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아침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며, 오랜만에 누리는 천장 있는 방을 만끽했다.


비록 창문도 없는 완전 최하등급의 방이지만, 이게 나비막이랑은 차원이 다른 배인지라,


뜨거운 물도 잘 나오고, 시트도 편하고 매우 좋다.





원래 우리는 아침에 그 유명한 핀란드 사우나를 즐기려고 했으나,


전날 부페에 과도한 지출을 해버린 바람에, 사우나는 가뿐히 포기해버렸다.


미용실도 모닝펌이 싸듯이, 사우나도 아침에 하는게 오후에 하는거에 반가격임.



허나 단돈 4유로도 아껴야 하는 긴축재정모드로 돌입한 우리에게 사우나 따위를 즐길 여유는 없었음.


그렇게 대충 샤워하고 짐을 챙겨서 갑판으로 나갔다.


차를 가지고 탄지라, 남들보다 좀 일찍 서둘러야지 얌전히 차를 가지고 나갈 수 있다.





저 멀리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가 보인다.


사실 헬싱키인지 뭔진 잘 모르겠다만, 여하튼 우리의 목적지는 헬싱키임.



핀란드는 스웨덴에도 지배 당해봤고, 소련에게도 지배 당해봤고,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은 나라다.


그래서 지금도 공용어가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두가지다.


전체 국토의 1/4는 북극권인데다 인구는 우리나라 1/10 수준밖에 안되는 나라지만,


축복받은 북유럽 국가답게 막강한 교육, 복지, 사회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정치권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허나, 이 나라에 노키아가 있든 앵그리버드가 있든 정치권이 깨끗하든 말든...


관광지로써의 핀란드는 별로 볼게 많이 없는 편이다.


헬싱키야 수도니까 본다고 치고... 다른 곳을 굳이 보자면 싼타마을 정도?


하지만 싼타마을은 헬싱키에서 버스로 10시간 걸린다는게 문제점임.



캠핑 장비를 가득 실은 싸구려 르노차를 가지고 북극권에서의 드라이빙에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은 본인은,


그냥 헬싱키 하나만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보통 핀란드는 북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올때 스톱오버 형식으로 잠깐 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아. 그리고 노르웨이, 스웨덴과는 다르게 유로를 사용하고 있음.





핀란드도 잘사는 나라답게 캠핑장이 곳곳에 있다.


근데 보통 유럽의 캠핑장 시즌이 9월까지라, 문을 닫은 곳이 많아서 캠핑장 찾는게 좀 힘들어졌다.


그나마 좀 유명한 캠핑장으로 가서 텐트 자리를 하나 구했는데...



망할. 전기가 없다.


보통 유럽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사람들은 전기를 안 쓰나보다.


우리도 지금까지 텐트 치고 자면서, 텐트에서 전기 쓰는 사람은 우리밖에 못 봤음.ㅎㅎ



여하튼 텐트는 전기 못 쓰냐고 했더니, 전기는 캠핑카만 쓸수 있단다.


엉엉.. 우리 어떻게 좀 해주세요. 전기 조금만 쓸게요.ㅠ


라고 했더니, 이번만 예외적으로 캠핑카 사이트에 텐트를 치게 해주겠단다.


비수기인데다가 어차피 같은 공간을 쓰는거니까 그냥 텐트 치란다.



결국 저렇게 캠핑카가 주욱 늘어서있는 공간에 텐트 하나 달랑 쳤음.


주변 사람들이 자꾸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것 빼면, 땅도 평평하고 매우 좋았음.





핀란드 헬싱키에서 2박3일만 하고 바로 북유럽을 떠버릴 예정이었으므로, 쉴 여유따윈 없었다.


어차피 배에서 실컷 잤으니까, 바로 시내투어에 나섰다.


헬싱키에도 스톡홀름 카드와 똑같은 헬싱키 카드가 있지만, 우린 헬싱키 문화재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건 패스했고,


캠핑장이랑 시내를 왔다갔다 하기 위해서 24시간짜리 무제한 교통카드를 샀다. (어른은 7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대충 11000원)



근데 겁나 쿨하게 영수증 하나가 달랑 나온다.


