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예전에 인도여행중에 고아라는 동네에 간적이 있다.


고아는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로 꼽히는 동네인데, 해변이 7갠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 곳이다.



고아에 가기 직전, 뭄바이에서 카메라를 분실하고,


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자, 고아에서 헬멧도 안 쓰고 면허증도 없는 채로 오토바이를 타고 스피드를 만끽하다,


경찰에게 걸려 난생 처음 딱지를 뗀 그 날...


멘붕에 빠져, 돈 아끼자는 생각으로 정말 엄청나게 후진 숙소를 잡았다. 말 그대로 콘크리트 옥상에 나무침대 하나 달랑 있는 그런곳.



몇일 사이에 여행자로썬 큰 돈을 날려버린 후라, 암것도 안하고 그냥 숙소 바로 앞에 있던 가게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일본인 아저씨(50대 이상으로 추정됨)와 양키 한명이 합주를 하고 있었다.


일본인 아저씨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 상태였고, 양키도 이스라엘인지 프랑스인지는 모르겠다만 영어를 거의 못 하는 수준이라,


둘다 말도 안통하는데도 뭔가 합주를 하고 있었다.


일본인 아저씨는 하모니카, 양키는 기타를 들고 합주중이었는데... 


처음에는 뭐 하나 제대로 맞는게 없더니, 뭐라뭐라 둘이서 얘기하고 이것저것 쳐보더니, 잠시 후에는 근사한 곡이 탄생했다.


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여행하면서 악기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음악에 일가견이 있거나,


혼자 다니느라 심심해서 가지고 다니는줄 알았다.




에피소드 2.


페루 리마의 HQ빌라에 묵고 있을때, 우리 앞방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흑형들이 바글바글했다.


흑형 4명 + 흑누나 1명... 이었는데... 간지나는 흑형들답게,


다른 사람들과는 얘기도 안하고, 자기들끼리 하루종일 티비 앞에 모여서 자기나라 말로 떠들고 있었다.


우리는 선천성흑형포비아가 있는 관계로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냥 쟤네는 뭐하는 얘들인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날, 어디 나갔다가 숙소로 들어갔는데, 정원에서 누군가 합주를 하고 있었다.


양키 누나들은 기타를 치고 있고, 누군가가 북같은걸 치고 있었다...


으잌. 왜 아무도 없는데 공중에서 북소리가 나냐.... 


잘 보니까 흑형이 어둠 속에서 북 같은걸 치고 있었다. 어두워서 눈이랑 손바닥밖에 안 보이더라.


어설픈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재미나게 합주를 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난 예체능중에 음악을 제일 못한다.


어릴 적에 체르니30번까지 뗐는데도, 지금은 나비야 하나밖에 못치고...


한때 오카리나를 독학하긴 했으나, 지금은 운지법도 기억이 안난다.


음악이랑 별 상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내가 차량고를 구입한 이유는, 단 하나.


외국인과 합주를 하고 싶어서였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과 그럴싸하게 연주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 꿈이, 우리나라 정 반대에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이루어졌다.





챠랑고는 남미전통악기라서, 자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 상에도 자료가 별로 없고, 대부분이 스페인어로 된 자료들이라 익히기가 쉽지 않았다.


기타랑 비스무리하게 생기긴 했으나, 코드 잡는법도 다르고, 스트로크도 다르고 해서... 독학하기에 매우 힘들었다.


처음엔 볼리비아에서 책 보고 열심히 독학하다가, 이건 뭐 혼자하니까 느는거 같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해서,


한동안 기념품처럼 들고만 다녔다.



그러던중, 엘 칼라파테의 후지여관에 오게 됐다.



밤에 할게 없어서, 오랜만에 차량고나 쳐볼까 하고 방으로 들어가 코드 몇개 잡고 띵까띵까 거리다가, 곧 지겨워져 거실로 나왔다.


주인 아저씨께서는 일본어만 할줄 아셔서, 이제까지 우리에게 말을 거신적이 없었는데... 


올림픽을 보시다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거신다. "챠랑고?".....


크흥.. 옙. 챠랑고입니다. 라고 애기했더니, 갑자기 "뽀르파보르..."(영어로 Please, 부탁한다는 뜻)라고 하신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안 들을수 없어서, 챠랑고를 들고 나와서 이제까지 연습한 코드 몇개를 쳤다.


그랬더니 영 반응이 별로시다.;;; 뭔가 되게 잘 치는줄 아셨나보다...


인터넷에서 아저씨가 기타를 잘 치신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챠랑고 칠줄 아시냐고 여쭤봤더니, 조금 칠줄 아신단다.


부탁 드린다고 하면서 차량고를 건네 드렸더니.... 엄청나게 잘 치신다.


오.... 오... 박수를 쳤다.


그리고는 다시 서먹한 시간. 아... 손발이 오그라들고 시간과 공간이 붕괴된다.


너무 할말이 없길래 진희를 팔아먹기로 했다.


"아.. 진희가 기타를 잘 치무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합주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갑자기 아저씨의 얼굴이 환하게 바뀌시더니, 기타를 들고 나오신다...


그것도 클래식기타. 오랜만에 꺼내셨는지, 줄 하나가 망가져 있었지만 바로 수리하셔서 진희에게 건네신다.


