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2016. 9. 12. 00:59

미국에서 쿠바로 넘어가기 직전, 네이버 블로그가 해외에서 너무 느리다는 것을 깨닫고,


티스토리로 옮겨오긴 했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원래 네이버 블로그를 해왔었다.


거기에 쓴 글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던 글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대학교에서 학점 잘 받는 방법에 대한 글이었다.



입사하고나서 대학시절 내 기준에서는 열심히 살았던 그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블로그에 공대에서 학점 잘 받는 법에 대해 써놨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었고, 많은 도움이 됐었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그래서 그때 결심했던 것 중 하나가,


그럼 나중에는 입사할때의 팁이라도 좀 적어놔야겠다... 였다.


다들 취업이 힘들다고 하지만, 난 나름 왠만한 서류는 다 통과했고, 인적성검사와 인성면접은 거의 99% 통과했으니까,


그때의 기록들을 적어두면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기고만장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거 같다.



허나,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냥 운때가 좋아서 취업이 잘 됐던거 같다.


스마트폰 돌풍이 불던 2011년.


난 그저 2년 약정이 끝나서 처음 아이폰이 나온날 아이폰을 예약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스마트폰 관련 벤처회사에서 일해봤단 경험 하나만으로, 


물론 이것도 친인척중 한분이 그 회사를 차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니까 내 능력은 아니지...


여하튼 그러저러한 이유로 운 좋게 취업이 매우매우 쉬웠을뿐, 내가 뛰어났던 것은 별로 없었던거 같다.




그러해서.


여하튼 그러해서.


취업에 대한 글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한 스텝 건너뛰어서 내가 몸담았던.


첫 정규직으로 일했던 LG전자에서의 1년을 돌이켜보고자 한다.


이건 내 자랑도 아니고. 흑역사도 아니고. 그냥 내 30년 인생중의 1년의 시간에 대한 가감없는 서술이다.


물론 군대얘기와 마찬가지로, 추억보정이 들어가서 약간의 과장이 섞일수는 있으나,


최대한 담백하게 적어내고자 한다.




때는 2011년 겨울이었다.


삼성SDS를 버리고. 미래에셋증권을 버리고 LG전자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부터 쓰기 시작하면,


오늘 밤을 새도 다 못 끝낼 것 같으니, 우선 LG전자에 입사한 그 이후로부터 쓰고자 한다.



처음에는 LG그룹 연수였다. 2주였나.. 곤지암 리조트였는지 이천 신입사원 연수원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여하튼 어디선가 열심히 연수를 받았다.


개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건, LG메들리 라고 하는 LG그룹 전통을 배우는 일이었다.



LG메들리라는건, 약... 한 10개? 15개? 쯤 되는 노래들을 LG와 관련하여 개사를 한 다음에,


그 노래를 목청이 터지도록 부르면서 춤을 추는 그런 전통이었다.


약 5명정도가 한 조가 되어서, 그 춤을 외우고 노래를 외우고, 거의 하루종일 연습을 하면서,


해가 질 무렵쯤부터 시작해서, 담당 선배사원이 '오케이! 통과!' 라고 할때까지 계속해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었다.



그때도 그러했고, 지금 생각해도 참 병신같은 문화였지만,


그 당시에는 사회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필터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흡수하던 시절이라서,


아무 생각없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던거 같다.



그렇게 LG그룹 연수를 끝마치고는, 거의 곧바로 LG전자 연수를 시작했다.


거기선 뭘 했더라... 아.... 같은 조의 나이 많은 누님 한분이 계셨는데 출신학교를 적는 란에 영어로 뭐라 써놔서,


누나 뭔 학교 나온거에요? H..a..... v?.. 뭐에요 여기?


라고 했더니, 하버드 대학교 라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헐. 하버드? 태어나서 하버드 대학 나온 사람을 실제로 처음 봐서 너무 놀랬던 기억이 난다.



여하튼 거기서도 뭐드라... 그 당시 유행하던 남자의 자격 합창단 컨셉으로 UCC를 찍어대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왜 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짓들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또 이어서 LG전자 MC사업본부 연수를 시작했었다.


연수만 거의 2달 넘게 했던거 같네.


거기선 별 기억이 없다. 


실제로 사원증을 처음 받았을때의 그 벅찬 감동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또 이어서 LG전자 MC사업본부 SW직군 교육을 받았던거 같다.


대학교때부터 최종 입사할때까지 UCC만 4~5번은 찍어댔던거 같다.




이 수많은 연수를 거치면서 만난 수십, 수백명의 '동기'들 중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10명도 되지 않는다.


