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g2018.08.10 22:02

2007년 9월 17일.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터닝포인트가 됐던 날들의 중반을 지나가는 날짜.



아주 어릴적부터 큰아찌를 인생의 롤모델로 삼긴 했으나, 내 의지와 노력은 롤모델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내 10대와 20대 초반.


별 의지도, 목적도 없이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만을 허비하며 보내온 나의 학창시절의 마지막은,


1점대의 학점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런 미래도 꿈꾸지 않고 있는 나약한 내 모습이었다.



어찌보면 도피처로 삼은,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운이 좋았던 나의 영국행.


영국에서의 3개월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영국을 발판 삼아 다음단계로 나아갔던 곳.


2007년 9월 14일. 인도 뉴델리 공항.



2년의 군생활보다 더 많은 시행착오와 감정의 기복과 내가 이런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나도 모르던 나를 발견한 2일의 시간.


2일간의 멘붕을 벗어나고자 즉흥적으로 결정한 북인도행.


그리고 우연과 우연의 거듭 끝에 탑승한 2007년 9월 17일. 다람살라를 지나가고 있던 버스.


거기서 나는 진희의 발가락과 첫 조우를 하게 된다.



한국분이세요? 라는 첫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는 거의 2달동안 같이 여행을 했다.


그리고 진희는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나는 만난지 100일 기념선물인 한국행 비행기표를 들고, 2007년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진희와 한국에서의 연을 이어가게 된다.



나보다 100점은 높은 수능점수를 갖고 있는 진희는 말 그대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즐기고 있었다.


안정된 직장. 높은 연봉. 확실한 미래. 끊임없는 자기계발. 


그에 반해 나의 위치는,


자퇴가 나을것 같은 학점. 불안한 수준을 넘어선 절망이 확실해 보이는 미래. 점점 무력해지고 있는 하루하루.



학교에 다시 복학하고 나서 했던 생각은 항상 똑같았다.


저 사람에 걸맞는 사람이 되자.


내가 대학교수가 될게 아니라면, 최소한 S대기업정도는 다니자. 그래야지 어디가서 레벨 좀 맞다고 하겠지.



나 스스로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수 있는 3년간의 대학생활이었지만,


사실 그걸 가능하게 해 준건 진희였다.


X축, Y축도 분간 못하는 멍청한 놀자공대생을 옆에 두고 수학, 물리, 영어를 열심히 가르쳐준게 진희였다.


데이트를 하기 위해 이태원에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PC방에 가서 나는 게임을 하고, 옆자리에서 나 대신 영어로 된 대학물리학 과제를 열심히 풀고 설명해준게 진희였다.


허구헌날 숙취에 시달리고 열악한 자취밥 먹다가 골병이 든 나를 위해,


이브프로펜과 지금은 판매중지 당한 코싹을 추천해준 것도 진희였다.


지금은 아프리카에서도 쓰지 않을것 같은 가방을 들고, 머리 깎는게 귀찮다고 삭발을 하고 다니고,


옷 고르는 것도 귀찮아서 콜롬비아에서 선물받은 관광객용 티셔츠와 인도에서 입던 옷을 입고 다니는 나를 위해,


가방이며 신발이며 옷이며 시계며 온갖 것들을 선물해준게 진희였다.


늦잠 자는 나를 깨우기 위해 50번씩 전화를 하고, 학교는 가고 있냐 공부는 하고 있냐 니가 지금 제정신이냐 등등


엄마도 하지 않는 잔소리를 해주던게 진희였다.


자소서는 물론 영어로 된 Resume까지 하나씩 첨삭해주던것도 진희였다.



그렇게 3년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마른자리 진자리 어르고 달래고 우쭈쭈 우쭈쭈 오냐오냐 화내고 때리고 하면서 사람답게 만들어준게 진희였다.



그렇게 3년간 각고의 고생 끝에.


난 S대기업은 물론 수많은 기업들을 골라서 취업할 수 있는 초특급 인재가 되었으나, 여전히 빈곤했다.


이미 모든 축의금을 다 뿌려서 받을 일만 남은 진희에 반해, 난 내가 제일 먼저 결혼해서 받은 축의금을 뿌릴 일만 남았었고,


만기가 된 적금은 물론 보험까지 갖고 있던 진희에 반해, 난 이제 갓 겨우 초회보험료를 내는 새내기 회사원이었고,


자차를 끌고 팔공산을 누비며 면허 갱신까지 한 진희에 반해, 난 여전히 아빠차를 몰래 타는 수준이었다.



