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지옥같은 숙소를 벗어나, 오랜만에 제대로 된 잠을 청했다.


아... 행복하다.


가끔 숙소를 잘못 예약하는 바람에 여행을 망쳤다는 사람들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우리야 뭐 1년 넘게 여행하니까 하루이틀 거지같은 숙소에서 자고 여행 못한다고 해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지만,


9박10일 일정으로 유럽 왔는데, 숙소가 거지 같아서 숙소 옮기느라 1,2일 소비해버리면 멘붕 올듯...


여하튼 이렇게 런던의 첫날이 밝아왔다.





우리가 처음 가기로 한곳은, 캠든마켓.


숙소 자체가 캠든마켓이랑 가까운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건 내가 원하던 귀걸이를 사기 위해서였다.



2007년에 혼자 캠든마켓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해골 모양이 귀걸이가 있었는데,


반년도 안되서 인도에서 잃어버리는 바람에, 지금까지 그리워만 한 귀걸이가 있었다.


한국에도 대충 비스무리한 모양의 귀걸이는 많았으나, 똑같이 생긴건 없어서... 언제나 다시 영국 가면 꼭 사야지라고만 생각했었음.



근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ㅋㅋㅋ


정말 다시 영국에 올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왔으니 그 귀걸이를 사러 떠났다.


내가 그 귀걸이를 얼마나 좋아했냐면,


벌써 5년도 넘은 일이지만, 그 귀걸이 가게가 어디인지까지 외우고 있음.





2007년 당시 캠든마켓이 있는 캠든타운은 고스족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의 메카였다.


고스족이 뭐냐면, 요즘도 가끔 보이긴 하는데...


그 검은색으로 귀신처럼 화장하고 옷입고 다니는 애들을 뜻한다.


찡 박힌 장갑부터 시작해서, 요란한 부츠와 팬더와 맞먹는 아이라인까지... 그리고 형형색색의 머리염색 등등...


이렇게 하고 다니는 애들을 고스족이라 불렀는데,


요즘은 많이 줄어든거 같고.... 여하튼 그 당시 캠든마켓은 고스족을 상대로 하는 좀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물품들이 많았던 반면에,


이번에 방문했을때는 그냥 평범한 마켓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캠든마켓 초입부에는 이렇게 고스족을 위한 상점들이 있었다.


건물외벽부터 시작해서, 상점에서 파는 물건들을 보면... 고스족이 어떤 사람들인지 대충 이해가 갈듯.



이때부터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원래 내가 샀던 귀걸이도 이런 고스족을 상대로 하는 기괴한 문양의 귀걸이였기 때문에,


그 상점이 없어졌을 가능성도 무시할수 없었다.





여기 왼쪽에 보이는 초록색 간판을 가지고 있는 마켓이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이다.


저 초록색 간판 너머에는 수많은 노점상들이 펼쳐져 있는데,


너무 따닥따닥 붙어있어서, 제대로 구경을 할수도 없을 정도다.


게다가 수많은 관광객 때문에, 걸어다니기조차도 쉽지 않다.



겨우겨우 예전에 귀걸이를 팔았던 가게로 가봤는데, 오!! 진짜 귀걸이 가게가 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내가 원하는 해골 귀걸이를 찾아봤는데....


없다... 아무래도 5년이라는 세월동안 유행이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뀐 모양이다.


엉엉....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나왔다.





그렇게 귀걸이 찾아 삼만리를 하는 도중, 우리는 배가 고파졌다.


캠든마켓 하면 또 하나 생각나는게,


리카르도와의 캠든마켓 데이트였다.ㅋㅋㅋ



지금은 매우 절친해서 눈빛만 봐도 똥이 마려운지 오줌이 마려운지 알수 있는 사이지만,


처음에는 매우 낯설은 그저 아랍인 닮은 외국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매우 할일이 없어서, 시간만 나면 어디든 돌아다녀보자!! 라고 얘기는 했으나,


막상 어디든 가려니 돈이 없어서 매일 궁핍하게 공원에서 맥주나 까던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캠든마켓 근처에 살던 리카르도가 같이 캠든마켓에 가자고 했고,


이미 한번 갔다와봤지만 영어연습도 할겸 같이 캠든마켓에 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배가 고파져서 지금 사진에 보이는 근처까지 먹을걸 찾아 돌아다녔다.



지금은 4파운드짜리 모듬음식 (대충 야끼소바면이랑 튀김 몇개랑 해서 파는거임) 이 그 당시에는 2파운드였는데,


당시 2파운드도 아까워서 찌질찌질 대면서, 먹을까? 말까? 를 수십번쯤 고민할때,


우리를 향해 누군가 외쳤다.


"한국인이야? 아줌마가 1파운드에 줄게. 그냥 먹어."


엉엉... 아줌마. 날 가져요.ㅠ



덕분에 우린 1파운드에 맛난 점심을 해결했고, 리카르도 앞에서 한국인의 끈끈한 정을 자랑할 수 있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EBS같은 에피소드인데,


왜 막상 써놓으니까 더럽게 재미없냐.





예전에도 캠든마켓은 사람이 겁나 많았지만, 지금은 더 많아진 느낌이었다.


한치앞도 걸어가기 힘들정도로 사람들이 구경중이었다.



이새킈는 왜 자꾸 옛날, 옛날 거리면서 지 런던 갔던걸 티낼까. 싶은 사람이 있을까봐 얘기하자면,


제가 런던에 간 이유는.


오로지. 2007년에 제가 런던에 있었을때 가봤던 곳들을 그대로 가기 위해서.


그리고 그때 느꼈던 생각들을 그대로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가관임.


