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에르또 나탈레스에서 엘 칼라파테 가는 버스는 일주일에 딱 한번만 있단다.


원랜 좀더 자주 있는데, 지금은 비수기라서 월요일 한번만 운행한다는데...


우린 너무나도 운이 좋게 토요일에 도착해서, 일요일에 토레스 보고 월요일에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이 겁나게 추운 항구도시에 일주일이나 더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파타고니아 와서는 계속해서 운이 좋다. 날씨운도 그렇고 교통운도 그렇고.ㅎㅎ





아침 7시 반인데도 아침 한밤중처럼 깜깜하다.


요즘은 남극에 가까워질수록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진다... 왜 그런지는 공통과학 교과서 지구과학 파트 참고 바람.


버스를 타러 갔더니, 네덜란드 커플과 프랑스 노부부가 이미 와있다.


어차피 앞으로 다시 안 볼 사람이니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이것저것 대화를 했다.


네덜란드 남자애한테 지금 엘 칼라파테에 가서 모레노 빙하를 봐도, 빙하 위를 걷는 트래킹은 못 할꺼라고 얘기해주자,


자기는 이미 뉴질랜드에서 빙하 위를 걸어봤길래 상관 없단다.


꾸엑. 뉴질랜드.


영국에 있을때 나를 가르치셨던 사비나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는데...


나도 언젠가는 갈수 있겠지?


(참고로 사비나 선생님도 아프리카, 인도, 유럽 일주를 끝마치신 분이다.ㅎ)





칠레-아르헨티나 국경 지대다.


아르헨티나는 드넓은 대지만큼이나 드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어서 소지품 검사따윈 하지 않는다.


위아래로는 길지만, 양옆으로는 더럽게 좁은 칠레처럼 마음씨 좁은 나라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파타고니아 지방이라 그런지 곳곳에 눈이 쌓여있다.


이 구간도 안데스 산맥을 넘는거라 날씨때문에 못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데, 우리는 무사통과했다.





입출국은 언제나 기다림의 연속이다.


특히나 성격 느긋한 남미에서는 입출국이 하루 종일 걸린다.


한명이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 나머지 4명정도는 뒤에서 수다 떨면서 티비를 보고 있다.


망할. 우리나라 같았으면 기다리다 지쳐서 뒤에 있는 사람들은 뭐하냐고 항의라도 좀 할텐데,


여기는 남미라서. 일하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들도 모두 느긋하다.


그냥 오래 걸리면 오래 걸리는거고 빨리 되면 빨리 되는거고...


쏘쿨.





지금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여자분이다.


여행자가 본 아르헨티나 경제는 파탄 직전인데, (공식환율과 암달라환율이 50% 넘게 차이 나는 기현상을 가진 나라)


이 아줌마는 예뻐서 그런지 연임중이란다.


저번에 마추픽추 투어때 만났던 아르헨티나 애들 3명은 모두 이 아줌마를 싫어했는데...


이제까지 자기나라 대통령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콜롬비아 리카르도밖에 못 봤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여행중에 만난 사람, 그리고 외국인들과도 정치얘기는 별로 안하는게 이롭다.


저번에 인도에서 한국사람들 10명가량 모여서 정치얘기 했다가 싸움 날뻔한 기억이 난다.





국경지대인데도 저 멀리 스키장 리프트가 보인다.


스키장인지 뭔진 모르겠다만 여하튼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리프트가 바로 옆에 있다.


참고로 아르헨티나랑 칠레는 지금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지금뿐만이 아니지.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특히나 이쪽 파타고니아 지방쪽의 국경문제로 인해서 계속해서 티격태격 하고 있단다.


망할 칠레놈들은 이나라 저나라 싸우고 다니는게 취미인가보다.


(근데 승률은 더럽게 높아서 페루땅도 뺏어오고 볼리비아땅도 뺏어오고 아르헨티나땅도 뺏어왔음.)





드디어 엘 칼라파테에 도착했다.


칼라파테라는 이름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하지만 난 전설따윈 믿지 않지.


예전에 마젤란 아저씨가 항해중에 이 동네 부근에서 배에 구멍이 났는데, 이 동네에 지천으로 깔린 열매로 그 구멍을 매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 열매를 칼라파테(매우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라고 명명했고, 그 열매가 지천으로 깔린 이 동네 이름도 칼라파테로 했단다.


참고로 칼라파테 열매를 먹으면, 파타고니아로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이 있다.