금액이 중요하진 않지만, 프로포즈 한다고 고른 선물이 10만원짜리 목걸이 귀걸이 셋트였고,

결혼반지도 우리가 끼고 있던 커플링을 녹이고, 난 예약금 3만원만 냈을뿐, 나머진 전부 진희가 냈었다.

제주도로 간 신혼여행도 진희가 다 알아보고 계산하고 나는 그냥 몸만 갔고, (그것마저도 독감이 걸려서 빌빌 거리다 돌아왔지.)

세계일주마저도.... 명목상으로는 반반 부담한 거지만, 그렇게 따지면 난 세계일주 절반의 비용 말고는 그냥 몸만 들고 결혼한 수준이다.


근 10년간의 사회생활동안 쓸데없는 곳에 돈 안 쓰고, 아끼고 아껴가며 적금 들고 예금 들고 보험 들고 하면서 모은 돈을,

나는 그냥 결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제공동체라는 명목 하에 맘대로 누리고 살았다.

반대의 상황이었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은데 진희는 이런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2년? 쯤 전일것 같다.

말도 안되게 올라가는 전세값을 보며 집 없는 서러움을 토해내는 진희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돈을 벌자.

나는 언제나 물질적으로 자유로웠다. 살아오면서도 그랬지만 특히 결혼하고 나서는 단 한번도 내가 물질적으로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둘중 한명이 니나노거리면서 풍악이나 즐기면서 난 물질에서부터 프리한 사람이라고 누워있으면,

나머지 한명이 죽을둥 살둥 올라가는 전세값 매꾸고, 기름값 들이붓고, 기저귀값 걱정해야 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근데 난 그냥 내가 자유로우니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우리 모두 자유로울거라 생각했다.

나는 물 위에 고고하게 떠있는 백조머리였고, 진희는 그 백조머리를 띄우기 위해 발버둥 치는 물갈퀴였다.


그런 진희를 보며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근데 내가 뭐 특별한 재주가 있는것도 아니고, 밤에 대리운전을 뛸만큼 체력이 뛰어나지도 않았으므로,

그냥 손 쉽게 주식에 손을 댔다.


그냥 들으면 아무 생각 없이 주식한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나름 수많은 고민과 전략과 기준을 정해놓고 시작했다.

지금 주식한지 거의 15년이 되어가긴 하지만, 취미처럼 적은 돈만 하다보니 크게 번 적도 없고 크게 잃은 적도 없다.

위에 말한것처럼 물질적인것에 관심을 별로 안 가지다보니 사실 아직도 주식에 대해 잘 모른다. 사고 팔줄만 알뿐.


여하튼 그렇게 주식을 시작했다.

내 전략은 이거였다.

우선 월급이 들어오면, 주식 하나에 몰빵을 한다. 그리고 30만원 (내가 커피를 줄여서라도 몰래 매꿀수 있는 한계선이라고 생각했다.) 이상 손해가 나면 즉시 팔고 다시는 주식을 안한다.

만약 이익이 난다면, 진희가 돈 달라고 할때 바로 다 팔고 진희에게 생활비를 보내준다.

그리고 그 이익 이상 손실이 나면 즉시 팔고 다시는 주식을 안한다.

이런 식이라면, 첫달에 이익이 난다면, 그 이후로는 절대 손해가 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아.. 참고로 나는 생활비가 따로 정해진건 아니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대로 다 쓰고 남는 돈을 진희에게 다 주고 있었다.

태생이 거렁뱅이라 쓰고 싶은대로 다 쓴다고 한들 평균 회사원보다는 조금 쓰는거 같다.


여하튼... 그렇게 계속 반복한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집을 살수 있겠지.

내 처음 목표는 집을 사서 깜짝선물로 주는거였다.

한 10억쯤 벌면 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식은 내 맘대로 되는게 아니었으나, 절반정도는 내 마음대로 됐다.

처음에 산 주식이 우연찮게 급등해버렸고... 몇번 반복하다가 다른 종목으로 갈아탔는데, 그것도 급등을 해버렸다...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급등을 반복했다.

첫번째 주식은 순전히 운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거의 내 생각과 들이맞았다. 

(간이 작은데다 경제적인 지식이 전무해서 너무 일찍 팔아버린게 후회되긴 하지만, 뭐 어쩔수 없지)


여하튼 그렇게 나는 혹시 주식의 신이 아닐까. 난 컴퓨터 말고 주식을 해야되는거 아닐까 라는 허황된 생각을 할때쯤.

2017년 9월 17일이 다가왔다.

우리가 만난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만난지 14일째 되던 날, 인도 빠하르간지에서 찍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다음 편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Posted by v멍군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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