통기타만 1년동안 배운 진희는, 클래식기타가 익숙치 않은지 머뭇머뭇 거리면서 뭔가 하나 쳤고,


쑥스러운 마음에 아저씨에게 다시 드렸더니, 아저씨가 멋드러진 연주를 해주신다...


오오... 스고이 스고이. 아는 일본어라곤 저거밖에 없어서 스고이만 계속해서 외쳤다.



그렇게 진희와 아저씨가 기타를 주고받으며 한곡씩 연주했다.



하지만 두번째 턴이 끝나기도 전에, 진희는 칠줄 아는 곡이 다 떨어졌고... 아르헨티나에서 최대의 실수를 하고 만다.


"아.. 이건 클래식기타라 잘 못 치겠네요. 전 통기타를 배웠거든요."



아저씨가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방으로 들어가신다.


그리고는 통기타를 들고 나오신다. 그것도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온 통기타.;;;;;


그렇게 우리는 각자 기타 하나씩을 잡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랑 진희가 거의 걸음마 수준의 코드만 잡았더니, 아저씨가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신다.



오... 아저씨가 알려주신대로 코드를 잡았더니, 뭔가 그럴싸한 곡이 나온다.


이거슨 미라클. 이거슨 매직.


그렇게 30여분간 열심히 연습하다가, 갑자기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고 주인아주머니와 매니저 아주머니 앞으로 데려간다.


그러더니, 콘서트를 하시겠단다.



그렇게 난생 처음, 외국인과 합주를 해보았다.


비록 C-F-G7코드만 주구장창 치는 간단한 합주였지만... 내 차량고와 진희의 통기타 소리가 어우러지고,


아저씨의 클래식기타가 애드립을 뿜어내자 그럴싸하다.


오... 난 진정 감동 먹었다. 


말이 안 통하면 어떠냐. 음악도 하나의 언어라는걸 이날 깨달았다.





그리고 이건 다음날 저녁이긴 한데, 이날도 콘서트를 했으니 같이 올린다.


이날은 히로시상(주인 아저씨)의 생일이라서, 특별히 스끼야끼를 해먹었다.


뭔 음식인지 몰라서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일본식 전골이라던데....


여기서는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남미식으로 바꾼 스끼야끼를 해주셨다.





이거시 바로 스끼야끼.


참고로 저기 있는 두부는 여기서 직접 만드신 두부다. 오오...


주인 아주머니와 일본인 매니저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가 대단하다. 정말 맛있었다.


(주인 내외분은 칼라파테 시내에서 스시집을 운영하고 계신다.)


맘 같아서는 정말 다 퍼먹고 싶었지만, 여러명이서 먹는거라 최대한 자제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먹었다.





이날은, 특별한 손님인 로미나도 함께 식사를 했다.


영어선생님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아시는 사이인지는 모르지만, 생일을 축하하러 오신거 같았다.


근데 채식주의자란다...;;;


주인 아주머님도 그걸 모르시고 스끼야끼를 하는 바람에, 로미나는 거의 못 먹었다.;;;



주인 아저씨께서는 식사가 거의 끝나가자, 다시 또 콘서트를 여셨다.


매일 말도 안되는 가격에 저녁을 얻어먹는 우리로써는 거부할 수가 없어서, 바로 챠랑고와 기타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로미나 앞에서 신나게 합주.ㅋ


어제의 레파토리는, 세명이서 라밤바 합주 - 나와 진희의 너에게난, 나에게넌 듀엣. 이었는데,


이날은 다행히 나와 진희의 듀엣은 넘어갔다. 휴우....


나랑 진희도 한국 가면, 어른 대접 받을 나이지만, 여기서는 말 그대로 막내다. 막내도 아니지.. 거의 아들뻘이지.


어르신 세분 앞에서 자탄풍의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온몸에서 땀이 난다.


원래 같았으면 절대 안 불렀겠지만... 밥도 거의 공짜로 얻어먹는 주제에 까라면 까는거다.





우리의 합주가 끝난후, 로미나가 답가로 블루스를 불러주었다.


오... 역시 삶 자체가 음악이라는 남미사람답게 엄청나게 잘 부른다.


게다가 더 신기한건, 그 노래에 음악을 넣어주시는 히로시상.


두분이서 비틀즈 노래부터 롤링스톤즈까지... 많은 노래를 불러주시는데 감동 먹었다.


정말 잘 부르고, 정말 잘 치시더라.





요건 주인 아주머님께서 마지막에 주신 디저트.


돈 빼드로?? 뭐 이렇게 부르신거 같은데.... 아이스크림에 위스키를 섞은거다.


헐.. 이걸 어케 먹나 싶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매우 맛난다.


위스키랑 아이스크림의 조합이 이리도 훌륭할 줄이야.ㅎㅎ


근데 퍼먹을때 잘 조절해서 퍼먹지 않으면, 소주를 숟가락으로 퍼먹는 맛이 나니 조심할것.




이날은 한게 없어서 사진이 없다. 그냥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 전부다.


그래도 여행와서 가장 신났던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챠랑고를 사면서부터 목표로 했던, 외국인과의 합주.


비록 아저씨가 거의 다 하셨고, 우리 둘은 쩌리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매우 행복했다.


이런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는 절대 해볼 수 없는 경험을 해본다는거.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