나의 낯가리는 성격 + 사회에서 만난 인연이라는게 다 그렇지 뭐 라는 썩어빠진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다.


여하튼 그렇게 난 수많은 연수를 거치고 난 후에야,


진짜 LG전자 가산 MC-C (구 KCC건물) 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LG전자 MC사업본부 동기들이 전부 대강당 같은 곳에 모였었다.


그리고는 군대에서 보직 분류 하듯이, 인사팀 사람 중 한명이 이름을 호명하면서 몇팀으로 가는지 얘기해줬었다.


내 기억으로는.. 뭐 P1실은 국내사업... P2실은 어디.. P4실은 중남미... P7실은 테블릿... 뭐 이런식으로 나뉘어졌던거 같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이미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쁘고 어디는 지옥이고 어디는 좋다는...


진리의 케바케 따위는 무시한 루머들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그때 나는 P7실로 발령을 받았었다.


테블릿 팀.


응? 테블릿? 아이패드 같은건가? LG전자에서도 그걸 만들어?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거 같다.



나는 처음 월급이라는 걸 받아봤던 벤처회사에서 아이패드를 만져봤었고,


그 이후 삼성SDS인턴을 하면서 갤럭시탭 초기버젼을 만져봤었기 때문에,


이쯤되면 테블릿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될 만큼 테블릿 관련된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거 같다.



그렇게 7팀으로 발령을 받고나서, 인사팀을 따라 쭐레쭐레 갔던거 같다.


가산디지털단지에는 7개인가... 되는 LG전자 관련 건물이 있는데, 개중에서 나는 C건물이라고 하는 (구)KCC건물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속해있던 팀은... 이젠 이름도 기억 안나지만,


주로 석사, 박사 분들이 주를 이뤘던 팀이었다.


(원래 CTO라고... 연구만 전문적으로 하시던 분들이었는데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일반 회사원처럼 소속이 바뀌어버린 비운의 팀이었다.)



거기서 나는...


이젠 이름도 기억 안나지만 꽤 우락부락한 사수를 만나게 되었고, 괴팍한 팀장을 만나게 되었다.




첫날부터 야근을 했다.


팀원들에게 패기넘치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배정받고. 꽉 끼는 정장과 구두를 신은 채로 노트북을 셋팅하고,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그 환경에서 10시간 가까이 책만 읽었던거 같다.


원래 LG전자는 8시 출근 - 5시 퇴근이었지만 5시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았던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아서 안드로이드 개발 관련된 책만 주구장창 읽고 있었다.


그렇게 6시가 되자, 팀장님이 일어나서는 밥 먹으러 갑시다! 하고는 다 같이 우르르 밥을 먹으러 갔다.



나는 어떻게 하나 고민하면서 앉아있었는데,


팀장님이 나에게 말했다.


'자네는 집에 안가나? 그러면 저녁이나 같이 먹고 가지?'


옙! 같이 드시죠! 


그렇게 난 첫날부터 저녁을 먹고는...... 밤 10시까지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융통성 없는 신입이었던거 같다.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해서, 혼자 자리에 앉아서 계속해서 책만 읽어댔다.


화장실 갈때도 누구에게 말씀 드리고 가야할지 몰라서 쩔쩔 매다가 겨우겨우 지나가는 사수를 붙잡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사수가 말해줬지. 그런건 그냥 가도 된다고...


그렇게 첫날부터 밤 10시에 퇴근하고 나서... 거의 한달동안 야근을 시작했다.



난 참 눈치가 없는 신입사원이었다.


팀에 누군가 한명이라도 남아있으면 무조건 남아있어야 되는줄로만 알았다.


아무도 나에게 회사생활에 대해 조언을 해준 사람은 없었고,


그 당시 내 사수는 너무나도 바빠서 날 돌봐줄 겨를 따윈 없었다.


가끔 모르던 것이 생겼을때 바로 뒤에 앉은 여자선임분에게 여쭤보곤 했는데, 그게 반복되지 가끔 짜증을 내시기도 했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상처를 받았었지...


뭔가 신입사원 스스로 주제를 정해서 개발하는 일도 했었는데, 물어볼 곳이 없어서 구글링을 해대고,


남이 만든 어플을 다운 받아서 리버스 엔지니어링? 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해킹 비스무리하게 해서 소스코드 빼내서 복사하고 했던 짓을 했었던거 같다.


여하튼 그 당시 팀원분들은 본래 연구원 분들이라 그런지, 서로 일체의 대화도 없었고,


약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셨던거 같다.


여튼 난 신입사원 프로젝트 + 회사업무 + 회사적응 등으로 항상 바빴었다.



