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_12_13/43-India2015. 5. 23. 23:56

금일의 마날리 날씨는 말 그대로 쩔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건데, 고산지대는 보통 아침에는 맑다가 정오쯤 되면 우중충해지는 날씨가 특징인거 같다...


근데 오늘은 정말 하루종일 날씨가 좋았다.



햇빛은 쨍쨍하지만 건조해서 그늘에 있으면 시원한 그런 날씨,


바람이 많이 부는 그런 날씨를 난 참 좋아한다.


대체적으로 습한 한국에서는 정말 가끔 느낄수 있는 그런 날씨이긴 한데...


난 그런 날씨를 좋아한다.





우리 마날수 숙소에서 보는 뷰.


침대에 앉아있으면 창밖으로 이런 뷰가 보인다.


방안에 있으면 시원한데다, 창밖으로 이런 뷰까지 보이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그냥 말 그대로 멍때리고 있게 된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경험을 할수 있을까.


회사 다니면서 여름휴가라고 불리우는 것은, 보통 1주? 2주? 정도 해외여행을 가는 것...


비행기 시간을 빼면 총 10일 남짓한 시간동안,


이런 여유를 부릴 시간이 될까.



여행을 다니면서 항상 궁금했던 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금발양키들의 책 읽는 모습이었다.


아니, 쟤네는 왜 이 먼곳까지 비행기 타고 와서 책을 읽고 있지?


수영하고 관광하고 술마시고 떠들고 놀고 즐기기에도 바쁘지 않나?...



그러하다.


그들은 전혀 바쁘지 않다.


외국애들은 (특히 유럽양키들) 한달씩 휴가내고 놀러다니는게 일반적이라서,


어딜 가더라도 전혀 조급함이 없다.


우리처럼 1일차 6시기상 - 호텔조식 - 7시 관광스팟1으로 출발 - 인증샷 찍고 9시 관광스팟2로 출발 - 페북에 올리고 - 기념품 좀 사고...


등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할 필요가 없는거다.


휴가 기간 자체가 워낙 길다보니 책 읽을 시간도 있고, 여유를 부릴수 있는거 같다.



아시아인들은 어딜가든 사진만 찍고 돌아다닌다고 욕하지 말아라.


우리도 너희처럼 한달씩 휴가 쓸수 있으면 책도 읽고 여유 있게 여행할수 있다고..ㅠ





뇌가 아무리 멍을 때려도, 위는 절대 멍 때리는 법이 없다.


배가 고픈 관계로 점심을 먹으러 동네를 뒤졌다.


그냥 자주 가던 블루 엘리펀트를 갈까 하다가... 좀 다른곳에서 먹고 싶은 마음에,


올드 마날리 안쪽으로 들어가봤다.


이 길은 올드 마날리 끝쯤의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이곳.


Raj 패스트푸드라는... 이름은 마치 햄버거를 팔것 같지만,


안에 계신 손님들로 봐서는 80% 확률로 인도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인거 같다.



북인도 사람이랑 남인도 사람이랑 만나면 힌디어를 안 쓰고, 영어를 쓴다고 한다.


인도는 대략 800개에서 2000개의 언어가 있다고 하는데...


인도정부 공식 공용어는 힌디어랑 영어뿐이다.


원래 힌디어로만 해도 될거 같은데, 힌디어를 거의 안 쓰는 동네도 있어서 어쩔수 없이 영어도 같이 공용어로 했다고 한다.



난 실제로 인도 최남단에 위치한 까냑꾸마리라는 동네에서,


북인도 사람이랑 남인도 사람이랑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걸 봤다.


물론 난 그 영어도 못 알아듣긴 했지만, 신기방기한 경험이었다.



여하튼...


그러한 관계로 인도 대부분의 음식점에는 영어로 된 메뉴판이 있으니 여행하는데도 아무 걱정 없다.





우리가 시켜먹은 볶음국수와 뗌뚝.