마그네틱도, IC칩도 없는 그냥 종이 영수증이다... 이게 뭐지.


옆에 있는 현지인한테 물어봤더니, 그냥 타면 된단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플랫폼까지 가는데 아무런 장치도 없다.


덴마크랑 똑같은 시스템이다.


자기가 양심껏 표를 사서 다니고, 가끔 하는 검문에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되는 그런 시스템임.


운 좋으면 공짜로 타고 다니는거고, 운 나쁘면 거액의 벌금을 무는거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잘 끊고 타고 다니는거 같았다.



참고로 우리는 24시간동안 지하철, 트램에서 표 검사 하는 사람을 한번도 못 봤음.





무지하게 잘 사는 나라의 수도답게, 지하철도 복잡할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왠걸. 달랑 노선 하나가 전부다.


그나마 중간에 갈라지긴 하지만, 이게 지하철 노선의 전부다.


콜롬비아처럼 땅 자체가 지하철을 만들기에 부적합한건지...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여하튼 생각외로 매우 심플한 노선에 놀랐다.





어찌 보면 촌스러워 보이는 주황색으로 도배 된 핀란드 지하철이다.


만약 이걸 보고 촌스럽다고 생각하면, 당신이 촌스러울 확률이 더 높다.


여기는 세계 디자인의 중심. 핀란드니까요.


핀란드는 모든게 다 디자인이 들어가 있다. 하물며 공사장에서 쓰는 톱이나 망치까지도,


모두 북유럽 디자인이 녹아들어 있어서 그런지 예뻐보인다.


그렇다고 텐바이텐에 있는 싸구려 마데인짱깨 제품처럼 예쁘기만 하고 품질이 형편 없는것도 아니다.


북유럽 디자인의 특징인 실용성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 덕분에 쓰기에도 매우 편하다.



근데 비싸다는게 함정임.





요건 시내 중심에 있는 깜삐 라는 역이다.


무슨 2개의 버스 터미널과 지하철이 합쳐진 곳이라는데, 가운데 아래쪽을 잘 보면 Kamppi라는 역 이름 옆에 일장기 같은게 하나 있고,


건물 자체도 뭔가 세련 됐다.


알고보니 이것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헬싱키 디자인 디스트릭트" 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든 건물이란다.


그게 뭐냐면 2005년에 핀란드 디자인 포럼에서 만든 건데, 헬싱키 내에서 디자인적으로 뛰어난 곳을


뽑아서 이름 붙여놓은 곳이다.


그니까 어느 한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디자인으로 좀 괜찮다 싶은 곳에 주는 인증마크인 셈임.



관광안내소에 가면 저 인증을 받은 가게들만 모아놓은 지도도 있으므로,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다.





헬싱키 도시 자체로 보면 스톡홀름이나 오슬로보다 별 특색이 없다.


그냥 밋밋한 동유럽 국가들의 건물처럼 생긴 것들이 쭉 늘어서 있다고만 느껴졌다.


허나 그 건물들 안에 있는 상점들에 놓인 물건들은, 너무 예쁘고 귀여운 것들 투성이였다.



근데 내 허리가 스톡홀름에서 망가진 관계로, 오래 걸어야 되는 디자인 관광을 빙자한 쇼핑은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가고 싶었던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에 가보기로 했다.



지금 보이는 건 교회 바깥 부분이다.


왠 돌덩이를 찍어놨나 싶겠지만, 이게 교회다.


교회를 커다란 암석 안쪽을 파내서 만들어버렸다.





암석을 파내서 만든거라 그러길래 우리나라 석굴암 같은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100% 자연만을 이용한건 아니고, 그것을 토대로 열심히 디자인해서 교회를 세워놨다.


게다가 안에 있는 난간이나 손잡이 등은 구리를 이용해서 디자인 해놨다.


