 휴학생스러워졌다.


귀국 후 취업걱정이 산더미구나.





점점 달리면 달릴수록 비는 거세졌다.


그러다가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르기 위해 간 동네에서는 ZTL까지 침범해버렸고....;;;


왠지 재수 없는 동네다 싶어서 그 다음 동네인 볼자노까지 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숙소를 구하려고 이리저리 알아보는데....


망할... 무슨 거지같은 숙소가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어쩔수 없이 계속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마을 전체를 돌아다녔고, (이탈리아답게 전부 비번 걸렸있음.ㅠ)


결국 어느 호텔 구석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면서 부킹닷컴 접속에 성공.


볼자노에서 30분 이상 떨어진 가루다 호수라는 곳 근처에 있는 숙소 예약에 성공했다.





어젯밤엔 분명히 닭도리탕에 와인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단 하루만에 갑자기 멘붕에 빠져버려 하루종일 패닉 상태였다.


비는 오고... 돌로미티 가는법은 정확히 모르겠고... 뭐 어디서 자야될지도 모르겠고...


엉엉...



사진도 별로 없는걸로 보니, 이날은 그냥 하루종일 멍한 상태로 운전만 했던거 같다.


진희랑 둘다 그냥 멍하게... 어제 먹었던 닭도리탕만 추억하면서 그렇게 달리기만 했다.





환타님이 말씀해주신것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거...


이탈리아는 대형마트에 가더라도 그 동네에서 나는 것들을 주로 판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더 선호한다는것...


그래서 우리도 이번엔 그 지역에서 나는 것들을 먹어보기로 했다.


(치즈 이름중에 가장 오른쪽인 TRENTO는 이 동네 이름임... 그 앞은 치르 종류인거 같은데 잘 모르겠음.ㅋㅋ)



게다가 치즈는 딱딱하고 노란색일수록 더 깊은 맛이 난다는 말씀에 따라, (깊은 맛이라 쓰고 발냄새를 맡지)


한번 사먹어 봤는데... 


와우~~~


분명 치즈가 랩으로 싸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랩을 한번 잡았다가 놓으면 손에서 발냄새가 나는 기적이 일어난다.


처음엔 좀 거부감이 들었지만, 계속 먹다보니까 먹을만 하더라.


입이 적응해서 그런건 아니고, 그냥 와인을 마셨더니 취해서 맛을 모른 듯 싶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