예전에 남미를 정벅하러 온 스페인 병사 한명이 칼라파테 열매를 먹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을 계기로 그런 전설이 생겼단다.


머루 같이 생긴 이 열매는, 이 동네에 엄청 많이 깔려있는데...


우리는 겨울에 온 바람에 구경도 못해봤다...;;; 파타고니아에 다시 올 운명은 아닌가보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오래된 전설이나 전통 같은걸 좋아하는 편인데,


가이드북만 보고 따라다니다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놓치기 쉽상이다.


남미 역사책이라도 하나 보고 올껄... 후회가 든다.


유럽은 가기 전에 서양사라도 좀 공부하고 가야겠다.





칼라파테의 첫 인상은.


좀비영화 찍게 생긴 도시다. 뭐 길거리에 사람도 없고 차도 안 다니고,


집들도 전부 조용하고... 개짖은 소리밖에 안들린다.


칼라파테는 인구 1명당 개 2마리씩은 데리고 있는거 같다.


그것도 더럽게 큰 개들로만.... 길거리 지나가면 자꾸 개들이 달려오면서 짖어대는데 무섭다.


발로 한대 까주고 싶은데, 전부 사냥개처럼 생긴 개들이라...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하면서 도망치는 중이다.





내가 남미에서 가고자 했던 곳. 세상의 끝, 우슈아이아.


우슈아이아까지는 대충 버스타고 간다고 쳐도, 거기서 다음 목적지인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는 버스로 60시간이 넘게 걸리는데다가,


버스비 또한 만만치 않아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비행기가 버스보다 더 싼 불편한 진실.


근데 우리 일정이 정확히 정해지질 않아서 칼라파테에 와서 비행기를 예약하게 됐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LAN항공에서 230달러짜리가 있었는데... 어느덧 다 팔리고 300달러짜리들 밖에 안남았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항공사는 LADE 항공사.


항간에는 군용 수송기라는 소문도 있던데... 그건 아닌거 같고, 여하튼 파타고니아만 전문으로 돌아댕기는 저렴한 항공사다.



엉성한 지도 한장 들고 어찌어찌 찾아갔는데... 이 망할놈들이 문을 닫았다.


문을 여는 시간은 고작 오전 10시 ~ 오후 4시.


하루에 6시간만 일한다.


남미는 천국이다. 하루에 6시간만 일하면 된다. 여기와서 살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진다.





요 동네는 파타고니아 답게 날씨도 꾸물꾸물하고, 춥고, 눈도 많이 오고 해서,


길거리 대부분이 얼어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자기집앞 눈청소 안했다고 과태료 물었겠지만, 여기는 쿨한 남미라서 그런지,


그냥 아무도 눈청소도 안하고, 얼음도 안 깬다.


얼음 피하랴, 개 피하랴 스릴 넘치는 동네다.





파타고니아 지방은 추워서 그런지, 딱 봐도 따뜻해 보이는것들 판다.


옷이랑 먹는건 물론이고, 기념품까지도 가지고 다니면 땀날꺼 같이 생긴것들만 판다.


근데 요즘은 비수기라서,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문을 연 상점들도, 오전에 잠깐, 오후에 잠깐 열고 전부 문을 닫는다. 


(시에스타라고 불리우는 남미 특유의 낮잠시간으로 인해 4시간씩은 문을 닫는다.


원래는 너무 더워서 시에스타라는 낮잠시간이 있는걸로 알았는데... 아닌가보다.)





이런 기념품 상점들도 대부분 휴업 상태다.


우리가 묵고 있는 후지여관(아저씨는 일본인, 아줌마는 한국인)도 이 부근에서 스시집을 하시는데,


요즘은 비수기라서 휴업 상태란다.


그래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2달짜리 휴가를 갔다가 엊그제 돌아오셨다..;;;;




우슈아이아 - 부에노스 아이레스 비행기가 16일꺼밖에 없어서, 그걸 끊어버렸다.


다시 말해서 칼라파테랑 우슈아이아에서 보름 가량을 머물러야 된다..;;;


가뜩이나 물가도 비싸고 할것도 없는 동네들인데 뭘 하고 시간을 보내야 될지 감이 안온다.


특히 우슈아이아 같은 경우에는 그냥 세상의 끝이라는 타이틀 하나 보고 가는건데...


거기서 뭘하고 지내야 되려나...


이제 벌써 8월이다. 여행을 떠나온지도 4개월이 다 되어간다. 슬프다. 일하기 싫어.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