이번 런던여행 컨셉은 추억팔이 여행이었고, 진희에게도 그렇게 다닐거라고 동의를 구해놨음.





그렇게 신나게 캠든마켓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처음 캠든마켓을 가서 귀걸이 사러 돌아다녔을때 + 리카르도랑 같이 뻘짓하고 돌아다닐때.


의 추억을 모두 감상한 후에, 우리는 클래팜 커먼으로 향했다.



내가 클래팜 커먼에 갈거라고 했을때, 민박집 사장님은 거기 뭐가 있는데 가냐고 여쭤보셨고,


난 '제가 다니던 학원이요.' 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난 지금 2007년에 내가 다녔던 어학원을 향해 가고 있다.



가는 길에 진희가 2층버스 타보고 싶다해서, 2층 버스타고 런던의 중심. 옥스포드 서커스를 지나면서 찍은거임.


원래 런던이 연말세일이 유명한데다, 세계표준시를 만든 나라라서 그런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러 런던에 왔음.





우선 클래팜 커먼역에 내려서, 학원으로 가는 길에 본 아랍상점.


정확한 이름이 올드타운 슈퍼마켓인지 이날 처음 알았다.


언제나 학원애들이랑 이 앞에 있는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술이 부족해지면, '아랍상점 가자!!' 라고 해서 우루루 몰려가서 술 사왔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아랍인이 하는걸로 봐서는 그때 그 주인이 맞지 싶다.





그리고 공원에서 술을 마셔도 되는지 몰랐던 초반에는,


여기에 있던 펍에 자주 갔었다.


내가 처음 학원에 가서, 외국인이랑 술을 마셔본 것도 이 펍이었고,


그 첫날 덕분에 수많은 외국인이랑 친해지고, 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인생이 바뀌었다.



무슨 고작 런던 3개월 있었던걸로 인생이 바뀌었을까... 오바 쩐다.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난 이때 런던 3개월을 계기로 인생이 바뀌었다.


그 전에는 1점대 학점에 자퇴서를 준비해놓은 막장 놀자 대학생이었지만,


그 후로는 술만 쳐마시면 자꾸 2호선 타고 빙빙 돌다가 택시 타고 집에 가는 막장 놀자 회사원이 됐음.





그리고 대망의 ELT 어학원....


왠지 멀리서 바라봤을때부터 ELT어학원 간판이 없길래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없어져버렸다.


어린이집 간판이 있지만, 외부에 부동산 간판에 걸려있는걸로 봐서는 어린이집도 망해서 그냥 부동산에 내놓은듯 싶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선생님들이 남아있진 않겠지만,


혹시라도 남아있으면 인사라도 드릴까 했는데 꽤나 허무했다.



2007년 나는 신나게 영국 어학원을 찾아봤었다.


원래는 6개월동안 주구장창 머물면서, 시간 되면 밖에 나가보고 아니면 그냥 친구집에서 밥이나 축내려고 했으나...


3개월 어학원 다니고, 3개월 유럽여행 하라는 조언을 토대로,


열심히 어학원을 알아봤었다.


진심 런던에 있는 왠만한 수십, 수백개의 어학원은 전부 알아봤던거 같다.



개중에서 가장 싼곳 (그래도 영국문화원 인증받은 곳에 한함) 을 염두에 두고 런던에 갔는데,


알고보니 친구가 벌써 어학원 섭외까지 다 끝내놓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냥 쭐레쭐레 친구 따라 가서 레벨테스트 하고, 밑에서 2번째반에 들어갔다.


런던 어학원의 특성상 진짜 수많은 한국인이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끼리만 놀다가 시망하고 컴백투코리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하늘이 도왔는지,


같은반에 한국인이라곤 초반에 한명, 중반에 한명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콜롬비아 애들이 바글바글해서, 난 이곳에서 학원 선생님이 나보고 스페인어 쓰지 말라고 얘기할 정도로 스페인어를 배우고 콜롬비아친구들을 사겼다.


여하튼 그렇게 신나게 외국인들이랑만 놀면서 어느정도 영어도 늘었으니까,


가격대비성능비로 매우 만족스러운 학원이었다.


쩝... 이제 없어졌으니 이렇게 자랑해도 뭐하나...





그리고 여기는 나의 영어를 급속도로 발전시켜준 공원이다.


다들 할게 없었는지, 언제나 학원이 끝나면 이 공원에 맥주 사들고 모여앉아서 얘기를 했었다.


남들은 돈내고 회화학원 다니면서 회화 연습 하는데,


나는 공짜로 회화 연습한 셈이었다...


가끔 선생님들도 참여해서, 이것저것 회화스킬도 알려주셨고... 매우 뜻깊은 장소다.



난 영국에 있으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 주고도 못 배울 경험들을 했던 셈이다.


그 추억과 그 결과물들이 너무나 강렬해서, 지금도 이렇게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엘리펀트 앤 캐슬 역...


내가 3달간 머물렀던 친구집이 있는 역이다.


코끼리와 성 역... 참 웃긴 이름이지만, 나름 1존과 2존 사이에 있어서 교통편이 매우 편리했다.


여기서 친구가 살던 집도 가봤는데, 안으로 들어갈수가 없어서 멀리서나마 보고 나왔다.



3개월간 마치 여기서 사는 유학생인것처럼 다니고, 행동하고, 배웠던 시간들이 그립다.


지금은 여행자 신분이라 그런지, 만나는 사람이라곤 전부 여행객 상대하는 사람들 혹은 여행하는 사람들 뿐이라,


듣고 보고 말하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렇게 런던에 와서 처음 한 투어는, 2007년 내 런던여행 추억팔이였음.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