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부터 고기를 구워먹는 그런 집에 태어났다.


남들은 반찬 없을때 라면 끓여먹지만, 우리집은 반찬 없으면 고기 구워 먹는다.


반찬 있어도 고기 구워 먹는다.


그렇게 삼시세끼 고기 구워먹는다고 부유한 집은 아니다.


미국산 소고기가 나오자마자 바로 사먹었던 집도 우리 집이다. 그냥 싼 고기를 많이 먹는다고 치자.


그렇게 맨날 고기만 구워먹다가 외국 나와서 고기를 못 먹었더니,


자세히 말하자면 질 좋은... 도 아니다. 질 나쁘지 않은 고기를 못 먹었더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거 같았다.


그래서 이날은 고기부페를 갔다.


돈 막 쓴다고 욕하지 말자. 볼리비아 고기부페는 우리나라돈으로 만원 조금 넘는다.





나랑 진희랑 훈이씨 세명은 열심히 고기부페를 향해 걸었다.


고기를 향한 우리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


생각보다 꽤 먼 거리였지만, 고기 생각만 하면서 열심히 걸어갔다.





드디어 도착한 PLAZA HOTEL 1층에 위치한 UMA라는 부페다.


정확히 우리나라 고기킹 같은 고기부페는 아니고... 그냥 부페다.


부페인데 구석에서 고기를 구워주는 그런 곳이다.


생각보다 현지인이 많아서 신기했는데... 다들 그냥 커피만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신기했겠지.


왜냐면 훈이씨랑 내 바지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도 신기해했을테니까요.





우리나라 해물부페나 목동웨딩의전당에 비하면 가짓수가 매우 적었지만,


그래도 나름 훌륭한 맛을 선보이고 있었다.


내가 봤을때, 남미에선 에콰도르 말고는 전부 중간정도는 하는거 같다.


워낙 재료가 좋아서 그런지, 아무 양념 없이 굽기만 해도 대충 먹을만 하다.





가짓수가 적은 단점도 이거 하나면 모두 커버된다.


이름 모를 아저씨가 직접 구워주시는 고기 파티!!!!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플라타노, 소세지 등등등.


간단히 말해 저정도고 부위별로 열심히 구워주신다. 너무 보채면 날걸 주시니까 주의 바람.





정말 배터지게 먹고 돌아오는 길.


말 그대로 토하기 직전까지 먹어댔다. 우리 셋은 다 먹고나서 진지한 고찰에 빠졌다.


이렇게 먹어서 남는게 뭔가?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먹어야 하는가? 왜 내 돈 내고 내가 괴로워야 하는가?


하지만 남는게 있었으니. 


우리는 이날 저녁을 안 먹어도 밤새 배 부른 상태를 만끽할수 있었다.





그렇게 배가 부른 상태로 숙소에 와서 늘어지게 낮잠을 잔 후,


우리의 본래 목적인 투어에 나섰다.


우리가 선택한 이날 밤의 목적지는 전망대.


진희가 어디서 주워들은 낄리낄리 라는 이름의 전망대를 찾아 나섰다.


지나가는 아무 택시나 잡고, "미라도르, 미라도르, 낄리낄리"를 외치면 알아서 간다.


번역하자면 "전망대, 전망대, 낄리낄리"


저기 보이는 밝은건 해가 아니고 달이다. 그리고 달 바로 옆에 보이는 건 만년설이 쌓인 설산이다.





라파즈 시내가 한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면 라파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답게, 주변이 전부 산이니까요.


전망대보다 높은 산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나라 한강도 없고, 파리의 에펠탑도 없고,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도 없는 그냥 평범한 산동네 야경이지만,


밤에 숙소 밖으로 나왔다는거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이건 어느쪽이지... 해가 지는 쪽인가.. 달이 뜨는 쪽 반대편인데...


여하튼 잘 보면 가까운 쪽이 고도가 낮은 지역이고, 먼 쪽이 고도가 높은 지역인데...


낮은 지역일 수록 건물들이 높아지고 있다.


들리는 루머에 따르면 고도가 낮을수록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고 하던데...


해발 3천미터나 3천5백미터나... 숨쉬기 어려운건 마찬가지다.


전망대만 올라와도 헥헥 댄다.





우리를 찍은건지 우리가 앉은 돌난간을 찍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훈이씨가 찍어준 우리 사진.


일행이 더 생기니까 우리 사진이 늘어나서 참 좋다.


맘 같아서는 사진사 한명 대동하고 세계일주 하고 싶다.





우리 사진을 찍어준 훈이씨 모습이다.


잘 안 보이겠지만, 상체와 하체 모두 표범무늬 옷을 입었다.


상의는 원래부터 입어왔던 옷이고, 하의는 라파즈에서 새로 산 옷이다.


나랑 진희가 라파즈에서 봐두었다가, 훈이씨가 라파즈에 왔길래 웃길라고 추천해 주었는데... 바로 사버렸다.


저건 여자바지다. 요가바지 비슷한 바지임. 근데 그걸 입고 다니는거임.





한마리의 표범과 겁에 질린 내 모습.


참고로 훈이씨는 88년생이다... 내가 전역하기 전날 입대한 후임이 88년생이었는데...


이렇게 무서운 88년생은 처음 봤어.


여행하는 스타일이 나와 매우 잘 맞는 청년이다.


그냥 계속 늘어지는 스타일임.ㅎㅎㅎ





전망대에는 이렇게 놀이터도 있다.


내 생각에는 전망대가 아니라 그냥 산동네에 있는 놀이터인거 같다.


입장료도 없고 볼것도 없고... 그냥 라파즈에서 좀 높이 있다는 거 정도?


