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남미여행 4달은 너무 긴거 같다. 이건 뭐 할게 없다.


위쪽은 위험해서 금방금방 지나쳐오고, 아래쪽은 물가가 비싸서 빨리빨리 지나쳐버리고...


자메이카를 안 갔다와서 그런가...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하지만 자메이카를 갔으면 난 지금쯤 사지중 한군데쯤 없어져있겟지.





파타고니아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어제는 흐렸다가 오늘은 좋았다가 내일은 흐렸다가를 반복한다.


특히 토레스 델 파이네나 피츠로이처럼 산에 있는 트래킹 코스는 더욱 변화무쌍하다.


출발할때는 비가 왔는데 가다보면 맑아지고 도착하면 다시 비가 오는 경우도 있다.


바쁜 여행 와중에 이런 곳에 와서 좀 쉬면서 여유를 만끽해야 되는데...


우리는 뭐 바쁘지도 않고 그냥 계속해서 여유만 만끽하다가 여기 왔더니 거의 버터가 녹듯이 녹아내렸다.





후지여관 가는 길이다. 


저어기 오른쪽 광고판 밑에가 후지여관인데...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미친개 2마리가 항상 상주하고 있다.


특히 장 봐가지고 가는길에는 미친듯이 달려든다.


완전 꼬마애들도 많던데, 걔네 물리면 어떡하려고 저렇게 개를 풀어놓고 사는거지...


맘 같아서는 한대 까버리고 싶지만, 가뜩이나 개 잡아먹는다고 소문난 어글리 코리안이라서,


개 까다가 걸리면 동물학대죄로 고발당할꺼 같아서 몸 사리고 있다.





어제 버스터미널에서 알아본 결과 칼라파테-뿌에르또 나탈레스 행 버스가 일주일에 한번. 화요일에만 있단다.


그래서 그 표를 예약하러 버스터미널로 걸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지금 세상의 끝. 해남 땅끝마을 말고... 진짜 땅끝 마을을 향해 가고 있다.


참고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인 희망봉도... 위도로 따지면 남미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정도밖에 안된다.


남미의 최남단은 위도 70도 근방에 있다.





원래 요런거 귀찮아서 잘 안 갖다붙이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무단도용한 이미지를 사용해보자.


남미대륙의 끝은, 요로코롬 더럽게 더럽게 쪼개져있다. 이 망할 칠레랑 아르헨티나가 국경을 좀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은 바람에...


세상의 끝이 어딘가에 대한 말들이 매우 많다.


우선 왼쪽이 칠레고, 오른쪽이 아르헨티나고... 지도에 보이는 지역이 다 파타고니아 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쭉쭉 아래로 가보면... 아르헨티나는 Rio Gallegos쯤에서 땅이 끊겼다가, 그 아래 Ushuaia가 있는 땅에서 다시 영토가 시작된다.


반면에 칠레는 Punta Arenas가 있는쪽 땅 전부가 지네 땅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세상의 끝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지구가 둥근데 끝이 어딨나.. 


근데 또 그렇게 살면 재미 없으니까,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굳이 땅끝을 찾으라 하면, 뿐따 아레나스가 땅끝이다.


대륙의 끝,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의 최남단은 뿐따 아레나스다. (대충 이름 있는 도시중에는 말이지...)



하지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슈아이아를 땅끝마을이라고 부를까?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저 우슈아이아가 '도시'중에 최남단이란다... 좀 어거지성이 없지 않아 있다.


사실 우슈아이아에 들어가려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대륙의 끝이 아니다.


게다가 우슈아이아 밑에 보이는 칠레영토에는 뿐따 윌리암스 라는 진짜 땅끝마을이 존재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우슈아이아를 땅끝마을이라고 홍보해서 짭짭할 수익을 얻게 되자,


칠레정부는 우슈아이아 밑에 뿐따 윌리암스라는 마을을 하나 만들고, 여기가 레얄 땅끝마을임. 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극에 한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워지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뿐따 윌리암스를 찾고 있다.


(우슈아이아랑 뿐따 윌리암스 둘다, 주민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면세지역으로 지정되 있다. 명품 사기 짱 좋음.)



볼것도 없고 춥기만 한 이 땅끝마을에 사람들이 오는 이유는, 그저 땅끝마을이라는 칭호 하나 보고 오는건데...


왜 뿐따 윌리암스는 안가고 우슈아이아로 갈까?


이유는... 더럽게 비싸다. 뿐따 윌리암스를 가려면 비행기를 타던가, 우슈아이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되는데...


우슈아이아에서 배를 타면 왕복 30만원정도 소요된다. (거리는 25분 거리밖에 안되는데!!!)


