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2017. 9. 2. 23:12

블로그를 처음 하게 된 계기는,


내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가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머니에게 내 근황을 전하기 위한 용도였다.



특히 10년 전쯤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블로그에 매일같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목적은 오로지 가족들에게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던지라 영국에서 내가 뭐하고 지내는지는 블로그로밖에 알려줄수가 없었다.


특히 비행기표부터 시작해서 여행경비까지 모두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간거라, 어떻게 사용중인지 보고할 의무가 있었고,


할머니에게 내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알려드려야지만 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그냥 아무말이나 써댔었다.


누군가 볼거라 생각도 안했고, 사진도 내 위주로 찍어서 올렸었다.


누나가 내 블로그에 들어와서 새 글이 올라오면 할머니한테 지금 명수는 뭐한대요. 명수는 어디갔대요. 처럼 얘기해줄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영국에서 매일 일기처럼 글을 쓰다가, 인도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인도의 빠하르간지의 한 PC방에서 집에다 잘 도착했고, 인도는 거지같고 빡치는 일 투성이라고 보고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날 보고 말했다.


멍군님이시죠?


깜짝 놀랐다. 넹? 누구세요?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큰 누나뻘쯤 되는? 이모쯤 되는? 그런 여성분이셨다.


영국에서 쓰신 글 잘 봤어요. 인도에 무사히 도착하셨네요? 라면서 말을 시작했고, 난 상당히 쑥스러웠다.


그냥 아무말이나 써댔는데 그걸 보고 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구나... 라는 사실에 내심 뿌듯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쯤부터였을거다.


블로그에 무언가를 쓰고 올릴때 조금씩 더 신경을 쓰게 됐다.


사실 인도 여행 다녀온 사람들이야 주변에 넘치고 넘쳐서 그 정도가 좀 덜하긴 했지만, 사진을 올릴때도 내 얼굴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올릴때 좀 더 조심하게 됐고, 글을 쓸때도 한번 더 생각하기 시작했다.


뭐 대단한 파워블로거라도 된것마냥 느끼진 않았지만, 내부심사를 거치며 글을 쓰기 시작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열심히 학교를 다니면서 블로그는 영국-인도 여행블로그가 아닌 다시 과제정보나 임시저장하는 용도로 쓰게 되었고,


내 블로그는 또 다시 내 일기장이 되었다.


자취하면서 느끼는 외로움을 토해내는 배출구가 되어주었고, 머릿속을 맴돌며 날 지치게 하는 것들을 정리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세계일주를 떠났다.


처음에는 똑같은 목적이었다. 점점 아픈 곳이 많아지는 할머니가 1년 넘는 여행기간동안 날 기다려주신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내가 지금 어디쯤 여행중인지 알려드리기 위해 거의 매일같이 글을 썼고, 세계지도를 사다가 내가 글을 쓰면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 할머니에게 설명 좀 해달라는 부탁도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방문자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자주 보이는 이름들이 나타나고, 난 어느순간 대기업을 때려치고 세계일주를 하는 패기 넘치는 젊은이가 되었다고 스스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내 스스로가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일관성 있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떠난게 아니고 다녀온 후의 미래도 생각하고 이것저것 다 고려해서 도망친게 아니고 여행하면서 항상 즐거웠고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등등등.


그렇게 실제의 나와 이미지상의 나를 분리하다가 어느 순간 합쳤다가 다시 또 분리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다보니,

(물론 나 혼자 지지고 볶고 한거임. 아무도 이렇게 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거임.)


블로그에 뭔가 글 하나 올린다는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을 잘 안 쓴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인거 같기도 하다.


날짜 감각이 무지한지라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벌써 첫 제사를 지낸지도 꽤 된걸로 봐서는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거 같다.



사실 이 글을 쓸때에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들을 정리하고 싶어서였는데... 또 다시 쓸데없이 말만 길어진거 같다.


그럼 원래 쓰려던건 다음에 써야겠다.ㅎㅎ


그럼 원래의 나처럼, 냉장고에 있는 맥주나 마시러 가야겠다. 냠냠.

Posted by v멍군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