이 놀이터에는 어떻게 타야 되는지 모를 그네가 있었는데...


그네 높이가 내 허리 위치였다. 어떻게 타는거지...;;; 한번 타봤다가 저꼴이 됐다.





이렇게 우리는 무료한 라파즈의 밤을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어주며 보냈다.


사실 이날이 라파즈의 마지막날 밤인줄 알았거든.


다음날 버스 놓쳐서 하룻밤 더 있을줄 알았으면 전망대는 내일 왔을텐데...



글 쓰다보니 이날 빡쳤던 기억이 나서 그 일을 적어본다.


이날 야경을 보고나서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에게 전망대 가는 법을 알려준 친절한 쥬스아저씨가 보였다.


길거리에서 파인애플 쥬스를 파시는 분이었는데...


목도 마르고 해서 훈이씨랑 3명이서 같이 길거리에 서서 쥬스를 마시고 있었다.


훈이씨가 내 반대편에 서서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볼리비아놈이 훈이씨 머리를 잡아당겼는지 쳤는지...


여하튼 시비를 걸고 지나갔다.


보기와는 다르게 여린 훈이씨는 깜짝 놀라 그 볼리비아놈을 쳐다봤고, 그 볼리비아놈은 뭐라뭐라 하면서 반대편 길가에 가서 우리를 쳐다봤다.


보기와는 다르게 성질이 더러운 나는 그 볼리비아놈에게 뻐큐를 날려줬고,


그 볼리비아놈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머리로 박았다.


덕분에 내 안경은 찌그러졌다. 망할. 아오 빡쳐. 이런 망할년.


후두려 팰라 그랬더니 다시 길 건너로 도망가서는 경찰한테 뭐라뭐라 씨부린다.


뭐라는거여. 내가 한국말로 욕을 했더니 갑자기 또 다가온다.


이번에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저 나약한 볼리비아놈의 턱을 뽀개놔야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뭘 꺼낸다.


망했다. 칼인가. 총인가. 뭐지. 찌르나. 설마 경찰 앞에서?


멈칫 거리면서 손을 유심히 봤더니 돈을 꺼낸다.


뭐여. 돈 주나? 깽값인가? 이거 안경값 비싼데? 


근데 돈을 꺼내서는 뭐라뭐라 계속해서 씨부린다. 가끔 뿌따 라는 스페인어 욕도 들리고 볼리비아 뭐라고 하는걸 보니,


뭐 자기나라 오지 말고 니네 나라 가라고 하는거 같다.


이런 망할것. 칼이 없다는걸 확인했다. 싸우면 80%는 내가 이길거 같은 무모한 자신감이 생긴다.


게다가 옆에 있던 아저씨가 나를 보면서 저 사람 좀 미친거 같다면서 무술하는 시늉을 한다.


내가 해석하기에는


"저 놈은 미쳤으니 매가 약입니다. 당신은 짱깨니까 쿵푸로 저놈을 물리쳐주세요."


라고 들렸다.



다가갔다.


또 길건너로 도망간다. 망할. 더 빡친다.


경찰이 보고있건 말건 따라가서 등짝을 후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매고 있던 가방을 바닥으로 집어던질라 그런다.


오호라. 덤빈다. 싸우나보다. 이제 싸우자.


근데 바닥으로 던지려던 가방을 다시 낚아채더니 도망가기 시작한다.


쫓아갈라 그랬는데,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막 부딪히면서 도망간다.


부딪힌 사람들이 그 사람을 마구 때린다.


뭐여. 미친놈인가. 왜 저러지.



진희랑 훈이씨도 가만 있길래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근데 안경 오른쪽이 좀 내려갔다. 어딘가 휜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벗어서 손으로 제대로 맞추려고 했는데 이건 반뿔테다.


괜히 힘 줬다간 다 뽀개질꺼 같았다.


아오 빡쳐. 더 빡쳤다. 안경 생각하니 더 빡쳤다. 예비안경이 하나더 있긴 하지만 아직 여행이 1년 가까이 더 남았다.


아 빡쳐. 글 쓰면서도 빡친다.


10일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잘때 가끔 빡친다. 그때 강냉이를 털어버렸어야 되는건데. 아오.



그렇게 길거리에서 시선을 집중받고 나서 숙소로 돌아오니 훈이씨가 나에게 말했다.


"형님. 형님 보기보다 흥분 잘 하시나봐요.ㅎㅎㅎ"


이런 망할. 지금 누구 때문에 길거리에서 쌈박질 하게 생겼는데 나한테 흥분을 잘 하다니.


여하튼 이렇게 현지인 강냉이 털고 경찰서에 잡혀갈 뻔한 일이 잘 마무리 됐다.



사실 여행하면서 현지인이 야유하고 놀리고 시비 거는건 익숙했지만,


내가 아닌 아끼는 동생에게 그런 걸 못 참은거 같다.


만약 더 못참고 쌈박질 했으면 난 지금쯤 칠레 산티아고가 아니라 볼리비아 산티아고 유치장에 갇혀 있었겠지.


여하튼 그랬다고.




지금은 칠레의 산티아고다.


라파즈에서 산티아고까지. 우리는 소금사막으로 유명한 우유니평원과 서태지씨의 모아이 뮤비 배경인 아타카마 사막을 거쳐왔다.


앞으로 올릴 포스팅이 산더미다 이거지.


조금만 기다려봐. 이 지루한 라파즈 잉여기도 2개만 더 올리면 되니까.;;;


사실 아직까지도 라파즈가 그립다. 너무 싸서 그리운거 같다.


2리터짜리 술이 3천원도 안하는 나라가 또 어디있을까...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