난 못 먹는 음식은 없지만, 딱히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걸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냥 맨날 먹던거 먹는걸 좋아하는지라,


인도에 오면 항상 먹는게 저 쵸멘 아니면, 에그커리.


두개만 주구장창 먹고 다닌다.



그와 반대로,


진희는 이것저것 새로운걸 먹어보는걸 좋아해서,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이 치즈맛이 약간 나는 뗌뚝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다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우리 숙소 1층에서 어떤 외국인과 인도인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구두를 닦는 어린 인도인이 외국인에게 뭔가 말을 걸고 있었다.


난 속으로,


'어린 친구가 벌써부터 외국인 등쳐먹고 다니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부끄러워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저 인도인이 구두를 닦지 않겠냐고 접근하기는 했지만,


보다시피 양키의 신발은 구두가 아니었으므로 바로 대화가 종결됐다.


그 후에, 저 두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그 와중에 내 눈에 띈건 인도인이 들고 있는 저 영어단어 책...


저 인도인은 일하는 와중에 자기가 들고 있던 영어단어 책을 꺼내서 양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양키 역시 읽던 책을 잠시 접어두고는 이것저것 알려주기 시작했다.



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저 인도인에게 놀란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영어를 잘하는 저 양키에게 놀란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저들의 오픈마인드가 부러웠을 뿐이다.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사기를 당하고, 삐끼에게 속고 빡치고 열받고 돈 잃고 마음 잃고 사랑도 잃고 하다보니,


어느 순간 나는 엄청나게 폐쇄적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현지인이 뭔가 말이라도 걸면,


'아니요. 필요 없어요.'


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무조건 사기꾼이야.


얘네가 왜 나한테 말을 걸겠어? 뭘 팔거나 사기 치려고 말을 걸겠지.


라는 마인드가 가득차있었다.



그러다보니... 사기는 잘 안 당하게 된다.


당연히 사기 당할 새도 없이 무조건 밀쳐내니까 사기를 안 당하겠지...


하지만,


수많은 인연들을 잃고 있었다.


사기꾼 100명을 밀어내서 다행인지는 몰라도, 1명의 인연까지도 밀어내버리고 있었다.



이건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과도 비슷했다.


사람에게 상처받는게 싫어서 모든 사람을 밀쳐냈던 내 지난 모습.


상처를 안 받는데에는 성공했지만, 나에게 호의를 갖고 다가온 사람들까지도 모두 밀쳐내버리고 말았다.


난 항상 누군가가 먼저 다가와서 나를 설득시켜 그 사람을 받아들이게끔 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던거 같다.


참으로 유아스러운 발상이 아닐수 없다.



저 양키와 인도인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득도한듯이,


그래. 나도 이제 오픈마인드로 바꿔야지~ 하면서 바뀌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내가 사람을 대하면서 대해왔던 태도와, 내 기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던건 분명하다.





우리 숙소에서 보이는 뷰.


왼쪽에 있는 건물도 숙소인거 같긴 한데... 약간 누추하고 간판도 따로 없는걸로 봐서는,


인도 여행객을 상대로 하는 숙소인거 같다.





사진으로만 보면 좀 더워보일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전혀 덥지 않았다.


햇빛은 쨍쩅하지만 그늘에서는 시원한 날씨.





마날리는 북인도 초입부에 위치한 동네라서 그런지,


설산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이런 풍경도 멋진거 같다.





우리 방 앞에 있던 테이블.


커피 한잔씩 타서 여기 앉아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



오른쪽에 널린 빨래중에 가운데 노란 수건은,


지금 399일째 쓰고 있는 수건으로써,


이제 더이상 수건으로써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타월인데, 물기흡수가 전혀 안됨.ㅋㅋㅋ





그냥 방에만 있기는 심심해서 우리는 뭔가 할것을 찾았다.


그리고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음주.



커피만 마시고 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대낮부터 맥주를 한잔씩 하기로 했다.