그러다보니 항상 매일 마지막... 밤늦게 혼자 퇴근하곤 했었다.


가끔 사수와 또 그의 사수가 술마시자고 불러내서 일찍 퇴근하던 것을 빼면 항상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할줄 아는것도 없고 할것도 없으면서 말이지....


그러다 언젠가 한번, 내 사수의 사수가 술을 마시자고 해서,


온수역에 있는 허름한 포장마차에 갔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분은 특이하게 소주를 쉬지 않고 드시는 스타일이었다.


많이 드시는게 아니고... 소주 한잔을 따라놓으면 입술만 축이듯이 한 20번에 걸쳐서 쉬지 않고 드시는 스타일이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그 분이 잔을 들때마다 따라서 소주 한잔씩 원샷을 했었다.


워낙 긴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정신은 꽉 잡고 있었는데....


그때 그 분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내가 이제까지 수많은 신입사원을 만나봤는데... 명수씨처럼 처음부터 너무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 불안해.


왜냐면 그러다보면 초반에 나가떨어지거든.... 끝까지 지금의 열정을 이어나갈수 있으면 몰라도...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할거면 지금부터라도 페이스 조절을 좀 하는게 좋아...



그 얘기를 들었을때 나는 뭔가 모르게 뿌듯했었다.


그 얘기의 핵심은 파악하지도 못한채. 아... 난 진짜 열심히 하고 있는건가보다. 좋아. 이대로 나가떨어지지만 않으면 난 인정 받겠구나. 근데 난 전혀 나가떨어질 생각이 없는데? 좋아. 이대로만 가면 되겠다.


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 당시 그 선배분이 해줬던 얘기는 잘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었고, 열심히 하란 말도 아니었는데...


난 그걸 5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그 팀에서의 몇일이 지나갔었다.


난 모토로라 XOOM, 아이패드2, 갤럭시탭 10.1, 옵티머스패드 3D 였나... 뭐 그런 테블릿 PC들의 성능측정 관련된 일을 했었다.


참.. 혼자 하는 일이었다.


혼자 그 많은 테블릿을 짊어지고 다른 건물로 버스를 타고 가서, 하루종일 혼자 데이터를 취합해서 다른팀의 선배분에게 메일로 보내고..


혼자 점심을 먹고 혼자 테스트하고 혼자 퇴근을 하는 그런일을 꽤 했던거 같다...



그렇게 뭐가 회사생활인지. 뭐가 사회생활인지도 모른채 한달쯤 보내다가,


옆팀의 동기에게 이상한 소식 하나를 듣게 된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테블릿PC 관련된 모든 사업을 접을 예정이라서, 우리는 다른 팀으로 보내진다는 얘기였다..


이게 뭔소린가... 짤리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팀 회의가 소집됐고,


좁디 좁은 회의실에서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흠... 명수씨는... 다른 팀으로 가게 됐어요.'


끝.


그게 끝이었다. 전후사정 따윈 없었다. 그냥 다른 팀으로 가게 됐어요. 가 끝이었다.


그리고 뒤 이어서 나온 얘기가 아직까지도 내 가슴속에 상처로 남아있는다.



'그럼... 명수씨는 회의실을 나가주세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마지막 회읜데 듣겠습니다.'


'아니. 이제 우리팀이 아니니까 들으면 안될거 같으니까, 밖으로 나가주세요.'



그렇게 난 한순간에 소속을 잃어버린채, 혼자 책상에 앉아있게 됐었다.


그 당시 받았던 충격은 꽤 컸던거 같다.


한번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바보같이 따르던 성격 탓에,


내 사수와 그 사수의 사수분을 꽤나 잘 따르고 이쁨받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었고,


그들도 나를 참 아껴준다고 생각하고 지냈었는데...


그건 한낱 내 감성적인 생각일뿐이었다.


이곳은 대기업이었고. 난 수만명의 사람 중 한명이었다.


사수나 사수의 사수에게 있어서 나란 사람은. 그저 이제까지 스쳐지나온 수십, 수백명의 신입사원 중 한명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 첫 회사생활의 첫번째 팀을 떠나가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팀장님이 날 별로 마음에 안 들어했던거 같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이쁨 받기 위해서 노력하던 부류였으나,


그 방법이 서툴렀던거 같다.


사실 서툴렀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님이 날 탐탁치 않아하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냥 내 방법이 서툴러서 그랬다고 믿는데 내 정신건강에 좋을거 같다.



여하튼 그렇게 내 첫 팀은 이제는 기억도 안날 정도로 옛날일이 되어버렸다.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