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차를 반납하는 날이다.


오늘 해야 될 일은.


우선 왜 이렇게 오랫동안 포스팅이 밀렸냐면, 런던에서 주구장창 술만 마셔서 그런겁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랄게요.



여하튼 오늘 해야 될 일은.


1. 남은 캠핑장비 전부 한국으로 부치기.


2. 인애리씨와 함께 돌아다니기.


3. 차 반납.


이었다.


결국 제대로 한거라곤 차 반납밖에 없었음....


하루 종일 뻘짓한 얘기를 시작해보자.





우선 아침에 일어나 대충 캠핑장비를 부치려고 우체국에 갔다.


우체국 소포박스를 사려고 봤는데... 가장 큰 사이즈가 우리나라 대학교 전공책 하나 넣으면 꽉 찰것 같은 사이즈였다.


크흥... 직원한테 더 큰건 없냐고, 우린 더 큰거 보내야 된다고 그랬더니,


그럼 알아서 박스를 만들어 오란다.



근데 이 나라는 이름만 선진국이고 후진국이라 그런지, 박스 구하는게 생각 외로 힘들었다.


우리나라는 왠만한 슈퍼에 가서 박스 달라고 하면 박스 주고,


이마트 같은데 가면 앞에 박스가 널렸는데,


여긴 까르푸, 데카트롱 가서 박스를 달라고 하면 이해를 못한다. 왜? 어따 쓸라고? 없는데?



결국 우리는 차를 몰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본의 아니게 폐휴지 수집에 나섰다.


가뜩이나 비가 오는 바람에 길거리의 박스가 다 젖어있는 상태라서,


정상적인 박스 찾는게 너무 힘들었음....



그렇게 대충 박스 2,3개를 주워서 이제 포장하기 시작했다.


근데 테이프가 없네?


한국에서 가져온 청테이프는 너무나 귀한 아이템이라 동네 문방구에 가서 테이프를 샀다.


우리나라 유리테이프 하나가 만원이다.


왓더풕!!!!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그거 하나 산 다음에,


용산에서 딸배하던 시절 배웠던 온갖 포장 기술을 선보이며 박스를 만들었다.


드디어 끝났다.


부치려고 우체국에 갔다.



25만원.


한국으로 부치는데 25만원이란다.. 14킬로밖에 안되는데 25만원 내놓으란다.


응? 지금 여기 들어있는거 다 합쳐도 25만원 안되는데?


알고보니 항공편으로밖에 쏠수 없단다. 만약 싼 배편을 이용하고 싶으면 규격박스를 이용하란다.



그걸 왜 지금 말해줬어? 아까 말해주지?


응?


결국 우리는 한국으로 소포 부치는것을 포기하고 인애리씨를 만나러 갔다.


하늘도 울고, 우리도 울고, 인애리씨는 안 울었음.




사진 없으니 계속 이어서 글만 써보자.


인애리씨를 만나서 우리는 이케아에 놀러갔다.


오전 내내 4~5시간을 우체국 소포 부치느라 소비해버린 바람에, 바람과 같은 속도로 이케아로 향했다.


목적은 오리털 이불을 사서 인애리씨에게 부탁하여 한국으로 부치고,


인애리씨가 프랑스에 거주하는 동안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네비 찍고 이케아에 갔는데.....


부엌 전용 이케아다... 이케아도 종류가 있는지 처음 알았네.


신나게 돌아다녀도 부엌밖에 없길래, 이케아 한번 겁나 큰가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부엌 전용이었다.


망할!!!!


다시 네비 찍고 옆동네 이케아까지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고르고 사려고 줄을 섰는데,


줄이 너무 길다. 


우린 오후 6시까지 차를 반납해야되는데, 벌써 오후 5시가 다 되간다...


엉엉... 결국 우린 계산을 포기하고는, 바로 차를 반납하러 갔다.





용용이.


우리가 110일간 타고 다닌 이 차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언젠가... 리스하고 다닌지 한달쯤 됐을때, 이것저것 정보 좀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하는데,


자기들이 리스한 차에 부릉이? 빵빵이?... 뭐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질수 없기에, 이름을 붙이려고 했는데....


무생물에 이름을 붙이는게 처음이라, 매우 어색하게 이것저것 시도했다.


그러다 결국 용용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왜냐면, 이때쯤부터 차가 골골대기 시작해서, 무슨 1단에서 2단으로 기어만 바뀌어도 용을 쓰면서 골골대서,


그래서 용용이라고 불렀다.



진짜 웃긴건, 별거 아닌데... 내 차도 아니고 고작 110일 리스해서 돌아다녔을 뿐인데,


게다가 마지막쯤엔 타이어도 찢어져서 언제 펑크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하루빨리 반납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는데...


막상 반납한다고 생각하니, 울적해졌다.


110일동안 겪었던 많은일들이 스쳐지나갔다...



아우토반에서 멋모르고 160 밟았다가 차가 공중분해 될뻔한 것도 그렇고,


노르웨이에서 신나게 꼬부랑길 돌다가 정면충돌한것도 그렇고,


라트비아에서 지옥의 교통정체를 맛본것도,


폴란드에다 2주동안 혼자 세워두고 한국 갔다온거,


게다가 빵꾸를 두번씩이나 내버린거,


스위스랑 이탈리아 북부에서 눈산에 올라갔다가 저 세상으로 올라갈뻔 한거..


전부 이제 아리용.



미안하다 용용아. 한때 진심으로 널 갖다 버리고 싶었단다.


특히 환타님의 스마트를 보는 순간, 우린 생각했지.


아... 이런 거지같이 생긴차 말고 저런차 타고 싶다.


미안하다.


다음 주인은 좀더 널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만나길 바랄게.





110일만에 제대로 된 배낭을 짊어지고 숙소를 찾아가려니 온몸의 디스크들이 소리를 질렀다.


원래 내 배낭은 16킬로, 진희는 14킬로정도 됐는데...


이날 짐정리하고 무게 재보니까, 내꺼는 20킬로, 진희는 18킬로 정도로 늘어났다.



차를 반납하면서 이제 차 걱정 안해도 된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는데,


막상 다시 배낭 짊어지니까, 차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이날이 우리 유럽 마지막 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럽 대륙의 마지막 날임.


내일 저녁 비행기라서, 공항 근처 숙소에서 잠을 청했는데... 할건 없고 마지막 날인데 아쉬운 것도 있고 해서,


와인 한잔 사러 밖으로 나갔다.


근데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이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단다... 게다가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도 모르겠단다...



그래서 우린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까지 가서 공항 편의점에서 이 와인과 빵을 사와서,


조촐하게 파티를 열었다.


110일간의 리스생활도 이제 끝이다.


이제 런던 가서 일주일정도 놀고, 터키가서 보름정도 놀고.... 그리고 아프리카에 가면,


우린 지옥을 경험하겠지.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