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거 없는 칼라파테에서 모레노빙하 다음으로 많이들 찾는 곳이 바로 엘 찰텐.


피츠로이라는 세계 5대 미봉이 있는 동네다.


(이것도 유네스코가 지정한거라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자. 뭔 기준으로 미봉을 정했는지는 모르겠다.)


피츠로이도 파타고니아 지역에 있는 산답게 날씨가 허락을 해야지만 볼 수 있는 까탈스러운 봉우리로 유명하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신나게 버스를 타고 엘 찰텐으로 향했다.


엘 찰텐은 칼라파테에서 3시간정도 떨어져있는 동네다.


우리나라에서 3시간 거리면, 서울에서 대전정도 수준이지만...


아르헨티나에서 3시간이면 그냥 바로 옆동네다. 길음역에서 한성대입구역 수준으로 가깝다고 봐야된다.


뭔 망할놈의 땅이 이렇게도 큰지 모르겠다.





엘 찰텐은 통째로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지역이라서,


마을에 들어가기에 앞서 10분정도 이렇게 간단한 설명을 듣는다.


대충 요약하자면, 트래킹 하다가 사슴을 보게 되면 우리에게 꼭 알려주세요. (대충 뭐 개체수 파악을 위해서 그러는듯)


퓨마 만나면 괜히 까불지 말고, 손을 크게 들고 뒷걸음질 쳐서 도망치세요.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지 마세요.


트래킹 하다가 볼일 보고 싶으면 물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으로 가서 볼일 보고 흙으로 덮으세요.


요즘 비수기라 트래킹코스가 전부 눈이랑 물바다니까 동네에서 방수신발 대여해서 신고 가세요.


였다.


하지만 발건강보다 돈이 우선인 우리는 신발을 빌리지 않고 가기로 했다.


만약 가다가 눈이나 물 때문에 못 가게 되면, 그냥 리턴하는 걸로 합의보고 출발했다.





이 동네는 칼라파테보다 더 심하다.


엄청나게 큰 도로에 차가 안 다닌다. 사람도 안 다니고 오로지 개들만 뛰어다닌다.


쩌어~~기 멀리서부터 개가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을때의 그 스릴감은 이루 말할수 없다.


게다가 개들은 또 얼마나 큰지... 퓨마인지 늑대인지 개인지 헷갈릴 정도다.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바로 피츠로이 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아까 국립공원 설명하는 곳에서 말하기를, 오늘같이 날씨 좋은 날은 드무니까 오늘 꼭 피츠로이를 가라고 했다.





피츠로이 봉우리를 보러 가는 길에 찍은 마을 사진.


마을이 참 아담하고 예쁘게 생겼다.


동네 주변은 전부 깍아지는 절벽을 가진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그런지 더 오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대부분의 숙소는 문을 닫았고, 대부분의 슈퍼, 음식점, 기념품점도 모두 문을 닫았다.


덕분에 우리는 6인 도미토리를 단둘이 썼다.


비수기 쨔응.





피츠로이를 보러 가는 길은 생각보다 평이했다.


산 자체도 우리나라 산이랑 별반 다를거 없이 평이했다.


경사가 심하지도 않고, 길이 험하지도 않고 잘 닦여져 있다.


그냥 메인루트만 따라서 쭉쭉 걸어가다보면 피츠로이를 볼수 있다고 했다.


참고로 왕복 4시간정도 걸렸던거 같다.





별로 걷지도 않았는데 저 멀리 피츠로이 봉우리가 보인다.


숙소에 있는 방명록을 보니까 저 봉우리를 보기 위해서, 3일 넘게 기다린 사람도 있던데...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쉽게 모습을 보여준 피츠로이다.


상어의 이빨을 닮은 모습이라고 하던데...


별로 힘들이지 않고 봐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었다.


와이나포토시 정도로 고생 좀 하고 봐야지, 뭘 보든지간에 눈물콧물 흘리면서 감동을 받을텐데...





길을 가다보면, 딱따구리 서식지역이 나온다.


잘 보면 사진 아래 흙길 마지막에 빨간대가리 딱따구리가 보인다.


이런게 한두마리가 아니고 열마리 넘게 주변에 있다.


집짓느라고 신나게 나무를 쪼고 있는놈도 있고, 밥 먹느라 나무 껍데기만 신나게 뜯어내는 놈들도 있다.


처음엔 신나서 사진을 찍다가, 이제 지나쳐 가야 되는데...


이 놈들이 길을 안 비켜준다..;;; 비키라고 눈을 던져대도 그냥 지 할일을 하고 있다.


히치콕 영화 새를 기억하는가...


그냥 참새도 나한테 날아오면 무서운 판국에, 나무도 뽀개버리는 저 딱따구리가 나에게 날아오면 기절할꺼 같아서 못 지나가고 있었는데,


용감한 진희가 앞장서서 지나갔다.