딱 들어가는 순간. 우오.. 매우 세련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건축이나 디자인에 대해서 무지한 나조차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건물이었으니까, 진짜 멋진 거임.





천장의 둥글둥글한 것 역시 구리로 만들어진 거다.


그리고 벽을 보면 실제 암석을 깍아낸 것 위에 돌들을 쌓았고, 그것과 천장 사이는 유리와 콘크리트로 장식해놨다.


이렇게 세련된 교회를 본 적이 있었나...


여하튼 이걸 보면서 더 놀란 점은, 이 교회가 1969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1969년이면 달에 착륙하고,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때고, 우리나라에선 MBC TV가 개국하던 때였다...



핀란드는 그 오래전부터 이렇게 감각적인 건축물을 만들고 있었나보다.


센스쟁이들. 디자인쟁이들. 





그렇게 교회를 잠시 둘러보고는, 디자인 제품이 전시된 곳으로 향했다.


딱히 박물관 같은 곳을 가지 않더라도, 왠만한 골목길이라면, 왠만한 상점이라면 모두 디자인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가 간곳은, 개중에서도 많이 알려진 디자인 포럼이라는 곳이었다.


바로 옆에 태극기가 걸려있어서 뭔가 해서 봤더니, 우리나라 대사관이었음.ㅋ



이날이 개천절이라서 대사관도 쉰다고 써붙여놨더라.


외국계 기업의 가장 부러운 점이 본사 휴일에도 쉬고 우리나라 휴일에도 쉰다는 점이었는데,


대사관도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입구부터 디자인 제품이 똵.


뭔진 모르지만, 주변에 놓인 책자들도 감각적인 그림들로 무장한채 우리를 반겼다.


여기 보이는 모든 제품들은 실제로 파는 제품들이고,


디자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실제 제품에 디자인을 가미시킨 작품들이다.


가격도 작품급임.





그냥 대충 찍어온 사진인데, 왼쪽아래 보이는건 그릴인데...


왠지 삼겹살 따위를 구워먹으면 그릴에게 죄송할 것 같은 그릴이다. 스테이크라도 구워 먹어야 될것 같은 그릴임.


그리고 장식장의 가장 상단부에 놓인 도자기들.


뭔가 빨간점이 박혀있는 저것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이딸라 라는 메이커의 제품들이다.


북유럽 디자인 주방용품계에서 매우 유명한 제품인듯 싶다.





왼쪽에 벌레 모양은 장식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벌레 쫓는 소리를 내는 벌레 퇴치기다.ㅋㅋ


앞쪽에 놓은 조약돌 모양은 뭔지 모르겠음.


여하튼 북유럽 디자인의 특징은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게 특징이란다.



북유럽을 돌다보니, 저 말이 100% 공감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가진 곳에서 살다보면, 자연 이꼬르 아름다움 이 될 수밖에 없는 듯 하다.





이제 대충 헬싱키를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찍은 광고판.


헬싱키는 2012년 세계디자인수도 로 선정될만큼 그냥 도시 자체가 다 디자인 투성이다.


이거에 대해서 더 궁금한 사람은 저기 적힌 홈페이지로 가보면 됩니다.


이걸 보고 오... 역시 디자인 강국답구만. 세계 디자인 수도라니....


라고 생각하면서 더 알아보니, 서울도 2010년에 세계디자인수도 였단다...ㅡ_ㅡ


그니까 서울 다음에 헬싱키가 선정된 거임.


그걸 알고나니 뭔가 저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음...




여하튼 핀란드 헬싱키는 그 이름만큼이나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가득찬 도시였다.


비록 건물들은 별로 멋대가리 없었지만, 자잘한 것들이 예쁜 그런 도시인듯.



.핀란드 여행정보.


숙소 - Rastila camping 캠핑카 사이트 = 25유로, 와이파이, 온수샤워 무료.


교통 - 핀란드 24시간 무제한 교통카드 7유로.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