그래서 그냥 저렴하게 생색도 낼 수 있는 우슈아이아 정도에서 만족하고 다들 비행기 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올라가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탐키스로치가 하사하신 퇴직금이 있는 우리는, 뿐따 윌리암스까지 가기로 결정했는데...


이게 또 비수기라서 만만치 않다.


윌리암스까지는 아레나스에서 비행기 or 배를 타고 갈수 있는데,


배는 38시간 걸리는데, 앉아서 가는게 186달러... 누워서 가는게 220달러였나...


그리고 비행기로 가면 1시간 15분밖에 안 걸리지만, 가격은 14만원 정도?....


여하튼 다 좋다 이거야.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윌리암스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윌리암스에서 우슈아이아로 가려면 일주일에 한번 있는 배를 잡아타야 되는데,


이게 날씨에 따라 변동이 심하고, 지금 같은 비수기에는 주로 주민들만 타기 때문에 관광객을 위한 자리가 별로 없다.


만약 윌리암스에서 우슈아이아로 못 빠져 나오면, 우리가 예약한 비행기 티켓이 날아가버리는 상황.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우슈아이아까지만 가기로 했다.


(이 모든 정보는, 뿌에르또 나탈레스에서 만났던 내 사촌동생 닮은 대만인 여자가 알려준 정보다.


그 여자는 아레나스에서 배 타고 윌리암스 갔다가, 우슈아이아로 가는 배편이 없어서 다시 아레나스로 돌아올거란다..ㅠ)



너무 길지? 세줄요약.


1. 대륙의 끝은 뿐따 아레나스, 진짜 끝은 뿐따 윌리암스.


2. 뿐따 윌리암스 가는건 더럽게 비싸고 하늘이 도와줘야 된다.


3. 우린 망했다.





후지여관의 부엌 모습이다.


여기 온 사람들이 마법의 탁자라고 부르는 탁자가 보인다. 저기 앉아서 밖을 쳐다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줄을 몰라서 그렇게 부른다는데..


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보내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계속 누워있다 보면, 지금 내가 나비막을 타고 있는건지 후지여관에 있는건지 헷갈릴때가 있다.



새벽에 일어나보면, 일본인 매니저 아주머니와 주인 아주머니께서 저기 앉아서 책을 읽고 계신다.


그 모습을 보면, 호스텔 운영해 보는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만, 고양이가 있는 숙소들은 하나같이 전부 좋았다.


페루 쿠스코의 엘퓨마, 아르헨티나 바릴로체의 백패커스, 그리고 아르헨티나 칼라파테의 후지여관.


모두 깨끗하고 친절한 분위기의 숙소들이다.



특히 후지여관에는 고양이가 4~6마리정도 있는데... 키우는건 아니고 그냥 도둑고양이란다.


아주머님이 매일 밥을 챙겨주는 바람에 집앞 공터에 모여 살고 있단다.


가끔 밥할때 창문을 두들기며 뭐라도 하나 좀 달라고 애교 부리는 모습이 귀엽다.





후지여관의 거실. 책장엔 일본어로 된 책과 한국어로 된 책들이 있다.


대부분이 남미문학에 관한거 or 가이드북 or 여행기 들이다...


사진엔 없지만, 뒤쪽에도 조그만 책장이 하나 더 있는데, 거기는 만화책이 시리즈별로 다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아다치 미츠루의 책들만 있는데, 아쉽게도 일본어라서 읽어보진 못했다.




일주일 정도 후지여관에 머물면서, 슬슬 매니저 아주머님과도 친해지고 익숙해져갈 무렵...


우린 다시 짐을 꾸려야 했다. 


마음 같아선 여기 계속 있다가 그냥 브라질 살바도르로 가서 유럽행 비행기를 타고 싶다만...


배낭여행이라는게 항상 그렇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또 헤어지고...


그렇게 무수히 반복하며 수백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개중에 뜻이 잘 맞는 사람들과는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고... 아니면 그냥 페북에 귀찮은 타임라인이나 추가되는 존재로 남던가...



가끔 여행을 하다보면 삭막하다고 느낄때가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다가도... 어차피 내일모레면 헤어질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되면 언제나 뻔한 질문, 뻔한 답변만 하다가 흐지부지 헤어지기 마련.


그런게 싫지만, 또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정을 주기란,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난 아마 호스텔은 못 할거 같다. 짧으면 하루, 길어봤자 한달정도 묵고 가는 여행객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이 떠나면 다시 마음을 닫고를 반복하다보면... 우울증에 빠져 버릴거 같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