진희 쨔응.


참고로 진희가 아내고, 내가 남편이다.





점점 피츠로이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날의 날씨는, 정말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씨였다.


원래 피츠로이는 항상 구름에 쌓여 있어서, 토레스 델 파이네의 토레스 삼봉만큼이나 보기 힘들다 그랬는데..


우리는 역시 행복자다. 날씨까지도 우리를 도와주는구나.ㅎ





요기가 바로 피츠로이 전망대다.


저 멀리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바로 피츠로이!!


가이드북에도, 엽서에 나오는것처럼 보이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써있는데, 우리는 엽서보다 더 예쁜 피츠로이를 봤다.


얘기를 들어보니 성수기때는 왠만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저기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멀리서봐도 엄청 고난이도의 봉우리 같았다.


참고로 세계 5대 미봉은, 알프스의 마테호른, 그랑드조라스, 페루 와라즈의 알파마요, 히말라야의 마차푸차레...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피츠로이 란다.


개인적으로 여기보단 히말라야의 마차푸차레가 더 멋졌던거 같다.


이제까지 아무도 정복하지 못했다는 특별함까지 더해진 마차푸차레는 미봉이라 불릴만 했다.


(네팔에서 신성시 되는 산이라서, 입산허가 자체가 안 나온다고 한다.)





구름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하늘. 청명한 가을하늘이다.


겨울에 트래킹을 하니, 땀도 안나고 참 좋았다.


이제 남미를 떠나는 날까지 트래킹 할 일은 없겠지?


남미와서 했던 액티비티의 절반 이상은 전부 트래킹이었던거 같다.


하지만 체중은 그대로라는게 함정.





토레스 델 파이네보다 가격대비성능비가 우수한 피츠로이다.


몇박몇일씩 텐트 짊어지고 다녀야지만 볼수 있는 토레스보다는, 그냥 쉬엄쉬엄 마실 가듯이 가도 볼수 있는 피츠로이가 더 좋다.


그리고 추워서 그런지, 물이 고인곳은 전부 얼어서 쉽게 지나쳐 왔고,


눈이 쌓인 곳은, 다른 사람들이 밟아놓은 곳을 따라 밟으면서 오는 바람에 쉽게 쉽게 왔다.


돈 내고 신발 빌려서 왔으면 후회할뻔 했다.





이제 전망대에서 되돌아 와서, 바로 옆에 있는 호수를 보러 가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은 많고, 숙소로 일찍 가봤자 티아라 기사만 주구장창 볼게 뻔하니까... 열심히 돌아다녀야지.


원래 이 동네도 전부 텐트 짊어지고 다니면서 야영하는 곳인데,


지금은 비수기라서 야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트래킹 하는 사람 자체도 별로 없었다... 그냥 관광객 자체가 별로 없는듯.





요게 호수다..;;;


겨울이라서 호수가 다 얼고, 그 위에 눈이 덮혀서 어디가 호수인지 분간이 안간다.


저 위를 좀 걸어보고 싶었으나, 국립공원 안내원이 괜히 저 위에 걷다가 빠지지 말고 얌전히 사진만 찍으라 그런것이 기억나서


그냥 사진만 찍고 되돌아 왔다.


피츠로이는 여전히 잘 보인다. 이날 하루종일 피츠로이는 계속해서 우리를 반겨줬다.





이제 피츠로이도 봤고, 호수도 봤으니 마을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렇게 어렵지 않은 트래킹은 언제나 환영이다.


4시간 내내 진희랑 이런 저런 시덥잖은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걷다보니 지겨운지도 몰랐다.


역시 여행은 동행이 있어야 제맛이다.


혼자 왔으면 버스커버스커 노래만 주구장창 들으면서 걸어다녔겠지.ㅠ





엥... 이건 내려갈때 찍은 사진인데, 올라올때 찍은 사진이랑 아예 똑같네..;;;


요즘 엘 찰텐은 부동산 바람이 불었는지, 죄다 공사중이다.


성수기때는 방 잡기도 힘든 동네라 하니, 아마도 다음 여름을 대비해서 열심히들 공사중인거 같다.


요새 들어 직접 집 짓는거에 관심이 많아져서, 공사중인 집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걸어내려왔다.




엘 찰텐. 칼라파테만큼이나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별반 할것도 없고, 그냥 조용한 시골마을같은 분위기.


집들이 다 예뻐서 동네구경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런 동네.


원래 엘 찰텐에 몇일이나 머물지 몰라서, 칼라파테로 돌아가는 표를 오픈티켓으로 끊었는데...


생각보다 할게 너무 없어서 하룻밤만 자고 돌아가기로 했다.


칼라파테에는 날마다 맛난 저녁을 해주는 일본인 매니저 아주머님이 계시니까... 빨랑 돌아가야지.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