세계일주하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모든 도시에서 술을 마신거 같다.


남미에서는 와인을 많이 마셨고, 유럽에서는 맥주를 많이 마셨고...


서울에서는 그냥 소주만 주구장창 마시고 있다.





술 파는 가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채,


그냥 무작정 뉴마날리쪽으로 걸어갔다.


가다보면 어딘가 있겠지 싶어서 걸었는데.... 아무데도 파는데가 없다.



이게 머여.


마리화나는 아무데서나 쉽게 구할수 있다는 마날리에서,


왜 술은 아무데서나 안 파는거야?


마리화나가 있으니까 술은 잘 안 마시나?...



사실 술을 권하는 종교는 별로 없을거다. (내가 알기로는...)


그래서 이렇게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나라에서는 술을 대놓고 마구마구 팔지 않는다.


이집트에서도 그랬고... 인도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외국인이 많이 관광오는 동네는 술 구하기가 쉬운데,


가끔 리쉬께쉬처럼 동네 전체에서 술을 안 파는 동네도 있다.



마날리는 그정도는 아니지만, 생각외로 술 파는 곳이 별로 없었다.





뉴마날리에 거의 도착할때쯤, 우리는 술 파는 가게를 찾을수 있었다.


거기서 사온건, 600ml짜리 맥주 4병.


잘은 안 보이는데... 아마도 인도 대표맥주인 킹피셔가 맛이 없는 관계로,


호주맥주인 포스터를 사온거 같다.



지금 병을 따고 있는데 쓰는 맥가이버칼은,


여행오기전에 작은어머님이 선물해주신 마데인짱꿔 맥가이버칼인데,


여행하면서 매우 유용했던 물품 중 하나다.



왜냐면 저기 와인딸때 쓰는 스크류랑 맥주딸때 쓰는 병따개랑 안주딸때 쓰는 깡통따개가 다 있었거든.


우리에겐 필수아이템이었지.





그렇게 대낮부터 맥주를 마시면서 경치 구경을 하면서,


세월아네월아 하다보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됐다.


저녁은 또 어디가서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첫날 갔다가 가격대비성능비가 별로라서 안가던 식당이 떠올랐다.



다시는 갈 생각이 없었으나, 우리 숙소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한 식당이라서,


오며가며 자꾸 종업원이랑 마주친다...


망할 델리 빠하르간지의 양아치들처럼 반강제로 삐끼짓을 하는게 아니고,


그냥 눈인사만 하고... 아주 가끔 오늘 저녁 우리가게로 밥 먹으러 오렴... 수준의 말만 던지던 그 종업원.



마음 약하기로 유명한 우리는,


그 종업원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그냥 그 가게로 향했다.




이건 진희가 시킨 닭요리고, 나는 피자 한판을 시켜서 먹었다.


맛없지는 않지만, 그냥 특별할게 없는 외국인 상대 레스토랑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나는 곳이었으나,


종업원이 매우 착했던 관계로 다음에 또 다시 가게 된다면 들를 의향이 있다.




둘다 배가 너무 불러서, 동네나 한바퀴 돌며 배를 식히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걸어가다보니... 분명 아까는 안 보였던 술가게가 매우 가까이에 있었다.


망할. 여기 있는지도 모르고 뉴마날리까지 갔다온거였구나...


술을 더 마실까 하다가... 낮술을 한 관계로 밤술은 좀 그래서 패스.



이제 내일이면 마날리에서 델리로 가는 버스를 탄다.


우리 여행에서 마지막 타는 장거리 버스다.


언젠가부터 10시간 이하짜리 버스는 장거리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어딜 가든 10시간 이하면 아무리 후진 철판버스라도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정도였다.



하지만 2년이 흐른 2015년 지금.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대구 서대구터미널까지 가는 3시간 반짜리 우등버스도 힘들다고 징징대고 있다.


사람이라는게 참 웃겨. 그지?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